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성매매 급지법 上 엽기조선왕조실록
“에또…그래설라무네, 아무리 봐도 말입니다.
전왕조(고려)에서도 기녀를 뽑고 그랬는데,
이게 또 전통은 지키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뭐 기녀를 좋아해서 그런게 아니라,
이게 다 새로운 왕조를 위한…그래,
정권 안보차원의 일입니다!”
“좌의정,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봐봐.
기녀를 계속 뽑고 키우는게 어째서 정권 안보차원이야?
좌의정 혹시 뭐 점 찍어둔 애라도 있는 거야? 그런거야?”
“에이, 좌의정 대감. 남자들끼린데
툭 까놓고 말합시다.
빙빙 둘러서 정권 안보차원이라고 하지 말고….
까짓 거 기녀 키우는 거 나도 찬성이니까.
그렇게 빙빙 둘러말하지 말고, 까놓고 시작합시다.”
“아니 이 사람이…전하! 기녀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자는 제 의견은 0.0001%의 사감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제 엄마를 걸고 말 하겠사옵니다!
저는 영업용은 딱 질색이옵니다!”
“흠흠…뭐, 그렇다면…근데 기녀랑
국가안보랑 뭔 상관이냐? 괜히
그렇게 말하니까 살 떨린다 야.”
“에 그것이 말입니다.”
“여기가 군대냐? 말입니다 빼라.
문민정부잖아 문민정부!”
“알겠습니다. 에 그러니까…원래
고려의 국방력이란게 호족들의 사병(私兵)들에
의해서 이루어진게 아닙니까? 즉, 고려의
국방군은 호족들의 연합군이란 건데
이 거 때문에 왕권이 아주 심각하게 위협을 받았습니다.”
“오케이! 인정! 바로 그거라니까!
그노무 사병혁파가 조선의 기본 컨셉이라니까!”
“그런데 말임다. 이노무 사병이란 거의
핵심이 바로 그 노비란 것입니다. 오죽하면
고려 광종이 노비안검법이란걸 만들어서
호족들의 노비 숫자를 줄였겠습니까?”
“글치. 계속…쭉 해봐 좌의정, 이눔자식
간만에 개념 충만한 토킹을 날리잖아? 어여 계속해 봐.”
“그러니까, 노비들을 국가차원에서
관리해서 공노비의 숫자를 늘려가는 겁니다.”
“흠, 그렇지.”
“그 공노비를 데려다가 국가차원에서
관리 하는데, 그 여자들이 문제입니다.
궁녀나 무수리로 쓸수도 있지만, 일단은
기녀로 만들어서 멀티플레이어로 사용한다면…
이게 또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것 아니겠습니까?”
“야, 그거 정권안보랑 별 상관없어 보이는데?”
“왜 상관이 없습니까? 정권 안보차원에서 공노비
숫자를 늘리고, 그에 부수적으로
여자노비들을 활용하자는 말인데요!”
“아니, 원래 관기란 게 고려 때부터 있었고,
그게 또 보자면 공노비가 많아져서
부수적으로 생긴 거 아니었냐?”
“어쨌든! 사병혁파를 외치는
지금 이 시점에서 관기라도 확대해야 중앙집권화와
사병혁파를 이룰게 아니겠습니까?
이건 분명 정권안보 차원의 사안입니다 전하!”
“아…알았다. 뭘 그렇게
눈을 부라리면서 말하냐? 무섭게시리….”
관기(官妓)란 것이 만들어진 시점은 고
려시대 중앙집권화가 점점 이루어지면서
공노비가 늘어나면서 부터였다.
이 관기의 전통이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으로 건너오자 확대발전하게 되었는데,
“기왕 있는 거 한번 제대로 활용해 보자고!”
“뭘 어쩌자고?”
“그 뭐시기냐…그냥저냥 술이나 따르고,
2차 뛰는 거 보다는…좀 제대로 해보자고.
노래도 가르치고, 춤도 가르쳐서
멀티플레이어로 쓸 수 있게 말야.
어차피 2차 뛸 애들인데,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좋잖아?”
이리하여 조선은 국가차원의 체계화된
기생양성소를 설립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장악원(掌樂院)이었다.
이 장악원…뭐, 기생을 장악 한다 그
런 의미랑은 별 상관 없지만서두,
국가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기생을
관리하고 양성하게 되는 곳이었으니,
기생을 장악하긴 했다.
국가가 공창(公娼)을 운영한 것도
모자라 양성소까지 만든 꼴이 되었다.
이 장악원의 수준은 오늘날의
국립예술단원 레벨이었다 할 수 있는데,
“일단 지방에 있는 기생들 중에 똘똘하고,
마스크 받쳐주는 애들…몸매는 당연히
착한애들이지! 몸매 착하고, 머리 받쳐주고,
이쁜 것들 다 뽑아 올려! 애네들 데리고 제대로
한번 키워보자. 그 나머지 애들? 그건 네들이 알아서 해!”
과연 장악원은 무엇 하는 곳이고, 도의(道義)에 죽고
사는 조선에서 국가차원의 기생 양성소를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멀티플레이어 기생을 원한다는 본 목적 말고,
대외적으로 떳떳이 내세울 명분은 없었을까?
