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전쟁휴먼 슐레이만과아일라

이모르 2020. 12. 15. 14:42

2017년 7월21일

3월에 mbc tv를 시청하면서 깊은 감동을 받아 자료들을 모우고 있다가 이제야 포스팅 하게 됩니다 글은 국가 보훈처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모셔와 편집한것입니다  

 

 

 

 

201736

MBC 1130분 방영 되었던 아일리를 시청하게되었습니다 극한의 전쟁터에서 펼쳐졌던 휴먼 인간애 실화를 보면서 잔잔한 감동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한국전이 발발하면서 미 영 카나다 다음으로 15천명의 병력을 보내 용맹스럽게 싸웠던 그분들은 중공군이 설치한 압록강변의 벽동 포로 수용소 에서도 자존심을 지켜 세계를 감동케 한 신화적 군인들이었습니다.

 

 

터키군 선발대 부산항 상륙  

터키군 선발대 부산항 상륙 1950 10 17, 터키 제1여단 5400여명 병력이 여단장 타신 야스지 준장의 지휘 아래 부산항에 상륙해, 곧장 전장에 투입되어 평양 탈환 작전에서 빛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승만 팬브리트 장군과 터키군 예방

 

 

 

군우리전투 중공군개입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고전한 터키군

 

 

감량진과 신갈일대에서 백병전으로 중공군 400여명을사살한 터키군 감량진전투에 기관총을 사격하고 있다 이때 터키군은 북두칠성을 방향 삼아 북으로 북으로 진격을 거듭했기 때문에 일곱별을 수놓은 부대 마크를 갖게 되었습니다. 휴전되기까지 3년 동안 터키군은 군우리(軍隅里) 베가스 고지, 군포(軍浦) 곳곳에서 유엔 깃발 아래 용감히 싸웠습니다.

 

터키군 여단 마크

 

이 와중에 터키 참전군인 술래이만이 당시 전쟁터에서 헤메던 고아 김은자씨를 아일라로 이름을 지어주고 바바(아버지)가 되어 1년반 동안 돌보아 주다가 터키로 귀국하는 바람에 생이별하고 지난 201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용사를 기리는 행사에 초대된 바바 술래이만 과 아일리(김은자)는 감격의 상봉을 하게되었습니다 피보다 진한 정을 나눈 두 사람은 만나자 마자 한동안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아일라(김은자 72)는 아버지의 92생신을 위해 이스탄불로 향했습니다.그사이 아일라는 터키에서 유명인사가 되어있었습니다. 문화부 장관과 수많은 취재진이그녀를 기다렸습니다. 두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67년 전의기억이 터키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슐레이만 바바의 건강이라 말합니다. 터키에서 만난 아버지는 지팡이와 휠체어가 없이는 거동이 불편한 92세 노인이 되었습니다.

 

 

60년만의 상봉

 

 

 

 

 

6.25  동족상잔

 

 

1950년 6월서울입성 북한군

 

서울시민 요인 체포

 

인민재판

 

 

북한군 육박전

 

 

중공군 참전

 

 

 

 

중공군의 인해전술

 

 

연합군 반격

 

 

 

 

 

 

 

 

국군 위문 공연
함흥 탈환 환영 군중대회

 

 

함흥 양민학살

 

 

 

 

터키군 파병

 

 

 

 

형제의 나라 터키가 우리나라에서 펼친 대표적인 전투로 무엇이 있을까요? 그건 바로 김량장리 전투입니다. 6•25전쟁 때 중공군의참전으로 기세를 올린 북한은 서울을 재 점령하고 남쪽으로 진격을 했습니다. 당시 UN군은 작전명 선더볼트를 발동하여 중공군의 진공을 무디게 하고 서울 수복을 위한 계획을 짜게 되었습니다 .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인원을 파병을 했던 터키군은 중공군이 위치하고 있는 수원-용인 일대를 목표로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러나 김량장리에 터키군이 도착했을 때는 중공군이 이미 그곳에 원형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터키군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전투에서 터키군 241연대 3대대는 장병 전원이 소총에 총검을 꽂은 상태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 라고 함성을 지르면서 돌격했습니다. 터키군의 맹렬한 돌격에 중공군은 제대로 방어조차 못 한 채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려 큰 피해를 입었고, 터키군은 전과에 비해 매우 가벼운 손실을 입으며 압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 장렬한 돌격 장면을 API통신의 종군기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덕분에 “백병전의 터키"라는 명성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귀국하고 있는 터키군

