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슈켄트의 나보이 극장 (Alisher Navoiy Balet ve Opera Teatri)
우즈벡시인의 이름을 딴 나보이 Navoy 극장은
2차 대전때 극동전선에서 소련군에게 붙잡힌
일본군 포로들의 노역으로 지었다는 극장은
크래식한 요소와 중앙아시아적 요소가 결합한
건축양식으로 넓리 알려져있습니다
다스켄트에 오는 일본인들은 반드시 들러본다고
합니다
세계정상급 오페라와 발레공연 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선보인다고 합니다
타슈켄트의 철수 바자르 (Tashkent withdrawal Bazar)
타슈켄트의 철수 바자르
바자르 Bazar
우리나라의 재래식 시장에 해당되는 곳으로
다슈켄트 시내에만 13군데의 바자르가 있다합니다
지붕만 있는 노천시장으로 수백수천의 상인들이
저마다 좌판을 벌여 놓고 손님을 부름니다
이곳은 삶의 향취가 물씬 풍겨나는 대단히 흥미
있는 곳으로 터키의 그랜드바자르와 흡사하다
특히 꾸일루크 바자르는 고려인 상인들이 가장
ajsgdms 곳으로 김치나 고춧가루 등을 살수 있어서
한국사람들의 관심을 가장끄는 곳입니다
침간산(덴산산맥 MT.Chimdgin)
다스켄트에서 북쪽으로 1시간반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침간산(덴산산맥 MT.Chimdgin)
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휴양지입니다
침간산 휴양지에 선
가이드 마리나는 고려인 입니다 아름다웠습니다
32살인데 우리풍습처럼 아이는 친정엄마가
키워준다고 하였습니다
사마르 칸트 (Samarkand)
우즈베키스탄의 대표 관광도시 사마르칸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더욱더 주목받고 있는 레기스탄광장
주도인 다쉬켄트에서 고속철로 4 시간 걸립니다
사마르 칸트 (Samarkand)는 동양 민족의 문화재로,
아름다움과 건축 양식이 독특하고 중세의
건축 기념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마르 칸트는 중세의 이미지와
많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도시는 바뀌었지만 모자이크 패턴으로 장식 된 돔,
탑 및 웅장한 건물 아치는 여전히 태양 빛을
발하고 눈을 끌고 있습니다.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목록에 포함 된 사마르 칸트의
명소와 기념물은 오래된 책의 페이지와 마찬가지로
사마르 칸트의 역사와 문화의 도시
교차로를 이야기합니다.
실크로드 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이름 사마르칸트는
당나라 장안에서 로마까지 이어진 오아시스 실크로드의
중간 거점도시로 숱한 사람과 물자를 이어주던
“문화의 십자로”같은 곳이었습니다
로마와 나이가 같다는 도시는 작은 오아시스 마을에서
시작 교역에 소질을 보였던 소그다니아의 중심으로
발전했고 징기스칸 시절을 거처 티무르제국의 수도로
그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도시 전체에
14.15세기 티무르제국의 역사유적이 산재해 있습니다
레기스탄 광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세 개의
신비의 건축물(울르그멕 마드레샤. 타라카리 마드레샤.
쉬르도르 마드레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세 건물사이에 광장이 있어서 왕에 대한 알현식
공공집회가 열렸던 장소로 “레기”는 장소 “스탄”
˜의 땅이라는 모래의 땅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전면 타라카리 마드레샤
좌측에 있는 울르그멕 마드레샤
우측에 있는 쉬르도르 마드레샤
화려한 모자익 타일 문양
Registan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이며,
중앙 아시아의 진주라고합니다.
이 광장은
Ulugbek madrasah (1417-1420),
Sherdor Madrasah (1619-1636) 및
Tillya-Kari Madrasah (1646)와 같은
아름다운 건축 앙상블의 일부로 중세
건축물의 독특한 기념물로 인해
이 명성을 얻었습니다.
'비비하눔(Bibi-Khanum)'
'비비하눔(Bibi-Khanum)'이란 티무르가 사랑한 중국인
왕비의 이름으로, 인도로 원정을 떠난 티무르를
깜짝 놀래켜 주기 위해 이 거대한 사원을 지었다고 합니다.
