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6일
다산길에 나섰다
안박사 부부 와 춘성부부 평보부부 한가롭고 평화롭게
흐르는 한강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길가 뚝으로 핀 구절초
쑥부쟁이의 품격 높은 고상함
폐선에서 휴식을 취하는오리 떼
연꽃이 진 습지엔 보랏빛 물 옥잠인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며 억새냐 갈대냐? 서로 시비중에
춘성이 간단 명료하게 결론에 도달한다.ㅎㅎ
“강가에 피면 갈대고 산에피면 억새다” 그래 맞다
세상이치 자꾸 따지면 무엇 하랴 아름다움에 취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다산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있겠는가?
1794년에 성균관에서 강의를 하고 음력10월에 경기도 암행어사
가 되어 연천 삭녕등의 민정을 살피고 승정원 동부승지가 되었다
허나 천주교 신부인 주문모 신부가 교우 김완숙등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전교를 하다가 적발된 주문모 사건에 휘말려 그해
음력 7월에 곡산부사가 되었다
그 의미는 당쟁에서 다산을 살리려는 정조의 배려였지만
곡산부사로 부임전 이계심이 민초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10개항의 부조리를 상소로 올렸는데 부임후 관리의 부패에
항의 하는자들에게는 오히려 천금으로 사례 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민초들을 국가의 권위나 법으로 억누르지 말고 생존을 위한
민초들의 항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애민 정신이었다.
정조의 사후 정순왕후의 천주교 탄압지시 신유박해 때
그와 그의 형제 들은 참형이나 유배길을 떠난다
“안박사의 말로는 어느때 누구던 선구자의 개혁의지는
저항을 받기 마련이다“
아!!!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광장 2쳔년 전에 지었던 시청을
그들은 아직도 시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네 사정은
어떠한가?? 쓸만한 구청 시청을 마구 부셔 버리고 몇조원
차관을 내어 신축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다산과
같은 관리가 우리시대엔 왜?? 없는가를 말하고
있었다
다산이 정조의 능행을 위하여 한강을 도강의 장치(부교)를
모형으로 만들어놓았다 군의관 출신의 안박사는
오늘날 현대전 공병들이 이공법을 쓰는데 다산이
얼마나 선구자 역활을 하였겠나 고 자문자답한다....
걷기후 만찬 그 맛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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