 

 

인천상륙작전

 

 

 

 

경인지구 전투

 

 

서울수복

 

 

한국 전쟁 고아

 

 

2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발생한 6.25전쟁은 당사자인 남북한뿐만 아니라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지원군이 참전하면서 수많은 전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우선 6.25에 참전한 국군 60만 명의 23%가량인 14만 명이 전사했고, 45만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엔군도 4만명이 사망하고 10만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북한 역시 34만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30만명이 부상, 중국군도 21만명이 죽거나 실종, 38만명이 부상당하였습니다.

민간인 피해 역시 컸는데요, 남한에서는 민간인 38만명이 죽고 39만명이 납치되거나 실종되었으며, 23만명이 부상당하였고, 북한에서도 민간인 155만명이 죽거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렇게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남북 모두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채 휴전하였습니다. 피란 중에 흩어진 이산가족은 남북한 인구 3300만 명의 3분의 1 이상인 1000만 명에 달했습니다. 이중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 10만 여 명, 남편을 잃은 전쟁미망인은 3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2017년 3월 9일 제주 항공우주박물관에서는 ‘딘 헤스 대령 공적기념비’ 제막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딘 헤스(Dean E. Hess)는 미국의 기독교 목사로 6.25 전쟁에 참전한 공군 대령으로 한국전쟁 항공전의 영웅이자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날 헤스 대령 서거 2주기를 맞아 그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제막된 것입니다.

제막식에는 정경두 공군참모총장, 딘 헤스 대령의 장남 레리 헤스 씨(75), 기념비 제작비를후원한 광림교회 관계자, 마크 내퍼 주한 美 대사대리,토마스 버거슨 美 7공군사령관 등이 참석했으며, 헤스 대령과 함께 출격했던 김두만 前 공군참모총장, 이강화 예비역 준장, 그리고 헤스 대령의 후원을 받았던 전쟁고아 출신 200여 명도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사진속의 이들은 그나마 행운이었습니다

 

 

 

 

 

 

 

 

 

 

 

 

 

 

어머니 시신앞에서 공포로 울고있는 아이들

 

 

 

 

 

 

참혹한 전쟁고아들

 

 

터키군 기갑부대

 

 

유엔 참전군인 들중 콧수염을 제일 많이 기른 터키군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터키군

 

 

중공군 포로 검색중 터키군

 

촌노와 함께

 

포로 잡는 터키군

 

기관총 조준사격 터키군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하는 연합 군
전쟁의 참상

 

 

 

 

노획한 인공기

 

 

압록강 옆 중공군이 설치한 포로수용소

압록강변의 벽동과 창성 양군은 고래로 큰 황소들이 많이 배출해서 벽창우[우리에게 귀익은 벽창호는 이것에서 유래했다.]의 고향인 곳인데 한국전쟁중에는 중공군의 포로 수용소가 존재했던곳으로 역사의 장에 얼굴을 내민다.

이곳 벽동 지역에 5개의 포로 수용소가 있었고 모두 유엔군 포로5,000여명을 수용했었다. 벽동면 전체의 주민들을 철수시키고 각 부락의 민가들을 포로 수용소로 사용했다.
포로들은 대부분 미군들이었지만 영국군과 호주군, 그리고 터키군들 포로들도 있었고 한국군 포로들도 있었다. 

 

 

미군포로들

미군포로들 중공군의 회유로 공산주의자가 되어 중공으로  간  미군 포로들이 20여명이 넘었다.