티무르가 돌아오기 전까지 완공시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는데
그때 왕비를 남 몰래 사랑하던
건축가가 왕비가 자신에게 입맞춤을 해준다면
완공시켜주겠다고 했다. 합니다
그래서 건축가와 입맞춤을 하게 되었는데 왕비의 볼에
건축가의 입맞춤 자국이 남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티무르는
거대한 모스크를 보고 기뻐했지만 왕비의 입맞춤
자국에 화가 나 건축가를 사형시켰고 왕비에게는
차도르를 쓰도록 했다.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그후 왕비는 완성된 미나레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도, 하는 실재하지 않은 이야기 라고도 전해져옵니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아무르 티무르대왕 영묘 구르아미르(Gur Amir)
아미르 티무르 (Amir Timur)의 가족 금고와
그의 상속인 인 구르 - 에미 르 묘소 (Gur-Emir Mausoleum)는
사마르칸트의 남서부에 1404 년에 세워졌습니다.
이 무덤은 델리의 후마윤 (Humayun) 묘소와
아그라의 타즈 마할 (Tadj Mahal)이라는 세계 건축물의
유명한 두 기념물의 원형 이었습니다.
황금으로 치장된 화려한 영묘의내부
이름대로 ‘절름발이’ 주검 확인 이 무덤의 실체가 밝혀진 것은 500여년이 지난 1941년 6월 21일 옛 소련 고고학자들에 의해서였습니다. 관들을 해체해 보니, 주검 한 구는 다리가 불구였고, 다른 한 구는 목이 잘려 있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티무르는 이란과의 시스탄 전투에서 오른손과 오른다리에 부상을 입어 평생 절름발이였다. 합니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바로 ‘절름발이’란 뜻의 티무르 입니다. 이로써 불구의 다리를 지닌 주검이 티무르인 것으로 확인되고, 잘린 목의 주인은 손자 울루그벡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발견을 놓고 뼈있는 일화가 나돌았습니다.발굴 현장에 허술한 옷차림의 세 노인이 나타나 책 한 권을 펼쳐보이면서 관에 손을 못대게 했습니다. 책에는 “티무르 무덤에 손 대지 말라. 손을 대면 전쟁이 일어나리라”란 경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발굴단은 실없는 망언이라며 노인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그 이튿날(22일) 독일의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했습니다. 그 뒤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전쟁들은 무덤에 손댄 탓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티무르에 대한 절대적 숭배에서 비롯한 수호의식이거나, 전쟁을 피하려는 간절한 염원의 반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정수일 문명사 연구가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Afrasiab Painting)
아프라시앞 궁전벽화로 가서
감개가 무량하였습니다 사마라칸트의 중앙아시아와
한민족의 교류가 확인되는 순간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위키백과에서는 벽화속의 두명은 고구려 특유의 복식인
조우관( 鳥羽冠 새의 깃으로 장식한모자)을 쓰고
환두대도(環頭大刀둥근 고리가 달린 큰칼)를
찬 벽화의 모습은 고구려 사신들이
당나라를 견제하기위해 연개소문이 보낸 밀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권영필교수님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와국 과학자들의 학술에의하여
아래글을 올려봅니다
사마르 칸트는 중앙 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에있는 도시입니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실크로드 (Silk Road) 중간 지점에
지리적으로 위치한이 도시는 고대 시간 동안
수년 동안 번영을 누렸다.
이 도시는 당시 동서양 사람들이 무역과 철학, 비즈니스 및
예술을 교환하기 위해 만난 소그드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1965 년 Afrasiab Hills에서 오래된 궁전이 발견 된
새로운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벽화는 역사가들이 소그드 왕국의 655 년에 바르만 왕의
통치 기간 동안 생산 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외국 대사로 보이는 사람들의 그룹을
보여주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역사 학자들은 서쪽 벽 오른쪽에있는
2 명은 고구려 왕국 (기원전 37 년 - 668 년)으로
고대부터 아시아 전역의 국제 관계 역사에 관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고 제안했다.