초특급 대하 울트라 에로 사극 ‘조선시대의
성매매 금지법’은 다음회로 이어지는데…. 커밍 쑨!
조선시대의 성매매 금지법 下
엽기조선왕조실록| 2007-03-07 15:49
흥미로운 것은 삼패의 경우 접객행위를 할 때
함부로 일패가 부르는 노래나 소리를 할 수 없다고
규제되어 있었다.
이들이 부를 수 있는 건 잡가뿐이었다. 보면 아시겠지만,
이들은 술마시며 노래 불러주고, 그러다
흥이 돋아 몸을 파는 케이스로 매춘을 했었던 것이었다.
자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약간
좀 미묘한 문제가 터져 나왔으니,
바로 조선이란 나라의 컨셉이었다.
“유교를 나라의 기본 컨셉으로 잡고, 예(禮)와 의(義)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조선에서 성매매를 법으로
엄금하기는 커녕! 오히려 장악원을 만들어 기생을 양성하고,
이도 모자라 일패, 이패, 삼패로 기생등급을 메겨
계층별로 몸을 팔게 하다니! 이게 어찌 도학(道學)의
나라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당장 성매매 금지법을 제정해
이 나라를 다시 도학의 나라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
“왜 말들이 없으십니까?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지방에 내려가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는 수령들이 내려가자마자 관기들을 전부 소집해 수질검사를 하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기생을 골라 수청을 들게 하는 게 이게 말이나 될법한 일입니까? 나라에서 나가요걸을 양성하고, 공무원들에게 배분해주는 시스템…이건 분명 문제가 있는 시스템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조선 초기 장악원을 만들고, 관기들에게 지방수령들에 대한 수청을 의무화 시킨 것. 뭐가 잘못 되도 단단히 잘못된 상황. 문제는 여기에 대한 당시 조정관료들의 반응이었는데,
“이 사람이 아직 인생을 덜 살았구만….”
“현장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것을…나도 젊었을때는 저랬다니까…. 좀 진정하라고”
“대감들! 그럼 관기를 뽑고, 지방수령들의 수청을 드는 것이 잘한 것이란 말입니까?”
“잘한 건 아니지만, 이게 또 필요악이란 말이 있잖아? 안 그래? 사람 살아가다 보면,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양하는 그런 일도 하게 된다니까.”
“그 필요가 뭡니까?”
“일단은 대왕대비전이나 대비전에서 심신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 위해 연회를 베풀 때…. 이게 또 경호의 문제도 있고 해서 외부에서 사당패를 끌어올 수도 없는 거잖아 안그래? 이런 상황에서 뭔 방법이 있겠어? 차라리 그럴 바에는 아예 상설화를 시켜서 직접 양성하면 좋잖아. 기왕 뽑은 기생들이니까 놀려먹기도 그러니까 대왕대비전이나 대비전 공연 마치면 주상전하 공연때도 나오고…가끔 우리들이 부를수도 있고 말야. 이게 다 규모의 경제라니까!”
“그럼 지방 수령들의 수청은 왜 드는 겁니까? 공연만 하면 됐지. 왜 몸까지 팔아야 하는 겁니까?”
“이 사람이…오해를 하고 있구만. 그 뭐시냐, 그래 변방에서 철책 근무하는 지휘관들…그게 또 어디 사람 할 짓이냐? 너 GOP 안 들어 가봤지? 거기 사람 살데 아냐. 그런데서 근무하는 지휘관들 가끔 몸도 풀고 해야 사기도 오르고, 사기가 올라야 부대지휘도 잘 할 거 아냐? 이게 다 그런 깊은 뜻이 있는 거야.”
“아니 그건 정신대가 아니고 뭡니까? 우리가 쪽바리 놈들이 우리 처자들 끌고 가 정신대 만들었다고 입에 거품 물고 항의 하고 있는데, 우리가 쪽바리 놈들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 하다니요!”
“워~워~ 좀 진정해봐 일단 Come down하고, 그게 또 말처럼 쉬운게 아니거든, 사기진작 차원이라니까. 군이란 게 특수조직체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백번 양보해 군대는 넘어 간다 칩시다. 현령들 수청은 왜 드는 겁니까?”
“이 사람이 형평성도 몰라? 누군 하고, 누군 안 해봐! 그게 얼마나 열 받는데…. 기왕 하는 거 그거 뭐 닳는거도 아닌데, 한번씩 다 하면 다 좋은 거 아냐?”
이랬던 것이었다. 조선시대…유교의 나라 예(禮)와 도(道), 의(義)에 죽고 살던 조선의 관료들은 장악원과 관기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변명을 했던 것이었다. 장악원의 존재 이유는 대왕대비와 대비마마의 연회를 위해서였고, 지방 관기들의 수청은 군(軍)사기 앙양과 공무원들의 근무여건 개선이 그 이유라 말했던 것이다. 정말 억지스런 답변이었지만, 조선왕조 5백년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관기의 존재이유는 이렇게 정리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정신대’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유. 그러나 그 이유가 5백년이나 통용되었던 시대…조선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나라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