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

목련꽃에대한 시모음(목련꽃 필때면)

이모르 2021. 2. 15. 17:04

 

 

 

목련/ 평보

 

꽃 봉우리

우아하게 펴지던

목련나무 아래는

어느새 버려진

꽃잎이 신음한다.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들은

목련꽃 나무아래

서성인다.

 

미움을 간직한

사람들은

목련꽃 나무아래

서성인다.

왜 일까

도 없는 꽃인데

그들은 꽃 필 때만

서로를 탐구했고

꽃잎 떨어질 때

가던 길 쉽게 가던

사람들이다.

사랑은 목련처럼

꽃부터 피우면

쉽게 잊혀 지는가보다

 

오늘도 목련나무아래서

서성이는 사람들

 

 

 목련/류시화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 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목련나무 줄기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 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묻힐 때
삶이 허무한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

   

 

 목련나무 / 최기순

 

목련나무는 

그 집에 일 년에 한 번 불을 켠다

사람들은 먼지가 쌓여 어둠이 접수해버린

그 집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목련꽃이 피어있는 동안만 신기하게 쳐다본다

 

목련나무는 보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타고 놀던 목마와

버려지는 낡은 의자

플라스틱 물병과 그릇들

장난삼아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던 손과

방충망이 저절로 찢어지던 소리

늘어진 TV안테나 줄을 타고

근근이 피어오르는 나팔꽃을 뒤로하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아파트를 바라보는

기대에 찬 시선들을

 

드디어 두꺼비집 뒤에서

도둑고양이가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오고

집이 삭은 관절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우는 것을

제 그늘에 몸을 숨기고 다 보았을 목련나무는

해마다 봄이 되면 미친 듯 제 속의 불꽃들을 밀어 올려

저렇게 빛나는 불송이들을 매달았을 것이다

 

 

 

목련나무 아래로 가다 / 최을원

 

그곳에 목련나무 한 그루 서 있었네

노래의 잔뼈들만 떨어져 쌓이고

우연처럼 바람이 불면

녹슨 목련꽃잎보다 더 빨리 지고 싶었네

노을 속으로 도시가 서둘러 가면

지친 노래가 터덜터덜 고샅길 내려갔었네

그런 날 밤마다, 하숙집 낮은 창을

밤새 두드리던 그 목련나무,

대책없는 젊음이 파지로 싸이고 나서야 잠들던 새벽녘

꿈은 폐비닐처럼 찢겨 담벼락에 꽂힌

병 조각 끝에서 펄럭거렸네

지금도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화라락, 화라락, 꽃잎 지는 소리 들리네

떨어진 자리마다 붉은 녹물이 배이네

몇 개의 낯익은 거리들이 순례자처럼 찾아오면

오래된 노래가 주섬주섬 대문을, 또 나서네

 

 


목련사원·1 / 조정인


 저 꽃그늘로 가면 백발이 성성하리라

이내 하얀 운구가 나가리라


 목련 필 때면 연립주택 3층에 사는 나는,

앞집 또는 그 너머, 먼발치 안마당에 들인

목련 흰 탑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저절로

성지를 향해 등뼈를 곧추세우는 목련교도가 된다


 다 이루었다,*

 허공중에 아른아른 드러나는 빠스카**의 늑골,

해마다 백향목에 못 박히러 오는 한 사나이처럼

꽃들이 제 옛 주소지에 당도한다


 들끓는 지열로부터 길어 올린 빛의 金屬

가지 끝에 이르러 차갑게 제련된다 극한의

, 종으로 빚어진다

 
 다 이루었다,

 바람이 일자 꽃과 꽃의 간극이 간절해지며

소리의 사금이 희미하게 번져간다

나무는 제 죽음의 목전에서 한 번 환하다

나무가 전신으로 조종을 운다 백향목 위의

사나이가 예정된 날들을 울고 간다

 


*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 30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었다.


** 빠스카(Pascha): (히브리)지나치다.

가톨릭- 부활().

 

 

 

목련 그늘 아래서는 / 조정인

 

목련 아래를 지날 때는

가만가만

발소리를 죽인다

 

마른 가지 어디에 물새알 같은

꽃봉오리를 품었었나

 

껍질을 깨고

꽃봉오리들이

흰 부리를 내놓는다

톡톡,

하늘을 두드린다

 

가지마다

포롱포롱

꽃들이 하얗게 날아 오른다

 

목련 아래를 지날 때는

목련꽃 날아갈까 봐

발소리를 죽인다

 

 


木蓮 / 김경주

 

마루에 누워 자고 일어난다
십 이년동안 자취(自取)했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이라고
생각한 이후
단 한번만 사랑하고자 했으나
이 세상에 그늘로 자취하다가 간 나무와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습하다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戀人)들을 기웃거렸다
이사 때마다 기차의 화물칸에 실어온 자전거처럼
나는 그 바람에 다시 접근한다
얼마나 많은 거미들이
나무의 성대에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고서야
꽃은 넘어오는 것인가
화상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다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여
목련의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우는가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
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
그늘이 비리다

