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

반칠환시모음

이모르 2021. 2. 16. 14:53

 

 

 

 

2019년 8월31

 

산인 이재삼씨로 부터 사진이 왔습니다

설악산등산 04시 부터 등정중 이라고 !!!

 

"설악동에서 신흥사,흔들바위,내원골,울산바위,

백두대간길,황철봉,저항령으로 갔다가 끝도 없이

바위만 있는 계곡을 4시간 걸어서 권금성으로 나왔어요"

 

그리고 설악의 8월 야생화를 보내왔습니다

여기 변칠환시인의 시와 함께 야생화 감상해

봅니다

 

 

 

 

한평생 /반칠환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도 미뤄 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도 미뤄 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가뭄 /반칠환

저 소리 없는 불꽃 좀 보아.
 
감열지처럼 검게 타오르는 들판,
그 위로 날던 새 한 마리
한 점 마침표로 추락한다.
 
! 삼도내마저 말라붙어
차안과 피안의 경계가 없어졌다

 

 

갈 수 없는 그곳 /반칠환


그렇지요,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상의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다는 그곳은

도대체 얼마나 험준한 것이겠습니까.
새벽이 되기 전 모두 여장을 꾸립니다


 탈것이 발달된 지금 혹은 자가용으로, 전세 버스로,

더러는 자가 헬기로,
여유치 못한 사람들 도보로 나섭니다.

 

우는 아이 볼기 때리며 병든 부모
손수레에 싣고 길 떠나는 사람들,

오기도 많이 왔지만

아직 그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더러는 도복을 입은 도사들 그곳에

가까이 왔다는 소문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합니다.

낙타가 바늘귀 빠져나가기 보다 더 어렵다는 그곳


그러나 바늘귀도 오랜 세월 삭아 부러지고

굳이 더이상 통과할 바늘귀도 없이
자가용을 가진 많은 사람들, 벌써 그곳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건너가야 할 육교나 지하도도 없는 곳,

도보자들이 몰려 있는 횡단보도에 연이은 차량,
그들에게 그곳으로 가는 신호등은

언제나 빨간불입니다.

오랜 기간 지친 사람들,
무단 횡단을 하다가 즉심에 넘어가거나

 허리를 치어 넘어지곤 합니다.
갈 수 없는 그곳, 그러나 모두 떠나면

누가 이곳에 남아 씨 뿌리고 곡식을 거둡니까.
아름다운 사람들, 하나 둘 돌아옵니다.
모두 떠나고 나니 내가 살던 이곳이야말로

그리도 가고 싶어하던
그곳인 줄을 아아 당신도 아시나요.

 

 

 

고요 /반칠환

메밀묵 팔러 시내 가신 엄마, 앞들에

땅거미 지도록 돌아오지 않아
섬돌에 앉아 목 빼어 고갯길 바라보노라면
외딴집 외딴 마당은 아득히 고요해
건너 마을 저녁 연기도, 개 짖는 소리도 그치면
빈 묵판 달각이는 엄마 발자욱 소리 들려오도록
세상은 너무나 고요해
집 나간 강아지 검줄이 집도 고요해
빚 대신 팔려간 중송아지 없는 외양간도 고요해
장작불 사위어든 쇠죽솥 고래도 고요해
이태 전 돌아가신 아버지 기침소리도 나지 않는,
학교 간 누나도 돌아오지 않는 두 칸 방도 고요해

달이 먼저 뜰라나, 엄마 먼너 오실라나
토옥---- !
가으내 바싹 마른 달맞이꽃 씨앗 터지는 소리

 

 

구두와 고양이/반칠환

마실 나갔던 고양이가
콧등이 긁혀서 왔다
그냥 두었다

전날 밤늦게 귀가한
내 구두코도 긁혀 있었다
정성껏 갈색 약을 발라 주었다

며칠 뒤,
고양이 콧등은 말끔히 나았다
내 구두코는 전혀 낫지 않았다

아무리 두꺼워도
죽은 가죽은 아물지 않는다
얇아도 산 가죽은 아문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하는
힘으로 다시 걷는다.

