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기

에베소의철인 터키여행43부

이모르 2021. 3. 30. 19:42

첼수스 도서관 전경

 

첼수스 도서관 전경

에페스의 거리를 걷는것 만으로도 가슴 벅찬일 이 었다 이 고대 도시에서 많은 사건이 있었을 것이고 경기장에서는 투우사들이 사자나 동료들과 사투를 벌렸을 것이다 에베소의 유적지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에 띠는 멋진 건물은 첼수스 도서관이었다. 이 건물은 135년 로마의 소아시아 총독을 지낸 가이우스 율리우스 첼수스 폴레마이아누스(Gaius Julius Celsus Polemaeanus)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갈리우스 율리우스 아퀼라(Galius Julius Aquila)가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호메로스 석상

 

 

피타고라스 석상

 

헤라클레토스 석상

 

헤라클레토스 석상

 

단 몇분간의 자유시간으로 고대인과의 대화가 이루어 질수 있을까?

수천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는 에페스의 영광을 보는 것은 돌 한덩어리

라도 그 의미가 크기 때문인데 췔수스 도서관 은 장서로 가득한 곳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일리어드 오디세이의 저자로 알려진 호메로스 나 불교의 윤회 사상과 같은

사람이 죽으면 다른동물에게 혼이 전이된다 하는 피타고라스 같은 사람들도

이 첼수스 도서관을 이용하였을 것이고 바울이나 요한 같은 성자들이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교리를 설파 하였을것이다.   

 

에페소스(Ephesus.Efes)는 서부 소아시아의 에게 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의해 기원전 7-6세기에 건설된 식민도시이다

에페소는 주변 도시 혹은 국가 스파르타.페르시아.페르가몬.로마.등의

흥망성쇠에 따라 식민지화 되는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이러한 식민지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에페소는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기원전6세기에 건조된 웅대한 아르테미스 신전과 로마제국 시대에

건조된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마식 건축 도미티아누스 신전(기원후1세기)

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아르테미스는 기독교가 들어오기전 에베소인들에게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받던 대상이어서 루가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선교 할때

은으로 만든 아데미상과 신전을 모형을 팔던 상인들과 갈등을 격게된 것은

사도바울이 설교할 때 우상을 숭배하지 말자고 설교하여 에페소 시민들이

은세공품을 사지않았기 때문이다.

 

에페소는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이 전도와 사목한 교회중 하나가 에페소 교회였다

또한 요한게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의 7개의 교회중 하나가

에페소 교회일 정도로 1세기 기독교 역사에서 비중있는 곳이기도하다.

영국 폭스신부가 쓴 순교자 에 따르면 사도 성 바울의 재자인 디모데오가

주교로 사목한 교회가 에페소 교회라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서 우상숭배를 하던

각종 신상들의 목을 처버렸다 하는데? 그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고

 의상의 주름잡힌 조각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당시의 예술적 감각이 감탄을 하게 만든다

 

 

 

461년 6월22일 테오토코스 성당에서 열린 공의회에서는 논쟁이 뜨거웠다.

당시 교회는 알렉산드리아 키릴루스 대주교와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

네스토리우스 주교간 그리스도론에 대한 입장차이로 논쟁이 뜨거웠다

이들이 논쟁을 벌인 이유는 성모마리아를 테오토코스(Theotoskos)

즉 하나님의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느냐? 없는가? 로 논쟁이

붙었기 때문인데 카릴루스 주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여 성모 마리아

에 대한 호칭을 찬성했고 네스토리우스 주교는 인성을 강조하여 반대했다.

결국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처하자 비잔티움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고의회가 소집되었다

 

문제는 공의회에 친 네스토리우스 파 주교들이 늦게 오는 바람에 논쟁의

중심이 키릴루스주교 파에 기울었다는 것이었고 결국 네스토리우스는 교리

논쟁에서 패하고 이단으로 몰린 그는 파문당했다.

네스토리우스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아라비아의 페트라로

추방당했고 451년 수도원에서 한을 풀지못하고 죽었다.

그의 신학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중국 중동 등 동방지역에서 선교활동과

신학교육을 하였다

 

중국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를 景敎 라 하였다,

또한사람 에페스에서 출생한 철학자 헤라클레토스(Herakleitos:B.C540- B.C 480?)는

스코티노스(어두운사람)라는 별명을 가지고 고대 그리스 였던

에페스에서 활동했던 철인이다.

 

에페수스의 왕가출신으로 가독상속(家督相續)을 싫어하여

자기 집도 아우에게 줄 정도로 고매한 지조를 지녔지만 때로는

오만불손하여 당시의 에페스 시민들은 물론 호메로스나 피타고라스등

시인이나 철학자들에게까지도 심한 비방을 듣기도 했다.

 

그가 “만물은 유전한다”고 말한 것은 우주에는 서로 대립하는 것들의

다툼이 있고 만물은 이와 같은 다툼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따라서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왕이다.

 

그러나 그러한 다툼 중에서도 그는 그속에 숨겨진 조화를 발견했고

그것을 “반발조화”라 했다.

 

이것이 세계를 지배하는 로고스라 했으며 그것의 상징으로 불을 내세웠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불은 변하여 물이되고 물은 흙이된다.

또 흙은 물이되고 물은 또 다시 불로 환원되는데 모두가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했다

 

이 하나하나의 진화 과정은 항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이와 같은 사상을 어려운 문제로 기술했는데 너무 난해했기 때문에

스코티노스(어두운 사람)라는 별명이 붙었다.

 

 

헤라클레토스의 설교 중엔 이런말도 있다.

 

“원숭이가 제아무리 잘생기고 예뻐도 사람에 비하면 못났습니다”

 

“만물은 흘러가고 있으며 무엇 하나도 멈추고 있는것은 없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이 위대한 고대도시는 헤라클레토스의 말처럼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

고 흐르는 물줄기는 쉬지 않고 흘러서 오늘에 와 있지만 그분들이

논쟁하고 기독교리를 설파중 피박받고 돌팔매를 맞던 성현들이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참고: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