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인대화방

일본을이기자(도선인들의토론)

이모르 2020. 12. 25. 16:27

 

 

 

홋가이도 도야 호수 

 

 

 

1018년 2월3일

 

도선인들의 카톡방 토론

 

도암

 

●일본놈! 일본

하며 무조건 욕하지 말고 
객관적이고도 냉철하게 일본을 성찰해 볼 필요성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을 알아야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이렇게 다르다
일제 강점 하, 36년의 수모를 겪은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은지 70주년이 되는 이 시점에서 일본인과

우리들의 자화상을 비교해보는 것도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배우지 못하면 무지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이지만

사람을 보고 배우는 것은 지혜입니다.
이번에 일본인에게 배우는 26가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특성을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잘못된 점들은 가능한 고치도록 노력합시다.
 
​01. 한국인은 사소한 일로 다투기만 해도

지금까지 받은 은혜는 뒷전이 되고 원수가 된다.
일본인은 조폭 이상으로 의리를 중시한다.
한번 신세지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다.
 
02. 한국인은 귀한 손님을 모실 때면 외식을 즐긴다.

그래야 제대로 대접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귀한 손님은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그래야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03. 한국인은 상다리가 휘게 먹어야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냉장고는 반찬으로 꽉채워 숨 쉴틈이 없다.
일본인은 공기밥에 단무지 3쪽, 김 3장이면 족하게 여긴다.

냉장고는 늘 비어있다.
 
04. 한국 여성은 대체로 명품 백을 들어야 남부럽지 않다.

하지만 메고 다니는 루이비통의 97%는 가짜라고 한다.
일본 여성도 핸드백을 메고 다닌다.

대부분 집에서 자기 스스로 만든 수제품이 많다.
 
05. 한국인은 부모를 봉으로 안다. 가르치고

키웠더니 더 안 준다고 원수가 된다.
일본인은 자립심이 강하다.
부모 돈은 부모 돈, 내 돈은 내 돈이다.
 
06. 일본인은 집 크기를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일본 각료들도 20평이면 만족하다고 한다.
한국 여성은 남자를 만나면 몇 평에 사느냐부터 묻는다.

작은 평수면 딱지 맞는다.
 
07. 한국인은 기록에는 빵점이다. 자기 아내 생일도

모르고 지나다가 싸우기 일쑤다.
일본인은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메모를 한다.
기록하는 면에서는 일본인이 세계적으로 탁월하다.
 
08. 한국인은 공금을 눈먼 돈, 떡고물로 알고 있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일본인은 공금을 무서워한다.

공금 먹다 걸리면 집안 망한다고 생각한다.
 
09. 한국인은 별 것도 아닌 것도 툭하면 소송한다.
통계적으로 일본의 13배가 넘는다.
일본인은 웬만하면 대화로 끝낸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이다.
 
10. 한국인은 신호등을 무시하고 뛰기 일쑤다.
교통사고 1위국으로 등극했다.
일본인은 아무도 없는데도 신호를 지킨다.
우리가 볼 때는 멍청한 것같다.
 
11. 한국인은 구제품을 명품으로 착각한다.

구제품은 서양에서 입다 버린 넝마다.
일본인은 근무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데이트할 때도 작업복을 입고 나간다.
 
12. 한국인은 누구를 만나면 주량을 자랑 한다.
양주를 병 째 마시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일본 술잔은 병아리 요강만 하다. 째째하게

이것으로 홀짝 홀짝 마신다.
 
13. 한국인은 의리를 찾기 힘들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이다.
일본인은 의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4. 일본인은 노숙자도 독서에 열을 올린다.

직장인의 한 달 독서량은 7.5권이다.
한국인은 전철을 타면 스마트 폰을 꺼내

게임을 한다. 한 달 독서량은 0.7권이다.
 
15. 일본인은 준법정신이 강하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한국인은 돈버는 일이라면 목숨을 건다. 그

래서 못할 짓도 서슴 없이 한다.
 
16. 일본인은 근검절약이 부자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이자가 없어도 은행을 이용한다.
한국인은 어디 한탕 해 떼 부자 될 것이 없나만 생각한다.

