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

사랑에대한시모음(이문세의옛사랑)

이모르 2021. 3. 22. 23:17

 

 

 

 

 

 

 

 

평보생각

  

먼산엔 백설이 덮혔다

뒷산엔 아직 죽지 않은

단풍이 마지막 힘으로

나무에 매달려 있다

 

어디 그뿐이랴

철딱서니 없는 꽃이

나비도 없는데 홀로 펴있다

 

사연은 이런 것인가?

 

사랑은 이별을 싫어하며

붉게 피어있고

가을은 좀더 살고 싶고

겨울은 빨리 오고 싶고

 

 

인생은 꽃처럼 피었다가

단풍처럼 물들고

눈꽃처럼 사라진다.

 

사랑의 추억은 소중하고

이별의 아품은 붉게 타며

욕정은 눈꽃처럼 허망하다

 

 

창경궁에 갑니다

여린꽃들이 피어나며 반깁니다

여름 초록의 녹음 벤취에 앉아 춘당지의

오리 와 백송의 멋을 즐깁니다

가을 핏빛 단풍이 물든 고궁은 별나라 우주에

온  기분입니다

겨울 하얏게 하얏게 덮힌 궁의 아름다움과

춘당지에서 놀고있는 원앙들의 구애 환상입니다

 

허나 궁에 오면 항상 떠나지 않는 연민이 있습니다

일제가 찢이겨 버린 왕가 자신들은

천벌을 받아도 모자란데 천황이라 칭하며 뽑내고

있습니다

 

작금의 비열한 아베의 행보가 가슴 아프게 합니다

거기에 편승한 편견에 사로잡힌 무리들이 막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줄 도 모릅니다

무조건 적 밤목으로 국민갈등이 극에 달하여

건전한 비판은 사라지고 입에 담지 못 할

저주만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정서적으로 가다듬고

흐미한 옛 사랑의 기억을 상기하며

고궁의 정취에 빠져듭니다

 

 

 


 

 

세익스피어의 사랑 노래/셰익스피어

 

어떤 허물 때문에 나를 버린다고 하시면 

나는 그 허물을 더 과장하여 말하리라.

 

나를 절름발이라고 하시면 

나는 곧 다리를 더 절으리라.

그대의 말에 구태여 변명 아니하며…

 

그대의 뜻이라면 

지금까지 그대와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보이게 하리라.

 

그대가 가는 곳에는 아니 가리라. 

내 입에 그대의 이름을 담지 않으리라.  

불경(不敬)한 내가 혹시 구면이라 아는 체하여  

그대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그리고 그대를 위해서 

나는 나 자신과 대적(對敵)하여 싸우리라. 

그대가 미워하는 사람을 나 또한 사랑할 수 없으므로.

 

 

 

사  랑/이해인

 

우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오래고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남이란 단어가 맴돌곤 합니다.

어처구니 없이

난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신을 좋아한다고는 하겠습니다.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할 때면

고독이 말없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사랑할수록 더욱 외로와진다는 것을 

 

 

 

 

참 좋은 당신/김용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저녁별 /이정하

 

너를 처음 보았을때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너를 바라보는 기쁨만으로도

나는 혼자 설레였다.

다음에 또 너를 보았을 때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를 깨닫고

한 숨 지었다

너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내 마음엔

자꾸만 욕심이 생겨나고 있었던거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게 있으랴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 당장 숨을 거둔다 해도

너는 그자리 그대로

냉랭하게 나를 내려다 볼 밖에

내 어두은 마음에 뜬 별하나

너는 내게 가장 큰 희망이지만

큰 아픔이기도 했다.

 

 

 

라일락 향/이시영

이 세상의 향기란 향기 중

라일락 향기가 그중 진하기로는
자정 지난 밤 깊은 골목 끝에서
애인을 오래오래 끌어안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

 

 

 

 

행복/청마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 곁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 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연애/안도연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사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복사꽃아/허영자

 

예쁜
복사꽃아

마침내
네 분홍저고리
고운 때 묻는 것을
서러움으로 지키거늘

네 분홍저고리
어룽져 바래는 색을
눈물로서 지키거늘

이 봄날
복사꽃 지키듯
내 사랑과 사랑하는 이를
한숨으로 지키거늘.....
      

