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루투갈의 파티마성지 폭서의더위에도
무룹을 꿇고 가는 순례하는 참배객
친구를 위한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앓는 사람에게 강복하시고
갖가지 은혜로 지켜주시니
주님께 애원하는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친구의 병을 낫게 하시며
건강을 도로 주소서.
주님의 손으로 일으켜주시고
주님의 팔로 감싸 주시며
주님의 힘으로 굳세게 하시어
더욱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 아멘.
베드로의 배반기(마태26,69-75)
69 그 동안 베드로는 바깥 뜰에 앉아 있었는데 여종 하나가
그에게 다가 와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군요" 하고 말하였다.
70 베드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무슨 소린지
나는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71 그리고 베드로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는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자렛의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72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73 조금 뒤에 거기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 오며
"틀림없이 당신도 그들과 한 패요. 당신의 말씨만
들어도 알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74 그러자 베드로는 거짓말이라면 천벌이라도
받겠다고 맹세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잡아떼었다. 바로 그 때에 닭이 울었다.
75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몹시 울었다.
베드로의 눈물 (Lágrimas de San Pedro)/스페인 톨레도 대성당
위 그림은 예수님게서 베드로가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하신대로
“나는 그 사람을 모르네”하고 스승에게서 돌아섰던 베드로
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베드로는 뉘우쳐 회개하며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리기를
자청 한다
엘그레꼬의 베드로의 눈물은 백발의 초췌한 얼굴
한눈 가득고인 눈물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잘 표현한 걸작이다
병상에 있는 벗들을 에게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보냅니다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 귀여운 아가씨.
베어먼 할아버지가 오늘 병원에서 돌아가셨단다. 겨
우 이틀을 앓으셨을 뿐이야. 첫날 아침, 관리인이
아래층에 있는 그분 방에 가봤더니 할아버지가
몹시 괴로워하고 계시더래. 신발과 옷은 흠뻑 젖어서
얼음처럼 차갑고. 날씨가 그렇게 험한 날 대체
어디를 갔다오셨는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어.
그러다가 아직도 불이 켜져있는 각등과 언제나
놓여있는 자리에서 꺼내온 사다리와 흩어진 화필과
초록과 노랑물감을 푼 팔레트를 발견한 거야.
그리고 얘, 창밖으로 저 벽에 있는 마지막 담쟁이 잎
좀 쳐다봐. 바람이 부는데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게 이상하지 않니? 아아, 존지,
저건 베어먼 할아버지의 걸작이란다.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진 날 밤, 그분이
저 자리에 그려 놓으신거야."
마지막 잎새
O. 헨리
워싱턴 스퀘어의 서쪽에 있는 조그만 구역에 가면
길이 이리 저리 마구 얽혀서 <플레이스>라고
부르는 길쭉한 조각으로 나눠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플레이스>들은 기묘한 각과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하나의 길이 한두 번은 제자신과 교차한다. 일찍이
한 화가가 이 거리에서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감과 종이와 캔버스의 계산서를 든 수금원이
이 거리에 들어와서 외상 한 푼 받지 못하고
어느 새 온길로 되돌아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이 색다르고 옛스러운 그리니치 빌리지에
곧 화가들이 몰려들어 북향의 창문과 18세기 풍의
박공과 네덜란드 풍의 다락방과 싸두려 방세를
찾아서 돌아다녔다.
이윽고 그들이 6번가에서 백랍 컵과 탁상용 풍로를
하나 둘 들고 들어와서 여기에 <예술인의 마을>이
하나 생긴 것이다.
수우와 존지는 나지막한 3층 벽돌 집 꼭대기에
화실을 갖고 있었다.
<존지>는 조안너의 애칭이다. 수우는 메인 주가
고향이고 존지는 캘리포니아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8번가에 있는 <델모니코>식당에서
정식을 먹다가 만나, 예술에 있어서나 치커리
샐러드나 예복 소매의 취향에 있어서나 취미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고 공동으로
화실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5월의 일이었다. 11월이 되자 의사들이
폐렴이라고 부르는 차갑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손님이
이 마을을 쏘다니면서 그 얼음 같은 손가락으로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만지고 다녔다.
