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디르케의죽음

이모르 2021. 1. 22. 16:18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 파르네세 불

이조각은 파르네제 황소(Toro Farnese)라고 불리우는

파르네제 컬렉션 중의 하나이다

다르케의 죽음을 조각한 것이다 기원전 2세기 말 경에

조각가 로데스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de Tralle)

동생 타우리스쿠스(Tauriscus)의 대리석 작품을 로마시대에

복제한 것이다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에 있다

 

 

파르네제 황소 세부도

 

파르네제 황소 세부도

 

 

Dirce를 죽인 황소 길들이기.  : "토로 파르네세".  (세부 사항). 국립 고고학 박물관, 나폴리.

 

Dirce를 죽인 황소 길들이기. : "토로 파르네세". (세부 사항). 국립 고고학 박물관, 나폴리.

 

파르네제 황소 세부도

 

 

 

파르네제 황소 세부도

 

 

 

 

 디르케의 죽음

 

이렇게 테베 밑에 있는 키타에론 산에 남겨진 암피온과 제투스는

 양치기의 보호를 받으면서 동굴에서 살게되고, 리쿠스는 안티오페를 데리고

테베왕국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부인인 디르케(Dirce)에게 안티오페를 맡긴다.

 

겉으로는 숙모에게 조카를 맡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종으로 부리라고 던져준 것이다.

백설공주가 왕비에게 온갖 시달림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다 거울이 잘 못해서 그렇다.

거울이 거짓말 좀 해서 당신이 가장 이쁜 여자라고 했으면 백설공주도 편안히 궁전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을 텐데...... 진실이 문제다.

디르케도 당시에 미모라면 빠질 수가 없는 여자였다. 그러니까

디오니소스의 사제를 지낸 것이다.

박카스 축제를 총관하는 여사제였던 디르케가 자신보다 출중한 미모의

안티오페를 그냥 두었을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남편 리쿠스가

안티오페를 데려올 때 작업을 걸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의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녀들은 제 발로 집을 나가지는 않았다. 전부 외부의

힘에 의해 집을 떠났지만, 안티오페는 이런 박해와 구박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건 필사의 탈출을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로렌쪼 바르톨리니

(Lorenzo Bartolini)의 디르케 대리석 와상이다.

내 말이 그리 틀리지 않음을 입증할 정도로

바르톨리니가 미인으로 잘 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막상 테베에서 탈출한 안티오페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의 남편인 시키온의 에포페우스도 당시에 전쟁으로 전사해서 죽고 없다. 다른 나라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해보고 싶지만 강력한 테베의 힘에 의해 박살이 난 시키온 왕국의 꼴을 보고 누가 선뜻 그녀를 받아 줄 리도 만무하다. 이 때 그녀에게 들려온 소문이 있었다. 키타에론 산의 동굴에 비범한 용모의 쌍둥이 청년 둘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버려진 아들들임을 확신한 그녀가 산을 올라간다. 그리고는 아들들을 재회한다. 감격의 순간이라 눈물을 흘리면서 부둥켜 앉고 이산가족 상봉의 순간을 연출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자연을 벗 삼아 아무런 고민없이 기타치고 피리불면서 천지에 널려있는 먹거리들 수시로 잡아먹으면서 말 그대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잘 살고 있는데, 어느날 누더기를 걸친 여자가 찾아와서 자신이 에미고 아비는 제우스 신이라고 헛소리를 해대면서 복수해 달라고 하면 믿겠는가? 말 그대로 미친 여자다. 특히나 암피온은 철학까지 공부한 당대의 논리학자다. 실성한 여인이 불쌍하니 제투스가 사냥해서 잡아온 사슴으로 만든 육포나 몇조각 들려서 돌려보낸다. 한데 이 때 박카스 축제를 지내려고 산을 찾은 왕비 디르케와 맞닥뜨린다. 운도 지지리 없는 안티오페! 디르케의 명령으로 쌍둥이 형제는 자신의 엄마를 축제의 희생양으로 바칠 준비를 한다. 황소에 매달아서 사지를 분열시키는 거열(車裂)형에 처해질 순간, 기적같이 쌍둥이를 키워준 양치기 노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 불쌍한 여인이 그들의 어머니이며 그녀의 말이 모두 사실임을 증명해 준다. 그러자 분노한 두 아들은 안티오페를 매 달려고 하던 황소에 디르케를 매달아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여기서 황소에 매다는 형벌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한데 당시의 박카스 축제의 절정은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취한 상태에서 제물을 손으로 갈갈이 찢어죽이는 것이 었다. 처음에는 인간이 제물이 되다가 후에는 양이나 소같은 짐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오비드의 변신이나 여러 이야기에 보면 이렇게 박카스 신도들에 의해 조각이 나서 죽은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유명한 음악의 화신 오르페우스도 이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진다.