 

 


밤목련 / 오철수

 

 

달이 참 밝다
밤목련이 이불 홑청에 새긴 꽃무늬 같다
그 밑에 서서 처음으로 저 달과 자고 싶다고 생각한다
뜨거운 물주머니처럼 발 밑에 넣고 자면
사십 년 전
담쟁이넝쿨 멋있던 적산가옥 길
백설기 같던 목련
필 것 같다


역사의식도 없이 희고 희었던
일곱 살 배고픔처럼

 

 

 

목련꽃 지다 / 전길자

 

편지지에

녹색 잉크로 안부를 묻던 사람 있었지

 

지워져 가는 것들 속에

아슴히 남아 있는 몇 개의 밑그림

 

아직도 대문에 기대어

화장기 없는 내 얼굴 보고 싶을까

 

목련꽃 환한 사월

낮은 휘파람으로 창을 두드리던 사람

 

지금은 투덕한 아내의 미소 앞에

얼굴 붉히지도 않겠지

 

사월은

밤하늘 별빛 그대로인데

환장할 목련꽃 그대로인데....

 

 


목련 후기 /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木蓮 / 박주택


 

어둠을 밀어내려고, 전생애로 쓰는 유서처럼
목련은 깨어 있는 별빛 아래서 마음을 털어놓는다
저 목련은 그래서, 떨어지기 쉬운 목을 가까스로 세우고
희디흰 몸짓으로 새벽의 정원, 어둠 속에서
아직 덜 쓴 채 남아 있는 시간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으로부터 헤쳐 나오는 꽃잎들이
겨울의 폭설을 견딘 것이라면, 더욱 더 잔인한 편지가
될 것이니 개봉도 하기 전 너의 편지는
뚝뚝 혀들로 흥건하리라, 말이 광야를 건너고
또한 사막의 모래를 헤치며 마음이 우울(憂鬱)로부터
용서를 구할 때 너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말똥거리다 힘이 뚝 떨어지고 나면
맹인견처럼 나는 이상하고도 빗겨간 너의 그늘 아래에서
복부를 찌르는 자취와 앞으로 씌어질 유서를 펼쳐
네가 마지막으로 뱉아 낸 말을 옮겨 적는다

 

 


목련 전차 / 손택수

 

 

목련이 도착했다
한전 부산지사 전차 기지터 앞
꽃들이 조금 일찍 봄나들이를 나왔다
나도 꽃 따라 나들이나 나갈까
심하게 앓고 난 뒤의 머릿속처럼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전차 구경 와서 아주 뿌리를 내렸다는
어머니 아버지도 그랬겠지
꽃양산 활짝 펴 든
며느리 따라 구경오신 할아버지도 그랬겠지
나뭇가지에 코일처럼 감기는 햇살,
저 햇살을 따라가면
나무 어딘가에 숨은 전동기가 보일는지 모른다
전차바퀴, 기념물 하나만 달랑 남은 전차기지터
레일은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레일을 따라
바퀴를 굴리는 힘을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지난밤 내려치던 천둥번개도 쩌릿쩌릿
저 코일을 따라가서 동력을 얻진 않았는지,
한 량 두 량 목련이 떠나간다
꽃들이 전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
저 꽃전차를 따라 가면, 어머니 아버지
신혼 첫밤을 보내신 동래 온천이 나온다.

 

 


목련 / 심언주

 

 

쪼끄만 새알들을 누가

추위 속에 품어 주었는지

껍질을 쪼아 주었는지

언제 저렇게 가득 깨어나게 했는지

가지마다 뽀얗게 새들이 재잘댄다

허공을 쪼아도 보고

바람 불때마다

촉촉한 깃을 털고

꽁지깃을 치켜 세우고

우왕좌왕 서투르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

벌써 바람의 방향을

알아챈 눈치다

 

 


지는 백목련에 대한 단상 / 김성수

 

목련 나무에서 화려한 설법이 떨어져 내린다
저 우유빛 가슴, 겁탈 당한 조선시대 여인네 정절貞節같은,
품 한 켠 은장도로 한 생을 접었다
옷고름 풀어헤친 짧은 봄날의 화엄경華嚴經 소리,
바람바람 전하더니, 거리 욕창 든 꽃잎 떨구며
봄날은 간다 아름다운 요절, 화려한 통점痛點,
동백의 투신은 투사의 모습이었고,
목련은 병든 소녀처럼 죽어갔다. 두둥실
명계冥界를 건너는 꽃들의 장송곡 따라 삼천 궁녀들
나무 위에서 자꾸만 뛰어 내리고 있다.
잎새들도 곧 뒤따르겠노라 하염없이 손 흔든다.
떨어진 목련꽃을 만진다. 화두話頭 하나 마음으로 뛰어 든다
내 생이 바짝 긴장한다
memento mori!*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목련나무엔 빈방이 많다 / 이정록

 