 

 

터키군의 여흥

 

 

벽동 포로수용소 터키군 겨울옷 수선

 

 

터키군 장작 패기

터키군 장작 패기 터키군은 전투에서도 강했지만 수용소 생활도 강하게 해서 미군들의 존경을 받았다. 중공군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고 그들의 체계와 군기를 철저히 엄수했으며 수용소의 농간에 협조하는 배신자들은 가차없이 응징했었다. 그들은 중공군의 정치 강습보다 코란을 암송하고 알라를 숭배하였다.

 

 

터키군이 설립한 고아원

 

< 터키 한국전쟁 참전 기념 우표, 1952 >

< 터키 한국전쟁 참전 기념 우표, 1952 > 뛰르끼에의 우표도안은 사진을 도안에 그대로 반영하는 형태로 사실감이 넘칩니다. 주로 인물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만, 인물 뒷편으로 우리 산하가 보이지요

 

 

 

이 터키의 기념우표는 6.25관련 우표 중 가장 독특한 편성이 있습니다.  위의 모습처럼 '대민작전'을 수행하는 터키군인을 도안에 넣은 것입니다. 전쟁관련 우표중에 이런 이미지를 담은 도안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뭅니다. 전쟁에 관련한 우표는 전투에서의 승리나 군인들의 노고를 찬양하는 것이 대부분인데요. 저렇게 어린이를 보살피는 군인의 모습이 나오는 것은 매우매우 보기 어렵습니다. 군인아저씨의 팔에 걸터앉아 아저씨가보여주는 책을 같이 보는 장면 터키군인의 표정도 매우 즐거워보입니다. 사진자체도 매우 멋질 것 같습니다 .

 

 

실제로 터키군인들은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보살폈습니다.그 중 유명한 것이 '아일라'로 터키 여단의 마스코트였습니다. 아일라는 ''이라는 뜻의 예쁜 이름이죠. 60주년 특집으로 이 아일라와 터키참전용사들이 상봉하는 다큐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다큐보단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TV드라마를 만드는건 어떨까 싶습니다. 참전국에 대한 감사를 되새기고 우호증진에도 보탬이 될 것입니다. 아일라 말고도 많은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보살피고, '앙카라 학교'를 세워 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도 했습니다. 터키군인들이 전공을 세운 것보다 더욱 자랑스러워 하는 일이  전쟁고아구호활동이라고 하지요. 정말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속 인물은 '최민자'소녀와 프레트아저씨(당시 대위)입니다. 우표에 도안한 한국 여성 인물 중 확인된 모델로는 최초입니다 (1952) 동영상 참조

 

 

 

 

슐레이만과 아일리

 

 

 

 

 

 

 

영화속의 슐레이만과 아일라

 

 

 

 

세계가 격찬한 2002월드컵 한국 터키전

2002년 월드컵 한국/터키전은 어느결승전에서도 볼수 없었던 감동적 경기 였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6-7만명으로 대부분 한국인들 로 애초에 응원전에서 터키는 홈팀인 한국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날만큼은 달랐습니다 몸을 풀기위해 경기장에 들어선 터키선수들과 터키TV중계 요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터키에도 볼수없었던 세게에서 가장큰 터키국기를 자신들이 상대할 대한민국 관중들이 펼치며

터키에 열열한 응원을 보내주는데 크게 놀라고 또한 한국인 관중들의 손에 무려5만개가 넘는 터키국기가 들려있었고 경기에 앞서 국가가 흐른땐 모든 한국인이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데 이런 모습을 본 터키인들은 감동을 넘어 큰 충격을 받았다 합니다

 

 

 

좌:한국 용인에 세워진 참전기념비 우상:앙카라 한국전 참전 기념탑 우하:부산 유엔군 묘지내 터키군 묘지

 

 

아래동영상은 최민자씨 것입니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창올림픽하이라이트영상  (0) 2020.12.15
낙산성 도성박물관(낙산산성5부)  (0) 2020.12.15
윤봉길 기념관의 감동  (0) 2020.12.15
장윤정의노래가좋아  (0) 2020.12.15
태극기 유감 (코리아 판타지)  (0) 202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