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잔놀이
차전(車戰)이란 명칭은 속어로 동채싸움,
동태싸움이라고 불린다. 동채싸움과 동태싸움은
같은 어원으로 동태는 동채의 와전(訛傳)이며,
동채란 수레바퀴의 방언이다.
차전놀이는 1937년까지 연중행사로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낮에 강변 백사장이나
벌판에서 거행되다가 일제에 의하여 금지되었다.
8·15광복 후 1958년 건국 10주년 기념행사로서
전국 민속예술 제전이 열렸을 때 부활되었고
1969년 안동 차전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면서 차전놀이의 대표격이 되었다.
고로(古老)들의 구전(口傳)에 의하면 후삼국시대
말기에 안동에 권행(權幸)·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의 세 장군이 있어, 후에 고려 태조가 된
왕건을 도와 견훤을 패하게 하였는데,
그때 견훤과 합전교(合戰郊:현 안동시 송현동)에서
싸울 때 큰나무를 묶어서 한 덩어리를 만들어
여러 사람이 어깨에 메고 이를 앞세워
진격하였다고 한다.
이 전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정월 보름날을 기하여 나무묶음(동채)을
메고 싸움하는 놀이를 하였다.
차전놀이는 동·서편으로 갈라서 하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동채를 만들 때는 여러 가지 금기가 있다.
20∼30척이 되는 단단한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는 멀리
산간지방에까지 파견되며, 지정된 나무는
깨끗하게 가져와 두 개를 같은 길이로
자르며, 마사(麻絲) 등의 줄로 차머리를 ×형으로 졸라맨다.
사다리처럼 생긴 동채 위에는 사람이 서 있도록
방석만한 자리를 마련하고 작전에 열중케 한다.
동채 머리에는 고삐를 매어 대장이 잡고
지휘할 수 있게 하고 판자 뒤에는 나무를 X자 모양으로
하여 4귀를 체목에 묶어 동채가 부서지거나
뒤틀리지 않게 한다. 동채꾼은 대장·머리꾼·동채꾼·
놀이꾼으로 이루어진다,
대체로 25~40세의 남자 500여 명이 동서로 갈리어 승부를 겨룬다.
동부의 대장을 부사(府使), 서부의 대장을 영장(營將)이라고
하며 싸움할 때는 동채와 동채가 서로 맞닿게 한다.
그리고 승부 방법은 상대방의 동채의 앞머리를
땅에 닿게 하거나 상대방의 대장을 머리꾼들이
끌어내리거나 자기편 동채의 앞머리가 상대방의
앞머리보다 높이 올라가게 하면 이긴다.
놋다리 밟기:놋다리 밟기란 부녀자들이 행하던
놀이로 기와밟기, 동교, 인다리 등으로 불려진다.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허리를 굽히고 앞사람의 허리를 두손으로 껴안아
긴 사람다리(인다리)를 만든다.
다리를 만든 다음, 맨 뒷 사람부터 한 명씩
순서대로 건너게하고 다 건넌 뒤는 내려서
그 자리에 허리를 굽히고 다시 놋다리를 구성한다.
놋다리 밟기에 참가하는 여인들은 신분, 연령에
구애없이 누구나 참가하여 즐길 수 있었다.
연날리기 : 각가지 모양의 연을 하늘 높이 띄우는
놀이로 정월 초하루 부터 대보름 사이에 주로 즐겼으며
그 해의 재난을 멀리 보낸다는 뜻에서 연줄을 일부러
끊어 띄우기도 하였다.
그외- 더위팔기, 수해쌈, 사자놀음, 쥐불놀이
1. 정월 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로써 일 년 중
처음 맞는 보름날이다.
이 날은 일 년 중 첫 보름이라 중요시하며
그 해 농사의 풍년, 흉년과 그 해의 좋고 나쁨을 점쳤다.
새벽에 귀밝이술을 마시고 부럼을 깨물며 오곡밥,
약식을 먹는다.
또한 쥐불놀이, 달맞이 등 여러 가지 민속 놀이를 한다.
2. 지신 밟기
- 동네 사람들이 농악대를 조직하여 집집마다 다니며
땅을 다스리는 신에게 인사를 드리고 못된 귀신을
물리쳐 한 해 동안 좋은 일만 생기고 풍년을 기원하였다.
집 주인은 음식을 마련하여 농악대에게 대접하였다.
3. 달집 태우기
- 달이 떠오를 때 동네 사람들이 넓은 빈터에
모여 볏짚을 쌓아서 만든 달집을 태웠다. 그리고
농악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추고 타오르는
달집 주변을 돌면서 한 해 동안 마을에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기원하였다.
4. 복조리 걸어두기
- 대보름날 아침에 복조리를 사서 걸어둔다.
