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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dn Cello Concerto No1 in C Major(3:3)장한나(김미숙화가의노을사진)

이모르 2021. 6. 28. 15:04

 

생명의폭발을 철학으로 꽃들을 그려내는 작가를 볼 때 마다 천진스런 얼굴 표정에 감동합니다 꽃들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어서 일까요? 그림 앞에서면 꽃들의 감정을 읽을 수 있지요 

 

먼저   (철학박사, 미술평론)박사님이 쓴 김작가의 미술 평론부터 올려 봅니다 엘랑 비탈(élan vital)' 내적 승화로 표출된  마음속 꽃의 이미지

  (철학박사, 미술평론)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인 김춘수님의 대표작  전문이다. 무의식 속에  쉬고 있는 ‘생의 약동 꽃의 이미지로 승화시켜 표현하고 있는 작가 김미숙의 작품을 마주하노라면 문득  시가 떠오른다.  사람 모두 꽃의 이미지를 통해  속에서 치열하게 걸러낸 철학적 인식의 지평을 펼쳐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꽃의 이미지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감성적 인식의 산물일까? 아니면 철학적 인식의 산물일까? 아마도 이러한 인식을 모두 내포한 작가적 삶을 응축시킨 창작 동력을 상징하는 내면의 진술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생의 약동 혹은 비약으로 번역되는 ‘엘랑 비탈(élan vital)'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순수 지속과 같은 의미로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의 주요 철학개념이다. 직관에 의해서만 파악할  있는 지속 개념은 지금까지의 경험의 총체가 다음 순간의 인식의 재료가 된다는 의미로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연관 농축되어 있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적 비약으로 나아갈  있다는 것이다.

 

 

김미숙은 내면에 잠재한 ‘생의 약동속에서 피어난 꿈과 기억을 예술적으로 표출하는 수단으로 승화된 꽃의 이미지로 진술하고 있다. 화사한 꽃의 이미지로 가득한 화면에는 꿈과 기억이 승화된 행복의 속삭임을 색채의 화음을 통해 흥겹게 들려주고 있다. 화면 속의 꽃은 ‘엘랑 비탈 통해 끊임없이 지속되며 재생산되는 행복 에너지를 내뿜으며 아름다운 공존을 노래한다. 긍정적 삶의 에너지를 먹고 마음속에서 자라난 꽃들은 꿈과 기억을 각인시킨 작가 자신의 예술적 삶에 대한 잔잔한 성찰과 관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화목한 어울림을 담아낸 작품들에는 서로 다른 색깔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며 상생하는 자연률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이 녹아들어 있다.  

