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브라 궁전(Alhambra Palace)
2016년 7월17일 일요일
말라가에서 알람브라 까지 2시간여를 달려왔다 알람브라(Alhambra)는 아랍어로 “붉다”라는 뜻으로 남부의 그라나다에 살고 있던 아랍군주(술탄)의 저택이었던 곳으로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진 궁전과 성곽의 복합단지다
르네상스식 건물은 카롤로스1세때 추가되어 이스람건축과 어울려 있다 수많은 이스람왕이 이곳을 거처 갔고 1492년 기독교 세력이 재 정복하면서 궁전을 개조하기 시작 하였다 아랍권내 떨어져 있었던 무어인들의 개성으로 독특한 예술성을 창조한 예술가의 장조는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우아한 기둥들 종류석 솟아 있는 듯 외부가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알람브라의 추억이라는 은은하고 애잔한 아름다운 키타 음악이 생각났다 이곡은 스페인 유명 키타리스트 “타러가“가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을 관람시 큰감명을 받고 만든곡 이었다 1492년 콜럼브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그해 스페인의 페르난드2세는 이스람 마지막 왕 “보아브딜” 을 공격하여 거의 수세에 몰리어 평화적으로 항복과 함께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런 역사적 연유일까 알람브라의 추억 키타음은 그들의 몰락을 애잔하 그린 것 같다 그러나 이곡은 "타러가"가 유부녀인 "콘차"부인을 짝사랑 하고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데 거절당하자 스페인 각지를 여행 알람브라 궁전에 도착하여 노을지는 배경의 알람브라의 모습을 보며 애잔하게 작곡한 곡이었다
정문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균형과 각도를 맞춘 정원수 들이 잘 정리 되어 있었고 가는곳 마다 독특한 예술성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게 된다
현지 가이드와 스페인 로칼가이드
우리나라 와 똑같은 천남성 열매다
베롱꽃
프랑스 정원숲길 여름궁전 울창한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아치모양 잘 다듬어 져있다 이 프랑스식 정원을 지나면 왕궁의 동쪽 끝에 위치하며 1세기초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헤네라리페는 아랍어로 “천국의 정원” 또는 “모든 것을 다 볼수 있는 사람이 사는 정원”이라는 뜻이다
알람브라 궁전 입구에는 국왕을 알현하러온 토후들을 비롯한 외부인들이 들어올수 있었던 마지막공간인 “황금의방”안뜰이 나온다 바닥에는 대리석이 깔려있고 중앙에는 분수가 있다
Alhambra Generalife 헤메랄리페 정원
그라나다 왕 술탄의 여름별장 이라는 이곳은 하얀 외벽이 특징이다 자연그대로의 아랍식 정원의 진수이다 “건축가 알라신의 정원”이란 뜻의 헤랄랄리페는 꽃과 나무 그리고 물이 건물과 잘 어울리는 곳이다
Generalife conrtyard with dead cyprus tree
담장옆에는 슬픈 사랑의 고사목이 애절하게 서있다 이 눈물의 나무는 옛날 어느 신하와 후궁이 사랑에 빠져 밤이면 이나무밑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었다 한다 비밀이 없는 법 이어서 이러한 사실을 눈치챈 왕이 신하를 처형해 이나무에 매달았다 이 나무 또한 이들에게 불륜의 장소를 제공 하였다 하여 뿌리를 잘라 고사시켰는데 고사목이 되어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스람의 율법은 여성에게 무자비하였는데 후궁은 어찌되었을까??? 어찌된 일일까?? 술탄들은 하렘을 차려놓고 남성들은 근접을 못하게 했는데 여기만 해도 이스람권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궁전이라 두사람이 사랑을 나눌 수 있었나? 사랑은 위대하다
알람브라 궁전(Alhambra Palace)
알카사바(alcazaba)는 성 또는 요새화된 구내를 뜻하는 아랍어가 스페인어로 변이된 것으로 궁전을 바위하는 요새부분외에 말라가.아르메니아,메리다 등에 남아있다 알람브라 알카사바는 알람브라 궁전 서쪽편 평야지대를 향해서 세워져 있는데 지금은 성벽과 몇 개의 탑만 남아있다 스페인에 남아있는 스페인의 성채로는 궁전을 둘러싼 성채인 알카사르와 읍성을 이루고 있던 성벽은 많이 남아있는데 요새의 형태로 세워진 알카사바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 내부에는 궁전이 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스페인 여행 동료 였던 유명대 공학도 2명의 학생들은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으로 여행의 마스코트모양 여행팀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사진은 동의를 얻어 올리게 되었다
알카사바 정문
알카사바 망루에서 바라본 그라나다에서 오래된주거지역 “알바이신“ 지구
건물의 기둥 양식이 1층과 2층이 달랐다 1층은 투산식 이고 2층은 이오니아 식이다
카롤로스5세궁전 Alhambra Palacio de CarlosⅤ
이궁전은 신성로마황제가 된 에스파냐 왕 카롤로스5세 명으로 건축가 페드로 맞추카(Pedro Machuca)가 1528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전위적인 양식이었다
어느 시대의 대포인가? 카롤로스5세궁전 앞 중세 대포는 그라나다 시를 겨냥하고 있었다
우리 세종대왕 만큼 성군이었던 스페인 이사벨여왕 은 조선 성종때인 1492년 그라나다를 점령함으로 레콩키스타를 완성하였다. 지난 800년간의 북아프리카의 이민족이자 이교도에 의한 이베리아 반도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을 지원하여 신대륙의 존재를 유럽에 알렸으며 이를 통하여 스페인의 해외영토 개척의 기초와 16세기의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라나다 이슬람교도인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보아브딜 왕은 이사벨 여왕에게 항복하면서 3가지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첫째, 알함브라 궁전을 잘 보존 해달라, 둘째, 다 데리고 갈 수 없는 이슬람인들을 국민으로 받아 달라, 셋째, 남아 있는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그가 이사벨 여왕에게 항복하고 쫓겨나면서 시에라 네바다 산맥 언덕 길을 말을 타고 가다가 한없이 눈물을 흘리자 신하가 “나라 잃은 설움에 우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왕은 “아니다 다시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지 못해서 슬프다”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스페인 기타연주자 및 작곡가인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클래식 기타 연주곡. 