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1일
겨울의 산책은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과는
다른 운치를 갖는다.
그것은 나뭇잎 떨어진 가지 사이로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관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낙산공원 정상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 이름모를 새는 홀로 있다
먹이를 찾는 그들은 먹거리 많은 여름보다
갑절은 힘들게 움직여야 배고픈 추위를 이겨갈 것이다
그런 모습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나라는 사람은
자못 감상적인 모습으로 시적인 감수성을 갖는다.
짝을 이룬 산새는 행복을 노래한다.
왼 일인지 홀로 있는 새는 쓸쓸하다
부부가 정릉을 거처 낙산공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漢陽都城은 조선시대 서울을 둘러싼 도성이며
조선시대에는 한성 이라고 불렀다 좁은 의미로 도읍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지칭하나 넓은 의미로는 성곽과 그안의 공간을
가르킨다.
1396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축조되었고 세종 숙종 시기
대 보수 공사로 성곽의 축조방식에 차이가 있다한다
태조4년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정도전에게 명하여
성터의 조사 측정을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태조5년 음력1월9일 기공식을 올리고 春秋2회 걸처
전국에서 19만7천4백명을 동원 전후 98일 만에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따라 성의 축조를 완료하였다 한다
성이 낙성된후 배수지로 5칸 수문 2칸수문 등을 만드는 한편
성곽의 관문으로 숙청문.(북대문) 흥인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과 홍의문(동소문) 광희문(수구문) 창의문
소덕문(서소문)을 합해 8문을 완성하였다
정릉을 거처 낙산성으로 들어선다 멀리 인수봉이
그림처럼 보이고 외국인을 비롯하여 산책을 하는 사람
들이 많다 중국인들이 많아 동대문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느냐 묻는다 어디서 왔느냐 묻는데 홍콩에서 왔다고
말한다
남산을 가르키며 성곽을 따라 가라한다
그들은 성곽과 풍경만을 찍는게 아니었다
성곽옆으로 달동네처럼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한참을 촬영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호기심이 많다
잘 다듬어진 관광지 만큼 숨겨져 있는 서민의 애환도
볼거리로 비춰질 것이다
우리는 동남아 여행시 신변의 위험 때문에 자유투어는
감히 염두에 두지 못하지만 우리나라는 보안이 잘되어
있는 나라이다
한성대 구내로 올라 흥인문(동대문)앞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인생무상으로 노래 황성옛터가 생각 났다
개국공신으로 한성을 축조한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개성에도 4대문이 있어 고려의 내성이 있었으나
거기서 왕자의 난 형제간의 혈육전쟁이 일어났다
일제의 무자비한 성곽회손으로 개성에는 지금 남대문만
우두커니 서있다 한다
한성의 복구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은 많은 성곽들이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낙산 걷기를 마치고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고
동대문옆 꽃 도매시장을 구경 하였다
그리고 양란을 저렴한가격 정말 싸다
1포기 1만원도 않한다 1포기를 구매하여
집에와 화분에 담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화롭다
겨울과 사투를 벌리는 녹색식물
여기까지는 정릉이다
황성옛터의 황성은 왕의 성을 뜻하는 것으로
황성옛터로 널리 알려진 개성 만월대(滿月臺)는
고려의 옛궁궐이다
이 노래가 창작된 배경에는 1928년 악극단
취성좌(후에 조선연극사)단원들이 만주 일대에서
신의주 평양까지 공연을 마치고 비가내려 공연이
불가하여 여관에 머물 때 극단의 배경음악 연주자였던
바이올린이스트 전수린과 왕평이 만월대 옛터를 찾아갔으나
플벌래 우는 소리만 쓸쓸히 울려퍼질 뿐이었다
두사람은 권력의 무상함과 나라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을 생각하면서 그초라한 옛터의 모습이 지금 일제치하의
서글픈 민족의 서글픈 신세와 다를바 없음을 깨닫게 되어
여관으로 돌아와 만월대의 밤을 회상하며 전수린은
바이올린을 들고 즉흥적으로 연주하여 오선지에 옮겼고
그 멜로디에 왕평이 가사를 붙였다
1928년 악극단 취성좌가 순회공연을 마치고 서을로 돌아와
극장 단성사에서 연극공연의 막간을 이용해서 이애리수(당시18세)
가 이노래를 불러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애리수는 일약 스타가되어 첫국민가수로 불리게 되었고
사람들은 연극보다 이애리수의 노래를 듣기위해 극장에 모여들어
늘 초만원을 이루었다
또한 이노래는 망해버린 고려왕조의 사적을 통해 역사적 비애를
떠올리게 하고 곧 일제에 의해 짓밟혀 아무 소망없는 황무지
처럼 되어버린 식민지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민족정서가 강한노래였기에 일제 당국은 이노래가 민족적 집단행동으로
발전할가 두려워 주시하였고 공연이 있을 때 마다 이노래로 눈물의
합창을 하자 종로서의 임석경관이 무대로 올라가 공연을 중단시켰다
후에 금지곡으로 지정 강력히 탄압하였다
이노래의 작곡 작사가는 종로서에 연행되어 밤샘 조사를 받았고
대구의 한보통학교에서 교사가 이노래를 가르키다 파면되었고
가수 진방남(작사가 반야월)이 신인가수 시절 이노래를 부르다
순사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실로 황성옛터는 일제형극의 36년 그모진세월속에 함께울고
몸부림치며 불렀던 우리민족사에 길이 남을 엣노래이다
출처:http://www.koreastory.kr/bbs/board.php?bo_table=songs&wr_id=2
황성옛터
(왕평작사 전수린작곡 이애리수노래)
1절
황성 옛터에 밤이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엽다 이 내몸은 그 무엇 찾으려
덧없는 꿈에 거리를 헤메여 왔노라
2절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외로운 저나그네 홀로 잠못 이뤄
구슬픈 벌래 소리만 말없이 눈물져요
3절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발길 닿는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어도
아-- 한없는 이 심사를 가슴속 깊이 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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