고구려의 고대 국제 관계는 주로 동아시아, 즉 일본과
중국에 국한되어있는 것으로 보아왔다. 고구려가
중앙 아시아에서 5000 킬로미터 떨어진 한 나라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왔다.
그러나이 벽화 발견은 고대 고구려와 세계를 연결 짓는
세계적 유대 관계를 재평가 할 기회를 연구원들에게 제공한다.
고구려에서 왔다고 생각되는이 두 인물은 고대 한국인이
착용하는 옷에 대해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깃털이
달린 모자와 끝 부분에 둥근 머리가 달린 검입니다.
김학조 동북아 역사 재단 사무 총장은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은 고구려의 강력한 외교관이자 총장 인
연 개솜 (603 ~ 666)이 당 왕조를 유지하기 위해
사신 (Sogdian) 왕국에 사신을 파견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907), 라이벌 국가. "
최근 이 그림은 동북아 역사 재단과 사마르 칸트의
아 프라 ab 박물관과 협력하여 다시 살아났습니다.
현재 용산구 국립 중앙 박물관 3 층 중앙 아시아
회의실에서 2014년 12 월 23 일부터 역사적인 작품이
전시되었습니다
부하라 (Bukhara)
부하라 시가지(City of Bukhara)
고대 이스람 색채가 뚜렸이 남아있는 아름다운도시
중앙아시아에서 고대의 이슬람 문화의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로 전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고대도시를 보기위하여 몰려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념물은 도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흔히 이곳을 우즈베기스탄의 보물이라고 부르며
역사적으로 사연이 많은 다양한 건축물들이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사마르칸트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때 거대한
실크로드 상업의 중심지였다 합니다
또한 과거에는 이슬람 세계를 통틀어 배움의 열기가
가장 높은 도시로서 약 350게의 이슬람 모스크와
100여개의 신학교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명성은
17세기 중앙아시아 대정복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합니다
라비 하우스(Lvabi-khauz)
고대 도시 부하라 중심부에 자리잡은 라비하우스 는
1620년대에 조성되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큰연못?) 이주변으로는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있어 현지주민과 관광객이 붐비는데
이 라비하우스를 둘러싸고 세 개의 유명한 건물주에
쿠켈다쉬메드레세(Kukeldash Madrassah)는
호수와 앙상불(Ensemble)을 아루는 16세기 초기
건물로 샤이반(Sheybanids) 왕조의 지배동안 세워졌다
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큰 이슬람 학교이며 320명 이상의
학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고 130여개의
휴즈 라 (hujras)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디르 디만베기 베드레세 (Nadir Devan Begi Khanaka)
는 라비하우스와 같은 시기에만들어진 겨울 모스크입니다
쿠켈다쉬메드레세(Kukeldash Madrassah)
나디르 디만베기 베드레세 (Nadir Devan Begi Khanaka)
호자 라수르딘 동상
호수가 광장주변에 세르반데스의 동키호테처럼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털털하게 보이는
호자 라수르딘 의 동상입니다
호자는 튀르크민족과 페르시아 민족들이 서로
자기네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현자입니다
그의 일화중 하나는
어느날 그가 아내와 잠을자고 있는데 아이가 앵앵
울기시작 했습니다
자고있던 아내가 호자에게 달래라고 말했습니다
호자가 “왜?”라고 대답하니 아내가 저애의 반쪽은
당신거잖아요! 그러니 애좀달래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호자는 “지금 울고있는 반쪽은 당신의 반쪽이고
내 반쪽은 자고 있다“
라고 말했다 합니다
호자가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은 어느지역이나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타고 다녔느지는 두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당연히 제대로 타고 다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꾸로 타고 다녔다는 견해입니다
여기있는 동상은 제대로 타고다니는 형상입니다
당나귀도 고개를 숙이며 끌려가는 듣한 생동감있게
보이며 술주정뱅이처럼 아니 우리의 봉이 김선달처럼
