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
함박눈이
세상을 하얏게 덮었다
상처 난 사랑의
기억은 백지로
지워져 간다
부딪기며 포개진 눈 위에
다시 써 내려간 사연
그리움 !!!!
눈/ 윤동주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히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겨울에만
내리지
눈/김종해
눈은 가볍다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 내리는 날은 즐겁다
눈이 내리는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눈내리는 소리/평보
고목 까치소리 요란하다
싸리울 참새 지져김 부산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밤새 함박눈이
세상을 바꿔 놓았다
봄날 낙화의 꽃비처럼
비틀대며 포개진다.
장독대 위로
싸리울 위로
소리없이 쌓여간다
하얀세상
흰둥이 검둥이
삽살개 뛰놀며
어지럽힌다
쌀 한주먹 뿌려주신
할머니
참새들 몰려와 잔치한다
뽀드득 뽀드득
이웃집 분이가
마실 오더니
덮어 놓은 이불속으로
숨어버렸다
작은 지붕위에/전봉건
작은 지붕위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창틀속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장독대에 내리는 것도 눈이고
눈 눈 하얀눈
눈은 작은 나뭇가지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오솔길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징검다리에도 내리고
새해 새날의 눈은
하늘 가득히 내리고
세상 가득히 내리고
나는 뭔가 할말이 있을 것만 같고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을 것만 같고
한사람 만날 사람이 있을 것만 같고
장갑을 벗고 꼭꼭 마주잡아야 하는
그 손이 있을 것만 같고
첫눈오는날 만나자/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눈 /이은봉
눈이 내린다
두런 두런 한숨 속으로
저희들 끼리
저렇게 뺨을 부비며
눈이 내린다
별별 근심스런 얼굴로
밤새 잠못이룬 사람들
사람들 걱정속으로
눈이 내린다
참새떼 울바자에 내려와
앉는 아침
아침 공복 속으로
저희들끼리 저렇게
뽀드득 뽀드득
어금니를 깨물며
첫눈오는날 /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 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계단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 속에 촛불 하나씩 켜 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첫눈 /김필규
허고에서 狂氣로 춤을 춘다
저 방종자들
아스팔드 길에 추락한다
저 自爆者들
축복처럼 왔다가 自滅한다
저 염세주의 자들
철없던 시절 잠깐 왔다가
속절없이 가버린 첫사랑
달콤한 것들은 쉬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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