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한남루(남한산성11부)

이모르 2020. 12. 14. 14:37

 

 단장된 한남루

단청전 한남루

한남루(漢南樓)는 1798년(정조22) 행궁의 정문으로 신축됐으나

1909년 이전에 이미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조사단은 프랑스 외교관 프랑뎅이 1890년대에 찍은 한남루 사진이 남아 있어

복원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2014 622일 유네스코 등제된 남한산성은 고대부터 조선시대 까지

축성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문화재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HS의 심사에서 우리의 사적 제57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게유산이 되었다 이로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문화재는 남한산성이 11번째까지가 된다

 

 

17세기 남한산성 지도

 

 

 

친우4명이 남한산성에 가게되었다

남한루가 내부공사가 끝나 관람할수 있었다

행궁은 복원공사가 이루어 질 때 복원을 위한 발굴작업에서

삼국시대 대형 발굴지가 발견되어 남한산성이 삼국시대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확증하였다

 

 

통일신라시대 건물 터가 발견되며 남한산성의 역사와 가치는 한층 더 높아졌다

 

인조는 단 2 5개월 만에 8km의 성곽을 건설했다.

이는 당시의 건축기술로는 힘든 일이었고,

그것은 이전에 존재했던 성곽을 따라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한산성의 시작은 광주가 한산주라는 이름을 가졌던

통일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는 당이라는 대국의 힘을 임차해 통일을 이루어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당은 이전 고구려 땅이었던 영토를 가져갔고,

그들의 야욕은 한강까지도 집어삼키려 했다. 이를 막고자 신라는 영토 북쪽에

산성을 지었는데, 그 중 하나가 현재의 남한산성에 자리했던 것. 2007,

행궁지 복원 공사 도중 발견된 통일신라의 대형 기와와 건물 터는 남한산성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했다. 현재 이 터는 현대식 건물에 의해 둘러싸여 보존되고 있다.

(경기도 청소년 기자단)

 

 

남한산성의 행궁은 1624(인조2)7월에 착공하여 162611월에 완공된

조선시대의 별궁(別宮) 또는 이궁(離宮)으로 후금(後金 후에 청나라)침입에

대비해 백제때의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 축조한 것이다

유사시에 임금이 임금이 머무르던 궁궐의 하나로 병자호란당시

임시궁궐로 사용하였다.

원래는 상궐(上闕73) 하궐(下闕154)등 총 3 227칸으로 이루어진

행궁이었으나 모두 불에 타서 터만 남아있다

南漢誌 에는 숙종 영조 정조가 영릉(세종대왕릉)을 참배할 때

이곳에 머물렀다 한다 후대에는 지방관 유수(留守) 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고 추정한다

 

 

행궁 주련

 

내행전 내부

 

 

왕의침전

 

세자침전

 

 

일장각

광주유수 가 쓰던 집무실

 

유수 처소 

 

 

궁녀들의 처소는 왕의 침전옆으로 있다

 

남한산성은 2가지 설이 있는데 남한산성이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세운

왕도인 하남위례성 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라시대에 쌓은 주장성(일장성)

백제의 고도라고 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연려신기술)에 실려

힘을 얻었고 두 번째 설은 삼국사기에 근거한 것인데 신라문무왕 12조에

한강이남에 주장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라는 기록이 보인다

최근 행궁터를 발굴조사때 백제의 유적으로 보이는 수혈과 화덕자리가 발견되고

백제 토기들이 발견되어 백제의 땅이었다 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조선왕조실록보다

앞선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된것과 대대적인 유물이 출토가 안돼서 어느한편이

옳다고 단정하기 어렵다한다.

 

 

북문

성문엔 조선 전투지휘기인 대오방기가 걸려있다

 

 

인조는 조선에서 두 번째로 반정을 성공시킨인물이다 중정은 대신들이 일을 주도

했으나 인조는 1623년 등거리 외교로 청과명의 완충지로 남게한 광해를

제거하는 능동적인 거사로 임금이 된사람이다

명분에 약했던 그는 망해가는 명에대한 충성을 하다 산성에 들어온지 46일만에

청태종 홍타이지의 폭거로 1637130일 인조와 소현세자는 남색융의 차림으로

서문(西門)을 나섰다

오늘날 잠실 인근의 나루터인 삼전도에서 세 번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행한다 남한산성은 파괴되지 않았으나 국가의

위세는 땅에 떨어졌고 그이후 조공과 공녀들의 원한이 하늘을 찔렀다

비가 오고잇었다

행궁입장 남한루를 지나서 남한산성에 대한 옛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필두로 임금이 인조가 국사를 보던 자리 궁인들이 거처하던 곳은 복구되어

있었다 46일간 인조의 고뇌 ????