그래서 사기꾼이 많고 로또가 성행이다.
 
17. 한국인은 경찰을 우습게 안다. 데모대에게 얻어

맞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찰은 아마 우리가 유일하다.
일본인은 공권력이 절대적이다.
국민들은 경찰에게 힘을 실어준다.
 
18. 한국인은 주먹구구로 일을 한다.
정년 후에 사업하다 99%가 망한다.
일본인은 무엇을 하려면 전문가를 찾는다.
그의 조언대로 행동한다.
 
 19. 한국인은 자녀가 추울까봐 옷을 겹겹이

입혀 내보낸다. 옷이 무거워 뒤뚱거리며 걷는다.
일본인은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혀 학교 보낸다.
추위를 이기는 극기훈련이다.
 
20. 한국인은 대통령을 우습게 안다.

사고만 터지면 뭐든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한다.
일본인은 총리 말이 절대적이다.
그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1. 한국인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노인들이 그래서 더 힘들다.
일본인은 누구에게나 '하이하이'하며 깎듯이 대한다.

동방예의지국이 과연 어딘지 헷갈린다.
 
22. 한국인은 잘못하고도 무조건 오리발 부터 내민다.

 CCTV에 찍혀도 내가 아니라고 발뺌한다.
일본인은 잘못은 끝까지 책임진다.
책임자가 할복자살하는 걸 너무 자주 본다.
 
 23. 한국인은 약속은 해놓고 지키지  않는다.

"중요한 일이 생겨서.."하고 변명한다.
일본인은 약속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킨다.
그들에게 약속은 생명과 같다.
 
 24. 한국노조는 회사가 2천억 손실이 나도 

성과급 달라고 파업한다.
일본노조는 흑자가 나도 회사의 앞날 생각해

임금동결을 받아들인다.
 
 25. 한국인은 잘 웃지 않는다. 언제나 화난

얼굴을 하고 다닌다. 그러나 실제로 화난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잘 웃는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보다.
그러나 속마음에는 칼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26. 한국인은 말을 퉁명스럽게 한다.

한국 방송은 싸우는 것처럼 들린다. 특히

뉴스시간대에 기자들 말소리는 언성높이는

시합이라도 벌리는 것처럼 들린다.
일본인은 상냥하게 말한다. 듣다 보면 귀가 간지럽다.
 
 우리는 언제까지고 일본 놈들 욕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도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점은 고쳐서

극일(克曰)의 길을 가야합니다.

꼭읽어보세요^

 

 

평보가 찍은 도야호수 가을

 

 

평보

 

서유럽 여행에서 느낀 것이지만
지리적 가까운 나라일수록

사이가 않좋다는 이야기를 가이드
에게 몇번을 들어서인데

영국사람들에게 제일
심한욕이 '넌 프랑스놈
같다'
반대로 프랑스사람들에게
제일 심한욕이
'넌 영국놈 같다'
라  합니다

나는 일본에가서 정말
깨끗하고 질서의식이
투철하고 이런 모습에서
이들이 일등국민 맞다
생각 들더라고요

그런데 딱 갸들이 동해를
일본해로된 해도를 정당하게

바로잡으려는
아국 노력에 국제적 반한
운동으로 방해공작을
편다든지  하는것  처럼
독도를 끝없이 자기내땅
이라고 할때 자연스럽게
'일본놈' 소리가 나옵니다

역사적 사실로 본다면
김정은이도  일본이
만든거라 생각하는게
우리를 압제하여 미소로
갈라놓게 한게  일본 이라
생각 합니다

무조건 일본놈 이라하지
않고 그들이 독일처럼
역사의 반성  없이
반한데모하며 한국놈
물러가라 구호외칠때
그때 일본놈 소리가 나옵니다

우리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이유있는 집회를
할뿐 거리로 활보하며
데모하지는 안씁니다

일본인 들이 조센진
이라 아국인들을 멸시의
눈으로 바라보며
차별을  일삼는데서
일본놈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간단하게 독도를 자기땅
이라고 어린이들에게
교육하며 무력으로라도
되찿으라는
암시적 훈련하는데서
일본놈  하지  괜시리
일본놈  하지는 않는다
하는겁니다

 

춘곡

 

김소운 선생의 수필 《목근통신》일독을 권해봅니다 일본을

잘 아는 선생이 일본, 일본인에 대한 견해등의 내용이 나옵니다

비록 60여년전 글이지만...

