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에드먼드 휠러리 경 과 덴징노르가이

이모르 2021. 8. 17. 14:23

에베르스트 8,848.86 m 세상에서 제일 높은산

 

 

지난 5월28일 덴징 노르가와의 에베르스트 등정 70주년이다. 그가 선험했던 시기 야망 경쟁 재앙의 경로를 따라  많은 산사람들이 그곳에 역경과 괴뇌를 묻었다.

영국의 조지밀러가  "산이 거기에 있기때문에 산에오른다고 말했듯이  고독한 사투를 벗 삼는 데 유별난 이유를 찿으라.

 

덴징과 힐러리 에베레스트 정복을 자축하는 덴징과힐러리

 

그들은 정상등정의 영광이 몰고올 파장을  당시엔 알지못했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30분.하늘은 지상꼭대기  가장가까운 거리에서 인간과의 대면을 許했다.  살을 에는한기.포효하는 돌풍과 성긴산소를 견디며. 엉덩이 높이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쉼 없이헤쳐  오르길5시간.덴징(1914-1986)은  어떤 새(鳥)도 넘을수없는 "산"이라고 어머니가 말했던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山頂에 섰다.

 

산소호홉기를 들러쓰고 강풍에 부서지는  깃발을 든 채 인간의 극한 의지를 웅변하는그사진 "희말랴 최초정복자"로  알려진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84)卿은 뒤로 처진자신을  30분이나 정상에서 기다려준 덴징의 강렬한 이미지를 숨가쁘게 필림에 담고도자신은 피사체가 되기를 거부했다.

 

산사람 특유의 의리와 결벽에서 일까? 에베레스트  初登者 라는 영예를 덴징에게 기꺼이 양보한 힐러리는  "진정한 영웅은 내가아니라 미천하게 출발해  세계정상에선 덴징 이다"라고 말했다. 최고의 셀파 덴징은 자신의 낙원 인  에베르스트 등정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일곱차례에 걸처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했다  적을 물리치는 병사의 기력이 아니라 어머니 무릅에 오르는 아이의 사랑을  갖고 매번 산을 찿았다 덴징은 정상 눈구덩이에 딸이 건넨 색연필을  묻어 산꼭데기에 등정  기념을 남겨달라는딸의 소망을 들어주며 다음 과 같이 말했다. "가족이야 말로 내 첫째 관심사이자 최고의 기쁨"이라고.

 

"많은것들이 정치와 국적이름으로 행해지지만  산에서는 그렇지않다.그곳의  생명은 너무현실적이며.죽음은 너무나 가깝다. 인간은 인간일뿐 그것이 전부다" 덴징은 자신의 도전 상대인 자연 山 앞에서  가장솔직한 삶을 살았다.

 

기나긴  소외와 비극적 개인사를 딛고일어선 그의승리는  영국,독일.중국.티벳트.네팔.

인도. 등의 분쟁으로 얼룩진당시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더욱 위대한  쟁취로빛난다.

 

책소개 (덴징 노르가이 에드 더글라스지음) 

박영석기자 의글 옮김

 

 

2008년 1월 11일 에드먼드 휠러리 경이 타계 하였다 세계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일대기를 조명하는 것은 그의 영웅적인 모험정신과 겸손함,진정으로 산을 사랑한 산악인으로서의 초지일관한 진지한 삶의 자세때문이다. 힐러리경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19년 영연방 국가인 뉴질랜드 오클랜드시 인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2차 대전 당시 공군으로 입대하여 참전한후 등반교육을 받고 전문 산악인의 길을 걸었다.그후 1953년 영국 원정대의 일원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서게 되었고 마침내 그해 5월29일 오전 6시30분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와 함께 세계 최초로 전인미답의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그가 세계 최초로 이룩한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은 세계 등반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대관식날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소식을 접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에게 기사작위를 하사하여 그의 영웅적 에베레스트 등정을 축하하였다. 힐러리경이 세계인으로 부터 영웅적 산악인으로 존경받는 것은 그가 보여준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모험정신과 겸손함,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한 박애주의때문이다.

힐러리경은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는 고통을 겪고도 "모험은 나처럼 평범한 모든이에게 가능하다"고 말하는등 많은이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사실 힐러리경의 에베레스트 등정이후 세계각국 산악인들이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도전정신을 발휘,속속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바 있다.

 

힐러리경의 겸손함은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두드러진다. 힐러리경의 에베레스트 등정이후 세계인들의 궁금증은 힐러리와 텐징 두사람중 누가 먼저 정상에 발을 디뎠느냐는 것이었다.

 

훗날 힐러리경이 한 발자욱 정도 앞서 내딛는 것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힐러리경은 끝까지 자신이 세계 최초라고 하지않고 "노르게이와 나는 한팀으로 정상에 올랐다"고 주장함으로써 노르게이와 영광을 함께 하였다. 물론 1986년 세상을 떠난 텐징 노르게이도 죽는 그순간까지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한계래 신문 

 

에드먼드 힐러리 경(Sir Edmund Hillary)동상 -  힐러리 학교( Hillary School) 에 세워짐, 네팔(Nepal) 쿰중(Khunjung : 3,800m)마을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의 동상 - 인도(India) 다르질링(Darjeeling)에 있는 히말라야 산행협회(Himalayan Mountaineering Institute)에 세워짐
힐러리경이 받은 휘장 
고 고상돈 대장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고상돈 대장. 1977년 당시 이 등정은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을 안겨준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2년 뒤인 1979년, 고 대장은 북미 최고봉 데날리(당시 매킨리·6,194m)를 한국인 최초로 등정하고 하산 중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굵고 짧은 삶이었다.

그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태극기를 꽂으며 무전을 통해 남긴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라는 말은 여전히 회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