 

주련

소실이전의 주련

 

 

주련(柱聯) :

기둥마다에 시구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 부른다.

 

이러한 주련(柱聯)은 함축적인 당호보다는 주로 오언절구나 칠언절구로 된

대구(對句)의 시구를 새겼는데, 마음처럼 쉬운 장식은 아니었다.

가게 기둥에 주련이라는 비유가 있을 만큼, 풍류를 즐긴다 해도

자신과 집의 격에 맞는지 먼저 상고하고 결정하는 염치가 선행되어야 했다.

 

주로 안채에는 아녀자의 정조와 아이들을 훈육하는 내용이 많았고,

사랑채에는 외부인이 많이 드나드는 만큼 주인의 수작(秀作)이나 당대 명필,

 문인들의 시로 풍류를 나타내어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다.

 

사랑채의 기둥에는 오언이나 칠언의 유명한 시나 자작한 작품을 써서 건다.

 한 구절씩을 적어 네 기둥에 걸면 시 한 수가 된다.

 

주련은 경치 좋은 곳에 세운 누사(樓榭)나 여타의 다락집,

불교의 법당 등에도 건다. 다락에서 내려다보이는 좋은 경개(景慨)를 읊은

시가 주련에 채택되고, 포교를 위한 부처님의 말씀을 주련에 새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청의 주력포 홍이포

조선의 주력포 천자포

 

 남한산성 행궁(行宮) 한남루(漢南樓) 주련(株聯)

 

<外面>

守一城講龍虎韜 수일성강용호도 한 성을 지킬 용호영에 병법을 강의하고,

鎭百里閱豼貅士 진백리열비휴사 백리를 진압할 군대의 군사를 열병한다.

良刺史宣上恩德 양자사선상은덕 ()있는 자사는 임금 은덕을 베풀고,

大將軍御下威信 대장군어하위신 대장군은 위신(威信)으로 부하 다스린다.

* 용호(龍虎): 인조 때 신설 한 용호영(龍虎營: 軍營의 하나)을 말한다.

* 비휴(豼貅: 貔貅): 사자나 호랑이를 잡아먹을 만큼 강력한 맹수로,

북방의 초원 지역에 살며, 사람이 물리기만 해도 병에 걸린다하며, 임금이

 이를 죽이면, 백성이 편안하다는 전설적인 동물의 이름이다.

 잘 조련된 강력한 군대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內面>

是地兼繭絲保障 시지겸견사보장 이곳은 누에치고 길쌈일도 보장해야하고,

暇日卽雅歌投壺 가일즉아가투호 틈이 나는 날엔 사랑노래와 투호를 한다.

縱未能復讐雪恥 종미능복수설치 언젠가는 복수하고 치욕을 풀 수 있도록,

恒存着忍痛含寃 항존착인통함원 항상 고통을 참고 원통함을 품고 있으라.

* 견사(繭絲): 누에치고 길쌈을 해서 옷감을 마련하는 부업을 뜻한다.

* 아가(雅歌): 큰 까마귀의 노래라는 말인데, 남녀 간의 아름다운 연애를 찬양하는

문답체로 된 노래로, 기원전 2~3세기경에 나왔다 한다

 

 

남한산성 행궁(行宮) 하궐(下闕) 주련(住聯)

 

남한산성 행궁(行宮) 하궐(下闕) 문화재청 사진 발췌

 

聖代初回三古俗 성대초회삼고속 태평성대 세 왕조 옛 풍속 처음 돌아와,

禁林長住萬年春 금림장주만년춘 금림(禁林)은 오래오래 만년의 봄이로다.

春在聖人方寸裏 춘재성인방촌리 봄은 성인(聖人)의 마음속에 있도다.

民皆元氣太和中 민개원기태화중 백성 모두 원기 있고 매우 화목한지라,

萬民歌舞康衢月 만민가무강구월 만백성 노래하고 춤추는 평온한 정경은,

千里煙霞壽域春 천리연하수역춘 천리에 연기노을 살만한 세상의 봄이라.

* 금림(禁林): 수목의 벌채를 금하여 특별히 보존하는 수풀로, 특정한 목적이 있다.

* 성대(聖代): 뛰어난 임금이 잘 다스려서, 태평성대를 이룬 시대. , , 주 시대.

* 방촌(方寸): 사방으로 한 치. 마음, 흉중(胸中), 마음 속, 심중(心中).

* 강구월(康衢月): 강구연월(康衢煙月):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넓은 거리가 평온

하며, 밥 짓는 연기로 자욱하고, 하늘엔 달이 뜬, 시가지의 풍경을 뜻하는데,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안온한 풍경을 나타내는 말이다.

