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일기 의 일부분을 소개하자면
1637년5월17일 세자 심양관소에 머무시다. 포로(조선군민)의 매매를
허락하니 청인들이 남녀의 포로들을 성문밖에 집합시키다 그짝이 수만이라
혹 모자가 상봉하고 혹 형제가 서로만나 얼싸안고 울부짖으니 그곡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다.정명수(통역관)와 김여익이 황제의명이라고 와서 하는말이
“황제가 내일 세자를 만나고자 하니 세자는 마땅히 冠帶를 하고 가서 만나라”
고 하다 재신들이 말하기를
“세자가 남한산성으로부터 곧장 여기로 왔으므로 관대를
어느 겨를에 가져올수 있겠소?
이는 그대들도 아는바요
http://blog.daum.net/wonn1234/478 1. 심양일기(남한산성1부)
그후 明시대 조선의 태종 세종도 공녀를 보냈고 청때 병자호란으로
끌려간 부녀자들은 나라에서 돈이없어 개인들이 돈을 가지고 청으로
가서 노예로 사는 공녀들을 귀국 시키고 이경석이 청에가서 대거 귀국시키는데
還鄕녀 그들은 어느새 화냥년
이되서 모진 고통속에 살게 된다 그들도 살아가야 하기때문에 술 팔고
했을것인데 그들이 낳은 자식은 호로자식이라 아여 극도로 천시당했다 하였다
http://blog.daum.net/wonn1234/477 2.애절한 공녀들의한(남한산성2부)
오늘은 외성으로 돌아 다니며 병자호란때 경기도 광주
쌍령전투에서 아군 4만의 군사들이 팔기군300(3000명이란 설도있습) 에게
참패한 어이없는 전투사황을 이야기하는데!!!
화약을 충전하다 기습한 청군에게 支離滅裂 한 아픈역사를 돌아보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이야기라며 실록은 싱그럽고 야생화만 아름답게 피었지만
역사는 침묵하며 교훈을 남긴다..
http://blog.daum.net/wonn1234/476 3.쌍령전투(남한산성3부)
행군중 대화중엔 남한산성이 언제 축조되었나?
서부터 시작되는 자연 병자호란에 얽힌 이야기중에 인조반정에
서부터 이괄의난으로 가다가 그전 야간산행시 조선에서 가장
간사한 奸臣이 누구인가를 말하다가.
http://blog.daum.net/wonn1234/470 4. 조선의 간신 김자점(남한산성4부)
남한산성은 한강유역이 내려다보이는 서장대를 비롯한 주변 산능선을 따라
석축을 쌓은 둘레 8km의조선의 대표적 산성인데 동서남북 4대문중 동문은
좌익문 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동문은 남문과 함께남한산성에서 사람왕래가
가장 많았던 문이다
http://blog.daum.net/wonn1234/469 5.이경석과 송시열(남한산성5부)
이완 장군의 병자호란 동선령-토산전투 참전 기록-諡狀 번역
http://blog.daum.net/wonn1234/474 6.이완장군 (남한산성6부)
시구문으로 해서 남한산성까지 도망칠때 대장장이자
나무꾼인 서흔남이 이를도았다 하는것은 임금 인조를 업고 산성으로
올랐기 때문인데
http://blog.daum.net/wonn1234/473 7. 대장장이에 업힌인조 (남한산성7부)
절로 어깨춤이 추어지는 한판 공연뒤엔 뒤풀이라하여
함께 춤추며 즐기며 즐거움을 주고 같이 기념 사진도 찍어주는
이벤트 행사는 요즘 지방자치제 의 자기고장 선전의 큰장점으로
보이며 온힘을 다해 연출하는 연기자 여러분의 노고에 큰 감명과
박수를 보냅니다.
http://blog.daum.net/wonn1234/472 8.광주 광지원 농악단 (남한산성8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승병을 이끌고 참전 海 陸전을 가리지않고
참전 하였으며남한산성 축조시 팔도 도총섭이 되었고 공사를 마친후에는
“보은 천교원조 국일도대선사”
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의 행적을 기리기위해 당대 명성이 높았던
문관들이 비문을남겼다 유교를 국교로 했던 조선에서
승려를 위해 이런 “비”를 남겼다는
자체가 벽암대사의
공이 얼마나 컸는지지가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http://blog.daum.net/wonn1234/471 9.적장의 편지(남한산성9부)
지도자가 무능하면 나라를 도탄에 빠트리는 것은 현대도 마찬가지다.
청나라 심양까지 걸어서 끌려가던 공녀들 그들이 잘못이 있다면
인조 같은 무능한 지도자를 만난 시대를 원망해야 할것이다.
http://blog.daum.net/wonn1234/13 10.이연실의 찔레꽃(남한산성10부)
2014년 6월22일 유네스코 등제된 남한산성은 고대부터 조선시대 까지
축성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문화재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HS의 심사에서 우리의 사적 제57호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게유산이 되었다 이로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문화재는 남한산성이 11번째까지가 된다
http://blog.daum.net/wonn1234/1547 11.한남루(남한산성11부)
김류(金鎏 : 1571~1648)의 행적은 더욱 가관입니다.
김류는 인조의 측근 중의 측근입
니다(야사에 따르면 인조가 능양군 시절에 왕이
될 것을 가장 먼저 안 사람이 바로 김
류의 아내라고 합니다). 청나라가 위장전술로
우마(牛馬)를 두고 가자 김류는 군사들
을 내몰아서 싸우라고 독촉하나 군사들은
위장전술이라고 나가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김류는 비장(裨將)을 시켜 병사들을 칼로
마구 찌르니 병사들은 할 수 없이 나가서 싸
우다 순식간에 3백여 명이 전멸합니다.
그러자 김류는 전사자가 40여명에 불과하다고
보고하면서 다른 장수가 호응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남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뿐만 아
니라 병사들이 전멸한 마당에 퇴각 깃발을
늦게 들었다고 초관(哨官 : 대대장급)을
베어 죽입니다[『산성일기』52쪽].
http://blog.daum.net/wonn1234/963 12 산성일기(남한산성12부)
2017년 10월6일
안박사 부부와 영화 남한산성을 관람하였습니다
줄거리는 1636년 인조14년 병자호란 청의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나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척화신과 화친파
들의 명분싸움이 분분한데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http://blog.daum.net/wonn1234/2429 영화남한산성 (남한산성1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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