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낭자의 글입니다
걸레,
걸레 같은년,
걸레 같은 거시키...놈들,
구슬낭자 친정 어머니는 고려 왕 씨다.
양가집에 곱게 자라셔서 태중에 아버님이 서당 친구랑 정혼을 해 놓는
바람에,
조실부모하고 시셋밀로 두쪽밖에 없던 우리 아버지와
결혼을 하게 되어 갖가지 고생을 하시며 살다가..
개성에서 사대문안에 공장직원이 11명이나 되는 국수공장과 살가게
또 잡화가게를 하시고 집안일 돌보는 식모만도 두명이나 되는
부도 누려보시며 살다가 피난을 나오셨다.
전쟁이 잠시면 끝나리라 생각하시고, 6/25 때도 고향에 계시다가
1/4후퇴때 옷가지 몇점과 이불한채와 패물 몇덩어리만 갖고 피신하신것이
영영 이렇게 남한에서 눌러앉게 되셨는데,
연탄공장, 후생사업 쌀가게 잡화가게 하여간
이것저것 사업을 하시다 차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맞물러 언니가
11달이나 병원에 입원을하고 계속되는 차사고와 집안에 우환이 들끓더니
삼년에 걸쳐 가산이 기울고 부도가 나서 지금 돈으로 치면 기 십억의
빚을지고, 집안 식구가 뿔뿔히 헤여지는 지경에 까지 놓여었다.
그 후로 우리 어머니는 밀주를 만들어 밤이면 숨어 나르지를 않나
연탄배달, 신문배달 안하는것 없이 하시다 나중엔 음식점까지 하게
되셨고, 그런 삶을 살다보니 양갓댁 규수는 간곳없이 욕쟁이 아줌마가
된 것 이다
그 와중에도 자식들은 가르쳐야 한다고 우리 오남매를 서울로 유학을
보내셨는데
방학때면 집에 내려가 어머니가 장사하는것을 도와 심부름을 해야했다.
그런데 그때가 한참 꿈많은 사춘기이니 음식점에 쳐밖혀 가게 심부름만 하기는
너무 억울 하기도하고, 힘도 너무들고 하니, 아마도 자연히 가끔씩은 꾀를 부렸으리라
그럴때면 울 어머니는 화가나서 욕을 하시는데
구슬낭자에게 저런 걸레같은년! 아니면 저런 거지같은년! 그런 욕을 하셨었다.
언냐는 그때는 참으로 기분이 더럽고 나빳다. 무식한 어머니가 미웠고
또 어찌 자식에게 그런 욕을 하는 부모가 있단 말인가 하고 울기도 많이
울고 어느땐 고상한 부모로 바꾸고 싶기도 했었다.
해서 자라면서 또 이마큼 어른이 되서 살면서도 구슬낭자는 가능한
나나 내 자석들 입에서 욕을 하지 않고 살아왔고 아마도 집안에서 욕을 한적이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헌데 시방은 오히려 입이 걸어져서 욕을 잘한다 ㅎㅎㅎㅎ
직업상 밑바닥 인생들과 자주 어울리다보니 저절로 욕을 배워
같이 잘하게 되었다(핑게 ㅎㅎㅎ).
걸레..
어느집이던 걸레가 없는 집은 한집도 없을것이다.
그마큼 걸레는 우리가 살아거면서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걸레는 자기를 문지러 헤져지면서 상대의 것을 닦아낸다.
우리가 다 아는 마더데레사 수녀님은,
그분은 우리 삶을 걸레 같이 살라 하시며
걸레란 의미를 아주 좋아 하셨고,그분에겐 걸레란 곧 사랑을
의미 하기 때문이다.
나를 더럽히면서 상대의 먼지(흠)을 닦아내기 때문이다.
그분은 걸레란 곧 사랑이라고 하신다.
보통 우리는 사랑이라 함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과 섹스를 말한다
허나 큰 의미의 사랑인 아카페적 사랑에 이 모든 사랑들이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더 데레사는 당신 자신이 기꺼히 걸레가되어 사셨으며,
걸레란 곧 사랑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랑이라는 옷감은 먼지를 묻힙니다.
사랑은 거리와 골목에 있는 얼룩을 닦아 냅니다.
사랑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 마더 데레사-
우리가 이 생을 살아 가면서
이웃의, 또는 형제에, 친지에, 동료에 눈물과 땀과 얼룩진 흠들과 그늘들을
닦아주고 보듬어 줄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깨끗해질 수만 있다면,
구슬낭자는 이젠 기꺼히 어머니가 던져준 걸레 같은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