이스트사이드에서는 이 파괴자가 대담하게
으스대고 다니면서 수십 명의 희생자를 냈지만,
이 좁고 이끼낀 <플레이스>의 미로에서는
그 걸음걸이도 느려졌다.
폐렴씨는 기사도적인 노신사라고 부를
만한 것이 못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부드러운 바람으로 가냘퍼진
조그만 어런 처녀는, 도저히 피묻은 주먹에
숨결이 거친 이 늙은 협잡꾼의 정당한
사냥감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존지를 덮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페인트칠을 한 철제 침대에
누운 채 거의 꼼짝 못하고, 조그만 네덜란드풍의
창너머로 옆에 있는 벽돌집의
텅 빈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바쁜 의사가 털이 숭숭한
반백의 눈썹을 움직여서 수우를 복도로 불러냈다.
"저 처녀가 살아날 가망은 ... 글쎄, 열에 하나야.
"하고 그는 체온계를 흔들어 내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도 그 처녀가 살고 싶어하지 않으면
소용없단 말씀이야.
지금처럼 사람이 장의사한테 달려갈 기분으로
있어서야 처방이고 뭐고 다 바보 같은 짓이 되고 말지.
저 처녀는 이제 낫지 않는다고 아예 마음먹고 있거든.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일이라도 있나?"
"쟤는... 언젠가 나폴리 만을 그려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림을 그려? 바보같긴! 무언가 골똘이 생각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은 없을까? 이를테면 남자친구 같은 거."
"남자요?"하고 수우는 터무늬없는 소리라는 투로 말했다.
"그럴 만한 남자가... 하지만 아니에요, 선생님.
그런 일은 없어요."
"음, 그렇다면 좋지 않은 걸. 나는 내 힘이 미치는
한, 의술의 힘을 다해 보지. 하지만, 환자가 자기
장례식 행렬의 자동차 수를 세기 시작하게 된다면
내 약의 효과도 5할은 감해지지. 아가씨가
잘 구슬려서 겨울 외투 소매의 새 유행이라도
물어보도록 만든다면 가능성이 열에 하나가
아니라 다섯에 하나라고 약속하지."
의사가 돌아간 뒤 수우는 작업실로 가서
종이냅킨이 곤죽이 될 때까지 울었다.
그러고는 화판을 들고 휘파람으로 재즈를
불면서 힘차게 존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존지는 이불 밑에 잔잔한 파도 하나 일으키지 않고,
얼굴을 창문으로 돌린 채 누워있었다. 수우는
그녀가 잠들어 있는 줄 알고 휘파람을 그쳤다.
수우는 화판을 세워 어떤 잡지 소설의 삽화로 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젊은 화가는 젊은 작가가 문학에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 쓰는 잡지 소설의 삽화를 그림으로써
미술에 대한 길을 개척해 나가야만 한다.
수우가 소설의 주인공인 아이다호 카우보이의 모습에다
말 품평회에 입고 나갈 멋있는 승마바지와 외알박이
안경을 그리고 있는데 나지막한 소리가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들려왔다.
그녀는 얼른 침대 곁으로 갔다.
존지의 눈은 커다랗게 떠져 있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세고 있었다ㅡ수를 거꾸로 세고 있었다.
그녀는 "열둘."하고 세고는 조금 있다가
"열 하나.", 이어 "열.", "아홉.", 그러다가 거의
동시에 "여덟.", "일곱."하고 셌다.
수우는 궁금해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뭐가 있어서 세는 거지?"
그저 살풍경하고 쓸쓸한 안마당과 20피트 저편에
벽돌집의 텅빈 벽면이 보일 뿐이었다. 뿌리가
울퉁불퉁하게 옹이져서 썩은 한 그루의 해묵은
담쟁이덩굴이 벽돌담 중간쯤까지 뻗어울라가 있었다.