 

 

 

누나야 /반칠환

누나야
다섯살 어린 동생을 업고 마실 갔다가
땀 뻘뻘흘리며 비탈길 산지기 오두막

찾아오던 참대처럼 야무진,
그러나 나와 더불어 산지기 딸인 누나야
국민학교 때
'코스모스 꽃잎에 톱날 박혀 있네
톱질하시던 아버지 모습 아련히 떠오르네'
동시를 지어 백일장에 장원한 누나야
나이팅게일이 되겠다고, 백의 천사가 되겠다고
간호대학에 간 누나야
졸업한 다음 시내 병원 다 뿌리치고 오지마을
무의촌 진료소장이 된 누나야
부임 첫날 다급한 소식 듣고 찾아간 곳 다름 아닌
냄새나는 축사, 난산의 돼지 몸 푸는 날이었다고
다섯 마린지 여섯 마린지 돼지 새끼 받아내느라
혼났다던 스물 두 살 누나야
못난 동생 시인 됐다고 그럴 줄 알았다고
머리 쓰다듬던 누나야
병든 엄마 병들었다고 누구보다 먼저 친정 달려와
링거병 꽂고 가는 양념딸 누나야
이제 곧 큰 길이 나고 사라진다는 고향마을 중고개에
아직도 나를 업고 가느라 깍지 낀 손에
파란 힘줄 돋는 누나야
세상의 모든 누나들을 따뜻한 별로 만든
나의 누나야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반칠환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

 

 

둥근 시집 /반칠환

나무의 나이테 속에 벼려넣은
여름이 있고 겨울이 있다
천 개의 손끝에 송이꽃을 들고 불타는

햇빛을 연모하던 기억도 있다
뭇 바람의 제국주의자들이

흔들고 지나갈 때마다
박수를 치던 치욕의 기억조차

새기어놓았다
나이테는 그 여름의 연서이자
그 겨울의 난중일기이다

나이테는 밑동 잘린 고목의 유고 시집이다
천년 고찰은 저 둥근 시집을 읽으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천년 불상조차 한 번도 저 시 낭독이 싫어

외출한 적이 없다
풍경을 두드리는 바람은

견디기 힘든 유혹이지만
붓다의 처음 깨달음도

저 나이테의 그늘 아래서였다

나이테는 제 가슴에 새긴 목판 경전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좀벌레가 기어간다
저 느린 것들이 나이테의 경전의 마저 읽고 나면
곧 새로 늙은 젊은 기둥이 또 한 세월을 받치라

 

 

 

먹은 죄 /반칠환

새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
지빠귀를 새매가 나꾸어 갔다
가까스로 허물 벗은 날개 말리던
잠자리를 물총새가 꿀꺽 삼켜 버렸다
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먹는다
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일이다

 

 

 

물결 /반칠환

그랬구나! 가슴의 통증이 가시고

눈앞이 환해진다.
어리석고 아둔한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의 굽은 어깨와 허리가
매화 등걸처럼 휘영청 내 걸리고

가슴마다 꽃이 핀다.
내 눈의 들보와 남의 눈의

티끌마저 모두 꽃핀다.

가장 아프고, 가장 못난 곳에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 걸려 있다니,
가슴에 박힌 대못은 상처인가 훈장인가?
언제나 벗어 던지고, 달아나고 싶은 통증과

치욕 하나쯤 없는 이 어디 있으며,
가슴 속 잉걸불에 묻어둔 뜨거운 열망

하나쯤 없는 이 어디 있을 것인가?

봄날 새순은 제 가슴을 찢고 나와 피며,
손가락 잘린 솔가지는 관솔이 되고,
샘물은 바위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여,
내 근심이 키우는 것이 진주였구나,
네 통증이 피우는 것이 꽃잎이었구나.

 

 

 

바람 /반칠환

저놈은 대단한 독서광 아니면
문맹이 틀림없다
열흘째 넘기지 못한 서적을
돈 세듯 넘겨놓고,
포플러 잎 팔만대장경을
일제히 뒤집어 놓은 채 달아난다

 

 

 

사라진 동화 마을/반칠환

더 이상 불순한 상상을 금하겠다
달에는 이제 토끼가 살지 않는다. 알겠느냐
물 없는 계곡에 눈먼 선녀가 목욕을 해도
지게꾼에게 옷을 물어다 줄 사슴은 없느니라


 아무도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로 올라갈 일이 없을 것이며
나무 위에 오른들 더 이상 삭은 동아줄도