  꽃은 김미숙에게 아름다움이나 향기로움으로 다가오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쎙떽쥐뻬리의 어린왕자가 장미에게 물을 주고 가꾸면서 특별한 관계인식이 돋아난 것처럼 작가 자신의 삶의 일부로서 꽃의 존재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존재의 존재로서의 의미와 가치는 주체의 의식과 만나 관계를 맺으며 순수 지속으로 이어질  이루어진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 앞에 놓인 존재 또는 대상은 하나의 공간을 차지하며 스쳐 지나가는 몸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체의 의식이 존재나 대상 속으로 스며들어 만남이 지속되고 기억될  존재 또는 대상은 스스로 문을 열고 자신의 의미와 본질을 드러내며 주체와 서로 소통하게 된다. 김미숙의 이러한 관계의식의 지향성은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과 주변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작품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꽃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의미를 갖고 다가오는 것이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최고의 선물이 꽃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상적이고 친근한 아름다운 이미지로 각인된  마음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피고 지는 것이 꽃이다.  송이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가 삶의 의욕과 기쁨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무슨 꽃으로 문지른 가슴이기에라는 시의 구절처럼 가슴  깊이 아무도 모르게 꽃무덤을 만들고 오래도록 눈물짓고 한숨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미숙의 꽃에 대한 인식은 이러한 서정성을 뛰어넘어 자연의 질서와 변화 속에서 발현하는 기운생동한 에너지,  ‘생의 약동으로 다가온다.  감동적인 인식의 변화는 창작의 일과 일상적 삶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평범한 진리의 자각으로 이어지면서, 꽃이라는 소재가 지닌 전통적인 상징성을 뛰어넘어  생명력의 내면에 존재하는 순수 지속에 대한 탐구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환기된다. 아울러 이러한 철학적 인식은 나비와 하나가  ‘호랑나비의 으로 널리 알려진 장자(莊子)  ‘물화(物化)’ 경지를 꿈꾸게 한다. 김미숙은 자신의 꿈과 기억을 승화시켜 꽃의 이미지로 그려내는 작업 속에 자신의 삶으로부터 촉발되는 내면의 의식들을 투사시켜 드러내고자 한다. 일상과 창작 속에서 행복 나눔과 아름다운 공존을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근래의 김미숙의 의식의 흐름들이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을 일궈내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라는 시인 도종환님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의 구절처럼, 작가 김미숙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꿈과 기억, 일상적 삶의 희로애락에 대한 내면적 성찰을 바탕으로 봄바람처럼 불어와 헤적이는 은밀한 창작욕구들을 오랜 동안 걸러내고 응축시켜 꽃의 이미지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미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순수 지속의 의미를 담고 있는 꽃의 이미지들은 꼼꼼하고 치밀한 사생화법이나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관조하며 ‘생각이나 감정을 기탁하는(寓意)’ 전통적인 방법의 경향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데,  창작의 원천이 내면에서 솟구치는 ‘엘랑 비탈(élan vital)' 정화와 하모니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구성에서도 관조대상으로서의 꽃이 아니라 감성적 인식과 철학적 인식을 공유한 대화와 공감을 염두에 두고 있다. 명암법이나 원근법이 무시되기도 하지만 배경의 음영처리나 감각적 색채표현을 통해 내면의 밝고 어두움을 다양한 꽃의 이미지로 표출하고 있다. 간략하게 흐트러진 윤곽선과 골이 패인 듯한 꽃잎의 선들을 통해 삶에 부딪히며 겪는 다양한 감정의 기복이 얼핏 드러나기도 하며, 안료의 떨어트림 기법을 통해서는 삶의 우연한 계기에서 파생되는 감정과 의식의 우연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김미숙이 보여주고 있는 이번 작품들은 내면의 흐름에 따라 주체적 변화를 지향하며 모색해  열정의 산물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김미숙의 작가적 열정과 고집은  시대 작가들이 지켜야  소중한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꽃의 화사한 아름다움과 향기가 아니라 내면에 감춰진 ‘엘랑 비탈(élan vital)' 의미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작가가 제시한 꽃의 이미지는 공감을 통해 더욱 오래 지속되며 생명력을 유지할  있다. ‘그림은 그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가장 은미한 것이 가장  드러난다.’ 중용(中庸) 말처럼 김미숙이 꽃의 이미지 속에 감춰둔 은밀한 이야기의 속삭임에  기울일  보다 다양하고 행복한 세계의 모습과 목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울리는 감동도 맛볼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순수 지속을 꿈꾸며 발전하는 작가로 거듭나며 모두 공감할  있는 자신만의 꽃의 이미지를 찬란하게 펼쳐 우뚝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작가노트

 

시골 집 마당  모퉁이에  이름 모를 작은 꽃들과 만나게 되면  수줍게 웃는 듯 꽃잎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작품은  꽃의 이미지를 빌려 재현이 아닌 내적 감성 표현이며  엘랑비탈 (생명의 폭발)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화사한 꽃의 이미지로 채워지기도 하고 작은 꽃들로 무리지어 합창을 부르는 듯 색채의 화음도 있고 행복의 속삭임도 있다 엘랑비탈을 통해 끊임없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하고 싶다

 

 

김미숙 화가는 화실이 있는 시도에서 작은 꽃들과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꽃 들이 피어나는 고통과 벌새 나비들 사물의 영감은 바로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그러한 가운데 시도가 저녁 노을빛으로 물들 때 그는 놀라움 으로 작은 꽃들과 대화 하던 정서는 바로 어린왕자와의 대화가 시작 됩니다 

나는 해질 무렵을 좋아해 해지는걸 보러가.....”

기다려야지 ...

뭘 기디라지???

해가 지길 기다려야지

너는 처음에는 몹시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곧 자기말이 웃스운 듯 웃음을 터트렸지 그리고 나에게 말했지

아직도 집에 있는것만 같거든

불행하게도 집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거야 그러나 너의 조그만 별에서는 의자를 몇발짝 뒤로 돌려 놓기만 하면 되었지 그래서 언제나 원할 때면 너는 석양을 바라볼수 있었지

어느날 나는 해가 지는걸 마흔세번이나 보았어

그리고는 잠시후 너는 다시말했지

몹시 슬플 때는 해지는 모습을 좋아하게 되지...

마흔 세 번이나 본날 그럼 너는 그렇게도 슬펐니?...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화실 정원내 보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