이것은 복조리를 걸어두면 복이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 줄다리기
짚 또는 칡으로 큰 줄을 수십 발이나 되게 길게 꼬고
줄 양 머리에는 수많은 작은 줄을 매달아 몇몇 마을을
둘로 편을 갈라 줄을 서로 잡아 당겨 승부를 가린다.
줄다리기에서 이기는 편이 풍년이 든다는 믿음이 있다.
여러 마을 사람들은 준비한 음식을 먹고,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2. 달맞이
달이 동쪽에서 솟아오를 때면 사람들은 달맞이를
위하여 뒷동산에 올라간다. 동쪽 하늘이 붉어지고
대보름 달이 솟을 때 농부는 풍년 들기를 기원하고,
처녀, 총각은 시집 장가 가기를 빌었다.
그러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믿었다.
달빛이 희면 비가 많고,
붉으면 가뭄이 있으며, 진하면 풍년이 들고,
달빛이 흐리면 흉년이 들 것이라는 1년 동안의
농사를 미리 점치기도 하였다.
3. 횃불싸움
마을의 청년들이 가족 수대로 싸리나 짚으로
횃불 막대를 만들어 농악을 울리며 산 위로 올라가
서로 마주보고 선다. 달이 떠오를 때 다려 나가
싸우다는 경기이다. 진 편은 그 해 흉년이 들고
이긴 편은 풍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4. 쥐불놀이
밤에 들에 나가서 논둑, 밭둑을 태우는데
이것을 쥐불놀이라 한다. 쥐불놀이는 못된
귀신을 쫓고 신성하게 봄을 맞이한다는 것과 잡초를
태움으로써 해충의 알을 죽여 풍작을 기도하며
봄에 새싹이 날 때 거름이 되도록 한다.
또 쥐불놀이를 하면 1년 동안 병이 없고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5. 잰부닥불 피우기
- 아이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1년 동안 건강을 빌며
불 위를 자기 나이만큼 뛰어 넘는 놀이다.
6. 더위 팔기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서로 상대방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하고 말하여 더위를 판다.
이렇게 하면 그 해 일 년 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날은 다른 사람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얼른 <내 더-위>라고 말한다.
1. 부 럼
부럼은 먹는 음식 이름이 아니고 잣, 호두, 밤,
은행 등을 깨무는 것을 부럼이라고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물기도 하지만 노인들은 이가 단단하지
못하므로 몇 개만 깨문다. 여러 번 깨물지
말고 단번에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부럼을 깨물면 일 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고 이가 튼튼해진다고 믿었다.
2. 오곡밥
쌀, 보리, 조, 콩, 기장의 다섯가지 곡식을
넣고 지은 밥을 말합니다.
오곡밥을 먹게 된 유래는 약식에 들어가는
잣, 대추, 밤 등의 당시의 평민들은 구하기
어려운 재료였거든요.
그래서 엄두가 나지 않아서 대신
오곡밥을 지어먹게 된 거랍니다.
세 집 이상의 것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해서 집집마다 서로 나누어 먹었답니다.
3. 귀밝이술
보름날 아침에 마시는 술로서 데우지 않은
술 한 잔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또
그 해 1년 동안 즐거운 소식을 듣는다고
하여 남녀, 늙은 사람 젊은 사람 모두가 마셨다.
4. 약식
약밥 또는 약반이라고도 해요.
이걸 먹게된 이유는 신라시대에 소지왕이
정월대보름날 경주 남산 기슭의 천천정(天泉亭)이라는
정자로 행차를 하는중에, 갑자기 까마귀가 날아와서
봉투 한 장을 떨어뜨리고 날아갔답니다.
신하들이 주워서 봤더니 겉면에 "이걸 뜯어보면 2명이 죽고,
안보면 1명이 죽는다"고 써 있었대요.
이 글을 보고 한참 고민을 했겠지요? 그러다
한 신하가 '1명은 왕을 일컫는 것'이라고
주장을 해서 열어보았더니, "당장 궁중으로
돌아가서 내전 별방에 있는
금갑을 쏘시오"라고 쓰여 있었대요.
그래서 바로 궁으로 돌아가서 금갑에 대고
활을 쏘았더니 왕비와 한 신하가 나오는거에요.
심문을 했더니 둘이서 역모를 꾀하는 중이었더랍니다.
그래서 왕은 둘을 처형하고, 목숨을 살려준 까마귀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매년 1월 15일을 까마귀
제사날(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귀한 재료를
넣은 검은 밥, 즉 약밥을 지어서 제물로 바쳤답니다.
모셔와 편집하글입니다
정월대보름
(전통놀이) 차전놀이
안동차전놀이(Chariot Game of the Andong Area)
전통 줄당기기
전통 줄당기기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지 맥큔선교사 한국사랑 (0) | 2021.01.22 |
---|---|
안중근을 존경한일본인 (0) | 2021.01.22 |
불교4대성지 (0) | 2021.01.22 |
반야심경과 삼장법사 (0) | 2021.01.22 |
현장법사의탄생비화 (0) | 2021.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