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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향기

이모르 2021. 1. 21. 14:20

어머니의향기/김동성작

 

 

 

 

어머니는 절에 다니는 사람도 아닌데 초파일 무렵이면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내장사에 가서 연등을 달고 절을 많이 했다. 절에 다니는 사람도 아닌데...... 라고 했으나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가지 못하는 곳은 이 지상에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해 초파일 무렵에 시골의 어머니한테 갔더니 어머니 얼굴이 산만큼 부어 있었다. 그런 얼굴로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손과 발이 부어 누런 빵 같았다. 밤새 절을 하고 돌아와 앓고 있는 중에도 가뭄이 들어 작물들이 말라죽고 있는 밭에 물을 길어나르고 있는 중이었다.

 

저 고단한 여인, 책을 읽을 일도 음악을 들을 일도 없이 생애를 보내는 동안 어깨뼈가 닳아져버린 여인. 보고 싶어 갔음에도 화를 벌컥냈다. 어머니가 내 딸이나 되는 양 몸이 그 지경이 되도록 절을 하는 사람이 어딨느냐고 미련스럽기가 곰 같다고 펌프앞에 놓여 있는 양동이를 패대기쳤다. 세상에 나를 위해 보이지 않는 무엇을 향해 늘 절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 사실은 제 몸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할 폐허가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은 비통하다.

 

나는 부모 가슴에 꽃을 한번도 제대로 달아드린 적이 없다. 공손히 꽃을 드린 적도 없다. 어려서는 수줍움 때문에 그러했고 지금은 마땅한 이유가 없다. 오월 어느 날에는 꽃을 마련했다가 엄마...꽃! 던져놓고는 내뺐다. 아버지가 벗어놓은 웃옷 위에도 꽃을 던져 놓고 혹여 아버지가 나를 발견할세라 부리나케 내뺐다.

 

가슴에 꽃을 달아주기 위해서는 서로 마주서야 한다. 가장 친밀한 거리에서 서로의 눈길을 보내고 그가 기뻐하는지 입가를 엿보아야 한다. 그건 첫 포옹만큼이나 설레고 가슴 떨리는 일이다. 나는 그 떨리는 순간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건 어머니 잘못인지도 모른다. 봄이면 마을 뒷산에 지천으로 피는 진달래를 꺾어다 소주병에 꽂아두었더니 기름병으로 써야 될 것에다 꽃을 꽂아뒀다고 어머니는 꽃을 마루에 던져버렸다. 어머니는 꽃보다 기름이 좋은가 보다 생각했다. 지금도 어머니는 참기름을 짜서 소주병에 담아 노란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뒤에 내게 보낸다. 내 보기엔 어머니는 아름다운 것을 늘 내치는 것 처럼 여겨졌다. 그깟것. 먹지도 못하는 것! 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야단맞을 때처럼 말을 더듬거린다. 마음은 폭발할 것 같은데 아름답다고 말을 못하겠다. 혼이 날 것 같은 것이다. 아름다움은 사람을 혼나게 한다. 닿을 수 없는데 가 닿고 싶은 욕망 때문에 가슴이 또 한번 데일 것 같은 것이다. 처음부터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 않은 어머니 앞에서 나는 아름다운 것들은 어머니 생애에서는 쓰잘데기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오해였다.

 

시골집에 간 내가 어머니와 잠자리를 나란히 하고 누웠는데 장롱위에 못 보던 상자가 얹어져 있었다.
무심코 물었다.
저게 뭐예요?
아무 대답이 없었따.
엄마, 저게 뭐야?
다시 물었다.
저걸 저기에 둔지 몇달이 지났어도 아무도 안 물어보더만 네가 물어보는구나.

한밤중에 어머니는 장롱 위에서 상자를 내려왔다. 하나하나 뚜껑을 열었다. 눈부시게 흰 가제 보자기에 베가 쌓여 있었다. 어머니의 거칠고 투박한 손이 흰 매듭을 풀었다.
삼베였다.

 

아름답지야.

 

나는 어머니가 아름답다, 라는 표현을 쓰는걸 처음 들었다.

 

수의다.

....

 

누구에겐가는 이것이 여기 있다, 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게 너구나. 내가 죽으면 허둥지둥거리지 말고 이거 니가 챙겨라. 아버지 것은 내가 챙길 수 있지 않겄냐.
...

 

이 두 쪽은 요를 싸고 이 세쪽은 이불을 싸는 것이다. 손톱은 잘라서 여기에 넣는 것이고, 발톱은 이 주머니에 넣고, 이것으로는 발을 싸고, 이것으로는 손을 싸는 것이야.
수의를 딸앞에 펼쳐 보이며 중얼거림처럼 이어지는 어머니 말씀 맨 끝은 내가 호사를 좀 부렸다, 는 것이었다.

 

생전 동안 이처럼 아름다운 삼베는 몇 보지 못했다니까. 이 빛깔좀 봐라.

 

직접 삼을 심고 삼아서 짠 베를 먼 걸음을 해서 구한 거라 하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어머니 말씀을 가만 듣고만 있었다.


자식이 아닌 다음에는 뭣을 봐도 감탄하는 바가 별로 없는 어머니는 연꽃을 좋아했다. 향기 나고 자태 고운 꽃일수록 어머니 앞에서는 먹지도 못하는 것에 불과했으나 연꽃 앞에서 어머니는 눈이 시어지는지 눈꼬리가 가느스름해지곤 했다. 물 위에 떠 있듯 피어 있는 연꽃 앞에는 오래 머물곤 했다. 그때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가 아니고 그녀인 듯 했다. 연꽃앞에서의 어머니는 양수 속의 태아가 된 듯도 하고 소녀가 된 듯도 했다. 뺨이 발그레한 처녀로 돌아간 듯 목소리를 낮추고 수줍게 웃기도 했다. 어머니도 연약하고 흔들리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건 연꽃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손수 수의를 마련해놓은 생의 끝자락에 가 있는 어머니인데도 연꽃 앞에서는 어머니를 위해 절을 해주었을 어머니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보았다.

이 꽃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다.

 

- 신경숙 -

 

 


낮은 서점의 공기에 더위를 가라앉히고저 서점에 들러
시선이 가서 꽂힌 책을 가슴에 안고 집에 돌아온다.

 

첫장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나는 엄마 없는 아이처럼. 엄마의 이야기만 읽으면 가슴 아파하는지...
살아서도 이렇게 그리운. 앞에 있어도 그리운 나의 엄마
나직이 엄마를 소리내어 혼자 불러보기라도 할때면
이유모를 울컥함이 온몸을 흔들어 놓는다.

 

생애 유일한 호사가 손수 수의 여며놓는 일이라 말하는 부분에서
흐르는 눈물은 어쩌지 못할 일...

 

하늘빛 그리움(Yearning For Skyblue) - 二絃의 弄(이현의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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