스페인 낭만주의 음악의 꽃이라고 평가받으며, 타레가가 발전시킨 독특한 트레몰로 주법이 자아내는 신비로움과 서정적인 선율의 애절함이 일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파스칼 수도원의 경비로 일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타레가의 집안은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기 때문에 타레가의 아버지는 돈을 벌기위해 자주 지방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지방에서 병에 걸려버려, 간병을 위해 어머니가 지방으로 가는 일이 있었고 당시 3살이었던 타레가는 이웃집에 맡겨졌다. 어린아이었던 타레가는 야뇨증 때문에 밤에 자주 오줌을 쌌는데, 이에 화가 난 이웃이 타레가를 수로에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다행히도 지나가던 이웃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물에 있는 세균 때문에 각막이 손상되었고, 이 때문에 타레가는 평생 온전한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합니다
그러메도 불구하고 그는 작곡가 키타리스트로 세계 독보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악성 베토벤 귀머거리가 되어도 월광 같은 위대한 작품을 만든것처럼 타레카는 알함부라의추억 같은 명곡을 탄생 시킵니다
타레가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기타로 기타를 처음 연주하게 된다. 타레가의 기타실력은 순식간에 아버지를 제치게 되었고, 타레가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1860년에 카페 데 라벨라의 피아니스트였던 맹인 에우제니오 루이스에게 음악수업을 시켰다. 하지만 타레가의 흥미는 기타에 있었고, 이후에는 맹인 기타리스트로 유명했던 마누엘 곤잘레스를 사사하게 된다.
1896년 타레가는 그의 제자이자, 유부녀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여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그녀는 타레가의 사랑을 거부하였습니다. 실의에 빠진 타레가는 스페인을 여행하다가 그라나다에 위치한 알함브라 궁전을 접하게 되고, 이 궁전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이 곡을 쓰게 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스페인 기타연주자 및 작곡가인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클래식 기타 연주곡. 스페인 낭만주의 음악의 꽃이라고 평가받으며, 타레가가 발전시킨 독특한 트레몰로 주법이 자아내는 신비로움과 서정적인 선율의 애절함이 일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파스칼 수도원의 경비로 일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타레가의 집안은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기 때문에 타레가의 아버지는 돈을 벌기위해 자주 지방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지방에서 병에 걸려버려, 간병을 위해 어머니가 지방으로 가는 일이 있었고 당시 3살이었던 타레가는 이웃집에 맡겨졌다. 어린아이었던 타레가는 야뇨증 때문에 밤에 자주 오줌을 쌌는데, 이에 화가 난 이웃이 타레가를 수로에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다행히도 지나가던 이웃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물에 있는 세균 때문에 각막이 손상되었고, 이 때문에 타레가는 평생 온전한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합니다
그러메도 불구하고 그는 작곡가 키타리스트로 세계 독보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악성 베토벤 귀머거리가
되어도 월광 같은 위대한 작품을 만든것처럼 타레카는 알함부라의추억 같은
명곡을 탄생 시킵니다
타레가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기타로 기타를 처음 연주하게 된다. 타레가의 기타실력은 순식간에 아버지를 제치게 되었고, 타레가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1860년에 카페 데 라벨라의 피아니스트였던 맹인 에우제니오 루이스에게 음악수업을 시켰다. 하지만 타레가의 흥미는 기타에 있었고, 이후에는 맹인 기타리스트로 유명했던 마누엘 곤잘레스를 사사하게 된다.
1896년 타레가는 그의 제자이자, 유부녀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여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그녀는 타레가의 사랑을 거부하였습니다. 실의에 빠진 타레가는 스페인을 여행하다가 그라나다에 위치한 알함브라 궁전을 접하게 되고, 이 궁전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이 곡을 쓰게 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프레미엄조선인용)
스페인의 기타 연주자 및 작곡가인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클래식 기타 연주곡이다.
1896년 타레가는 그의 제자이자, 유부녀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여\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그녀는 타레가의 사랑을 거부하였다. 실의에 빠진 타레가는 스페인을 여행하다가 그라나다에 위치한 알함브라 궁전을 접하게 되고, 이 궁전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이 곡을 쓰게 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스페인 낭만주의 음악의 꽃이라고 평가받으며, 타레가가 발전시킨 독특한 트레몰로 주법이 자아내는 신비로움과 서정적인 선율의 애절함이 일품이라고 볼 수 있다. 클래식 기타 매니아라면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한다. 트레몰로하면 클래식 기타 매니아들은 십중팔구 이 곡을 떠올릴 정도라고 한다. 트레몰로로만 이루어진 곡은 망고레의 최후의 트레몰로도 있다..(위키백과)
평보의스페인여행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Tárrega: Guitar Edition
Memories of Alhambra - Francisco Tárr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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