 

 

 

 

/정호승         

 

 눈사람 한 사람이 찾아왔었다
눈은 그치고 보름달은 환히 떠올랐는데
눈사람 한 사람이 대문을 두드리며

자꾸 나를 불렀다
나는 마당에 불을 켜고 맨발로

달려나가 대문을 열었다


부끄러운 듯 양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눈사람 한 사람이
편지 한 장을 내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밤새도록 어디에서 걸어온 것일까
천안 삼거리에서 걸어온 것일까
편지 겉봉을 뜾자 달빛이

나보다 먼저 편지를 읽는다
당신하고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해거름/이외수    

 

  누이야
전생길 떠날 때 뻐꾸기 피울음은
이승길 돌아와도
뻐꾸기 피울음이지
개망초 무성한 수풀 뒤로
햇살은 돌아눕고
한 걸음만 돌아서도 지워지는 사랑으로
눈썹 언저리에
날개접는 부전나비
누이야
아무리 걸어도 길은 낯설어
물소리만 저 홀로 깊어가더라       

 

 

 

 

너의목소리/오세영

 

  너를 꿈꾼 밤
문득 인기척 소리에 잠이
깨었다.
문턱에 귀대고 엿들을 땐
거기 아무도 없었는데
베개 고쳐 누우면
지척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나뭇가지 스치는 소매깃 소리.
아아, 네가 왔구나.
산 넘고 물 건너
누런 해 지지 않는 서역 땅에서
나직이 신발을 끌고 와
다정하게 부르는
너의 목소리,
오냐, 오냐,
안쓰런 마음은 만릿길인데
황망히 문을 열고 뛰쳐나가면
밖엔 하염없이 내리는 가랑비 소리,
후두둑,
댓잎 끝에 방울지는
봄비 소리. 

 

 

 

 

꽃등 /신석정

 

 

누가 죽었는지

꽃집에 등이 하나 걸려 있다.

 

꽃들이 저마다 너무 환해

등이 오히려 어둡다. 어둔 등 밑을 지나

문상객들은 죽은 자보다 더 서둘러

꽃집을 나서고

살아서는 마음의 등을 꺼뜨린 자가

죽어서 등을 켜고 말없이 누워 있다.

 

때로는 사랑하는 순간보다 사랑이 준 상처를

생각하는 순간이 더 많아

지금은 상처마저도 등을 켜는 시간

 

누가 한 생애를 꽃처럼 저버렸는지

등 하나가

꽃집에 걸려있다

 

 

 

 

 

 

갈대/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사랑은 어떻게/릴케

 

그리고 사랑은 어떻게 그대를 찾아왔던가?

빛나는 태양처럼 찾아 왔던가, 아니면

우수수 지는 꽃잎처럼 앚아 왔던가?

아니면 하나의 기도처럼 찾아 왔던가?

--- 말해다오

반짝이며 행복이 하늘에서 풀려 나와

날개를 접고 마냥 흔들리며

꽃럼 피어나는 내 영혼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더니라

 

 

 

 

나팔꽃 사랑/평보

 

홀로 서지 못하고

외롭다고 소리치는

사람에게 기대서서

아침이슬에 웃는 사랑아

 

가녀린 몸을 사려

밝게 웃는 사랑아

 

태양 빛에 눈부셔

고개 숙이는 사랑아

 

노을진 하늘보고

다시웃는 사랑아

어둠에서 속삭이던

사랑아

 

새벽을 반기며

희망을 노래하던

사랑아

그리움으로 붉게 물든

사랑아 

 

 

꽃비 /평보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숨어있던 바람이

꽃잎들을

춤추게 한다

 

꽃처럼 아름답던

세월속엔

꽃길을 함께

걷던  사랑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