차가운 가을 바람이 덩굴에서 잎사귀를 쳐서
떨어뜨리고, 앙상한 발가송이 가지가 허물어져
가는 벽돌담에 매달려 있었다.
"뭐니?" 수우가 물었다.
"여섯." 존지는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제 차츰 빨리 떨어지기 시작했어. 사흘 전에는
거의 백 장쯤 있었는데. 세고 있으면 머리가
다 아팠지만 이젠 쉬워. 아, 또하나 떨어지네.
이제 남은 것은 다섯 잎뿐이야."
"뭐가 다섯 잎이지? 얘기해 보렴."
"잎사귀야. 담쟁이덩굴 잎.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질 때는
나도 가는 거야. 나는 사흘 전부터 알고 있었어.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지 않던?"
"그런 바보 같은 소린 들은 적이 없어."하고
수우는 몹시 경멸하는 듯이 투덜거렸다.
"마른 담쟁이 잎사귀와 네가 낫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니? 그리고 넌 저 덩굴을
아주 좋아했잖아. 이 말괄량이야,
바보 같은 소리 작작해라. 선생님은 말이야,
오늘 아침에 네가 곧 완쾌할 가망성은 ...
저어, 선생님 말씀 그대로 말한다면..하나에 열이라고
그러셨어! 그
건 뉴욕 시내에서 전차를 타고 가거나
신축 빌딩 밑을 지나갈 때의 위험률과 같은 거야.
자, 이제 국을 좀 마셔봐. 그리고 수디는 다시
그림을 그리게 해줘. 그러면 그걸 잡지사 편집자에게
팔아서 앓아 누운 우리 아기에겐 포도주를 사오고 먹성
좋은 나를 위해서 돼지고기를 사올 수가 있잖아?"
"포도주는 이제 살 필요 없어." 존지는 계속
창밖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또 한 잎 떨어지네! 아니, 국물도 먹고 싶지 않아.
이제 넉 장뿐이야. 어둡기 전에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그러면 나도 가는 거야."
"존지." 수우는 그녀 위에 몸을 굽히고 말했다.
"내가 그림을 다 그릴 때 까지 눈을 감고 창밖을
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지 않겠니? 난 이 그림을
내일까지 넘겨줘야 한단 말이야. 광선이 필요해서
그래. 그렇지 않으면 커튼을 내리고 싶다만."
"다른 방에서 그릴 수 없어?"하고
존지는 차갑게 물었다.
"난 네 옆에 있고 싶어서 그래. 게다가 네가 줄곧
저 쓸데없는 담쟁이 잎사귀를 쳐다보고
있는게 싫어서 그런다."
"다 그리면 금방 알려줘야 해." 존지는
눈을 감고 쓰러진 조각처럼 창백하게 조용히
누워서 말했다.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는 걸 보고 싶으니까.
난 이제 기다리기 지쳤어. 생각하는 것도 지쳤고.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떠나, 꼭 저 불쌍하고
고달픈 나뭇잎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싶어."
"좀 자도록 해 봐. 난 베어먼 할아버지를 불러다가
은둔한 늙은 광부의 모델이 되어 달라구 부탁해야겠어.
곧 돌아올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움직이지 마."
베어먼 노인은 이 집 1층에 살고 있는 화가였다.
나이는 60이 넘었고, 미켈란젤로가 그린 모세의 수
염 같은 구레나룻이 사티로스같은 얼굴에서
도깨비 같은 몸으로 곱슬곱슬하게 처져있었다.
베어먼은 예술의 낙오자였다. 40년 동안 화필을
쥐어왔지만 예술의 여신 치마자락을 잡을 만큼도
가까이 가보지 못했다.
언제나 걸작을 그린다고 하면서도
아직 시작해 본 적이 없다.
지난 몇 해 동안 이따금 상업용이나 광고용의
서투른 그림을 그린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다.
그는 전문적인 모델을 채용할 힘이 없는 이 마을 젊은 화가들의
모델이 되어 주고 조금씩 돈을 얻어 쓰고 있었다.