내려오지 않느니라
흥부전 이후, 또다시 빈민가에

박씨를 물고 오는 제비가 있을 것이며
소녀 가장이 밑 없는 독에 물을 부은들 어디

두꺼비 한 마리가 있더냐
이 땅엔 더 이상 여의주

없음을 알 턱이 없는 너희들이
삼 급수에서 비닐 봉다리 뒤집어쓴

용이 승천하길 바라느냐
자아, 더 이상 철부지 유아들을

어지럽히는 모든 동화책의 출판을 금한다
아울러, 덧없이 붉은 네온을 깜박이는 자들이여
쓸데없는 기도를 금한다
하느님은 현세의 간빙기 동안 취침중이니
절대 교회 문을 시끄럽게 두들기지 말거라
너희가 부지런히 종말을 완성할 때 눈을 뜨리라

 

 

새해 첫 기적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어떤 채용 통보/반칠환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저를 채용 하신다니
삽 자루는커녕 수저 들 힘도 없는 저를,
셈도 흐리고, 자식도 몰라보는 저를,
빚쟁이인 저를 받아 주신다니
출근복도 교통비도, 이발도 말고 면도도 말고
입던 옷 그대로 오시라니
삶이 곧 전과(前過)이므로 이력서 대신
검버섯 같은 별만 달고 가겠습니다

미운 사람도 간다니 미운 마음도

같이 가는지 걱정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간다니 반갑게 가겠습니다
민들레도 가고 복사꽃도 간다니
목마른 입술만 들고, 배고픈 허기만 들고
허위허위 는실는실 가겠습니다

살아 죄지은 팔목 뼈 두개 발목뼈 두 개
희디희게 삭은 뼈 네 개쯤 추려
윷가락처럼 던지며 가겠습니다

도면 한 걸음, 모면 깡충깡충 다섯 걸음!
고무신 한 짝 벗어 죄 없는 흙 가려 넣어
꽃씨 하나 묻어들고 가겠습니다

 

 

 

 

어머니 5 /반칠환

산나물 캐고 버섯 따러 다니던 산지기 아내
허리 굽고, 눈물 괴는 노안이 흐려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 바라보신다
칠십년 산그늘이 이마를 적신다
버섯은 습생 음지 식물
어머니, 온몸을 빌어 검버섯 재배하신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
주름진 핏줄마다 뿌리내린다
아무도 따거나 훔칠 수 없는 검버섯
어머니, 비로소 혼자만의 밭을 일구신다 

 

 

 

 

언제나 지는 내기 /반칠환

소나무는 바늘 쌈질를 한 섬이나 지고 섰지만
해진 구름 수건 한 장을 다 깁지 못하고
참나무는 도토리구슬을 한 가지 쥐고 있지만
다람쥐와 홀짝 내기에 언제나 진다

눈 어둔 솔새가 귀 없는 솔잎 바늘에
명주실 다 꿰도록
셈 흐린 참나무가 영악한 다람쥐한테
도토리 한 줌 되찾도록
결 봄여름 없이 달이 뜬다

 

 

웃음의 힘 /반칠환

넝쿨 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월식 /반칠환

돼지우리 삼은 큰 궤짝 걷어차며
이놈 팔아 나 중핵교나 보내주지
거듭 걷어차던 시째 성 집 나갔다
대처 나간 성들도 소식 없었다

사진틀 끌어안고 눈물짓던 엄마는
묵판 이고 나가다 빙판에 팔 부러졌다
말 없는 니째 성 더욱 말 없고
말 잘하는 누나도 말이 없었다

겨울 바람은 왜 쌀 떨어지고, 옷 떨어지고,
땔감 떨어진 집을 더 좋아하나
연기 솟는 방고래, 흙 쏟아지는 베름짝이
무에 문제냐고 하룻밤 묵어 가잰다

마실 갔다온 엄마가 말씀하신다
이상한 일도 다 있지 마실 갈 땐

둥실하던 보름달이
슬슬 줄어들어 그믐처럼 깜깜터니
돌아올 때 그짓말처럼 환하지 않더냐

그게 월식인 줄 대처 나간

성들은 알고 있었을까
얼음보다 더 찬, 멍석보다 더 큰 그믐달이
슬슬 가려주던 우리 집 언젠가
그짓말처럼 환해질 줄 알고 있었을까

 

 


은행나무 부부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 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