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조선시대 회원식

이모르 2021. 1. 21. 19:49

조선시대 회원식

 

흥겨운 잔치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마음일까?

우리나라 울산 지역과 유럽에 살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고래나 들소 사냥 그림을 그들이 살고 있던 동굴 벽에 그렸다.

사냥에서 돌아와 잔치를 벌일 수 있기를 기원하며 그렸거나,

사냥에서 잡은 고래 고기와 들소 고기를 배불리 먹은 후 그렸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가 되고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시대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화가들은 돌잔치, 회갑찬치 등등 수많은 종류의

잔치를, 유럽 화가들은 흥겹게 놀고 마시는 장면을 그렸다.

우리 조상님들과 유럽 사람들의 문화사랑은 거기서 거기다.... 


 

작가 미상 <회혼례 화첩>

비단에 채색 33.5 x 45.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혼례는 결혼 60주년을 기념해, 다시 한번 혼례식을 치루는 잔치다.

조혼풍습에 따라 12살 때 결혼을 했으면 72살이 되었을 때,

그리고 부부가 함께 살아 있어야 치룰 수 있는 잔치다.

지금보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조선시대에서는

쉽게 치룰 수 있는 잔치가 아니었다.

그래서 돈 있는 후손들은 요즘 촬영기사 불러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듯, 화가를 불러 잔치 광경을

화첩이나 병풍에 그리게 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만수무강 하시라고 술잔을 올린다.



 


술동이가 청화백자다. 상 위의 음식에 대해 잔치

음식을 많이 차려본 어느 아주머니는, 팥시루 떡과 노란

콩가루를 묻힌 인절미라고 단언하셨다.... 그럴듯 하다~~~ ^&^


며느리와 손주 며느리들이리라.... 상 마다 놓인 꽃에서

조상님들의 꽃사랑을 느낄 수 있다.

앞 줄 며느리들은 머리에 꽃을 꽂았다..... 그

렇다고 단체로 정신 줄을 놨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리라... ^&^

 


할아버지 등 뒤의 아이는 증손자나 고손자 쯤 될 것 같다.

두루마기의 빨간 끈은, 정3품 당상관 이상을 지냈다는 표시다...



아들, 손자들이리라.... 모두 까만끈이니,

아직 당상관까지는 못되었다는 뜻이다.... ㅠㅠ

첫번째 남자 뒤에 아이가 있는데, 아버지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앞 줄의 손자들 갓에는 꽃을 꽂았다. 

꽃남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다~~~ ^&^

병풍의 그림을 격조있게 그린 걸로 봐서,

화가의 그림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집에서 일하는 하녀와 아이들이리라.....



 

당시 치마에는 저렇게 주름이 많았나 보다.... ^&^

 





무슨 수다를 떠는지, 표정이 재미있다..... 아래 그림은 회혼식 준비 장면이다...

 

회혼식을 하기 위해 할아버지가 입장하신다.....



엣날에 장가 가실 때 처럼, 앞에서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간다.....






아들들이 대문 앞에서 신랑이 된 아버지를 기다리고,

 집안에서는 며느리들이 어머니에게 신부 단장을 시킨다....


 

단원 김홍도 <모당 홍이상 평생도> 8폭 병풍 중 회혼식 

종이에 옅은 채색 122.7 x 47.9cm 178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단원 김홍도가 그린 평생도 병풍 중 회혼식 부분이다. 평생도는

돌잔치부터 시작해 과거급제 벼슬길 등 평생의 일을 그린 후

맨 마지막에 회혼식을 그린다. 8폭짜리도 있고 10폭 짜리도 있다.

 


회혼식도 결혼식과 똑 같이 한다..... 이 할아버지,

다복하게도 아들을 여덟이나 두셨다.... ^&^

회혼식 배경 병풍에는 부귀장수를 염원하는 모란이 가득 그려져있다.

단원이 그린 이 평생도는 다른 화가,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작가 미상 <담와 홍계희 평생도> 병풍 중 회혼식 부분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영조때 문신 담와 홍계희의 평생을 그린 평생도 병풍 중 회혼식 부분이다.

역시 꽃이 있으니까 회갑연 분위가 흥이 난다.....


 


두 분 모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셨다. 

신방의 창호지를 뚫어도, 코 고는 소리만 들리리라..... ^&^


 

작가 미상 <평생도> 병풍 중 화혼식 부분

회혼식 장소가 임시로 설치된 것 같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남자 얼굴은 잘 그렸는데,

여자 얼글은 어색한 데가 많다....

평소에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해서 그런가 보다.... ^&^

그럼, 이런 잔칫날 음식은 어떻게 했을까?

 

 작가 미상 <선묘조제재 경수연도> 중 조찬소

부분도 24.7 x 43.0cm 1605년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1605년(선조 38년), 높은 벼슬을 하는 양반들 중 70세된 노모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경로잔치인 '경수연'을 열었을 때, 음식을 준비하는 삼청동에 있던 예조 조찬소의 모습이다.

이 정도면 사진기로 찍은 것과 다를바 없다.......


가마솥, 숯, 독과 함께 숙주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런데 가운데 남자는 왜 나무가지를 들고 설치는 걸까???

 

 

 


여기서는 상 차릴 준비를 하고 있다.....

잔치 음식, 먹기는 쉽지만 준비는 쉽지 않다.....

남자들이여, 가끔은 여인들의 수고를 생각하자~~~~ ^&^

오늘은 여기까지~~~~

원문보기 http://blog.ohmynews.com/arts/25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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