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사랑방야화 9

조주청의사랄방야화 풍각쟁이(난봉가)

조주청의 사랑방야화 191 풍각쟁이 남의 집 앞에서 각설이타령을 해 주고 동냥을 받는 젊은 풍각쟁이가 평안도 정주 땅 외딴 산골짝 조그만 동네 우물가에서 물 긷는 처녀에게 물 한바가지를 얻어 마셨다. “물로 목을 축였지만 까치고개를 넘어오자면 몹시 시장하실 텐데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초가삼간 처녀의 집에 가서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보리밥 한그릇을 비우고 나니 처녀의 부모가 삽짝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녀의 부모는 유장(柳匠)이었다. 버들가지 껍질을 벗겨내고 알맹이로 고리짝이나 바구니를 짜서 파는 천민으로, 사람들은 고리백정이라 불렀다. 개울가에 움막을 지어 놓고 거기서 일하다가 저녁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풍각쟁이는 처녀의 부모에게 인사하고 떠나려는데 처녀가 사립문 밖에 따라..

소주청의사랑방야화 우가네씨(우리마누라정말미치겠어)

소주청의 사랑방 야화(125)우가의 씨 법 없이도 사는 마음씨 착한 우가는 찢어지게 가난한데도 자식들은 바글거려 사람들은 흥부네라 불렀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나무뿌리처럼 되도록 일해도 여덟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바빠 보릿고개만 되면 초근목피로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우가 마누라는 합방만 했다 하면 배가 불러 또 하나의 입을 만드는 것이다. 어느 날, 노승이 우가네 집에 탁발을 와 좁쌀 한줌을 받아 넣고는 우가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더니 “낳을 아들이 열이요, 키울 아들이 일곱이네” 하고는 휑하니 떠나갔다. “열을 낳아 일곱을 키운다? 그럼 셋은 죽는다는 말인가? 지금 아이들이 여섯인데 넷을 더 낳는다고?” 한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렸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날 밤..

메밀꽃필무렵 조주청의사랑방야화(갑돌이와갑순이)

조주청의사랑방야화 메밀꽃필무렵 신랑의 숨소리가 멎어 있었다. 한밤중에 의원을 데려오고 난리를 쳤지만 죽은 아들 불알 만지기였다. 소위 복상사를 한 것이다. 시부모는 혹시 유복자라도 받을까 싶어 여섯달을 기다렸지만 입덧조차 없자 새신부는 시집에서 쫓겨나 친정으로 돌아왔다. 후원 별당에서 독수공방, 나날을 보내며 나비가 짝을 짓는 걸 보고도 눈물을 흘리고 그믐달을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매파가 찾아왔지만 양반 가문의 수치라며 이진사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쫓아 버렸다. 그러나 두문불출하는 청상과부 둘째딸을 바 라보는 이진사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몇해가 흘렀다. 어느 가을날, 밤은 깊어 삼경일 제 소피를 보러 일어났던 이진사가 풀벌레 소리에 그만 마음이 심란해져 방문을 열고 나가니 감나무 가지에..

복상사 조주청의사랑방야화

천석꾼 부자 최참봉이 상처를 하고 3년동안 홀아비 생활을 하다가 양자 내외를 세간 내보내고 새장가를 들게 되었다. 최부자네 안방을 차지할 삼십대 초반의 황간댁은 사슴 눈, 오똑한 코, 백옥 같은 피부에 앵두 입술로 자색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둥그런 턱 선과 넉넉한 인중, 넓은 이마 등 부귀 영화를 타고난 인물이다. 고을이 떠들썩하게 혼례를 올렸는데 첫날밤에 최참봉이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집의 담 모퉁이 하나 고치는 일도 구곡암자의 영검도사에게 물어보고 실행에 옮기던 최참봉이 혼인만은 자기 뜻대로 한 것이다. 혼례식을 올리기 전 황간댁의 관상을 본 영검도사가 최참봉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 여자 배 위에서는 황소도 살아남을 수 없으니 부디 혼약을 파기하십시오.” 최참봉..