 

도암

목근통신 요약해 보세요

 

 

평보가 찍은 도야호수의 단풍

 

 

춘곡

 

목근통신 요약해 보라는 말에..

읽은지50년도 넘은글 요약할 재간아 없어

인터넷에서 요약본능 찾았는데..

본문에 일본인의 심성을 칭찬하는 대목이 없어

좀 유감이지만.. 우선 그런 대로..

친애하는 일본의 국민 여러분!

나는 대한민국의 총리도 국민 대표도 아닙니다.

포의 서생에 지나지 않는 일개인이 이런 전치사로

여러분을 부르는 것이 혹시 외람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20 몇 년이란 긴 세월을 귀국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나라 말로 '잔뼈가 굵어지도록―' 20 몇 년이라면

당신네들이 '종전'이라고 부르고 우리가

소위 '해방'이라고 하던 1945년까지로 마감해서 내 생애의

거의 3분지 2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긴 세월을

나는 귀국의 우로에 자랐습니다.

내가 가진 변변치 못한 지식이나 교양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태반은 일본에서 얻어 온 것입니다.

'친애'란 말이 일편의 외교 사령이 아닙니다.

진정 여러분에게 보낼 수 있는 내 마음의 인사입니다.

 

나는 3,4일 전에 어는 친구 집에서 30여 년이 지난

헌 기록 사진 몇 장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미 운동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대정 8년의 '독립 소요 사건' 때

당신네들 손에 학살당한 그 처참한 송장들의

사진을 내가 그 날 처음 본 것은 아닙니다.

20여년 전 토오쿄오 게라구 고우(東京下落合)의

오끼노 선생 댁 서재에서 본 것도 바로 이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무에다 주렁주렁 목을 달아 메어 죽인

그 사진을 그 날 다시 대했을 때 내 감정은

새로 한 번 설레었습니다.

'죽일 놈들 같으니 ― 이 죗값으로도 나라가 안 망할라구!'

그 때 내 입으로 복받쳐 나온 말이 이것입니다.

 '왜적'이니 '강도 일본'이니 하는 말로는 형용치 못 할,

더 한결 절실한 미움이 용솟음친 것을 고백합니다.

이 '미움'과 이 '친애'는 둘 다 에누리 없는 내 진실의 감정입니다.

이 서로 상반되고 모순된 두 감정을 그냥

그대로 전제해 두고 이 글 하나를 쓰자는 것이다.

(중 략)

다시 한번 친애하는 일본 국민 여러분!

내가 최근에 들은 바로는 [썬데이 매일]의 발행 부수는

70만에서 80만을 상회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으로는 상상치도 못할 방대한 부수입니다.

한 부를 다섯 사람이 읽었다 치더라도 400만에 가까운

이 숫자는 거의 일본의 독서 대중의

총량에 해당할 것입니다.

UP특파원과 뉴스위크 부주필이 두 분의

외국 기자는 한국의 똥구멍을 털어서

그 적나라한 실상을 전 일본의 방방곡곡에다

소개하고 선전해 주었습니다.

거기 대해서 우리들은 정히 냉한삼두(冷汗三斗)일 뿐,

일언반사의 대구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이것은 우리들이 역사의 은인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언론인의 대담입니다.

그 기사의 책임을 여러분에게 돌릴 이유도 없거니와

그것을 여기서 추구하고 항변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날 가졌다는 것은 가난한 것과

초라한 것뿐입니다.

 어느 모로 따져 보아도 우리가 치켜들어서

남의 앞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일찍이 남의 나라에까지 이식되던 우리들의

문화는 이미 낡은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그 문화의 대부분이 일본 ―

즉, 당신네들의 나라로 수출되었습니다.

