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유관순열사의유언(3.1운동에 기대어)

이모르 2020. 12. 15. 14:07

 

 

내일은 3.1절 도선 산우회 에서는 매년

이날을 기념하여 산행을 하는데 양수리 부용산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친우 춘곡에게 부탁 독립선언서를 청하여 들을

예정입니다

 

한국인의 가슴속 깊히 자리하고 있는 유관순 열사는

16세의 나이로 끔찍한 일제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조국을 위하여 깨끗한 순절을 택했던 위대한 열사

입니다

열사의 부모 유중권과 이소제는 1919년 4월1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셨다가 일본헌병의 기관총난사에

순국하셨다

유중권의 동생 유종무는 형의 시신을 엎고 주재소로

가서 시위도중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유관순열사 가슴벅찬 그이름

그분의 정신을 기릴 것 이지만 작금

나라의 양분된 분열 민의는 가슴 아파옵니다

나라를 안정시켜야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양쪽의 세를 확보 하기 위하여 폭력을

부추기는 한심한 3.1절이 되어가는 것에

!!통제라 선열들이 울부짖고 있을 것입니다

 

이에 유관순열사의 유언을 기리며

그 뜻으로 이땅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유관순의 유언  

She leave a will.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

I can bear the pain of broken arms and legs,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

But I cannot bear the pain of losing my country...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My only sadness is that I only have

one life to give for my country

 

 

 

 

유관순열사의 교훈으로

이땅의 평화를 염원하며

나라를 이렇게 남북으로 찢끼게 만든

일제의 만행과 조선풍물 동영상을 올려봅니다

 

 

 

 

유관순열사 이화학당 졸업사진

 

1919년 3월 1일 의거

 

유관순열사의 수형기록표 고통속에서도

당당하신 모습이다

 

 

1919 3월 봉기에 참여한 열사들의 재판

1-2백만명이 참여하고 약7000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대한 독립군

 

1930년 만주 독립운동가

일본의 점령 후 1900 년대 초에 형성된 독립군  중 하나입니다.

1907 년에 의인 1 만 명은 서울을 해방하려했지만 패망했다.

남쪽의 저항군은 대부분 사냥되었으며,

북부 지역의 사람들은 만주와 러시아에서

후퇴하고 재 공급할 수 있었다.

 

거사직후 체포되는 윤봉길 의사

 

 

 

조선 풍물 일제침탈사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