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온글

미군장교의1952년 사진

이모르 2021. 1. 21. 16:52

 

 

북한군의 서울 입성

 

인민공화국 서울 입성후 3개월 동안 거의 매일 집회가 열렸다 묶여 끌려가는 남쪽 인사들

 

 

중공군의 대민지원

 

중공군에 포로된 미군

 

한국군의 반격

 

국군의 고지탈환

 

인천상륙작전 인민군 포로

 

 

영동지방 북한측 게릴라 체포

 

북한군 돌격대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나서 총살당한 24사단

소속 병사(출처 위키백과).

 

그에 반해 항복한 한국군의 경우 북한군이 초고속

남진하며 "동무! 이제

곧 조국 통일되는데 왜 도망가시오?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오!"라고 하면 "데헷!"맞다.

이제 곧 통일되지?"하고 집에 돌아가는 척 하다가

남쪽으로 다시 도망갔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2차대전 극초기 프랑스 전선에서 나치

독일군이 프랑스 군을 마구 헤집고 파리까지 달려가자,

프랑스군은 한참 독일군 지나가는거 구경하다가 자신들을

포로로 잡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때닫고 그냥 집으로 갔다.

롬멜도 항복하기 위해 두팔 들고 몰려오는 어마어마한

대군을 보고 "비켜!"하고 그냥 제치고 지나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국전쟁 초기도 대략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하지만 서울대학병원 학살사건에서도 보듯이 북한군은

한국군을 개전초기에도 포로로 안 잡은게 아니라 잡히면

미군처럼 처형했다는 증거도 있다.

한편 전세가 낙동강에서 고착되자 개전초기 한강철교

폭파로 대량으로 생포한 한국군들을 해방동무라고 하면서

상당한 인원을 북한군에 편입시켰다. 거의 1개 분대당 2

비율이였다고 한다. 북한군 기록에 보면 절대 감시하지 않고

알아서 싸우게 했다고 하는데 유사한 맥락으로 봐 줄수 있다.

각설하고 국군과 UN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최후 방어선을 전개했다.

이에 북한은 9월까지 대공세를 펼쳤으나 대구.칠곡.영천등지를

두고 벌어진 다부동

전투와 왜관 전투에서 국군과 UN군은 방어선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미군장교가 찍은 1952년 한국의 모습

Photographer : Captain John Randolph Coupland III, US Army, 1952

퍼온곳 : https://www.flickr.com/photos/58451159@N00/

 

 

 

 

 

 

 

 

 

 

 

 

 

 

 

 

 

 

 

 

 

 

 

 

 

 

 

 

 

 

 

 

 

 

 

 

 

 

 

 

 

 

 

 

 

 

 

 

 

 

 

 

 

6.25전쟁 당시의 모습에서 보이듯

먼산이던 가까운 산이던 모두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 열료가 부족하여 산의 나무들을 땔감으로

쓰는  산도 민둥산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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