새삼스런 이야기 같습니다마는 우리노(上野) 공원을

지나칠 때 여러분은 왕인 박사의

기념비를 자주 보실 것입니다.

일본에 처음으로 한문 문화를

이식한 우리 선인의 한 분입니다.

일본에 있어서 생활 문화의 기본이라고 할

 '다도(茶道)'―, 지금도 일본의 여유층들은

비록 패전은 했다고 하나 그 다도를 숭상함이

예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 쓰이는 그릇(茶碗)들은 좀 값나고

귀한 것이라면 대개로 이 '구린내 나는

나라'의 출토품들입니다.

지나간 옛 문화가 아무리 찬란했기로서니

그것으로 오늘날의 우리의 처지를 호도할 구

실은 못됩니다. '소로구―프'에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동물들의 자격 심사회인데 그 몇 번째 차례에

거위가 나왔습니다. 심사관이 묻습니다.

"자네 공적은 무언가?"

"네, 제8대조 할아버지가 트로이 전쟁 때 성을

넘어오는 적병을 맨 처음 발견했지요.

그래서 하마터면 위태할 뻔한 성을 구해냈답니다.

유명한 이야기이지요."

"그건 자네 8대조 이야기가 아닌가.

자네 공적이 무언가 말이야."

"제 공적이 무어냐고요? 제가 바로 그 8대조

할아버지의 8대손이지요."

"글쎄 이 사람아,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 전쟁이고

자네는 대체 무엇을 했더냐 말이다."

"온, 참, 말귀도 못 알아들으시네. 제가 바로

트로이 전쟁에 공훈을 세운 그 거위의 8대 직손이라니까요."

우리는 비록 구린내 나는 나라의 족속이라고 하나

이 거위의 '넌센스'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라니 고구려니 해서 죽은 아이의 나이를 헤자는

것이 아니라 일체를 상실한 오늘날과 그 화려하고

풍요하던 옛날의 문화를 한번 맞대어보는 것입니다.

서글프고도 부끄러운 회상입니다.

[선데이 매일]의 기자가 묻습니다.

"한국의 도시나 촌락에서 약탈을 당한 그

런 흔적은 없던가요."

"글쎄요. 한국에 약탈을 당할 만한 무슨 재산이

애당초에 있었던가요. 그토록 빈한합니다. 이 나라는―"

UP기자의 이 대답에는 "약탈의 대상이나

되었으면 제법이게―"하는 또 하나의

암의가 풍기어 있습니다.

사실인즉 전화로 인해서 입은 직접 피해 외에도

한국의 국민들은 허다한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재산'이라고 하는 물자며

세간살이들은 있는 이의 눈으로 볼 때

소꿉장난의 부스러기들로 보였을 것입니다.

약탈의 대상도 못 되리 만치 빈곤하다는

이 신랄한 비평을 그러한 의미에서 감수합니다.

그러나 간과치 못할 또 하나의 문제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36년 동안을 일본이 다스리던 나라입니다.

'일시동인(一視同仁)'의 일본의 정치가

마침내 한국을 이 빈곤에 머무르게 했다는

사실은 별로 일본의 자랑이 못될 것입니다.

―'센징(鮮人)의 주택은 더럽다'고 쓰는 것보다 '

센징의 집은 도야지 우리 같다'고 쓰는 편이

문장 표현으로도 더 효과적이다―

20년 전 동경 삼성당에서 발행된

교재서의 한 구절입니다.

현명하고 영리한 귀국 국민에도 제 욕을 제가 하는

 이런 바보가 있었습니다.

이런 천진한 바보의 귀에도 약탈감도 못 된다는

외국 기자의 한국평이 통쾌하고 고소했을는지

모릅니다마는, 마음 있는 이는 아마 또 하나의

반성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의 '레미제라블(悲慘)'은 한국의 수치이기

전에 실로 일본의 덕성의 '바로미터'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돌아와 일본을 보니 여기는 바로 천국이야.

한국은 정말로 지옥이지 "

"전선에서 잠드는 UN 부대들의 야영의

꿈은 뉴―욕이나 갤리코니아가 아니거든

― 긴자, 도―똔보리, 아사쿠사, 신쥬꾸―,

하나꼬상, 기미꼬상, 노부꼬상의 꿈이지."