목련꽃 환한
낡은 기와집

 

나무 대문 앞에
弔燈이 걸려 있다

 

할아버지가 숨을 놓자
혼자 살던 집에 사람 북적인다

 

저렇게
食口가 많았던가

 

가까이 다가서니
언제부터 펄럭였나
빛바랜 달력 한 장

 

빈방잇슴
보이라 절절 끄름

 

목련나무의 빈방 안에서
소리 새나온다
건을 벗어
問喪하는 목련꽃 이파리들

 

 


木蓮 / 김 륭

 

 

나무는 제 팔 꺾어 세상을 휘두르지 않는다
나무는 바람의 목을 조르거나 구름을 방석으로

깔아뭉개지 않는다

 

눈밭 헤치고 당도한 정원, 어디 꽃 한번 피워보나 싶더니
내 팔에 내 목을 걸고 한고비 넘나 싶더니
, 목이 몸밖으로 미끄러진다

 

하얗게 질린 몸짓 발등으로 부어 올라
눈에 불을 켠 목련송이들
날아오른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바닥이던가
밟히면 밟힐수록 후끈, 달아오르는 게 생이던가

 

도심 한복판 허공을 장악한 실내골프연습장
사모님 몇 뱃살 출렁이며 공을 친다
백수건달 내 목을 후려친다

 

 


하얀 목련 / 김옥남


 

방금 기도를 끝낸
하얀 성의의 천사들이
꽃등불을 밝히고
삼월의 뜰을 걸어 나왔다


하늘을 향해
목울대를 곧추 세우고
꽃송이 송이마다
볼을 부풀린 것이


지휘봉을 휘두르는
바람의 호흡 따라


지금이라도 곧
봄을 찬양하는 합창을
시작할 것만 같다

 

 

 

목련 이력서 / 이해리

 

 

개봉되자 버려진 이력서처럼

피자마자 봄이 간다

올해도 마지막 처럼

가지 끝에 부풀어

뽀얀 주먹 두 개를 푸른 하늘에

내밀고 있다 스무 해 서른 해

온힘 다해 밀어 넣어도

한 번도 꼼꼼히 읽히지 않은

목련꽃의 이력이 저 주먹 안에 있겠다

아무 배경 없이도 순결한

심성만 있다면 이 세상

화사한 꿈에 닿을 수 있다 믿는

어느 처녀가장

4월 하늘이

흰불꽃회오리 그 주먹 안에

허공 두 줌을 쥐어 주고 있다

 

 


목련 / 정병근

 

 

빤스만 주렁주렁 널어 놓고

흔적도 없네

 

담 넘어 다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 다 본다

한 접도 넘고 두 접도 넘겠네

 

빨랫거리 내 놓아라 할 때

문 처 닫고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겨우내 빤스만 사 모았나

 

저 미친 년, 백주(白晝)

낯이 환해 어쩔거나

오살 맞은 년

 

 


그 목련 꽃이 / 김재황

    

겨우내 눈을 감고 무슨 알을 품었는지

봄이 오자 빈 가지에 하얀 깃의 어린 새들

저마다 배고프다고 입을 쩍쩍 벌립니다.

 

 


목련 / 이영옥

 

뼈만 남은 손가락이 가지를 움켜잡고 있었다
다정했던 목련, 지는 모습이 이랬다
볼이 움푹 팬 병색 짙은 몰골로
자신의 전부를 갉아먹고 있었다
활짝 핀 함박눈처럼
세상을 끌고 올라가던 목련은
순백의 기억을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동백처럼 삶이 가장 요염할 때
선혈이 낭자하게 자신을 뚝뚝 던져 버리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보여주며
추억을 되돌려가는 미련한 꽃
제가 얼마나 아늑하고 환한 시간을 밝혔는지 모르고
꽃 진 가지에 가장 누추한 기억 한 줄 걸어 두었다

 

 

 

 

목련꽃을 보라 / 김충규

 

 

밤사이 목련나무가 활짝 꽃 피웠다
우리 잠든 깊은 밤, 천상의 물고기 떼가

내려와서
주둥이로 멍울 어루만졌던가
뭉쳐 있던 멍울들 다 터져 꽃이 되었다
너무 희어서 실핏줄이 환한 꽃,
몇 올의 실핏줄 터져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꽃,
멀리서 찾아온 바람이
단내를 꽃잎마다 적셔준다
목련나무 너머는 콘크리트 골목길,
골목길과 목련나무 사이엔
교과 같은 담벼락이 서 있다

 

이런 날은, 교과서는 아예 펼치지 말자
이런 날은 지짐이 한 접시에 막걸리 두어 잔,
흥얼흥얼 콧노래에 취해 보자
그런들 내 속에 맺힌 멍울들 터지겠냐마는,
터져 환한 꽃 되겠냐마는.

