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

담쟁이넝쿨시모음(조수미꽃밭에서)

이모르 2021. 2. 18. 15:00

 

 

2019 11 4

 

 

오늘아침 흥천사길을

 

걸었습니다

 

주변길엔

 

구절초도 피었었고

 

피빛 단풍도 있었고

 

맨드라미도

 

노란 카네선도

 

까마중 열매도

개천에 노는 외가리와 오리

 

가을빛 정서에

 

취한건 정작 담쟁이넝쿨

 

이었습니다

 

 

 

오헨리의 마지막잎새중에서

 

 

그날 밤 폭풍우가 매섭게 몰아친다.

 

존시는 옆집 담쟁이 덩굴을 보는데

 

나뭇잎들이 다 떨어졌지만

 

마지막 잎새 하나는 끝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존시는 그 나뭇잎에 감화되어

 

삶에 대한 의지를 얻게 된다.

 

그 뒤 존시가 완전히 회복되자

 

수는 베어먼 영감이 절망에 빠진

 

존시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밤새도록 폭풍우를 맞으며

 

벽에 담쟁이 잎 벽화를 그리다가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팔레트에 녹색, 노란색 물감이

 

남아있었다고 말한다.

 

.을 마친 수는 커튼을 열어

 

담쟁이 벽화를 보며

 

이것을 베어먼의 "걸작(masterpiece)“

 

이라고 표현한다.

 

베어먼이 언젠가 걸작을 그릴 것이라던

 

호언장담이 실현된 것이다

 

 

 

 

담쟁이넝쿨 /박인길


 
가파른 아파트 외벽도 


 서두르지 않고 오르더니 


 어느 날 바라보았을 때 


 꿈을 이룬 열정에 놀랐다.

깎아지른 절벽이 


푸른 풀밭이 되었고 


 날개 짓 하는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되다니

의지할 것 없는 허공에 


 아찔한 순간들을 맞아도 


 되돌아서지 않고서 


 앞으로만 뻗어 나갔다.

꿈을 향한 도전일까 


 포기를 모르는 집념일까 


 생사를 건 모험일까 


 불가능은 없다는 웅변일까

가까이 다가설 때에 


 나는 그 비결을 알고 놀랐다


 실타래처럼 엉킨 핏줄이 


 흙에 꽂혀 있었고 흙에서 


 제어미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담쟁이에 관한 시 모음>

도종환의 시 '담쟁이' 외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시인, 1954-) 

 

 

 


 
 
+ 담쟁이

담쟁이는 벽을 평지로 알고 산다
담쟁이는 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평지 끝 절망의 벼랑과 만난다
벽을 놓지 못한 채
제 한 몸 던져
끝끝내 매달려 있는
담쟁이의 벽
하늘에 목숨을 맡긴 채
평지 끝 절망의 벼랑에서
고공투쟁하는
벼랑 끝 절망이
담쟁이의 희망이다 


 (강상기·시인, 1946-) 

 

 

 


 
 
담쟁이덩굴

비좁은 담벼락을
촘촘히 메우고도
줄기끼리 겹치는 법이 없다.

몸싸움 한 번 없이
오순도순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진초록 잎사귀로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에게 믿음이 되어주는
저 초록의 평화를 

무서운 태풍도
세찬 바람도
어쩌지 못한다


 (공재동·시인이며 아동문학가

 

 


 
 
+ 담쟁이덩굴의 독법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이 저랬던가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고
지문이 닳도록 아픈 독법으로 기어오른다
한번에 다 읽지는 못하고
지난해 읽다만 곳이 어디였더라
매번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다 보면 여러 번 손닿는 곳은
달달 외우기도 하겠다
세상을 등지고 읽기에 집중하는 동안
내가 그랬듯이 등 뒤 세상은 점점 멀어져
올려다보기에도 아찔한 거리다
푸른 손끝에 피멍이 들고 시들어버릴 때쯤엔
다음 구절이 궁금하여도
그쯤에선 책을 덮어야겠지
아픔도 씻는 듯 가시는 새봄이 오면
지붕까지는 독파해 볼 양으로
맨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읽기 시작하겠지 


 (나혜경·시인, 1964-) 

 

 


 
 
담쟁이 넝쿨

김과장이 담벼락에 붙어있다
이부장도 담벼락에 붙어있다
서상무도 권이사도 박대리도 한주임도
모두 담벼락에 붙어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밀리지 않으려고
납작 엎드려 사력을 다해
견뎌내는 저 손
때로 바람채찍이 손등을 때려도
무릎팍 가슴팍 깨져도
맨손으로 암벽을 타듯이
엉키고 밀어내고 파고들며
올라가는 저 생존력

모두가 그렇게 붙어 있는 것이다
이 건물 저 건물
이 빌딩 저 빌딩
수많은 담벼락에 빽빽하게 붙어
눈물나게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권대웅·시인, 1962-) 

 

 


 
 
담쟁이 사랑

끝없이 타오르는
도벽 같은 탐욕으로

남몰래 담을 타며
밤마다 모의한다

하늘이 내린 형벌이다
중독이다 전염이다

그대 집 다 메워도
그대 맘 곁에 못 가

혹독한 추위에
몸이 얼고 생각이 얼고

기어이
가슴 하나 남긴 채
전설 속에 사라진다

여느 해 그러하듯
여름 가고 가을 오면

움츠린 몸 뒤척이며
피가 먼저 나선다

그래도
그 흔한 사랑이라
차마 말 못한다 


 (이민화·시인, 1966-) 

 

 


 
 
+ 담쟁이 덩굴

두 손이 바들거려요 그렇다고 허공을 잡을 수 없잖아요
누치를 끌어올리는 그물처럼 우리도 서로를 엮어 보아요
뼈가 없는 것들은 무엇이든 잡아야 일어선다는데
사흘 밤낮 찬바람에 찧어낸 풀실로 맨 몸을 친친 감아요
그나마 담벼락이, 그나마 나무가, 그나마 바위가, 그나마 꽃이
그나마 비빌 언덕이니 얼마나 좋아요 당신과 내가 맞잡은 풀실이
나무의 움막을 짜고 벽의 이불을 짜고 꽃의 치마를 짜다
먼저랄 것 없이 바늘 코를 놓을 수도 있겠지요
올실 풀려나간 구멍으로 쫓아 들던 날실이 숯덩이만한 매듭을 짓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벌레 먹힌 이력을 서로에게 남기거나
바람이 먼지를 엎질러 숭숭 뜯기고 얼룩지기도 하겠지만
그래요, 혼자서는 팽팽할 수 없어 엉켜 사는 거예요
찢긴 구멍으로 달빛이 빠져나가도 우리 신경 쓰지 말아요
반듯하게 깎아놓은 계단도, 숨 고를 의자도 없는
매일 한 타래씩 올을 풀어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오르다 보면 담벼락 어딘가에
평지 하나 있을지 모르잖아요. 혹여, 허공을 붙잡고 사는
마법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따박따박 날갯짓하는 나비 한 마리 등에 앉았네요
, 손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가요
한참을 휘감다 돌아설 그때도 곁에 있을 당신 


 (조원·시인, 1968-) 

 

 


 
 
담쟁이

온 몸이
발이 되어

보이지 않게
들뜨지 않게

밀고 나아가는
저 눈부신 낮은 포복 


 (정연복)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