패전국이라던 일본이 천국이요 36년의

 질곡에서 벗어났다는 한국이 지옥이란 것은,

'메퓌스트 회레스'와 '파우스트'가 위치를

전도한 것 같은 신통하고도 재미있는

후세의 이야기 거리입니다.

전쟁에 지면 사내란 사내는 모조리 아프리카로

끌려가서 강제 노동의 노예가 된다던 일본…….

그 일본은 점령군 사령부의 관후한 비호

아래 문화를 재건하며 시설을 다시 회복하여

착착으로 전쟁 전의 면모를 도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거기 대비할 때, 연합국의 일원이요, 당당한

승리자인 중국은 그 광대한 영토를 버리고

대만으로 밀려가고, 해방의 기쁨에 꽝매기를 울리며

좋아 나루띠던 한국은 국토를 양단 당한 채

지난 1년 동안에는 두 번이나 수도 서울을 적수(敵手)의

유린에 맡기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실,

가장 냉엄해야 할 '역사'도 알고 보니

익살맞고 짓궂은 장난꾸러기입니다.

행여나 오해치 마십시오. 우리는 일본의

불행을 바라는 자가 아닙니다. 일본의

행복을 질시하는 자가 아닙니다.

비록 '지옥'의 대명사를 가지도록까지 일찍이

상상치도 못한 가난과 도탄을 겪고 있다고는 하나

그러나 우리는 지녀나가야 할 최후의

덕성하나를 쉽사리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 장황한 편지에 결말을 지어야 하겠습니다.

일본에 대해서 너무 아는 체한 것이

부끄럽습니다마는, 그러나 하고 싶은 얘기를

이것으로 다한 것이 아닙니다. 원컨대 여러분들과

자리를 같이해서 한국과 일본이 지닌

이 구원(久遠)의 숙명에 대해서, 좀더 활발하게,

좀더 솔직하게, 흉금을 토로하고 싶습니다.

그런 기회가 아직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숙명 ― 진실로 그렇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이것은 숙명적인 인연입니다.

과거의 수천 년이 그러했고, 다가올

수만 년이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개인의 이웃은 떠나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민족의 이웃, 국가의 이웃은 떠나버릴 수 없고,

땅덩이를 실어서 이사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이 오늘날 당면하고 있는 고난과 비통을

이미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쓰라림과 불행을

우리는 이미 겪어온 것 같습니다.

여기 대해서는 아름다운 말, 호기스런 장담으로

외면(外面)을 호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최후로 한마디 말을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역경에 있어서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신라의 옛날은 모르거니와 고려의 문화,

 이조의 학예가 한가지로 고난의 어둠 속에서

더 한층 빛났다는 것이 우리들의 자랑입니다.

우리의 과오 ― 나날이 우리 스스로가 불행을

자승(自乘)해 가고 있는 이 현실을 부정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의 섭리를 믿는 자입니다.

사나운 바람, 매운 서리를 견디고, 땅속에 잠겼던

한 톨의 보리알이 움을 틉니다. 이것이 민족의

지열(地熱)입니다.

만일 이 지열이 없었던들, 우리는 몇 세기 전의

어느 국난에서 벌써 멸해 버렸을 민족입니다.

가미가제의 기적을 바라는, 이것은

신화가 아닙니다.

침략치 않고, 저주할 줄 모르는 어진 백성이,

오욕과 가난에 견디어 내는 하나의 항독소입니다.

일전에 친한 미국인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스터 김! 그대가 만일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나 프랑스에 태어났던들, 몇 배,

몇 십배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으련마는 ."

"천만의 말씀 ."

그 때 내 입으로 나온 대답입니다.

"내 어머니는 '레프라'(문둥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오오, 그러리라!"

그는 자못 심각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내 손을 쥐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그 날 내가 처음 한 것은 아닙니다.

1939년 11월호 《부인공론》에 '보오노

하나(박꽃)'란 수필 하나가 실려 있습니다.

향토에 대한 내 애정과 신앙을 고백한 글입니다.