 

 

 

그 집의 창문 / 김충규

 

 

그 집의 하나뿐인 창문은
한번도 열린 적이 없다 창문을 열려고
넝쿨 장미가 틈새로
숨가쁜 향기를 쏟아 붓고 있다
오월의 대지가
제 속의 것들 남김없이 출산하고도
자궁 흥건하여
자궁을 햇볕에 말리고 있을 때
지독하게 독이 오른 목련나무는
침묵으로 몸 씻고 있는 중이다
그 집의 하나뿐인 창문 굳게 닫혀 있지만
가끔 피아노 소리 흘러나온다
피아노 소리에 의해
그 집 정원의 식물들은
기쁨과 슬픔에 길들여졌다 피아노 소리 뚝 멎으면
한낮인데도 무겁고 어두운 고요에 몸을 떤다
창문의 틈새로 향기를 쏟아 붓고 있는 넝쿨 장미,
잦은 빈혈로 바람 없이도 흔들리고
제 몸의 독을 어쩌지 못해 목련나무는
남들 꽃피우기 전에 이미 꽃 다 뱉어 버렸다
그 집의 하나뿐인 창문을 부숴야 한다,
그 집의 정원을 한번이라도 밟아 본 자들은 안다
그 집의 내부와 정원의 유일한 경계는
창문뿐임을

 

 

 

 

목련꽃 브라자 / 복효근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만할까

 

고 가시내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

 

 


수면도(睡眠圖) / 김영미

 

 

문득 몸이 붓이란 걸 알았다 내가 잘 동안

이부자리에 그림을 그린 다는 것을 알았다 

몸을 가지런히 하고 아침까지 정하게 잔  날은

곧은 대나무 그림 한 폭을 얻었다

옆구리를 세워  칼잠을 든 날은 일어나 보면

이부자리 한 켠에 베일 듯

난이  절벽을 뛰어내리고 있었다

매화 국화 때때로 새나 나비를 친 날도 있었다

요즘은  몸과 마음이 어긋나서인지 뿌리에서

가지에서 자꾸 토막이 나곤 한다

서너 개 탈골한 꿈을 깁느라  빗소리에  바람소리

분주한 날은 날개며  꽃잎 다 떨어져 분분히 어지럽다

머릿속 잡풀더미를 쳐낼 겸 오늘은 햇빛 질퍽한

들길을 오래 걸었다 

새가 날개를 그리며 날고 있었다 

목련 꽃봉오리 붓끝에 힘을 주고 있었다 

빈 허공이 花鳥圖  한 폭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날 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만나는 시각,

별똥 하나가 하늘을 죽 그어내렸다 품이 넓은 오동나무 그

림자는 장미농원 울타리를 타고 올랐다 

달빛만이 내 잠길을 걸어나가리 붓결을 따라 

고르게 숨을 포갠다 

격자창 가지런히 달빛  무늬를 치듯 이부자리

가득 달빛 수면도 그리고 나는 긴 여백

 

 


목련꽃 그늘 아래 울다 / 김태형


 

대낮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몇 집 건너 또 몇 집

목련나무 피었네 지난밤 내 손에서 벗어난

사랑은 그러나 서툴렀네

그러나 한번 더 사랑이 나를 저버린다면 그때 나는

그 무엇도 되지 않고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아득한 울음을 울겠네

겨우내 뒤란 귀퉁이 잘 말려 두었던 대추 몇 알 꺼내

맑은 물을 끓였었네 두고두고 마실 양으로

한 주전자는 끓였었네 그 향기 봄 그늘에도 잦아 있어

오늘 내친걸음에 어디 먼 데라도 갈 모양으로 나섰느니

하지만 괜스레 햇볕만 내쏘다 돌아섰네

오늘 하루의 몫으로 시를 쓰면 또 며칠을 살아낼 수 있을까

단 며칠의 목숨을 위해 쓸쓸한 날은 몇 줄의 초고를 남기거나

지친 몸으로 난필을 읽다가 이 청청한 봄날을 다 보냈구나

나 홀로 아픈 세상길에 눈물을 흘리네

탄식과 환희와 대답 없는 사랑이 한데 모여 이루는

목련나무 키 큰 언덕에서 어떤 뜨겁게 치미는 게 있어

그애는 지금 창밖을 내다보며 목련가지 물오른 꽃송이처럼

그애는 한 음 한 음 음자리를 맞추고 있겠지

내 노랫말이 그애의 작은 창틀까지 하나하나 고스란히

제 음자리로 옮겨 앉기까지 나 온통 이 목련꽃 그늘에

놓아 줘야 할 것들 울음으로 풀어 줘야 할 것들

내친걸음 뒤돌아 이끌고 온 맨살의 숨구멍

봄 햇살에 반은 술렁이고 반은 심하게 몸을 뒤흔드네

나 이제 그것들을 이름 부르려 하네

그리하여 또 며칠 분의 안타까운 목숨으로 살아 낼 슬픔들이

어디에도 가지 않고 어디로도 숨어들지 않을

낮은 음자리로 하나하나 자리할 때까지 노래가 될 때까지

 

 

 

 

 


목련꽃 진다 / 최광임


 

