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인대화방

미국정치인들의명예

이모르 2020. 12. 25. 16:31

미국정치인들의명예

 

 

 

 

 

케네디 대통령의 군대 간 비사..

 

1941년 케네디는 하버드법과대학원 재학 중

육군 장교 후보생 시험 해군장교

후보생 시험에서 잇따라 낙방을 하였다.

그는 억만장자 아버지에게 애절한

편지를 썼고 아버지는 정계와

()의 인맥을 움직여 아들을

해군에 집어넣었다.

모두가 2차 대전에 참전하는데

이 국민 대열(隊列)에서 낙오하게 되면

장래 나라의 지도자는 커녕 어떤

공직에도 갈 수 없는 것이

당시 미국의 도덕률이었다.

이렇게 해군에 들어가

훗날 남태평양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그는

평생 진통제와 각성제의 힘으로 살아 나갔다.

 

트루먼은 안경이 없으면 장님과 마찬가지인

지독한 근시였다.

그런 그가 1차 세계대전에 포병 대위로 프랑스에서 싸웠다.

시력검사표를 달달 외워서 신체검사를 통과한 덕분이다.

 

케네디와 트루먼의 이야기는 어수룩하게

보이는 미국이 사실은 무서운

나라라는 것을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19166월 영국군은 프랑스 북부

솜강() 지역 전투에 25

사단을 투입했다.

돌격 명령과 함께 영국 젊은 병사들은

40가까운 군장(軍裝)을 짊어지고

독일군 기관총 총구(銃口)를 향해

온몸을 드러낸 채 진흙탕을 달려 나갔다.

소대와 분대의 앞장을 선 것은

귀족 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젊은 소위들이었다.

전투 첫날 7만 여명의 영국군이 전사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50년대 차례로

영국 총리를 지낸

애트리· 이든 맥밀런이 이런 지옥과

같은 전투의 생존자들이었다.

세 사람은 전쟁이 끝나고 대학에

복학(復學)했으나 함께 전쟁에 나갔던

학우(學友)3분의 1은 끝내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50세 이하 영국 귀족의 20%

1차 대전에서 전사했다.

귀족과 명문대학 출신의 전사자

비율은 노동자 농민보다 높았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아들제임스

루스벨트는 2차 대전 때

해병대 제 2기습대대에서 복무 중

마킨 제도의 일본군 기지를 기습하는

매우 위험한 작전을 앞두고 이 작전에서

제외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인즉 만약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거나 전사하거나

하면 일본군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전쟁에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니미츠 해군제독까지 나서 설득했지만

실패하자.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이를

만류토록 건의 하였다.

대통령은 해군 참모총장

킹 제독에게

''내 아들은 제2 기습대대의

장교다.

내 아들이 위험한 특공작전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그 작전에 가겠는가?'' 라고

마킨 제독에게 그를

특공작전에 참가 시킬 것을

지시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네 아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2차 대전에

참전 하였다.

미국의 입장에서 어찌 보면

자신들과는 크게 상관없었을

한국전쟁에서 모두 139명의

미군장성들의 자제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그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한국전쟁중 미군의 사망자는

33,686

포로 및 실종 8,176,

부상자는 92,134

이었다.

그들 중에는 52년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 육군

원수의 아들인 하이젠하워

소령과 제 3대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

대장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

8군 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 대장의 외아들

밴플리트 2세는 야간폭격기

조종사로 작전 수행 중

북한군의 대공포화에 의해

산화되었다.

워커장군은 아들과 함께

한국전에 참전 했고 스스로는

목숨을 잃었다.

24사단장 딘 소장은

부상당한 부하에게 물을 떠다

주려고 언덕 밑을 내려갔다가

적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86kg의 체중이 2개월 만에

58kg가 되었다 한다.

 

고풍어린 하버드대학 교내 예배당 벽에는

한국전에 목숨을

바친 하바드 출신 병사들의 이름이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하버드대학 졸업생중 17명이 한국전선에서 전사 하였다.

미국의 한 도시에서 한사람이 나올까 말까 하는

미국의 희망들을 남의나라 한국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내 보냈다.

