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이야기

순한양의해

이모르 2021. 1. 8. 17:16

 

 

 

올해는 양의 해이다

예부터 양은 순하고 착한 동물로 해석되었다

유목민이나 서양의 가축은 이 많이 방목 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엔 양이 일반화 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

양은 유목문화에서 더 익숙한 동물로 농경문화였던 한반도에서는

20세기 이전에는 거의 볼수 없었던 동물이다

따라서 우리문화에서 말하는 양은 유목민들의 면양(綿羊)의 모습이

아니라 산양이나 염소의 형태를 가진다

 

 

 

세종옛돌 박물관

 

양은 무룹을 꿇고 어미젓을 먹는 습성 때문에 효를 상징한다고

한다

왕릉을 지키는 석양을 만들어 사자를 지키게 하였다

궁궐은 살아있는 왕의 거처로 내시들이 시중을 들지만

왕릉은 같은 맥락 이지만 죽은 왕의 거처다 따라서 호위하는

석상과 시중드는 내시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석상은 석호와 석양

으로 만들어졌다

 

 

 

 

石羊은 서있는자세이고 石虎는 앉은 자세인데 일반적으로 4쌍이

봉분 주위를 호위하고 있다

석양과 석호를 구별하여 만든 이유는 내시도 文武를 담당하는

음양을 나누어서 조형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용인시 호암미술관 (湖巖美術館)

 

8세기 중엽 당나라 의 영향으로 분묘 주위에 석호(石虎) 석양(石羊)

문석인(文石人)무석인(武石人)이 배치되고 석마(石馬)가 배치되기도 한다

石羊은 수염 머리 궁둥이 등이 세부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고

등과 궁둥이에는 사물이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입체감(立體感)

잘 나타나 있다 (안내문)

 

 

 

아래글의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양띠해는 기미(己未), 신미(辛未), 계미(癸未), 을미(乙未), 정미(丁未), 등

육십갑자에서 순행한다.

양(未) 은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로서 시각으로는

오후 1시에서 3시, 달(月)로는 6월에 해당하는 시간신이며,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지키는 방위신이다.

양의 성격이 순박하고 부드러운 것처럼 양띠도 온화하고 온순하여

이 해에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는다는 식의 속설이 많이 있다.

양하면 곧 평화를 연상하듯 성격이 순박하고 온화하여 좀체로 싸우는 일이 없다.

양은 무리를 지어 군집생활을 하면서도 동료 간의 우위다툼이나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갖지 않는다. 또,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습성도 있다. 성격이 부드러워 좀체 싸우는 일이 없으나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多血質)이기도 하다.

 

 

상형문자(象形文字)인 양(羊)은 맛있음(味),

아름다움(美), 상서로움(祥), 착함(善), 좋음 등으로 이어진다.

즉, 큰 양이란 “大羊” 두 글자가 붙어서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자가 되고,

나아(我)의 좋은 점(羊)이 옳을의(義)자가 된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양의 습성과 특징에서 착하고(善), 의롭고(義), 아름다움(美)을

상징하는 동물로 양을 인식했다. 즉 양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념은 순하고

어질고 착하며 참을성 있는 동물,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수렴된다.

 

 

양은 언제나 희생의 상징이다.

양의 가장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속죄양(贖罪羊)일 것이다.

서양에서는 사람을 징벌하는 신에 대한 희생물로 바쳐졌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제사용으로 쓰였다. 양은 또한 정직과 정의의 상징이다. 양은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이 있다.

 

속담에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양처럼 양띠 사람은

너무 정직하여 부정을 못보고 너무 맑아서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천성이 착한 탓에 해로움을 끼칠 줄도 모르면서 오직 희생돼야 하는

양들을 어떤 이는 우리 민족사에 비견하기도 한다. 구한말 지사(志士)

김종학 선생은 양의 슬픈 운명을 우리 민족사에 찾는 듯이 이렇게 외치기도 했다.

흰빛을 좋아하는 우리 선조들은 심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산양 떼를 빼어 닮아 오직

 인내와 순종으로 주어진 운명에 거역할 줄 모르고 남으로, 남으로 강자에게

 쫒기여 더 갈 수 없는 곳까지 밀려왔건만 동서의

강자들은 또다시 이빨을 가니 슬프다

양떼들이어! 또다시 얼마만한 곤욕을 치러야하고 못 참을 치욕을

사위어야한다는 말이냐! 뿔을 갈자.

 

그리고 행진을 멈추자 끝간 데까지 왔으니 예서 더 갈 곳도 없지 않는가.

군장(群長)만 따라 가며 허약한 뒤를 보일 것이 아니라 군장을 중심으로

좀더 둥글게 뭉쳐 날카로운 뿔로 울타리를 치자. 아무리 사나운

이리떼라도 어찌 감히 넘볼 수 있겠는가! “ 물론 개화기 우리나라의

무력함과 열강국의 지나친 간섭에 대한 통탄을 토로한 울분이었지만

양과 우리 민족사를 비유한 한 면을 살필 수 있다. 양(羊)은

글자형태로는 ‘상(祥)’과 음(音)으로는 ‘양(陽)’과 서로 통하여 길상의

의미로 일찍부터 한국 문화 속에서 등장한다.

 

 

터키의 양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