고조선의명도전(G선상의아리아)
어제는 국립중앙박물관
을 목적한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부터
용산 가족 공원 까지
2Km 트레킹 코스 를 답사가
주 목적 이었습니다
그러나 박물관 뒷길
억새와 끝나지 않은 단풍길
콩새들이 떼로 몰려 낭만이
가득할때 비가 내리기 시작
박물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고조선 관
선사시대 부터 이어지는 고조선
고대 국 부여
가야 철기 시대 유물만 감상
합니다 그중 고조선실은 감명 깊었습니다
우리 중고등 학생때 역사 교과서 저자
이병도를 춘곡이 친일 역사관을 가진
어용 역사학자였다 일깨워 줄 때 까지
그 연유를 몰랐었는데 고조선실에서
본 명도전이 고조선의 화폐라는 긍지를
재삼 확인하는 계기로 명도전앞에서
근 한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명도전에 대한 조회한 내용을
부분 적으로 모셔와 올려봅니다
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명도전
먼저 명도전이란 이름도 일본학자가 붙였고,
연나라 화폐로 규정한 것은 중국학자들이다.
중국학자들이 연나라 화폐로 본 이유는
고대 연나라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연의 국경을 압록강까지 표시한 것은 강단학파들의
식민사관에 입각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강단학파는 이병도를 중심으로 일본식민지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의 학맥을 이어온 어용학자들로
고조선 경계를
청천강까지로 보았으니 연나라는 만주지방을
모두 차지한 셈으로 누가보아도 오류이다.
왜냐하면 사마천의 사기에도 연과 고조선의
경계를 만리장성의 출발지인 산해관 옆의
‘난하’지역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명도전이 주로 발굴되는 지역은 만주일대와
압록강과 청천강사이 지역이다.
연의 화폐를 고조선 전역에서 사용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당시 고조선과 연나라는 전쟁 중이었다.
서로 침공하는 적대적인 나라로 적국의 화폐를
사용했다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다.
전국시대에는 연 이외에도 진, 초, 제, 한, 위,
진나라까지 7웅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던 시대인데
고조선 영토에 명도전 이외의 다른 나라의 어떤 화폐도
발굴되지 않는 것도 설득력을 약하게 한다.
대체로 고조선의 청동기문화가 발달하여 제품들이
매끈하고 디자인도 세련된 것인데 굳이 연나라
화폐를 차용할 이유가 없다.
또한 중국에서 발행된 역대고전도설에 보면 화폐에는
자기나라 국가명, 지역명, 화폐의 단위를 구별하기 위해
숫자들이 쓰여 있다.
그러나 명도전에는 그런 글자나 숫자가 없고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나 문양의 의미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어느 것이 글자인지 문양인지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연나라는 1백년 정도 존속한 나라인데
비해 명도전 출토양이 너무 많다.
하략
고조선문자"(허대동 지음/이민화 감수
/조홍근 검증, 경진출판사
대한민국은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고 그 중심에 서있는 개천절의
단군할아버지를 기리고 있고 우리들의 가슴속에 있지만,
현실은 일본제국의 침략말살정책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국토와 역사는
철저하게 부서지고 유린과 말살되고 위조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조선실을 신설해 부여,
삼한실로 개편해 고조선 역사 100여점과
관련 유물 200여점을 전시하며 고조선을
한국 최초의 국가로 인정하는 동시에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를 퇴출시켰고,
그 사실의 단초가되는 고조선의 문자를 해석한
"고조선문자"(허대동 지음/이민화 감수/조홍근 검증,
경진출판사)이 30일 발간된다.
해방후에도 일제의 위조된 교육을 받은 학자들과 침략
기업들의 장학생들이 정치나 역사계를 잡고
우리의 역사교육은 천대시되고 있고 고조선의
역사관 하나 없이 역사가 아닌 단군 신화로 폄하되고
일부 종교집단에 의해 할아버지의 신체가 잘려나가는
치욕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그냥 쉬는 공휴일로 폄하되어 있었다.
고조선을 한국 최초의 국가로 인정한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실
저자 허대동은 2년 동안의 연구로 연나라 화폐로
알려졌던 명도전이 고조선의 화폐이며,
그 뒷면에 새겨진 글자가 한글의 시초가 된 고조선의
문자임을 밝혀냈는데 그는 연구 과정을
수사기관의 수사 기록 일지를 적어 나가듯
역사와 현장감 있는 유물들과 글자들을
일일히 대조하고 해석하고 증명해 나갔다.
하략
백제 향로의 진품은 공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국립중앙 박물관 백제관엔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으나 너무 조합하여
품위가 없었습니다
이왕 품위있게 모조품이라도 좋게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3년 12월 12일(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 향로는
향로가 제작된 시기는 520~534년 사이로 추정되며,
고구려 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이래 내정의 혼란을
거듭하던 백제가 다시 안정을 되찾고 꽃피운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부처는 물론 도교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혹은
신선이 조각되어 도교와 불교 적 요소가 모두 있다.
무엇보다도 그 조각 솜씨가 워낙 놀라운 수준이라
백제 문화의 정수로 손꼽히며,
천하제일 명품으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조상들의
최고 걸작품이다.
일반인들에게도 신라의 금관처럼 백제 하면
떠오르는 멋진 상징적 유물이 없던 차에
그 빈 자리를 메웠다.
충청남도의새로운 마스코트 '충청이'의 모티브이다.
진품 사진/출처 위키백과
2019년 11월 24일
우리 동네 뒷산은 운무에 휘쌓여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국립중앙 박물관을 가기위해 채비를 하는데
우산을 챙기지 못하였지요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용산 가족공원 까지
걷는길을 답사하러 왔으나 초입부터 비가 세차게
와서 급하게 박물관으로 피신합니다
그러나 그쪽길의 끝나지 않은 가을의 풍경의
아름다운 모습과 새떼들의 이동모습 그리고
그들이 지져기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길은
최고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