 

 

 

 

존 시드니 매케인 3세의 월남전

 

(John Sidney McCain III,

죤 맥케인, 1936829~ )는 미합중국

상원의원이며 2008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다

매케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미국 해군에서 제독을 지냈으며,

미국 해군 사상 최초의 사성장군 부자이다.

매케인 본인도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항공모함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1967년 작전 도중 격추되어 5년 반 동안

전쟁포로가 되었으며 이후 1973년 파리

평화 조약에 의해 풀려났다.

 

1967년 봄 포레스톨 항공모함이

롤링선더 작전의 임무를 맡게 되면서

북 베트남에 폭격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이때 프레스톨 항공모함이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196710월 경에는 도합 22번의

폭격임무를 수행하였다.

19671026일 매케인은 하노이시

중심부의 공장지대를 폭격하는 임무를 띠고

A-4 스카이호크를 타고 출동했다가

소련제 SA-2 지대공 미사일을 맞아

추락하게 된다.

그는 두 팔이 골절, 다리에 총상을 입고도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하노이 근처 트룩 바흐 호수에 떨어져

익사 위기에 처하였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포로로 잡혀

하노이 시의 호아 로아 감옥에 수용되었다.

일명 "하노이 힐튼"이라는 별명으로

미국 전쟁포로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치료도 제대로 못받은 채

구타와 고문을 받았다.

그 후 6주를 호아 로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몸무게는 거의

50파운드(23킬로그램)나 빠졌으며

머리는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196712월 그는 하노이 외곽의

포로수용소로 이감되었다.

같이 수감된 동료들 덕분에 살아난

그는 1968년부터는 독방에 수감되었다.

19687월 그의 아버지 "" 매케인

제독이 태평양 사령관이 되자 북 베트남은

외부 선전 목적으로 조기 석방을

제안하였으나 매케인은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

는 군인 수칙대로 본인보다 먼저 잡힌 포로들이

모두 석방될 때까지 석방 될 수 없다며

제안을 거절한다.

19688월에 매케인은 수많은

고문을 받았으며 강제로 자신들이

"검은 범죄자"이며 "공적"이라는 자백서를 쓰고

서명할 것을 요구 받아 결국 그렇게 썼다.

그러나 그는 일부러 문법에 맞지 않는

글을 쓰는 등 강요에 의한 것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이후 그는 "나는 우리 모두가 배운 것을

거기서 배웠다:

모든 사람은 부러지는 때가 있고

그때 나는 그 한계에 부딪혔다."

당시 많은 미국포로들이 비슷한

고문과 자백을 강요받았다.

이때 데이비드 데링거, 톰 헤이던,

레니 데이비스같은 반전평화 단체들이

하노이를 방문해서 그를 만나고자 하는

것을 거절하기도 했다. 제독인

아버지와 연결되어 자신을

이용하고자 하는 북 베트남의 선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196910월부터 매케인과 다른 전쟁포로들에

대한 처우가 갑자기 개선되었으며 1

96912월에는 "하노이 힐튼"으로

다시 이감되었다. 1970년에야 독방 감금이 끝났다.

1973127일 파리 평화 조약에

서명하고 나서야 매케인의 5년 반 동안의

긴 포로생활은 끝나고 315일에 석방되었다.

이러한 경위로 인해 매케인은 2000년이

되도록 Gook이라는 차별어를 사용했다.

 

이것이 그들의 전통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이다.

 

이글을 읽고 우리나라 소위 상위 1%라는 정치인

을 비롯한 상류사화인들리

과연 위와같은 경우 자기 자식들을 국

가를 위해 사지로 내 보낼수있을까..??

    

 

케네디 해군 사관학교 시절

 

 

존 시드니 매케인 3

 

아버지 해군제독과 나란히한 해군사관학교 메케인생도

 

월남에서 석방후 죤슨대통령과

 

 

월남에서 석방되는 메케인

 

 

할아버지 아버지가 해군제독 가운데가 메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 메케인

 

 

'도선인대화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창올림픽만평에대한 토론  (0) 2020.12.25
썬 밸리 패러독스  (0) 2020.12.25
일본을이기자(도선인들의토론)  (0) 2020.12.25
북악산을가다(도선산우회)  (0) 2020.12.19
문수산에가다  (0) 2020.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