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감사(평안도 관찰사) 부임도 /김홍도
한자성어(漢字成語) 혹은
고사성어(故事成語)
는 주로
중국의고사 에서 유래하여 비유적인 내용을 담은
함축된 글자로 상황, 감정, 사람의 심리 등을 묘사한 말이다.
주로 4글자로 된 것이 많기때문에 사자성어(四字成語)라
일컬키도 한다. 일상생활이나 글에 많이 사용된다.
한국어권에서 쓰인 속담이 한자성어로도 쓰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 예로 ‘제 논에 물 대기’가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쓰이는 것이 있다.
이와는 별도로 한 시대의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상을
빗대어 풍자적으로 유행하는 사자성어도 있다.
분서갱유(焚書坑儒: BC 213~206?[ 또는 진화(秦火)는
진나라 시황제가 사상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농서
등을 제외한 각종 서적들을 불태우고 수백명의 유생을
생매장한 사건이다.
언론이나 문화에 대한 탄압의 상징이기도 하다.
당시 불태운 서적들은 현대와는 달리 대나무로 만든
기록수단인 죽간을 말한다.
苛斂誅求 가렴주구
수령이 자신들의 백성들을 상대로 있는 없는 착취를 가한다.
탐관오리를 비유.
可高可下(가고가하) - 높낮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인자(仁者)는 높은 지위에 있어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낮은 지위에 있어도 두려워하지 아니함.《國語》
이러한 사자성어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많이 생산되었고
아래 글들은 욕 같지만 의미가 있는 단어들로 재있게
소개하여본다
사기(史記)고조본기(高祖本紀)
[내용]한(漢)나라 원년 10월에 유방(劉邦)은
진(秦)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패왕(覇王)이 되었다.
유방은 진나라의 수도 함양(함양)에 입성하여 궁궐로 들어갔다.
그 궁궐은 호화스럽기 그지없었으며, 재물은 산같이 쌓여 있고,
후궁들의 수도 천 명도 넘었다. 유방은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유방의 이런 마음을 눈치 챈 장수 번쾌(樊쾌)가 말했다.
“밖에서 야영을 하십시오. 이러한 재물과 후궁은
모두 진나라가 멸망하게 된 원인입니다.
이곳에서 머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유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자,
이번에는 장량(張良)이 간언했다. 지금 왕께서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진나라가 무도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에 들어와서 진나라와 똑같은 즐거움을 즐긴다면
진나라의 전철을 밟는 것입니다.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동에 이롭고,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좋다고 합니다.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유방은 그래서 패상(覇上)으로 돌아가 야영을 했다.
그리고 각 고을의 대표와 호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시달렸습니다.
진나라의 법을 비방하는 사람은 온 집안 식구가 죽음을 당했고,
그것을 화제로 삼은 자도 시체가 되었습니다.
나는 먼저 관문(關門)에 들어온 사람이 왕이 된다고
약속하였으므로 관중(關中)의 왕이 될 것입니다.
나는 각 고을의 대표와 호걸들에게 약속하겠습니다.
법은 세가지만 둘 뿐입니다
(法三章耳).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자와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정도에 따라 벌하겠습니다.
그 밖의 진나라 법은 모두 폐기 할 것입니다.
여러 관리와 백성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생활을 하십시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여러분들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려는 것이지 괴롭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패상으로 돌아가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제후가 이르기를 기다려서 약속을 정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해설]이렇듯 유방은 사람됨이 어질어 백성들을 사랑하였던 것이다.
진나라 백성들은 모두들 기뻐하며 유방이 왕이 되기를
바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약법삼장의 해석에는 이설(異說)이 있다.
즉, 약(約)은 절약 ·생략을 뜻하며, 진나라의
법을 폐지하고 다만 3장으로 생략하였다고 하는 설도 있다.
법삼장은 간단하고 요체를 파악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부족하였기 때문에
얼마되지 않아서 재상 소하(蕭何)가 구장률(九章律)을
제정하였다고 한다.
필터.참진,펼부.이그러질 랄.
진리를 펼처 일그러진 것을 바로잡는다
바라볼조.무릎슬.섞일잡.괴로울고.
무릎을 마주하고 괴로움을 함께한다는 뜻으로
남의 아픔을 함께하는 품성을 의미 한다
足加示梧(족가시오)
발족.더할가.보일시.깨달음오.