아름다운 것이 서러운 것인 줄 봄밤에 안다
미루나무 꼭대기의 까치둥지
흔들어 대던 낮바람을 기억한다
위로 솟거나 아래로 고꾸라지지만 않을 뿐
바이킹처럼 완급하게 흔들리던 둥지
그것이 의지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이라고
의지 밖에서 흔들어대는 너
내 몸에 피어나던 목련꽃잎 뚝뚝 뜯어내며
기어이 바람으로 남을 채비를 한다
너는 언제나 취중에 있고
너는 언제나 상처에 열을 지피는 내 종기다
한때 이 밤, 꽃이 벙그는 소리에도 사랑을 하고
꽃이 지는 소리에도 사랑을 했었다
서러울 것도 없는 젊음의 맨몸이 서러웠고
간간이 구멍난 콘돔처럼 불안해서 더욱 사랑했다
목련나무는 잎을 밀어 올리며 꽃의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일까
이 밤도 둥지는 여전히 위태롭고
더욱 슬퍼서 찬란한 밤 또 어디서
꽃잎 벙그는 소리 스르르,
붉은 낙관처럼
너는 또 종기에 근을 박고 바람으로 불어간다
꽃 진다, 내가 한고비
진다

 

 

 

 

 

홍역 / 강미정

 

목련나무는 맨 아랫가지가 먼저

꽃등을 밝혀 들고

윗가지로, 윗가지로 불을 옮겨 주고 있다

불씨를 받은 꽃봉우리들

타오르기 시작한다 활짝, 화알짝

홍역앓는 몸처럼 뜨거운 꽃

눈물난다

저렇게 생을 채우라고

뜨겁게 우리의 생을 채우려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움은 올라온다

맨아래 가지에서부터

가슴 속 뜨거움을 받아내는 꽃

아픔을 삭히는 화근내처럼

꽃도 제 몸을 태우는 향기가 난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뜨거움 때문에

뜨거움이 채우는 저 생생한 생 때문에

 

 

 

 / 한우진

 

아버지는 북이다 한 번도 북을 두드려 보지 못하고

북을 향해 누웠다

나는 생전의 아버지 앞에서 한 번도 북을 위로 놓고

지도를 펴 보지 않았다

북을 발밑에 깔고 남으로 서울을 지나 괴산,

충주를 손톱으로 눌렀다 피 묻히고 얼룩진

자리가 고향이 아닌가요, 나는 우기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북을 따뜻한 남쪽으로 그리워했다

형편없는 마당이었지만 목련은 피었다

목련은 남을 등지고 북으로만 꽃을 피웠다

아직 맺히지도 못한 나는 아버지 등을 돌려보세요,

이쪽이 따듯한걸요,

남풍이 불어도 아버지는 북을 향해 단추를 풀었다

북창이 많은 집일수록 아버지는 값을 높게 쳐주었다

내가 북리北里에 편지를 써대기 시작할 무렵

북관에서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것 보렴 두드릴 수 있다니깐 그러나 새들은

얼음덩어리로 북적거렸다

아버지는 누가 두드려주지 않는 북처럼

윗목에 놓여졌다

아직도 아버지는 북이다 어김없이

올해도 나는 북을 향해 아들과

함께 절을 하였다 아버지 북 받으세요

 

 


그늘  /  마경덕

                                      
   일시에 폭발하는 저것들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다.

가지 끝 한 송이 꽃을 꽂는 목련은 하늘로

향기를 밀어 올린다.

목련을 껴안은 허공만이 나무연꽃의

살냄새를 맡는다. 며칠만 살다 함께 죽는

저것들.

 

  목련이 겨우내 열중한 것은 차디찬 몸에

불을 들이는 일,

꽃의 머릿수를 세고 부풀린 꽃봉오리에 담길 향()

만드는 일. 빈틈없는 계산이 가지 끝에 봄을 꽂는다.

 

  손을 놓친 목련, 발 밑이 어지럽다. 새끼를 잃고

낯빛이 질린 어미는 그늘인 듯 눈에 띄지 않는다.

꽃 진 몸이 어둡다. 언제 거기 목련이 있었던가?

 

 


 하늘궁전 / 문태준


목련화가 하늘궁전을 지어놓았다

궁전에는 낮밤 음악이 냇물처럼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생사 없이 돌옷을 입고 평화롭다

 

목련화가 사흘째 피어 있다

봄은 다시 돌아왔지만 꽃은 더 나이도

들지 않고 피어 있다

눈썹만한 높이로 궁전이 떠 있다

이 궁전에는 수문장이 없고 누구나

오가는 데 자유롭다

 

어릴 적 돌나물을 무쳐 먹던 늦은 저녁밥 때에는

앞마당 가득 한 사발 하얀 고봉밥으로 환한

목련나무에게 가고 싶었다

목련화 하늘궁전에 가 이레쯤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상자들 8 / 이경림

 

