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무박 등반을 새벽3시부터 도갑사에서 시작하였다
산행은 순조롭게 이어갔으나 여명의 빛이 보이고 일출이
지나도 한치앞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짖은 해무(안개)가 산 전체를 덮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능선에 섰을 때 서서히 안개가 거치며 속살을 보여주는데
절경에 감탄하게 된다
중국의 명산 황산을 다녀온 후 처음 느끼는 감동이었다
멀리 큰 바위얼굴이 나타났다 바위얼굴을 보며
중학 영어교과서에 나오던 “나다니엘 호손”의 큰바위 얼굴이
생각났다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마을에 인위적 조각품이 아닌 자연의 신비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바위가 있었다
바위의 거룩한 형상에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큰바위 얼굴이라 불렀다
그의 숭고하고 웅장한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경배했고 반드시 그를
닳은 사람이 마을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마을에 살던 소년 어니스트 역시 그 전설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며
자신도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며 그를 기다렸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자.장군.정치가.시인을 만났으나 모두 어니스트가
기대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바위얼굴”이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집으로 돌아가며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사람이 큰바위 얼굴을 가지고 나타나기를 기도한다
미국의19세기 작가 네새니얼 호손의 큰바위얼굴의 실제 모델이었던
미국 뉴햄프셔주 프랑코니아 주립공원 내
자연 암석인 “신의노인(The old man of the mountain)상이 폭풍우로
붕괴되어 사라졌다
공원내 화이트마운틴의 정상 부근에 이마에서 턱까지 13m의 길이로
형성된 이 암석은 그동안 세계에서 사람의 얼굴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평가를 받아 왔으며 매년 연인원 1백만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한다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호손은 1850년에 “주홍글씨”를 발표한다
호손은 인간의 죄의식과 내적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죄악.양심등의
문제를 탐구하는데 노력을 기울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자란 청교도 주의의 전통을 계승하여
도덕적 종교적 죄악에 빠진 사람들 자기 중심적 고독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내면을 도덕 종교 심리 세가지 측면에서 엄밀히 묘사하였다
‘큰바위얼굴“에서 강조한 호손의 사상은 인간의 가치는 돈이나 명예
권력등의 세속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탐구를 거처
얻어지는 말과 사상 그리고 생활의 일치를 강조한다
국난이 있을 때는 큰바위 얼굴이 나타난다
성웅 이순신의 큰얼굴 안중근의사의 큰얼굴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그렇게 염원하던 큰바위 얼굴을
볼수 없다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시키는 큰바위 얼굴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소원〉
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인
1947년 서울에서 발표된 노래이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일제강점기에 여러 문예 분야에서 활동하여
'천재 예술인'으로 불린 안석주가
가사를 썼고, 안석주의 아들이며
당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재학 중이던
작곡가 안병원이 곡을 붙였다.
본래 한국방송의 삼일절 특집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발표된 곡이었다.
이노래가 발표되었던 1947년3월1일1에 좌우익
세력간 충돌이 일어났었다.
처음 발표될 때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 / 꿈에도 소원은 독립'
이라는 가사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남북의 분단이 기정사실화되면서,
교과서에 노래가 실릴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가사가 바뀌었다.
꿈에서까지 통일을 그리면서 빨리
통일이 오라고 열망한다는 내용이다.
본래 남한에서만 불리던 이 노래는 1989년 임수경이
북조선을 방문해 부른 이후 널리 퍼져,
남북에서 모두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다.
남한에서 '이 정성 다해서 통일 /
통일을 이루자'는 2절 부분을 북조선에서는 '
이 목숨 다바쳐 통일 / 통일을 이루자'라고 불러,
남북의 가사가 약간 다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양 정상인
김대중과 김정일이6.15남북공동선언에
서명한 후 수행원들과 손을 잡고 함께 부르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2000년5월 서울에서 열린 평양어린이예술단
공연에서도 예술단은
마지막 순서를 통해 이 노래를 불렀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소에도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는 연유로,
2009년8월23일에 열린 김대중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 중 조가(弔歌)
중 하나로 연주되기도 했다.
경기도 이천시에 작곡자 안병원이
직접 쓴 악보와 가사를 새긴
노래비가 건립되어 있다 -위키백과인용-
우리의 소원
안석주 작사 안병원 작곡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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