해학이 넘처나 있습니다
카페 에서
우즈베키스탄 음식문화(Uzbek food culture)
우즈베키스탄의 주식은 빵과 양고기입니다
우리가 먹은 것은 사마라칸트넌느(Samakand noni)
어쉬/플럽(osh/plov) 사쉴럭(ahashlik)
만트(manti) 너른(norin) 국시(kuksi)등으로
아주 맛이 있었습니다
푸른접시에 청결함이 묻어나는 음식은
사막으로 둘러쌓인 오아시스 유목민을 원조로한
그들만의 독특한 맛이 있지만 고려인들이 다수가
있어서 그런지 음식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사마라칸트넌느
(Samakand noni)
사마라칸트의빵은 우즈벡에서도
알아주는 최고의 맛을냅니다
어쉬/플럽(osh/plov)
고기 쌀 당근을 볶다가 물은넣어 끓인 우즈벡
대표 음식
사쉴럭(ahashlik)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 감자등을 꼬치에 끼워
직화로 구운요리
만트(manti)
샤워크림(요구르트)을 끼얹어 먹는 만두
너른(norin)
채썬 밀가루 반죽과 잘게썬 말고기로 만든
타쉬켄트 특산품요리
국시(kuksi)
고려인들이 만든 찬 국수요리
민속공연
부하라 이스마일 샤마니영묘 (Mausoleum of Ismail Samani)
이스마일 이븐 아흐마드 혹은 이스마일 샤마니
(?-907년) 샤만왕조의 지배자 아미르입니다
이스마일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만호다의 자손이며 중앙아시아 타지크족의
선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기에
수많은 전란에도 파괴를 면하고 오늘날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두 건축물이 있습니다.
사마니 묘당과 마고키 아타리 사원입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물이라는
사마니 묘당은 몽골 침략 시 도시가 무참히
파괴되었으나 1925년 흙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9세기경 이슬람 초기의 건축양식이어서
세계의 고고학자나 건축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마니 왕족의 묘당으로 지어졌는데 건물은
사각형 몸체에 반구형 돔을 얹은 구조입니다.
벽돌들은 요철 모양으로 각각 다른 기하학적
무늬를 넣고 쌓아올려 명암을 나타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부서지지 않도록 흙과 낙타 젖을
짓이겨 만든 벽돌이라고 합니다.
돔형 천장은 우주를 상징하고 땅을 상징하는
바닥은 네모나게 했습니다.
천장 아래에 작은 창을 내어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벽면의 문양이 계속해서
바뀌게 했습니다.
황금색 또는 푸른색으로 내부를 비추는 빛의
신비스러운 조화를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달빛에 보면 더욱 아름답다고 하니
당시 건축가들의 미의식에 놀랄 따름입니다.
이 건물을 보면 시간에 의해 마모된 흔적들을 품고
우뚝 서 있는 작은 거인처럼 느껴집니다.
한 민족의 문화가 타민족에 의해서 멸망되면
과거의 문화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문화를 키워나갑니다.
그렇게 중첩되면서 쌓여온 문화가 오늘날
중앙아시아의 모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실크로드의 ‘문화요람’과 같은
지역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매일신문]
아크 요새(아르크 성 Ark citadel)
아크 요새(아르크 성 Ark citadel)는 부하라의
가장 오래된 기념비입니다.
AD100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기록에 따르면 Bukhar-khudat Bidun이 이곳의 성곽을 건설한 후에
궁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거의 완성될즈음 갑작스런 붕괴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부하라 제국은 실패의 원인을 찾아 일곱개의
돌기둥 위에 다시 건설을 하였습니다. 이 성채는 궁, 부속 건물들, 성벽으로 이루어졌으며
34,675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재는 두개의 출입문이 있는데 원래 서쪽에 한개만 있었던 것이
1921년에서 1923년까지 2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고대에 이곳은 부하라 지배자의 거주지로 내부에는
왕궁뿐만 아니라 사원, 수용소, 사무실, 조폐소, 창고, 공장,
마구간, 무기고 심지어는 감옥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곳 내부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공예품과 거주지로 쓰였을당시의
생활상을 볼수 있는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역사와 함께 이곳은 계속해서 재건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