만족을 더하여 깨달음 경지가 보인다는 뜻으로
작은것에도 만족할줄아는 미덕을 일컷는말
据緊安代(거긴안대)
편안함 대신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을 택한다는 뜻
苦患强咤 (고환강타)
당신은 괴로운 근심도 굳센 마음으로 이겨내는 강한 사람
營求業多 (영구업다)
큰 일을 도모하고 새로운 일을 구하니 바쁘고
보람있는 삶을 산다는 뜻
施撥勞馬 (시발노마)
경주마 처럼 열심히 일하는 근면성과 남들에게 베풀 줄
아는 인품을 가졌다는 뜻
悟立諍理 (오입쟁이)
깨달음을 일으켜 그 뜻을 널리 전한다는 뜻
發技富錢 (발기부전)
재주를 펼쳐 커다란 부를 이룬다는 의미
具强成敎 (구강성교)
굳건함을 갖추어 가르침을 이룬다는 뜻.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대표적인 사자성어는
함흥차사(咸興差使)다
조선태종 이방원이 태조의 환궁을 권유하려고
함흥으로 보낸 차사 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차사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세간에 퍼지면서,
한 번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거나 소식이 없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이는 태종 이방원이 저지른 일(왕자의난)과
그것을 오랫동안 용서하지 않았던 태조 이성계를 바라보던
백성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 사실과는 다르다.
민경중이 쓴 《노봉집》(老峯集)에 나오는 박순 의 시장(諡狀)
선조 때 차천로(車天輅)가 지은 《오산설림》(五山說林) 등의
책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쌍검대무 /김홍도
1. 施罰勞馬(시벌로마)
중국 당나라 때 일이다.
한 나그네가 어느 더운 여름날 길을 가다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한 농부가 밭에서 허벌~나게 열심히 일하는 말 뒤에 서서
자꾸만 가혹하게 채찍질을 하는 광경을 본 것이다.
계속해서 지켜보던 나그네는 말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농부에게 물었다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왜 자꾸만 채찍질을 하는가?"
그러자 그 농부는
"자고로 말이란 쉼 없이 부려야 다른 생각을 먹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남의 말을 놓고 가타부타 언급할 수가 없어 이내 자리를 뜬
나그네는 열심히 일하는 말이 불쌍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긴 장탄식과 함께
한마디를 내뱉었다 한다.
"야! 施罰勞馬(시벌로마)"
훗날 이 말을 후세 사람들 에게 이어져
走馬加鞭(주마가편)과 뉘앙스는 약간 다르지만 상당히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 한다.
==뜻: 열심히 일하는 부하직원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직장상사들에게 흔히 하는 말.
김홍도의 점쾌/스님들 앞에선 댕기머리 처녀가 장죽을 들고있다
2. 足家之馬(족가지마)
아주 먼 옛날 중국 진나라시대에,
어느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의 성씨는
신체의 일부를 따르는 전통이 있었다.
대대로 귀가 큰 집안은 이(耳)씨,
화술에 능통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 집안은
구(口)씨와 같은 식이었다.
그곳에 '수(手)'씨 집안이 있었는데,
그 집안은 대대로 손재주가 뛰어난 집안이었다.
이 '수(手)'씨 집안에는 매우 뛰어난 말
한 필이 있었는데,
이 역시 '수(手)' 씨 집안의 손재주에 의해
길들여 진 것 이었다.
어느 날 도적들과의 전쟁에 수 씨 집안의
큰 아들이 이 말을 타고 나가 큰 공을 세우고
진시황으로 부터 벼슬을 받았다.
이것을 본 앞집의 ‘족(足)’씨 집안에서는.
"손재주나 우리집안의 발재주나 비슷하니 우리도
말 한 필을 길러봄이 어떨까?"
하여 말 한 필 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도적들이 보복을 위해 마을로 내려왔다.
이를 본 족씨는 아들에게,"어서 빨리 '수(手)'씨
집안보다 먼저 우리말을 타고 나가거라"하였고 ‘족(足)’
씨 집안의 장자는 말을 타고 나가다, 대문의 윗부분에
머리를 털리며 어이없게도 죽고 말았다.
이를 본 ‘족(足)’씨는 통곡하며,
"내가 진작 분수에 맞는 행동을 했다면, 오늘의
이 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을..."
하며 큰 아들의 주검을 붙잡고 통곡하였다.
이때부터 세인들은 분수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足家之馬(족가지마) 라고 말하곤 한다.
==뜻: 자기의 주제도 모르고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
노상 알현도 김홍도
3. 始發奴無色旗(시발노무색기)
옛날부터 중국 고사에는 삼황오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중 복희씨는 주역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그 복희씨 시대의 이야기다.
복희씨가 중국을 다스리고 있던 어느 날,
한 산마을에 돌림병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전갈을 들었다.
그리하여 복희씨는 그 마을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 마을은 '황하의 물이 시작하는 곳' 이라 하여
시발(施發) 현(縣) 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 마을에 도작한 복희씨는 돌림병을 잠재우기 위해
3일 낮 3일 밤을 기도하였는데
3일째 되는 밤 기도 도중 홀연 일진광풍이 불며
웬 성난 노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태백산의 자연신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몇 년 째 곡식을 거두고도,
자연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이를 괘씸히 여겨 벌을 주는 것이다.
내 집집마다 피를 보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복희씨는 자연신이 화가 난 것을 위로하기 위해 방책을
세우고 마을사람들을 불러 모아 말하였다.
'자연신의 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집집마다 깃발에 동물에
피를 붉게 묻혀 걸어두어야 하오!'
