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

청보리에대한시모음(보리밭)

이모르 2021. 6. 27. 19:39

 

  이숙자 2010년 청보리황소 순지5배협지에 담채 97*161.1 출처 GanaArt

 

 

일명 보리밭작가라 불리우는 이숙자는 7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우리민족의 정서가 담겨 있는 보리밭을 매우 다채롭고 아름답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보리는 마치 화면 밖으로 뚜쳐 나올 듯이 톡톡 불거져 있는데 이러한 부조적 기법을 한국 채색화애 처음으로 도입하여 독창적인 표현 방법을 확립하였습니다

그의 미술의 소재로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보리밭을 회화의 대상으로 승화시키고 놀라운 조형성을 획드하여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경찌에 개척하였습니다 (출처:포털아트)

 

이숙자 2006년 보리밭환상 순지5배협지에 담채 110.5*145.5 출처 GanaArt

 

보리밭은 질긴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밟을수록 단단해집니다. 겨울을 품어 건강한 봄을 생산합니다. 원로화가 이숙자(70·전 고려대 교수)는 그 보리밭에서 40여년을 뒹굴었습니다. 결혼 후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층층시하에서 살았던 그는 가슴속 뜨거움을 토해내지 못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현실은 그에게 붓을 들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던그의 눈앞에 어느 날 생명력 넘치는 초록 보리밭이 펼쳐졌습니다. 봄이면 미친 듯이 보리밭으로 달려갔습니다. 보리 수염 한 올 한 올까지 가슴에 품고 화폭에 심었습니다.

 

이브의 보리밭 89 150x200㎝, 순지5배접, 암채, 1989/주간조선


   보리밭은 그를 천경자의 제자가 아닌 작가 이숙자로 우뚝 서게 만들었습니다. 보리밭에 단지 보리만 있었다면 잘 그린 풍경화에 그쳤을 겁니다. 그는 보리밭으로 여인을 불러냈습니다. 그의 여인은 봄밤 보리밭에 숨어든 연애소설 속 슬픈 여주인공이 아닙니다. 사내의 품에 고개를 묻던 수줍은 여인이 아닙니다. 고개를 들고 화면 밖을 당당하게 바라봅니다.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나신(裸身)은 강인해 보입니다. 도발적인 여인의 등장은 한국화에선 전례가 없던 일이었습니다. 돌과 보석가루를 섞어 만든 석채로 보리알을 도드라지게 하는 부조 기법도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극세필로 보리 수염을 그리다 보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강단진 그의 손끝에서 초록의 봄이 열리고 황금빛 들녘이 일어서는가 하면 은색과 보랏빛 물결이 일렁입니다 (출처:주간조선)

 

 

이숙자 1998년 청맥 한지에혼합재료 84.0*145.5 출처 Seoul Auction  

 

보리타작

타맥행(打麥行)/정약용

 

新篘濁酒如湩白

새로 거른 막걸리는 뿌옇지만 희고

大碗麥飯高一尺

큰 사발의 보리밥 높이가 한 척이네.

飯罷取耞登場立

밥 다 먹고 도리깨 들고 타작마당에 서니,

雙肩漆澤翻日赤

두 어깨 까맣고 땀이 나서 도리어 해 비치니 울긋불긋.

呼邪作聲擧趾齊

어야 디야!” 소리 지르며 두 발 나란히 하고,

須臾麥穗都狼藉

잠시 만에 보리 이삭 모두 낭자하네.

雜歌互答聲轉高

잡가를 서로 답하며 소리가 갈수록 높아져

但見屋角紛飛麥

다만 용마루에 어지러이 날리는 보리 보이네.

觀其氣色樂莫樂

보리타작하는 그 기색을 보니 무에 그리 즐거운지,

了不以心爲形役

전혀 마음으로 형체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니로구나.

樂園樂郊不遠有

낙원과 낙교가 멀리 있지 않으니,

何苦去作風塵客

어찌 괴로이 이곳을 떠나 풍진객이 될끄나茶山詩文集

 

 

沙里花(사리화)/ 이제현

 

참새야 일년 농사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 갔니

늙은 홀아비 혼자서 밭을 갈고 김맸건만

이렇게 먹어 치우다니 고생했던 벼와 기장

 

黃雀何方來去飛 一年農事不曾知

황작하방래거비 일년농사불증지

鰥翁獨自耕耘了 耗盡田中禾黍爲

환옹독자경운료 모진전중화서위

 

참새를 탐관오리에 비유한글

 

 

보리피리/한하운(韓何雲)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그리워

ㄹ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ㄹ닐리리

 

청보리/박흥진

 

보리밭에 뛰노는 철모르는 아이야

어지러이 흙 파헤치지 말고 자근자근 밟거라

겉보리 서말이면 니 애비 처가살이 면하고

춘궁기 장리벼에 네 누이 건사 하느니라

 

티켓다방 순이의 억척스런 몸부림

어느핸가 태풍으로 전답을 물말아 먹은

영식이네

아직도 이름없는 몸뚱아리 되어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 사람들

 

한낮의 고달픔이 쑤셔넣는 빈 숟가락에

더욱 복받치던 서러움 쯤이야

경엽에 푸른피 돌아 상처 아물면

청보리 파아랗게 피어나는 것을

 

그네들은 오늘 밤도 여지없이

-,

목젖에 걸린 까락을 내뱉으며

울음을 삼킨다.