그러니까 나는 그 상자들의 도시에서

한 상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다시 쬐끄만 상자들을 낳았던 거죠


날 새면 눈도 코도 귀도 없는 괴상자들이

막무가내 배달되어 왔죠
깨알만한 것들이, 집채만한 것들이
물렁물렁한 것들이 딱딱한 것들이
필시 수세기를 달려왔을 그것들이
엄마 엄마 부르며 벌컥 벌컥
문을 열어 젖혔죠


그 때 나는 매일 부엌에서 그것들의

먹이를 만드느라 바빴죠
그것들이 자라 낙타가 되고 치타가 되고

악어가 되고 물뱀이 되어
꼭 저 같은 것들을 뒤집어쓰고 어디론가

떠날 때까지
이런 봄날 하릴없이
잿빛 허공에 귀를 대고 있으니
목울대를 늘이고 귀신 소리로 우는

그것들의 울음이 들리네요
그러면 문득
앞뜰을 뽀얗게 뒤집어쓰고 때

이른 목련이 솟구쳐 오르죠
글쎄 저 앙바툼한 나무 한 그루가

함뿍 희디흰 이파리 나풀거리는

여린 상자들을 매달고 달그락거리는 거리잖아요
낙타... 치타... 악어... 물뱀... 들이 가지마다
글쎄!

 

 


아우래비 접동접동 우는 봄 / 송문헌

- 바람의칸타타.35
                       

선정에 든 바람의 귀밑머리에 삼월 햇살이 따습습니다
목련이 동면에서 깨어나 창백한 얼굴을 내미는 한 낮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듭니다


(찾아온 사람들 모두 노을처럼 취해 돌아간 잔칫집 마당,
수북하게 엎어놓은 그릇더미위로 어둑발이 내리고 주인
마저 초저녁잠에 빠지면 멈춰버린 흑백 활동사진처럼 빈
마당엔 달빛 홀로 정지된 시간을 지키고 목련이 이따금
흐릿한 달빛에 툭, 정적의 목을 꺾습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접동흐드흐득 목련꽃 지는 밤
진두강 가람가에 울던 누이를 기다립니다


빨랫줄에 햇살을 찾아 마실 나온 정여울 봄처녀 것일까요
선정의 천년 적막을 깬 바람이 펄렁, 분홍 속옷을 들추고
달아납니다


 
* 김소월 시에서 일부 차용

 

 


흰모습 / 이규리            

 

눈송이 뭉쳐 가만히 들여다보면
설핏 무슨 기미가 어른거린다
너무 흰 것엔 그늘이 있지
보호막 같은 그늘


흰 밥, 흰 고무신, 흰 상복, 흰 목련
모든 빛을 다 반사하므로 얻는다는
흰색은 사실 비어 있는 색
누군가 떠난 그늘의 색


눈 뭉쳐 등허리에 쑥 집어넣을 때
소스라치던 냉기는
눈의 그늘이었을까
눈물 그렁한 사람이 볼 수 있는
어쩌면 없는 짜안한 모습


서둘러 떠나는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하듯
눈은 오래 머물지 않아서 그립고
그리움은 만질 수 없어서 멀다
만지면 없어지는 사람을
누가 미워할 수 있겠나

 

 

 

 


빗소리 모아 듣다 / 문인수

 

아무도 안 오고 저, 빗소리 모아 듣다.
커다란 목련 나무에 이제 여나문 개째

꽃망울 툭, 터지는가
운문사 내원암 이 사발 속 같은 골짜기,
산빛 흐릿흐릿 잠긴다.
대숲 또한 묵직하게 시꺼멓게 잠긴다.
두루 다 잠가놓고
, 절 들어가 앉는 거 느껴진다.
저 목련,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핀다고?


아니다, 자꾸 흰 돌멩이 하나 올려놓듯 등 달 듯

그렇게 몇억 겁게 한 송이씩 꽃피는 것 같은 봄날,
나도 저 빗소리 모아 오래 탑 쌓고 있다.

 

 

 

쳐들어오는 봄  김정희


봄은 그 때
마루 끝에 앉은 고양이 이마에서 막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햇빛을 씹고있는 그 놈의 반쯤 닫힌 눈동자를 지나
겨드랑이를 비집고 나온 붓꽃잎을 지나
쪽마루 결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는데
몸살처럼 오소소 번지고 있었는데

 

바위들이 몸을 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반짝이며 흘러나왔다
새끼 밴 까만 쥐들이 오목눈이새들이 불개미떼가
나는 그 속으로 아픈 몸을 구겨 넣었다
누워서
햇빛들이 두런거리는 소리 들었다

 

목련 우듬지를 거슬러 오르는 물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리곤
속절없이 쳐들어오는 봄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상한 장소, 창백한 냄새 / 이승원

 