그런데, 그 마을사람 중에 시발(始發)현(縣)의
관노(官奴)가 하나 있었으니.
'귀신은 본디 깨끗함을 싫어하니, 나는 피를 묻히지
않고 걸 것이다.'
하며 붉은 피를 묻히지 않은 깃발을 걸었다.
그날 밤 복희씨가 기도를 하는데, 자연신이 나타나
노여워하며 말하길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정성을 보여
내 물러가려 하였거늘,
한 놈이 날 놀리려하니 몹시 불경스럽도다,
내 역병을 물리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날부터 전염병이 더욱 돌아
마을사람들이 더욱 고통스럽고 많은 이
가 죽었으니,
이는 그 마을(시발현)의 한 노비가
색깔 없는 깃발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로 인해,
혼자 행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재대로 알지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始發奴(시발노) 無色旗(무색기) 라고 하게 되었다.
풀이 : 始(시작할 시) 發(발할 발) 奴(노예 노)
無(없을 무) 色(색 색) 旗(깃발 기)
시발현의 한 노비가 색깔 없는 깃발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 혼자 행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始發奴無色旗
(시발노무색기) 라고 하게 되었다
쌍겨리와 소 김홍도
4. 조온마난색기(趙溫馬亂色期)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조씨에게는 만삭인 부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부인이 말하길 " 여보! 어제 밤 꿈에 말 한마리가
온천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는 꿈을 꾸지 않았겠어요. 아마도 우리가 말처럼 활달하고
기운 센 아들을 얻게 될 태몽인 것 같아요." 라고 하였다.
조씨는 심히 기뻐하여 "그것 참 좋은 태몽이구려. 어서 빨리
우리 아들을 보았으면 좋겠소."라고 하였다.
사흘 뒤 조씨 부인은 매우 건강한 사내아이를 순산하였고,
조씨는 태몽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溫馬(온마)"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조온마가 스무 살이 되었다.
조온마는 조씨 부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마을의 처녀란
처녀는 죄다 욕보이는 난봉꾼이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결국 조온마를 관아에
고발하였고 조온마는 판관 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판관은 "조온마는 색기로 인하여 마을을 어지럽혔다
(趙溫馬亂色期;조온마난색기).
따라서 거세를 당함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결국 조온마는 거세를 당하였고, 후일 사람들은
경거망동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조온마의 일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조온마난색기"라고 충고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온마난색기(趙溫馬亂色期) : 경거망동한
사람에게 충고할 때 쓰는 말.
이 고사성어는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경계하라"는
깊은 교훈을 담고 있다.
무도 김홍도
5.善漁夫非取(선어부비취)
중국 원나라 때, 어느 마을에 한 어부가 살았다.
어부는 행실이 바르고 어질어 마을사람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그 마을에 원님이 새로 부임하였는데,
사람들을 몹시 하대하며
자신의 권위만 내세웠다. 덕망이 높은 어부가 자신보다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안 원님은
어부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려 했다.어느 날, 원님은
어부의 집 앞에 쌀 한 가마니를 가져다 놓았다.
어부는 며칠이
지나도록 쌀가마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원님은 이번엔
최고급 비단을 어부의 집 앞에 가져다 놓았지만 비단
역시 그대로 있었다.
약이 오른 원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커다란 금송아지
한 마리를 어부의 집 앞에 가져다 놓았다. 어부는
금송아지를 무심하게 지나쳐 다녔다. 욕심 없는
어부의 행동에 원님은 급기야 “선어부비취(善漁夫非取).
착한 어부는 그 어느 것도 탐내지 않는구나.”라며 탄식했다.
그 후 어부의 덕망에 감명 받은 원님은 마음을 고쳐
그를 등용하여 덕으로써 마을을 다스렸다고 한다.
우물가 김홍도
6.漁走九里(어주구리)
경상도 사투리로 흔히 아쭈구리)
옛날 한나라 때의 일이다.
어느 연못에 예쁜 잉어 한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서 들어왔는지 큰 메기 한마리가 침입을 하였다.
메기는 예쁜 잉어를 보자마자 잡아먹으려고 했다.
잉어는 이곳저곳으로 메기를 피해 헤엄쳤으나 굶주린
메기의 추격을 피하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결국 잉어는
초어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뭍에
오르게 되고,뭍에 오르자마자 꼬리를 다리삼아
냅다 뛰기 시작했다.
메기가 못 쫓아오는걸 알게 될때까지 잉어가 뛰어간 거리는
약 구리(九里)정도 였을까? 그때 잉어가 뛰는 걸 보기
시작한 농부가 잉어의 뒤를 쫓았다. 잉어가 멈추었을 때
그 농부는 이렇게 외쳤다."漁走九里(어주구리),
고기가 구리를 달려왔다." 그리고는 지친 잉어를 잡아
식구들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漁走九里' 란 능력도 안되는 이가 센척하거나
능력밖의 일을 하려고 할때 쓰는말이다.
어쭈구리!~~날마다 웃음 가득한 날되세요 ^^
모셔와 편집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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