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엔 라틴계 사람들의
지하철역 무대에서 문화행사를 자주 접할수
있었는데 요즈음은 왠일인지 볼수가 없습니다
몇해전 어느 역 인가 라틴 음악을 연주하는
남미사람들의 엘콘도르 파사 를 들으며 음악에
취하여 그감흥으로 일주일을 행복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엘콘돌파사 음악을 들으면
잉카제국의 슬픈 최후가
생각납니다그리고 거대한 마추픽추가
생각납니다
잉카의 사연과 마추픽추에
대한 역사를 백과사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1478∼1541)는.
기마대 대위였던 아버지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하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장남이었지만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아버지의 소유지도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출생의 상처와 아버지 집에서 살고 싶었던
무의식적 욕망은 그의 발걸음을 필연적으로
신대륙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탐험가로부터 잉카 제국 이야기를 들은
피사로는 1532년 11월 15일 168명을 이끌고
카하마르카에 도착했습니다.
다음날 피사로는 대군을 배후에 남겨둔 채
5000명만을 데리고 피사로와의 회견을
위해 찾아온 아타우알파 황제를 포로로 잡은 채
그의 군대를 전멸시켰습니다.
스페인군은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고,
30분 만에 끝났으니 싸움이라고 하기보다는
대량 학살이었습니다. 아타우알파한테
몸값으로 방 한가득 황금을 받은 피사로는
황금만 챙긴 뒤 2∼3개월 뒤에
그를 처형했습니다.
이듬해 11월 피사로는 한 번의 대접전도
없이 잉카의 수도 쿠스코에 무혈입성했습니다.
피사로는 망코 잉카를 황제로 추대했으나
3년 후 망코 잉카는 도주하여 빌카밤바에
새 수도를 건설한 뒤 스페인군에 대항할
반란군을 결성했습니다.
반란군은 한때 20만명까지 늘어나 스페인군을
포위하는 등 선전했으나
그 다음해에 진압당했습니다.
망코 잉카가 암살당한 후 그의 후손은 끊임없이
게릴라전을 펼쳤지만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가
세상을 떠나면서 잉카는 1572년 영원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정복군은 내부 분열을 겪었습니다.
피사로의 협력자 알마그로가 자기 몫의 전리품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된 것.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피사로도 1541년 알마그로를
지지하는 무리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마추 픽추(machu picchu)는 페루에 있는
잉카 문명의 고대 도시이며, 1911년
미국의 탐험가이자 역사학자인
하이럼 빙엄(1875년-1965년)이
우르밤바 계곡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마추 픽추는 원주민말로 '나이든 봉우리'를
뜻하는데 산자락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공중 도시'라는
수식어가 딸립니다.
마추 픽추는 현지어로는 ‘오래된 봉우리’를
의미합니다.
페루 우루밤바(Urubamba) 계곡에 연한
높은 산의 산턱(해발 약 2,057m)에 위치하여,
산자락에서는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종종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 ‘
공중의 누각’으로 불립니다.
그 유적은 3m씩 오르는 계단식 밭이
40단이 있어서, 3,000개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적의 면적은 약 13km2로, 돌로
지어진 건물의 총 개수는 약 200호 정도 된다.
합니다
투팍 아마루 2세
(Túpac Amaru II,
본명 José Gabriel Condorcanqui Noguera,
1742년 3월 19일 - 1781년 5월 18일)는
1780년 스페인의 잉카 제국 침략과 정복에 맞서
잉카인들의 항쟁을 이끈 인물입니다.
그의 봉기는 실패하고, 처형당했으나,
이후 페루 독립투쟁에 영향을 주었으며,
남아메리카 토착민들의 권리쟁취투쟁에
많은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볼리비아에서 봉기를 일으킨 투팍 카타리는
다른 인물입니다
잉카제국의 전래민요인 El Condor Pasa는 ‘
위에 언급한 투팍 아마루(Tupac Amaru)’
라는 잉카제국의 후손의 슬픈 영혼을달래는
노래입니다.
투팍 아마루(2세)는 1780년에 일어난
점령자 에스파냐인의
200년 폭정에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람으로서1572년 에스파냐의
침략에 맞서 끝까지 항거하다 포로가되어
처형당한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투팍 아마루의
이름을 따서 개명하였습니다.
그는 점령자인 에스파냐를 ‘금은을
숭배하는 강탈자’라 선언하고 주민을 모아 반란
군을 꾸려 잉카제국을 재건하기 위한
싸움에 들어갔으나
선진무기와 전술의 우위를
앞세운 에스파냐에 결국은 굴복,1781년
4월체포되어 처형을 당합니다.
그의 죽음에는 아내와 동료들의 동반사형
시킨 후 혀를 뽑고 능지처참(팔다리를
말 4마리에 묶고 당겨 찢어죽이는 사형법)과
목을 자르는 잔혹함이 묻어있습니다
이런 처참한 죽음 이후 잉카의 인디오들은
위대한 순국의 용사 투팍 아마루의 영혼이
한 마리의 콘도르(Condor)가 되었다 생각하고,
그 콘도르는 안데스의 창공을 날며 잉카의
후손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 중 가장 큰 콘도르,
잉카제국의 재건을 위해 처절한 삶을 살다
처참하고 슬픈 죽음을 맞은 투팍 아마루는
장엄한 안데스 창공에 큰 날개 펴고 떠올라
잉카제국의 후손들을 지켜주는 콘도르가
된 것입니다
투팍 아마루의 위대한 삶과 그의 못 이룬
꿈을 염원하는 잉카제국의 전래민요
El Condor Pasa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소년과 청년기를 지나며 감수성을 끌어올려주었던
사이먼&가펑클의 El Condor Pasa와
빼앗긴 제국의 부활을 죽음의 투쟁으로
염원했던 슬픈 전사 투팍 아마루의
El Condor Pasa.
기본 음률은 같아도 이렇게 따로 듣고
보니 마음의 변화가 큽니다.
El Condor Pasa의 전래가사
콘도르야 콘도르야
나를 안데스로 데려다 주렴 (El condor pasa..)
안데스의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 다니는 콘도르야.
나를 안데스로 데려다 주렴, 콘도르 야
내 고향으로 돌아가 내 잉카 형제들과
그곳에서 살고 싶단다
그게 지금 내가 제일 원하는 거란다.
콘도르야 콘도르야.
형제들아 날 꾸스코의 중앙 광장에서 기다려 주렴.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날때
마츄삐츄도 와이나삐츄도 같이 오르게!!!!~~
사이먼 & 카퐁콜 엔콘도르파사
사이먼 & 가펑클은 10회의 그래미 수상 경력이 있으며
199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에 입성했고
음반 《Bridge over Troubled Water》으로
1977년 브릿어워드에 최우수 국제 음반으로
후보 지명되었다.
이들은 불화로 1970년 결별후
재결합후 또결별을 하였다
이 음반은 현재 롤링 스톤 선정 역대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에 51위로 등록되어 있다.
리치 언터베르거는 그들을 "1960년대
가장 성공한 포크 록 듀오"로 칭하며 수년 동안
가장 유명한 대중 아티스트 중 하나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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