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조 지 훈 作
사랑을 다해 사랑 하였노라고
정작 해야 할 말이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잊혀지기전
두고 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있어 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줄 오선을 그어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 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p.s
위의 시를 읽다 보면
더 이상 할말에 없음표를 달고 싶다.
그 사랑에 대해. 절규하는 모습이
가슴을 후비고 들어와 생채기를 내고 만다.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서
애잔한 영혼만 멍들어 가고 있었지만
아름다운 추억의 뒤안길에서 위안을 삼으리
보고 있어도 느낄 수 없는 사람...
이미 다른 곳으로 열린 문이 있는 줄 모르고...
그래도......
마지막 연에 있는 이별에 대한 시구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맨 아래로 내려 놓았다.
--------------
한 잔은 떠나 버린 너를 위해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또 한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 한 잔은
이미 알고 정하신 하느님을 위해
청록파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玩花衫완화삼 / 조지훈- 木月에게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 가는
물길은 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조지훈(趙芝薰)
1920년 12월 3일 ~ 1968년 5월 17일
본명은 조동탁(趙東卓)
경북(慶北) 영양(英陽) 출신
청록파 시인
玩花衫완화삼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으로,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
나그네 / 박목월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朴木月)
1916년 1월 6일 ~ 1978년 3월 24일
본명은 박영종
경북(慶北) 경주(慶州) 출신
청록파 시인
'완화삼'에서 비판의 표적이 되는
대목은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놀
이여"이다. 엄혹한 일제 하에서 또는
그 직후라도(이 시는 46년에 발
표되었다) 무슨 술 익는 강마을이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 자체가 가령 군사 독재 시대에
나온 연애 시에 대하여
그 혹독한 시절에 무슨 그렇게 달콤한
사랑이 있었느냐고 힐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성립될 수 없는 터이지만,
지훈의 생가와 그 주위를
다녀보면 이 시가 허구나 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적어도 그 주위에는 이런 정서가 넘쳐 흐른다.
이 시의 화답으로 쓰여졌음을 밝힌 목월의
'나그네'와 비교하면서 읽으면 재미있을 것이다.
** 시 '나그네'의 앞에 "술 익은 강마을의 / 저녁 노을이여"라고 한
리드는 이 시의 동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 준다. 말하자면 '완화
삼'의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라는 주조가 '나그네'에서
는 "술 익은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로 변조되어 있다. 그 밖에도
"구름 흘러 가는 / 물길은 칠백리 //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에
서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의 이미지가 추출되었다고 추
측한대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을 모방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서로 주고받은 시
에서 차용은 허락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다만 '완화삼'을 원
전으로 한 '나그네'가 훨씬 성공한 시가 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나그네'는 어찌 보면 '완화삼'의 이미지를 단순화하고
구체화한 시요, '완화삼'의 완성이다. 여기에 단순성과 구체성이 요
체라는 시의 비밀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