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장만영
서울 어느 뒷 골목
번지없는 주소엔들 어떠랴,
조그만 방이나 하나 얻고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숨바꼭질하던
어린 적 그 때와 같이
아무도 모르게
꼬옹 꽁 숨어산들 어떠랴,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단 한 사람
찾아 주는 이 없는들 어떠랴.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이
가난한 우리 들창을 비춰 줄게다.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깊은 산 바위 틈
둥지 속의 산비둘기처럼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의지하며
순아 우리 단 둘이 사자.
* 장만영(張萬榮, 1914.1.25 ∼ 1975) k2 출신
* 이 시도 문병란의 직녀에게, 김억의 물레의 예 처럼 시 원문과 노래
가사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생략한 부분도 있고요
호는 초애(草涯). 1914년 1월 25일 황해도 연백 태생. 1932년 경성제이고보를 마친 후,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미자키영어학교(三崎英語學校)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32년 5월 『동광』에 투고한 시 「봄노래」가 김억에 의해 추천됨으로써 시단 활동을 시작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신문』 출판국장, 한국시인협회 회장(1966), 신시 60년 기념사업회 부회장(1968) 등을 역임하였고, 학생문예지 『신문예』, 산호장출판사, 춘조사 등을 경영한 바 있다. 시집으로는 『양』(1937)을 위시하여, 『축제』(1939), 『유년송』(1948), 『밤의 서정』(1956), 『저녁 종소리』(1957), 『장만영 시 선집』(1964) 등이 있으며, 자신의 시를 해설한 『이정표』(1964) 등의 저서가 있다.
그의 시 세계는 강한 모더니즘적 경향을 보이면서도 도시 문명을 소재로 하기보다는 전원적 세계를 현대적인 형식으로 노래했다는 점에 특성이 있다. 그의 특성에 대해 최재서는 “이미지와 운동이 합쳐진 세련된 위트의 시”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특성은 시 「아침창」에 나오는 “어제밤 나의 베개 머리를 지키던 꿈들은/꿀벌들처럼 자꾸 유리창을 넘어간다”와 같은 시행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후기에 이르러 그의 시 세계가 농촌과 전원의 세계를 지적으로 노래하는 서정주의로 선회한 것은 초기 시의 이러한 특성과 연관이 있다. 그는 전원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신석정과 유사하며, 이미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김광균과 유사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학력사항
- ~1932 경성제이고보
- - 일본 도쿄 미자키영어학교
경력사항
- - 서울신문 력출판국장
- 1966~ 한국시인협회 회장
- 1968~ 신시 60년 기념사업회 부회장
'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여자이고 싶습니다 홍미영 (0) | 2020.12.30 |
---|---|
뒷모습 정호승 (0) | 2020.12.30 |
봄날.섬진강(김용택 ) (0) | 2020.12.30 |
당신을위해 노천명 (0) | 2020.12.30 |
조지훈(낙화) (0) | 2020.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