 

보리죽은 못 먹는가? /최철로

 

놋그릇 놋요강 쇠붙이 모두

전쟁무기 생산공장으로 가버렸으니

지은 농사 공출 다바쳐

먹을 것도 없는 판국에

이빨빠진 질그릇

보리죽이라도 거득 담아주었으면 싶은데

피보리 등겨 개떡도 배불리 못먹어

쑥나물 뜯는 아낙들 일손 바쁘지

개껍데기도 벗겨서 바치고

앙고라 토끼털 깎는 아해들

눈앞이 노오랗다.

영양실조라는 말뜻을 모를 때라한참 클적에는 으례 그러려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느니라.

참 그럴적에는

배는 고프지

신발이 있나

옷이 변변한가 내나라 말로 어미부를 수도 아비 부를 수도 없고

한마디로 체면은 있어

생활은 걸뱅이 보다 못했었지.

그래도 사는게 무엇인지

 

푸른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이해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친구의 아들, 보리/차창룡

 

 

이름 때문에 놀림받을 것이다

아니다 놀림받지 않을 것이다

누가 알랴 보리라는 이름

귀리나 피 기장처럼 역사책에나 기록될

보리라는 양식

한때 밥상을 누렇게 수놓았던

서숙처럼 사라질 것을

보리라면 보리수나무로 연상하거나

보리밭 사잇길로 노래 속에서나 솟아날 것을

누가 알랴 밟을수록 퍼렇게 일어서는

보리, 세상을 깨달았을 때

너라도 알까 꽁보리밥

별미로도 존재하지 않겠지만

한때 지겹고도 고마운 우리들의 양식이었음을

여기저기 터지는 보리방귀

추운 겨울을 방문 열어제치던 누런 얼굴들

얘야 나 보리에게 보이 프렌드로 프로포즈하면 어떨까

말도 꺼내지 마 얘 한마디로 밥맛이야

밥맛, 밥맛이라는 말이라도 있을까

보리, 보리라는 말만이라도

콘 라이스 너트 속에 묻혀

아하 다행스럽게 놀림받지 않겠구나

보리야

 

 

보리씨/김용택

 

달이 높다

추수 끝난 우리나라

들판 길을 홀로 걷는다

보리씨 한 알 얹힐 흙과

보리씨 한 알 덮을 흙을

그리워하며 나는 살았다

 

보리밟기/민병도

봄바람에 뿌리가 들린 보리를 밟는다

문신처럼 드러나는 온 몸의 신발자국,

때로는 혼절의 아픔도 사랑이라 일러주며.

 

밟으면 꺾어지고 일으키면 누워버리는,

차마 작은 돌 하나도 밀어내지 못하지만

그 속에 물결 드높고 함성 또한 뜨거워라.

 

꼿꼿이 일어서서 아침해를 겨누면서

보무도 당당하게 이 땅의 슬픔을 이긴

보리밥, 민초(民草)의 힘이여! 사투리의 절개여.

 

정녕 무서운 힘은 창칼도 붓도 아닌

한 근()도 못 미치는 마음 안에 있는 것

날마다 속을 비우는 저 초록, 꿈을 밟는다.

 

 

별이 된 알/이윤재 시인(49, 서울시청 공무원)

 

큰물이 흐른 후,

섬에는 알들이 모두 사라졌다.

젖가슴 속에

토란처럼 차곡하던 알들이

영문도 모른 채, 가슴깃털을 떠나

때굴때굴 쓸려갔다.

 

개어귀에서

먹통거품 물고 기다리던

황토 빛 바다는

그들의 탯줄을 하얀 이빨로 모두 끊어냈다.

 

저문 하늘엔

품어야 할 것들을 잃어버린

어미 새들이

노을처럼 낮게 맴돌고, 맴맴 돌고

 

-언 바다 밑

불가사리들은

청 보리알처럼 익어가던 알들을

별인 양 품고 있었다.

 

청보리가 익어가는 소리/jehee

 

청보리 보는 일이 거의 없는데

새롭게 시야 가득 들어오는 날

힐링하는 내 눈동자 맑음이다

먼 산에 아지랭이 조차 사라진

오월의 청보리는 꽃보다 이뻐

만져도 보고 쓰다듬어 보았다

보릿국 끓이던 된장 한숟가락

엄니 생각이 나 눈물이 난다

막내딸이 생각이나 나실까나

이제 노년의 하얀머릴 감추고

나도야 간다 푸른 청보리 밭을

훠이 내 인생의 봄날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