  어머니는 잘 때 베개를 동쪽으로 두라고 했지만

그때 난 낮에 자주 거길 향해 나가곤 했어 해가

돋거나 파도가 움직이는 꼴을

구경하고 싶어서가 아니야

단지 그곳에 조석潮汐으로 사람들이 들고

나는 기차역이 있었지 살짝 모퉁이를 돌면

입구를 유리로 만든 집이 많았어

그다지 절친하진 않은 친구들이 모여 살았지

걔들은 날 안경이나 청바지라는 환유로 불렀고

노대에 앉아 창문을 부싯돌과 주화로

딱딱 두드리거나 지나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어
 걷다보면 마치 욕조에서 수증기를 감상하는데

밖에 누군가가 그래 잘 모르는 누가 로르르

스타킹을 벗고 있는 기분이었어 나쁘지 않았어

욕실이나 허벅지가 나쁜가 뭐 그냥 겁이

좀 날 뿐이었어 사람들은 용기를 내기 위해

서언처럼 술로 입술과 혀를 젖게 하거나

허리를 움직여 춤을 추지만 난 잠시

골방을 빌려 심박동을 제어했어


  한결 같은 전개로 인간과 세계에 관해

사색하게 만드는 영화를 보고 있는데

3 서랍장이 눈에 띄었어 냉장고는 없었어

물론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쟤는 뭐지 싶더라고 호기심은

늘 남의 서랍을 열게하지

고소한 냄새가 짙은 안개처럼 퍼졌어 서랍 가득 버려진

휴지가 목련처럼 흐드러졌어 생명이 되려던

단백질들은 말라비틀어져 여태 빛을 피하고 있었지

 
  그 사이 미지근한 어둠이 내리고 조명들은

밤을 자극하기 시작했어 백송이 휴지꽃을 본 뒤라서

난 다시 길에 나가 친구를 고르는 걸 포기했어

주인을 불러 혼자 있기 싫다고 말했지 중화요리를

기다리는 기분으로 작은 브라운관을 응시했어

배달원이 자신을 운반해서 펼치자 간조와

만조처럼 긴장이 달아나고 수치심이 배어나왔어

예전에 어떤 자가 그녀의 둔부를 재떨이로

여겼던 모양이야 러쉬모어 국립공원이나

금강산을 보는 심정이었어 물오징어 냄새가 스멀거리고 난

그것처럼 물렁물렁해졌어 지상과 지하 중

어느 길로 돌아갈까 궁리하기 시작했지

 

 

 

풍치 / 문성해

 

봄이 또 슬쩍 가려나 보다

찻물이 알맞게 익을 때를 꼭 맞춰 왔던 사촌언니가

갈 때가 되었다며

우리 집 방석에서 엉덩이를 든다

갈때를 알아 방석을 비워놓는 마음이 어찌

사람뿐이랴

꽃송이들이 가지마다 헐렁하게 앉아있는 폼으로

가만가만 내 잇몸이 들뜨고

집집마다 냄새나고 누런 목련 꽃잎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4 / 한용국

 

애인과 섹스하다 돌아보니 사월이었다
여자는 할퀴거나 깨물기를 즐겨서
멍든 자리마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오랜 집중이 요구되었던 체위들 사이로
폭설이 내리는 풍경이 삽입되었다가는
산산조각으로 깨져나가곤 했다
목련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리는 데
애인은 몇 시 기차를 타고 떠나갔을까
열차표를 손에 쥐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보니 서른이었다
애인과 섹스만 했는데도 사월이 오고
방구석은 어느새 절벽이 되었고
책상과 침대가 까마득한 곳에 떠 있었다
누가 겨울 내내 우물을 파놓은 것일까
애인과 섹스한 것은 분명히 죄는 아닌데
그러면 내가 녹아 물이되어 흘러야지
생각했을 때 어머니가 달려들어와
나이는 뒷구녕으로 쳐먹냐고 욕했다
그래 누가 내 몸에 고운 흙을 채워다오
꼬불꼬불 꽃 한 송이라도 피워 올리게
애인과 섹스하지 않아도 사월이 왔을까
피도 눈물도 없이 저리도록 아름다운 혁명도 없이

 

 


사마귀와 놀다 / 유종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마당엔
당신이 붙들고 섰던 오랜 목련나무마저 잘렸다
햇빛이 푸짐해졌던 걸까 잘린 둥치 근처에
이듬해 비비추 잎사귀가 무성해지고
여름 허공에 꽃대를 밀어올리는 비비추
여린 속잎에 가만히 사마귀 새끼가 기어오른다
악수를 건네듯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나는
놈에게 벌써 秋波를 던지는 것이다 자기를 죽이고
숨을 죽이자 눈길은 이내 그윽해졌다 누구나
제 어미를 잡아먹고 크지 않은 새끼가 어딨겠는가
肉食의 탁월한 몸짓은
오늘도 내일도 그 너머 기일게 구불거리는
시간의 창자를 지구 몇 바퀴라도 감고 있으니,
내 어미 내가 잡아먹었고 그 어미 힘겨워 손 짚던
키 큰 목련나무 그늘이
오늘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애써
그 자리로 쏟아지는 햇살의 등골을 이고 나는
어린 사마귀와 수작을 부리며 마음을 어루나니
내 몫의 먹성도 누굴 또 먹여 살리는 自害의 아름다움!
그 그늘에 향기를 파는 꽃대를 부여잡고
사마귀 벌써부터 앞다리를 펼쳐 螳螂拳
풀빛 사냥을 내게 드리우나니, 배고픈 놈들은
배고픈 놈들과 함께 제 어미를 불렀으나
그 어미 제 영혼의 뱃속에 들어찬 뼈와 살로
힘차게 죽어져 되살아나고 있으니, 사마귀야
대체 어미란 어미들은
이 땅에 잡아먹히려 울다 웃다 가는
눈물겨운 等身들이 아니었더냐, 갸웃 외고개를 틀며
어떤 향기로 죽음을 부를까 즐거이
고민하는 너와 나에게,