 

 


이 그림은 폼페이 유적중에 베티 일가(la casa dei Vetti)의 벽화이다. 당시 로마인들에게 디르케의 죽음 장면이 관심을 끌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같은 신화를 소재로 만들어도 그리스 고전의 작품들 보다 로마 시대의 작품들이 좀 더 잔인한 부분에 치중해서 그려진다. 세네카의 연극을 보면 확연히 그 차이들이 나타난다.

 

 

 

 

 

이 조각은 파르네제의 황소(Toro Farnese)라고 불리우는 파르네제 컬렉션 중의 하나이다. 역시 디르케의 죽음을 조각한 것이다. 기원전 2세기 말 경에 로데스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de Tralle)와 동생 타우리스쿠스(Tauriscus)의 대리석 작품을 로마시대에 복제한 것이다. 나폴리의 국립고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co di Napoli)에 가면 있다. 만일 나폴리에 갈 수 없다면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크(Charlottenburg)에 깁스포르메라이(Gibsformerei)라고 말 그대로 석고본만 복사해서 만드는 곳이 있느데 거기에 가면 아쉬운 대로 석고본을 볼 수 있다. 암튼 독일인들 징하다. 하긴 어차피 복제품이니......

 

 

 

그리고 이렇게 로마인들이 디르케에 죽음에 집착을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그림이 이 그림이다. 이 그림은 폴란드 화가인 헨릭 시에미라즈키(Henryk Hektor Siemiradzki)가 그린 기독교인 디르케(Dirce chrześcijańska)라는 그림이다. 즉 디르케의 죽음을 기독교인의 순교로 해석해서 그린 것이다. 종교사에서는 예수와 디오니소스를 동일한 선 상에 놓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들이 미스틱이라 불리는 종교인데, 그 기원은 고대 이집트까지 상당히 올라가는데 이야기 길어지니 다음에 기회되면 설명하고, 여기서는 시에미라즈키가 다분히 그런 시각에서 디르케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만 이야기 하겠다.

각설하고 쌍둥이 형제 암피온과 제투스는 이 여세를 몰아서 마침 축제를 벌이려 디르케를 따라온 테베의 왕인 리쿠스도 발견하고 죽이려한다. 한데 이 때 암피온의 스승인 헤르메스 신이 현신해서 리쿠스를 살려 줄 것을 요청한다. 즉 친족 살해를 막는 순간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갑자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온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 이 부분은 연극의 한 부분이다. 에우리피데스의 연극 "안티오페(Antiope)"에 나오는 장면이다. 친족살해를 회피하기 위해 에우리피데스가 만들어 놓은 장치이다. 원래 전해오는 이야기에는 이 쌍둥이는 엄마의 복수를 위해 작은할아버지인 리쿠스도 살해한다. 그리고 이 둘은 테베 왕국에 성을 쌓는데, 커다란 돌을 제투스가 옮겨오고 암피온이 리라를 타면서 음악을 연주하면 이 돌들은 저절로 거대한 성벽이 되었다고 한다. 후에 이 성벽이 나오는 연극이 또 있다. 나중에 설명하겠다. 암튼 이러한 시공법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건축학도들을 다분 자극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둘이서 잘 쌓아올린 성벽 안에서 테베 왕국을 지배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면 되겠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자신의 사제를 죽인 것에 분노한 디오니소스의 저주가 아직 남아있다. 먼저 안티오페는 미쳐서 그리스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헤르메스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리쿠스는 디르케가 낳은 아들 라이오스(Laius)와 함께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혹시 앞에 언급한 에우리피데스의 연극 "안티오페"를 구해서 읽어보려고 하시는 분이 있을 지 몰라서 노파심에 한 말씀 드리면,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니 애쓰지 마시라. 이 연극은 분실되어서 조각들만 여기 저기 다른 글들에 조금씩 언급되는 정도로만 나온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 파피루스로 가장 많은 부분이 발견된다. 약 기원전 3세기 경으로 추측되는 부분인데, 그 동안 다른 곳에서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 나오는 것이 흥미롭다. 암피온과 제투스의 테베 왕국의 지배권을 두고 벌이는 논쟁부분이 있는데 형이상학적인 부분과 현실에 관한 다분히 철학적인 내용들이다. 하여간 오늘은 여기서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가 명함을 내미는 정도로 이야기를 마친다.

 

모셔와 편집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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