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텔레비젼에 마사다 라는 몇부작이 상영 되었는데
큰 감명은 정복당하지 않으려고 서로 서로 죽여가며 로마군이 입성했을때는
전원이 자결한 상태로 기독교인들의 자존을 내세운 로마군단에 대항했던
유대인들의 투쟁정신을 그린 영화였다.
이스라엘의 마사다는 군사요새로 유대인들이 3년간 로마 군대를
피해 살았던 곳으로 매순간 자유를 꿈꾸며 불안을 예감했던 곳이다.
이곳은 유대인들에게 창고였고, 막사였으며, 무기고였다. 이들에게
음식과 물이 충분했다면 쉽게 점령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되는 로마군의 공격속에서 유대인은 회당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최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로마군이 만든 공격용 램프로 사용된 산 정상에 오르는 완만한 비탈길과
아직도 남아있는 로마군이 쏘아 올렸던 커다란 돌포탄이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로마군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로마군은 이들의 죽음만을 보게된다.
유대인들은 로마군에 굴복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그 당시 마사다의 비극은 참사를 피해 물저장소에 숨어 있던 두 명의 노인과
세 명의 어린아이에 의해 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마사다의 비극 이후에 유대 민족은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해 1948년
이스라엘이 해방하기 전까지 전세계를 방황해 왔다.
현재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성지다.
구예루살렘과 신예루살렘으로 나뉘어진 예루살렘은 BC1000년 전에
다윗왕이 도읍으로 정한 이후 모세가 10계를 모신 성전이 있고 36번의
정복과 10번의 멸망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감람산 사이의 기도름 골짜기는
최후 심판의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탐사팀은 이곳에서 3000년 고도의 자취를 발견했는데
기혼의 샘이 통과하는 히스기야 터널이다.
이 터널은 성 밑을 관통하고 있는데 그 길이가 600m나 된다.
이 통로는 굴곡이 매우 심했는데 신기하게도 양쪽에서 파고
들어가 중간에서 만난 것이었다.
탐사팀이 통로의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위안의 샘으로 불리는 실로암 연못이었다.
마사다의 비극 후 헤롯왕의 성전은 제국의 오만과 불경의 상징이 되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고 현재는 다른 민족 다른 성전이 들어서 있다.
현재 성묘 교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후 각 기독교의
종파와 이슬람의 갈등을 보여주는 곳이다.
교회 안은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와 아르메니안 정교회가 함께
나눠 갖고 있으며 예수 무덤은 6개의 종파가 각기 다른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과거 터키인이 6대 종파에 쪼개준 종파는 현재
이스라엘 정파에서도 건드릴 수 없는 각 종파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교회의 문을 여닫는 일은 회교도인이 계속하고 있다.
한 때 예루살렘의 주인이었던 이슬람 제국의 후예와 역시 예루살렘의
주인이었던 기독교 교회와의 이러한 태연한 일과는 뒤엉킨 예루살렘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아르메니안교, 회교도로 분할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의 경계선은 바로 종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