과하게 진을 마시면서도 여전히 멀지 않아
걸작을 그린다는 말만 했다.
그 밖의 점에서는 몸집은 작지만 성격이 꼿꼿한
늙은이였으며, 누구나 유약한 것을 보면 사정없이 비웃고,
특히 위층 화실에 있는 두 젊은 예술가를 지키는
감시견을 자청하고 있었다.
수우가 가 보니 베어먼은 아래층의 어두침침한
골방에서 노간주나무 열매의 냄새를 물씬
풍기며 앉아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걸작의 첫 획을 25년이나
기다려온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캔버스가 이젤에 얹혀 있었다.
수우는 노인에게 존지의 망상을 이야기하며
존지는 정말 나뭇잎처럼 가볍고 연약해서,
이 세상에 대한 가냘픈 집착이 더 약해지면
둥둥 떠서 날아가 버리지 않을는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베어먼 노인은 핏발이 선 눈에 눈물을 글썽그리면서
그 어이없는 망상에 큰 소리로 모멸과 조소를 퍼부었다.
"뭐라구!" 그는 소리쳤다. "아니 그래,
다 썩은 덩굴에서 잎이 떨어진다고 저도 죽는다는
그런 얼빠진 소릴 하는 놈이 이 세상에 어딨어?
나는 그런 말 들어본 적도 없다. 싫어, 나는 아가씨의
그 쓸데없는 은둔자의 숙맥같은 모델이 되기는 싫다구.
어째서 너는 존지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게
내 버려두느냔 말씀이야. 아아, 가엾은 존지 아가씨야."
"그 애는 몹시 앓아서 쇠약해졌어요.
그리고 열 때문에 마음까지 병에 걸려서, 별의별
이상한 망상으로 가득 찬 걸요. 좋아요,
베어먼 할아버지. 제 모델이 되기 싫으시다면 필요 없어요.
하지만 전 할아버질 정말로 너무나 변덕스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여자란 금방 저래서 탈이야! 누가
모델이 안돼준다고 그랬나?
가라구, 나도 따라갈테니까. 반 시간 전부터
나는 언제라도 모델이 되어 주겠다고 말하려 했었지.
허, 참! 여긴 존지 같은 착한 처녀가 병들어
누워있을 곳이 못 돼. 멀지 않아 나는 걸작을 그릴게야.
그러면 우리 모두 다른 데로 옮기자고. 정말이야,
그렇게 하자구."
두 사람이 위층에 올라가 보니 존지는 잠들어 있었다.
수우는 커튼을 창턱까지 끌어내리고, 베어먼에게
옆방으로 가자고 몸짓했다.
방에 들어간 두 사람은 겁먹은 듯이 창문으로
담쟁이 덩굴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서로 말없이 쳐다보았다.
차가운 진눈깨비가 쉴새없이 내리고 있었다.
베어먼은 낡은 푸른 옷을 입고는 바위대신
냄비를 엎어놓고 앉아 은둔한 광부의 자세가 되었다.
이튿날 아침 수우가 한 시간쯤 자고 눈을 떠 보니
존지는 흐릿한 눈을 크게 뜨고 내려진
녹색 커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어줘, 보고 싶으니까."하고 그녀는 속삭이는
소리로 명령했다.
수우는 마지못해 하라는 데로 했다. 그런데 보라!
기나긴 밤새 비가 후려치고 바람이 휘몰아쳤는데도
벽에는 아직도 한 장의 담쟁이 잎이 또렷이
남아 있지 않은가! 그것은 담쟁이의 마지막 잎새였다.
그 잎자루 가까이는 아직도 진한 초록빛이었지만,
톱니모양의 가장자리에는 노란 소멸과 조락의
빛을 띠고 대견스럽게도 땅 위에서 20피트쯤
되는 가지에 매달려있었다.
"저게 마지막 잎새야. 밤중에 틀림없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바람소리를 들었거든.
