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치마와팬티

이모르 2020. 12. 30. 16:54

 

 

 

 

 

 

 

치마/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문정희(文貞姬 1947년5월25일-)는 시인이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 국문학과를 졸럽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에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문정희시집 .새때 .찔레. 하늘보다 먼곳에 매인그네

수필집 지상에서 머무는 동안 등을 출간했다

2007년 현재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 교수로 재직중이다

 

.

 

 

 

팬티 /임보

 

 

   -문정희의「치마」를 읽다가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전남 순천 출생. 본명 姜洪基
△서울대 국문과 졸업(1962). 성균관대 대학원 문학박사(1988)
△《현대문학》등단(1962)
△시동인지《육시六詩》(1970),《우이동 시인들》(1987~1999) 간행.

   《진단시》(1982~1997) 창간동인 
△월간《우리시》편집인
△제1회「우이동시낭송회」개최 이후 2011 5월까지 275회 시행
△충북대 국문과 교수 역임
△시예술상 본상, 상화시인상, 시와시학상 작품상, 한국현대시협상,

    성균관문학대상 수상 
△시집『임보의 시들<59~74>』,『목마일기』,『황소의 뿔』등 14권
△시론서『현대시운율구조론』,『엄살의 시학』,『미지의 한 젊은 시인에게』
△주요논문으로 <이상시의 구조 양상>, <한국 현대시 운울 연구>, <단형시고>,

   <정지용 산문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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