변태과부 조주청의사랑방야화(산넘어남촌에는)

조주청의 사랑방야화 변태과부 인기척에 잠이 깬 황과부가 “누, 누, 누구요?” 이를 다닥다닥 부딪치며 벌벌 떨자 “나는 도적이다. 꼼짝 말고 이불 덮어쓰고 있으렷다.” 일부러 목소리를 걸걸하게 깔지만 어딘가 귀에 익은 음성이다. 도둑은 깜깜한 방에서 장롱을 뒤지다가 황과부를 밑에 깐 채 다락을 열고 더듬기 시작했다. 황과부는 그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려 머리맡의 바느질 고리짝에서 가위를 집어 들고 도둑의 옷섶 끝자락을 몰래 삭둑 잘라냈다. 도둑은 여기저기 뒤져도 별것이 없자 황과부를 흔들었다. “네년이 꽂고 다니던 금비녀는 어디 있는겨?” “ 여, 여, 여기.” 황과부가 비녀를 건네주자 조끼 주머니에 넣고 방을 나갈 제 꼬끼요 새벽닭이 울었다. 처마 밑에서 짚신을 신으려던 도둑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

독에빠진금지옥엽 조주청의사랑방야화(오동동타령)

조주청의사랑방야화 팔판동 김대감은 딸만 여섯을 두고 한숨만 쉬다가 마침내 3대 독자를 얻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을 지켜보는 게 김대감의 유일한 낙이다. ​가야금 소리가 아름다운들 외아들 울음소리보다 더 좋으랴. ​천하의 작명가를 불러 상훈이라 이름짓고 백일에는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3일이나 잔치를 벌였다. 상훈이 탈없이 자라 여섯살이 되자 서당에 보냈다. ​ 어느 날 서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상훈이 넘어져 정강이를 다치자 김대감은 서당으로 가 훈장님과 담판했다. ​ 그리고 자기 집 사랑방으로 서당을 옮겼다. ​ 넓고 깨끗한 김대감댁 사랑방이 서당이 되자 학동들도 좋아하고 훈장님도 입이 벌어졌다. 김대감댁 행랑아범은 몇년 전 상처를 하고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사는 홀아비로, 마당도 ..

싸움의기술(조주청의사랑방야화)

싸움의 기술 약재상 두곳이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유가네 약재상엔 문지방이 닳을 정도로 손님들이 드나드는 데, 맞은편 최가네 약재상엔 파리만 날린다. 최가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려고 시동에게 가게를 맡겨놓고 주막으로 갔다. 탁배기 한사발을 마시고는 구들장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주모가 흘끔 보더니 “무슨 걱정이 있소?” 물었다. 최가는 대답도 않고 우거지상으로 벌컥벌컥 석잔이나 마시더니 “우라질 놈들이 왜 유가네 가게에만 가는 거여?” 최가를 화나게 하는 건 유가네가 가격을 후하게 쳐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약재상이란 약초꾼들로부터 온갖 약재를 사서 이문을 남기고 한의원에게 파는 장사다. 최가는 수시로 유가가 약재를 사고파는 값을 알아내어 언제나 유가네보다 후한 가격을 쳐주는 데도 ..

두고온조끼(조주청의사랑방야화)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두고 온 조끼 황첨지네 집에서 5년이나 머슴 살다 새경으로 밭이 딸린 산 하나를 얻어 나온 노총각 억쇠는 산비탈에 초가삼간 집을 짓고 밤이고 낮이고 화전을 일구어 이제 살림이 토실하게 되었다. 눈발이 휘날리는 어느 겨울날 오후, 군불을 잔뜩 지펴 뜨뜻한 방에 혼자 드러누워 있으니 색시 얻을 생각만 떠올랐다. 그때 “억쇠 있는가?” 귀에 익은 소리에 문을 여니 황첨지 안방마님이 보따리 하나를 머리에 이고 마당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억쇠는 맨발로 펄쩍 뛰어내려 머리에 인 보따리를 받아 들었다. “그저께 김장하며 자네 몫도 조금 담갔네.” 억쇠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선 채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자네 살림은 어떻게 하나 어디 한번 보세.” 마님은 부엌에 들어가 억쇠가 만류..

귀암계곡호랑이(조주청의사랑방야화)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귀암계곡 호랑이 절벽이 병풍 둘러 하늘이 손바닥만하게 뚫어진 귀암계곡 30리를 빠져나가려면 초입에 자리 잡은 주막집에서 여럿이 모여 무리를 지어 떠나야 했다. 어떤 길손은 무리를 만들기 위해 며칠씩 주막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가끔씩 산적들이 길을 막기도 하고 호랑이가 대낮에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입춘이 지난 어느 날 주막집에서 열두사람이 모여 아침상을 물리고 눈발이 흩날리는 귀암계곡으로 들어섰다. 절벽에 붙어서 얼음판을 건너며 열두명의 길손들은 말없이 걸음을 옮기는데 눈발이 점점 굵어지는 게 걱정거리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먹장 하늘에서 폭설이 퍼붓고 지난번 왔던 눈이 채 녹지도 않은 터라 이내 허리춤까지 눈에 파묻혀 길손들은 거북이걸음이 되었다. 이리저리 눈을 헤치며 나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