'향토는 내 종교였다 .' 거기 쓴 이 한마디

말은 목숨이 다 할 날까지 내 가슴에 지닐,

괴로우나 그러나 모면치 못할 십자가입니다.

문둥이의 조국!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어느 극락정토보다도 더 그리운 어머니의 품입니다.

가마꾸라 하세의 내 살던 집에 무궁화 한 그루가 있습니다.

수필집 이름은 《목근의 뜰》이라 지었다가

그 책은 마침내 나오지 못한 채, 종전(終戰)되던 해

이월, 손가방 하나를 들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육 년이 지났습니다.

육군의 비밀 공장 기지로 들어가

그 집이 헐리었다는 소식을 내가

떠난 월여 후(月餘後)에 들었습니다.

내 살던 집은 없어지고, 뜰에 썼던 무궁화도

지금은 아마 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흰 꽃 모습은 언제나 눈만 감으면 내 앞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 '목근통신'이라고

이름지은 쑥스러운 애상(哀傷)을 웃어 줍시사 하고

이 글을 끝맺습니다. (1951. 8. 부산에서)

 

도암

 

일본보다 더 나은 국민이 되려면

위 26가지 나열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러하다 생각되는것들을
고치자는 요지인데

요지에만 신경쓰고
다른 비판은 하지 말기를....

다른건 다 아니까....

아베 하는꼴 얼마나 얄미운가!
일본 갈때마다 얄미운게 한두가지인가?
그들하는짓 밉고 분한게 얼마나 많은가?

우리 할아버지 는 만주서 독립군하다 돌아가시고
큰아버지 도 붙잡혀  용산경찰서 에서 고문당하다
옥살이 3년 했고....
과거로 따지면 누구보다 일본에대한 원한이 많은사람...

그러나
여기 논점은
역사적 관계.정치적 행동들이 아니라
 

우리의 단점을 고쳐서
극일  하자는 논점에 초점을
맞춰 보자는 말씀.

무조건 비난만 해서는 일본을
이길수 없다.

우리국민 의식이 일본국민 의식을
앞서야 진정으로 일본을 이길수 있다는

요지 임을 다시한번 강조하오니

글올린 취지를 이해하시고
위 항목에 대해서만
비판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소이다.

 

춘곡

 

그리고 전혀 비판 아닌데.. 목근통신도

전문 보면 비판에 촛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배울것은 배워야 한다는 그리고 한개인도

 장단점이 있는데 어떤 집단 (국민, 지역 등)을

장단점을 단정하여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란 이야기

 

도암

 

일본 남규슈  아소산 근처 관광지
어느 큰식당을 들어 가자마자

옆자리 학생들 이 수학여행 왔는지 

한바탕 시끌하다 나갔는데....맙소사

음식을 잔뜩가져와  남기고
마치 앉았던 자리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였슴.
당연히 일본학생들 이겠거니하고
그걸 사진 찍어 일본 학생들 
도덕의 현실이 이것밖에 않된다는
취지로 SNS에 올리려 했슴.

식사후 나오니
학생들 태운버스가  아직 안떠나
쳐다보니
에고 이런...
한국 경상남도 모 고등학생 들인기라.

순간 부끄럽고 화도 나고..
도데체 선생놈들은 무얼 가르친거야 하고

울화통이 터집디다.

이걸보며 일본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볼까 생각하니
챙피한  생각 뿐....

정말 우리나라 교육이
이래서는
일본을 이기기는커녕 점점더
격차가 커지겠구나 하는 우려가
컷는데....

같이간 친구가 이걸 페북에 올려
우리교육에 대한 통열한 비판과
자성을 토로한바 있슴.

극일을 위해서는 교육 부터
일본을 따라 잡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슴에
서글퍼 집니다.

 

은암

 

오늘 아침 두분 형님들 덕분에 좋은 공부 많이 했읍니다
저는 아직 일본을 가 본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다녀온 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일본에 대해  배울것이 많다고들 하는데

배울것은 배워야 그들을
이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도 아직은 일본놈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중의 한사람입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진 주말일것 같습니다
편한 시간들 보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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