 

 

 

 


되돌아가는 시간 / 전남진  
 

할머니는 천천히 돌아가고 계신다
올 봄은 지난 봄으로 가고
올 진달래도 지난 봄으로 간다
마당에 핀 작은 목련도 지난해나 혹은
어느 먼 처녀적 마을로 돌아간다
돌아가다 잠깐씩, 어떤 날은 아주 오랫동안
가던 길을 선명하게 밟으며 돌아오신다
돌아가기에 올 봄이 너무 환했을까
돌아와 꽃잎 뜯어내듯
다시 가까운 과거부터 잃어버리고
먼 과거로 사뿐사뿐 걸어가신다
가시다가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시집온 그날로 가마 타고 가신다
가시다 돌아보면 아득한 얼굴들
어느새 되돌아와 식구들의 손을 들여다 보신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할머니는 그리운 어느 한 시절로 가고 계신다
언덕 넘어 개울 건너
내가없던 그때로 가고 계신다

 

 

 

안녕 / 박진성

 

 

주치의 춘천으로 발령나서
새 병원 찾아가는 길
잘못 나온 꽃잎 몇 개
안녕,
대기실 의자에 앉아
아까 본 목련 꽃잎을 자꾸만 바라보는데
간호사 하나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거라
허만하 시집 갈피 사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모래알.
안녕, 이라고 애써 고개 파묻고 있었는데
박진성님…… 카운터로 걸어가는데
뒷목덜미를 꽃이 잡아끌었는데
저기, 진성이 아니니…… 간호사가, 안녕,
고등학교 동창 선경이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으로
안녕,
미래 신경정신과 수간호사가 되어 있는거라
상습 불면, 자살충동, 공황발작,
차트를 오래오래 쳐다보는거라
조제실에서 알프라졸람과 바리움을 봉지에 넣고 있는
스물일곱의 네 손가락은
기다란 의자에 앉아 약을 기다리는 스물일곱의 내 엉덩이에
근육이완제를 주사하겠지
엉덩이를 까고 창문을 바라보는데
바람을 못 이긴 목련이 툭, 떨어지는거라
자주 보겠네, 그 말 한 마디가
입 안에서 궁글고 있는 알약처럼 서걱거리는거라
안녕, 안녕,
병원 문 열고 나오는데
목숨 끊고 거리를 자유 비행하는 목련 한 꽃잎
안녕,

 

 


조깐술 / 한상길

 

왕발이
냉발이
비바리
시다바리를 병아리처럼 따라 외며 내린 곳은
4.3의 비극이 아직도 머문다는 제주 민속촌이었는데
넓은 들은 외지인이 다 삼켜버리고
토박이만 남아 말 똥 태우는 마을엔
거미줄에 걸렸던 왕발이 몇몇이 도움을 주었다며
문지방을 가벼이 넘더이다

 

냉발이는 사립문에 끼웠던 장대
세개 째를 빼다 말고 그늘에 피는 목련처럼
처마끝에 숨 죽이며 굳이 권하던
조껍데기 술이
그보다 더 진한 것은
조깐술이라던 그녀의 눈빛이
한라에 고여 머무는 흰 눈 보다 더
빛나더이다

 

 

 

 

최성수 - 목련꽃 필 때면

 

봄바람 불어오고 개나리 활짝 피면
저기 저만큼 님이 올까요
기다리는 마음 꽃잎에 날려보내면
저기 저만큼 님이 올까요

기다리는 마음 이렇게 가슴 아픈걸
사랑은 왜 서로 할까요
목련꽃 하얀 마음 가득 담고서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을

이렇게 가슴에 눈물이 흐르는
목련꽃 하얀 마음 처럼

흐르는 강물에 꽃잎을 띄워보내면
저기 저만큼 님이 올까요
하늘거리는 아지랑이 따라
저기 저만큼 님이 올까요
기다리는 마음 이렇게 가슴 아픈걸
사랑은 왜 서로 할까요
목련꽃 하얀 마음 가득 담고서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을

이렇게 가슴에 눈물이 흐르는
목련꽃 하얀 마음처럼

이렇게 가슴에 눈물이 흐르는
목련꽃 하얀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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