* 연하(煙霞): 집집마다 밥을 짓느라 연기피어 오르고, 하늘엔 저녁노을이

 붉게 타 오르는 저녁때의 일상적인 풍경으로, 평화로운 세상의 정경을 나타낸다.

* 수역(壽域): 잘 다스려진 살기 좋은 세상지역, 오래 살 수 있는 즐거운 경지,

오 래 살았다고 할 만한 나이를 뜻하기도 한다.

               

자료제공 성남문화원 해설사 한동열   한범구 / 편집자

 

 

 

남한산성 승군(僧軍)사찰 장경사 범종 100년만의 귀환

봉은사에 소장되어 있던 장경사 범종 제자리에,

석가탄신일 맞아 일반에 공개

 

숙종 8(1682)에 제작되어 330년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남한산성

장경사(長慶寺) 동종(銅鐘) 100년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장경사는 조선시대 남한산성의 축성과 관리를 담당하였던 10개 사찰의

하나로 인조 2(1624)에 창건되었으며, 현재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

지정되어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교구의 조계사의 말사다.

이번에 돌아온 남한산성 장경사 동종은 총 높이 82.5cm, 종신 높이 62.2cm,

음통 높이 19.2cm, 종입 지름 53.0cm, 종입 두께 6.2cm로 장경사에 오기 전까지

서울 강남의 봉은사에 소장되어 있었다.

단용의 용뉴와 음통을 갖춘 전통적인 조선 후기 양식의 종으로, 음통은

용신과 용꼬리로 나선형으로 감겨져 있다. 상대는 62자의 범자문양을

2단으로 돌렸고, 하대는 연화당초문을 돌렸는데 상대폭이 하대폭보다 넓다.

상대에서 독립된 사각형의 유곽 4좌와 구름위의 보살입상 4구가

교대로 배치되었고, 당좌는 없다. 유곽과 보살입상 아래, 즉 종복에 긴 명문대가 있다.

 종의 연원을 알 수 있는 명문과 시주자 명단이 들어있다.

康熙二十一年 壬戌 三月日 京畿廣州府邑內 南漢山城 長慶寺中 鐘重三百斤入

, 강희 21년 조선 숙종 8(1682) 3월에 경기 광주부 읍내 남한산성에 있던

장경사 종으로 중량은 300근임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 내 10개 사찰은 조선 말 갑오개혁 때 성곽의 축성과

 관리를 위한 의승방번제(義僧防番制)가 폐지되고, 1907년 일제에

의한 군대해산령에 따른 산성 내 무기수거와 함께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이러한 혼란기에 장경사 범종은 봉은사로 넘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단장:전종덕) 관계자는 이번 남한산성 장경사

범종의 귀환은 남한산성 세계유산적 가치의 진정성을 더해주는 것은 물론

산성 내 사찰이 호국 불교의 역할을 수행한 의미있는

유물로 평가된다면서범종의 역사학적, 미술사적, 보존과학적

측면에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경기문화재단)

 

외상문

 

재덕당 반석과 고목

 

 

 

재덕당 오르는 계단

 

좌승당

 

이휘정 오르는 계단

 

수어장대

 

 

6암문 밖(外)

6암문 안

 

남한산성 지휘부가 있었던 수어장대 앞에는 밖으로 빠지는 서암문이 있다

암문은 비상시 지휘부가 빠져나갈수 있는 비밀통로이다 여기로 나가면

남한산성 아래 송파지역과 연결되는데 옛날에는 송파나루를 거처서

도성인 한양과 연결되도록한 것이다

이암문 북동쪽으로는 성벽을 돌출하여 적이 이암문을 통과할 때

측면에서 공격할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으며 암문은 눈에 잘 띄지 않게

평거식으로 낮은 통로만 두고 있다 지휘부가 있던 수어장대 부근이어서

암문성벽은 주위보다 높고 튼튼하게 석축을 쌓았다

 

암문은 남한산성에 16개가 있으며, 남한산성은 한국 성곽 중에서

가장 많은 암문을 가지고 있다. 암문은 적이 관측하기

어려운 곳에 만든 성루가 없는 성문이다.

원성에 11, 봉암성에 4, 한봉성에 1개가 있고 형식은

평거식과 홍예식으로 구분된다. 암문은 은밀하게 식량과

무기를 운반하거나 원군이나 척후병이 출입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크기가 작고 장식이 없다. 암문의 안쪽에 쌓은 옹벽이나

흙은 유사시에 무너뜨려서 암문을 폐쇄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2암문

 

7암문

 

8암문

 

9암문

 

10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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