오늘은 떨어질 거야. 그러면 나도
동시에 떨어지는 거야."
"얘, 얘!" 수우는 지친 얼굴을 베개에
얹으면서 말했다. "네 자신을 생각하고 싶지 않거든
내 생각이나 좀 해다오. 난 어떻하면 좋아?"
그러나 존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것은 신비롭고 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영혼이다.
그녀는 우정 및 이 땅과 연결하고 있는
기반이 하나하나 풀어짐에 따라,
그 망상이 점점 더 억세게 그녀를 휘어잡는 것 같았다.
그날도 다 지나가고 해거름이 되어도 그 외로운
담쟁이 잎이 벽에 그냥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가 밤이 되니 북풍이 다시 사납게 휘몰아치기
시작하고 한편 비는 여전히 창문을 두들겨 나직한
네덜란드풍 처마에서 후둑후둑 흘러 떨어졌다.
이윽고 날이 새자, 존지는 사정없이 커튼을
올리라고 명령했다.
담쟁이 잎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존지는 드러누워서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 보았다.
그러더니 가스 스토브 위에서 닭수프을 휘젓고
있는 수우에게 말을 건냈다.
"난 나쁜 계집애였다, 수디." 내가 얼마나
나쁜 계집애였는가 알려주려고 저 마지막 잎새를
저 자리에 남겨둔거야. 죽고 싶어하다니 벌받을 일이지.
자, 그 국물 좀 갖다 줘. 우유에 포도주를 탄 것도
좀 주고. 그리고 아니, 손거울부터 먼저 갖다 줄래?
그리고 내 등에다 베개 몇 개 받쳐 줘. 일어나 앉아서
네가 요리 하는 걸 보고 싶어."
한 시간 뒤 그녀는 말했다. "수디, 난 언젠가
나폴리 만을 그려 보고 싶어."
오후에 의사가 왔다. 의사가 돌아갈 때 수우는
살그머니 뒤따라 나왔다.
"희망은 반반이야."하고 의사는 수우의 떨고 있는
여윈 손을 잡고 말했다. "간호만 잘 해주면 당신이 이겨.
그럼 이제 아래층에 있는 환자를 보러 가야지. 베어먼인가
하는 사람인데 화가 같더군. 역시 폐렴이야. 나이가 많고
몸도 약한 사람인데 갑자기 당했어. 나을 희망은 없지만
오늘 입원하면 좀 편해 지겠지."
이튿날 의사는 수우에게 말했다. "이제 위험은 벗어났어.
당신이 승리야. 앞으로는 영양과 뒷바라지, 이것뿐이야."
그리고 그날 오후, 수우가 침대로 다가가보니,
존지는 누운 채 무척 파란 빛깔의 도무지
쓸데없어 보이는 숄을 만족스러운 듯이 짜고 있었다.
수우는 한쪽 팔로 베개와 함께 존지를 껴안았다.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 귀여운 아가씨. 베어먼
할아버지가 오늘 병원에서 돌아가셨단다.
겨우 이틀을 앓으셨을 뿐이야. 첫날 아침,
관리인이 아래층에 있는 그분 방에 가봤더니
할아버지가 몹시 괴로워하고 계시더래. 신발과 옷은
흠뻑 젖어서 얼음처럼 차갑고. 날씨가 그렇게 험한
날 대체 어디를 갔다오셨는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어.
그러다가 아직도 불이 켜져있는 각등과 언제나
놓여있는 자리에서 꺼내온 사다리와 흩어진
화필과 초록과 노랑물감을 푼 팔레트를 발견한 거야.
그리고 얘, 창밖으로 저 벽에 있는
마지막 담쟁이 잎 좀 쳐다봐. 바람이 부는데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게 이상하지 않니?
아아, 존지, 저건 베어먼 할아버지의 걸작이란다.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진 날 밤,
그분이 저 자리에 그려 놓으신거야."
1890년대의 가족 사진, 왼쪽부터 아내 아솔, 딸 마가렛, 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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