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조선의별감

이모르 2021. 1. 2. 04:56

 

 

 

 

별감은 직책과 소속에 따라

 

대전별감.중궁전 별감.세자궁별감.세손궁별감이

 

따로 있는데 궁중에 크고 작은행사에 동원되었고

 

임금의 행차 때는 어가를 시위하는 일을 맏았다

 

별감은 사치스러운 복장으로 유명했다

 

도성안의 남성 패션을 주도 했던 것은 이들이었다

 

 

 

헤원의풍속화

 

밤길안내:야금모행(夜禁冒行)

 

기방난투:유곽쟁웅(遊廓爭雄)

 

선술집:주사거배(酒肆擧盃)

 

유숙의 대쾌도가 있다

 

 

 

 

야금모행(夜禁冒行)

 

 

별감

 

 

 

밤길안내(야금모행)

 

어느 겨울밤 도성의 겨울밤 별감과 양반 그리고 담배대를

 

물고 있는 기생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 별감은 기생을 관리하는 기부로 기생과 동침을 원하는

 

양반에게 기생을 달려보내는 장면이다

 

노란 초립을 쓰고 홍의를 입은 사람이 별감인데 통행금지

 

시간을 어기고 기생을 데려가는 양반을 보호한다

 

 

 

 

기방난투:유곽쟁웅(遊廓爭雄)

 

 

싸움 말리는 별감 과 매맞은 서생

 

 

 

 

 

기방난투에서 가장 처량해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쪼그리고 앉아 자신을 팬 사람을 째려보며 친구의

갓을 줍고 있는 사람이다

옷에 흙이 잔뜩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맨 땅에 몇 번 굴렀던모양이다

 

 

 

기방난투(유곽쟁웅)

 

별감이 싸움을 말리고 있는데 겉옷인 붉은색 철릭 밑으로

 

푸른색 화려한 옷이보인다 비단으로 추정되는 이옷은

 

대단히 화려하다

 

초립과홍의는 별감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다

 

별감의 화려한 복색은 당대 일반인에게도 잘알져 있었다

 

 

 

 

선술집:주사거배(酒肆擧盃)

 

 

 

별감

 

 

 

선술집(주사거배)

 

혜주막집의 주모와 취객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술자리가 파한 뒤에 집으로 돌아가는 취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허리춤에 손을 넣고 방만한 자세의 동료를 향해 재촉하는 취객

 

역시 의관이 정돈되지 못하고 거나하게 취한 모습입니다.

 

주변 배경이 매우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담 바깥쪽으로

 

다른 집의 기와와 초가지붕이 보이고 대청 뒤편에는 삼층장과

 

뒤주와 백자그릇들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런 세심한 배경 묘사를 통해 옛 한국민가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다.남색 치마를 입은 주모와 바로 그 옆의 홍의(紅衣)를 입은

 

사람의 색대비가 매우 선명하여 시선을 집중시키고, 왼쪽 가장자리에

 

배치되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고 있는 소년의 분홍색 옷과 군데군데

 

가장자리를 장식한 분홍색 꽃나무가 그림 전체를 화사한

 

분위기로 받쳐주고 있습니다.

 

"술잔을 들고 보니 달이 달리고, 술병을 끌어안으며 바람을

 

상대하네 (擧盃懸皓月 抱甕對淸風)." 는 화제가 쓰여있다.

 

 

유숙(劉淑)의 대쾌도(大快圖) 

 

 

 

별감2명

 

 

혜산(蕙山) 유숙(劉淑)의 대쾌도(大快圖) 

이 작품은 한양의 사대문중 동쪽에 있던

광희문(光熙門)의 남쪽에서 벌어진 유희장면을 그렸다고 전한다

화면 중앙에 벌어진 두 패의 씨름(혹은 태껸)판과

이를 둘러싸고 구경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그렸다.

씨름판을 둘러싼 다채로운 인물들의 모습, 자세, 복장은

조선말기 풍속화 중 力作이라 할 만하다. 나막신을

벗어 부치고 장죽(長竹)을 문 노인,

엿 파는 총각,

술파는 노점상,

성벽 구석에 방뇨하는 소년 등이

모두 재미있게 그려졌다

좌상단에 "대쾌도 병오년 꽃이 활짝 핀 시절에 격양세인이 좋은 시절을 그리다

 

(大快圖丙午萬花方暢時節擊壤世人寫於康衢煙月)"라는 글이 있어

유숙(1827-1873) 20 때인 1846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1현재는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후기 저잣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별감이다. 연희판의 기획자이자,

기방의 주인으로써 별감들은 조선후기 문화계의 주역이었다.

조선시대의 통치규범을 확립한 조선왕조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

액정서(掖庭署)란 관청이 있는데, 액정서(掖庭署)

소속된 별감(別監)의 임무는 이렇다.

왕명의 전달과 알현(謁見, 傳謁) 및 임금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궐문 자물쇠와 열쇠의 관리, 궁궐 내정(內庭)의 설비 등의 임무를 맡는다.’

그렇지만 별감(別監)은 그들의 직무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별감을

독특한 존재로 만들었던 것은 별감이 노는 존재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별감(別監)놀이를 주관하는 일을 맡아 하면서 연회 행사장을 꾸미고,

기생(妓生)을 불러 가무(歌舞)를 제공하고, 행사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이 유흥을 즐길 수 있도록 챙기는 일을 했다.

지금으로 본다면 파티 플래너(Party Planner)’ 혹은 이벤트 기획자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들은 기방(妓房)의 기녀(妓女)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존재여서, 화류계를 드나드는 양반들도 별감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기방에서 싸움이 일어나자 주인인 별감을 부르지 않고

포도청 포교를 불렀다

 

<뒷골목을 휘젓고 다닌 조직폭력배 검계’>

조선사회에도 사회악은 있었다. 검계(劍契)와 왈자(曰字)

불리던 문제집단이 그들. 군사조직에 가까운 조직과 규율을 갖췄던 검계,

사실상 기방의 운영자였던 왈자.

이들 때문에 조선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규상이 쓴 장대장전(張大將傳)에 보면 검계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다.

서울에는 오래 전부터 무뢰배들이 모인 것을 검계라 하였다. ‘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모인 것을 이르는 말이다.

검계 사람은 옷을 벗어 몸에 칼을 찬 흔적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낮에는 낮잠을 자고 밤에는 나돌아다니는데, 안에는 비단옷을 받쳐 입고

겉에는 낡은 옷을 입는다.

맑은 날에는 나막신을 신고 궂은 날에는 가죽신을 신는다.

삿갓 위에는 구멍을 뚫고 삿갓을 내려 쓴 뒤, 그 구멍으로 사람을 내다본다.

혹은 스스로 칭하기를 왈자라고 하며, 도박장과

창가(娼家)에 종적이 두루 미친다.

쓰는 재물은 전부 사람을 죽이고 빼앗은 것이다. 양가

부녀자들이 겁간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대개가 호가(豪家)

자식들이어서 오랫동안 제압할 수가 없었다. 장대장이 포도대장으로 있으면서

검계 사람을 완전히 잡아 없애고 발뒤꿈치를 뽑아 조리를 돌렸다.”

 

 

 

별감 복장

 

 

규장각 반차도

 

 

청계천 반차도는 모자이크 타일화 한것이다

반차도는 정조대왕이 화성으로 행차할 때

구체적인 설계도이다  별감들의 호위를 받고있다

 

 

 

구한말 별감

 

 

 

 

구한말의 별감

 

구한말 경비 순라병

 

 

 

경복궁 수비대의 교대의식 홍의를 입은 사람들은 별감 역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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