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해 / 노천명◈
장미모양 으스러지게
곱게 되는 사랑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죠?
감히 손에 손을 잡을 수도 없고
속삭이기에는 좋은 나이에 열없고
그래서 눈은 하늘만을 쳐다보면
얘기는 우정 딴 데로 빗나가고
차디찬 몸짓으로
뜨거운 맘을 감추는 이런 일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죠
행여 이런 마음 알지 않을까 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그가 모르기를 바라며
말없이 지나가려는 여인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죠
1912. 9. 2 황해 장연~1957. 12. 10 서울.
시인.
노천명 /노천명
〈사슴〉을 비롯한 고독과 애수가 깃든 시들을 썼다. 초명은 기선(基善). 1920년 아버지가 죽자 서울로 이사하여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4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그해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가 되었다. 1935년 〈시원〉 창간호에 〈내 청춘의 배는〉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대표작인 〈사슴〉이 실려 있는 시집 〈산호림 珊瑚林〉(1938)을 펴냈다. 1938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하여 체호프의 〈앵화원〉에 출연했고 〈여성〉의 편집을 맡기도 했으며 1943년 매일신보 학예부 기자를 지냈다. 1945년 두번째 시집 〈창변 窓邊〉을 펴냈는데 〈산호림〉과 마찬가지로 고독·애수·향수가 짙은 시를 실었다. 그러나 그중에 향토적인 소재의 시가 보여주는 건강함과 소박함은 고독을 노래한 시와 대조적이었다.
해방 후에는 서울신문과 부녀신보 등에서 일했으며, 6·25전쟁 때 서울에 남아 있다가 부역했다는 이유로 9·28 수복 때 투옥되었다. 뒤에 여러 문인들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왔으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 가운데 펴낸 시집이 〈별을 쳐다보며〉(1953)이다. 이 시집에는 40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중 21편이 옥중시로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는 현실에 대한 혐오감과 심한 고독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녀가 자기중심적인 내면세계로 빠져들려는 모습은 이후 일관된 시세계를 이루었다. 남색 치마, 흰 저고리를 즐겨 입고 약간의 골동취미도 갖고 있었으며, 다른 여성 시인들과 구분되는 명확한 시세계를 갖고 있었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1956년 〈이화 70년사〉의 무리한 집필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이듬해 3월 서울 위생병원에서 뇌빈혈로 죽었다.
1958년 유작시집으로 〈사슴의 노래〉를 펴냈는데 여기에 실린 〈유월의 언덕〉에서는 〈사슴〉에서보다 훨씬 짙은 고독과 애수가 엿보인다. 그녀의 시는 고독을 극복하려는 의지보다 그곳에 빠져들려는 모습이 더욱 강하여 절망과 허무에 이르는 길이 되고 말았으며, 그것은 죽기 직전에 쓴 시 〈나에게 레몬을〉에 잘 나타나 있다. 수필집으로 〈산딸기〉(1948), 저서로 〈여성서간문독본〉(195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