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하여/ 평보
일장 새벽
먼데서 들리는 것 같기도하고 혹은 가깝게 들리는 것
같기도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이어졌다
참수리나무 숲속에서 마치 호랑이의 안광이
발광하듯 언덕밑 영채를 노려보고 있는 것은 바우였다.
그는 인간의 형상이라기 보다 악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왼쪽 귀는 떨어져나가
선열이 흘러 목줄밑으로 엉켜붙어 있었고 머리는 산발하여
간신히 새끼줄로 묶어놓았다.
울산성 종자였던 바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영감님께서
저렇듯 비굴하게 왜병들에게 이끌려 가는 것은 모를일이었다
관군사열시 그 도도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우리같은 상것들이나
하는것이지 글줄읽은 君子들이
저리할줄은 모를일이었다,
그리고 어디로 왜 끌려가는지 그것보다 더 급한 것은
꿈에도 못잊을 언년이가 붙잡혀 가고 있는 것이다.
적장고니시는 時時刻刻 으로 동래성을 압축 포위하고
있으며 부사 송상현에게
항복을 압박하고 있었으나 결사항전으로 철통같은
수비를 하는 동래성을
함락하기위하여 부장을 시켜서
울산성을 함락시키고 앞뒤에서 협공을 할참이였다.
왜병의 공격을 받을 때 쉽게 항복한 영감을
바우는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군역은 양반들은 면제되고 상것들의 차지지만
바우 또한 예외는 아니여서
관군에 있다가왜군에 포로가된 관군 수십명이
곡식창고의 식량을
소달구지에 싣고있을 때 언년이와 영감께서
끌려가는 것을 보고는 기
회를 엿보아 탈출해서 일행을 쫒고있었다.
언년은 관노였다
바우는 어릴때부터 같이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흠모하였고
봄이면 산딸기를 여름이면 머루 다래를 가을이면
으름을 남몰래 전해주던
바우를 언년이는 이미 지아비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바우는 꽃봉우리
모양 피어있는 언년이 에게 오누이같은
정마저 갖고있는터이었다.
뒤밟아 오는도중 야밤 기습으로 왜군수십을
죽이고 부상으로 귀가떨어져
나가고 어깨에 상처가 있는것조차 몰랐으며
요기를 한 것은 언제인지도
모를일이었으나 언년의 생각으로 짐승모양
숨어있는것이었다.
그들이 이동하는것을보면 남쪽이 분명한데
모를일이었다 날이 저물자 그들은 영을 세우고쉬고 있는것이었다
그는 중앙의 막사로 언년이 끌려가는
것을 보았고 기회를 엿보아 구출 할 량으로 떡갈나무 밑에
납작업드려 있는것이다.
그는 어림잡아 子時는 되었다 싶을 때
구렁이기듯하며 막사까지 왔다.
경계병이 먼산을 보고있을 때 그는 뒤에서 달려들어 입을막고
단도로 목줄기를 세차게 내 찌르니 소리없이 주져앉고 말았다.
검을 움켜쥐고 재빨리 중앙막사로 돌진하여 입초선
두놈의 목을치고는 안으로 들어가는데
왜장이 놀라 벌떡일어나느것을 목을베었다
그것은 찰라에 일로서 그는 언년이를 어깨에 메고
횃불을 이리저리
던저 막사마다 불을 질렀다
여기저기서 왜군들이 右往左往 할 때
왜장하나가 큰소리로 호령호령하였는데 그것은
분명 대오를 추스려
칩입자를 잡으라는 긴박한 명이 틀림없었다.
횃불하나를 馬舍에던져넣고는
죽어라내닫기 시작하였다.어디서 그런힘이
나는것인지.모를일이었다.
이근방 지리는 너무나 잘아는 바우가 아니던가
언덕에 올라 보니
횃불든 왜병들이 분주히그를 수색하고 있었다.
언년이 신음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내려주이소 구마 .그라고 내는 짐만되니 여기서
내를 죽이고 어여 도망하이소>
언년이 왜장에게 수모를 당하고 죽기를 바랄뿐이었다.
<인자는 말이다 니깡내깡 살아도
같이살고 죽어도 같이죽자 앙이가>
벌써 먼동이 터오기 시작할 것 같았다,
날이 밝으면 왜놈들의 번개소리나는 연장으로 쏘아댈것
이므로 조금이라도 더가야했다,
그는 언년을 업고 뛰었다 .뒤에업힌 언년은 넓은
바우의어깨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사람대접
한번 받아본 적이없는
그가자기를 위하여 목숨걸고 구하여 달리는 바우는
만나본적없는 아버지와도 같았다.
그는 언양쪽으로 해서 청도쪽으로 가는것이었다.
산중턱에 쉬어가기를 위해
언년을 내려놓고는 그제야 너무 굶주림에 지처있읍을 알았다
산열매를 닥치는대로
거두어 언년에게 주고허겁지겁 입으로 구겨넣고 있을 때
언년이 입을떼었다.
<어제 막사에서 통역하는사람이 말입니더 우리사또보고
동래성의 비밀통로로 안내하라
하든데예><모라꼬 동래성이라 캤나?>
이름모를 새는 청아하게 조잘대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바우는 생각했다.저들은 필시 영감님을 앞세워
동래성이라 하는데를 함락시키려
함이 목적이라면 남쪽으로 내려갔을것이다.
그전 영감님을 수행하여 부산고을을
갔을 때 동래성을 보지 않았던가.아!!
그곳은 아직도 항복을 않하고 싸우고 있단
말인가?
비밀통로를 알으켜 주면성안에 있는
백성들은 어찌되는가?.
바우는 언년을 생각했다 벌써 초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산중 간신히 알몸
만 가린 그녀는 떨고만있었다.어떻게 하든
그녀에게 옷을구하여 입혀주어야했다.
그리고
동래성으로 달려가 위급사항을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성을 그렇게 쉽게내줘 항복
하고 임금님과 백성을 배반하는 영감님과는
전혀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언년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기시작하였다
때는 초 여름 이라 앵도 산딸기등
산과 들에 먹거리가 있었다
보기는 아직 평온해 보이는 마을로 들어섰다.
그곳은 아직 왜적이 닫지를 않았지만 전쟁의
소식이있었는지
을시년 스럽고 사람의 내왕이 없었다.빈집들이다
이곳까지 벌써 왜놈들이 왔단 말인가?
큰집을 찾아 들어가도 급하게 피신한 모양이어서
어지럽게 옷가지들이 널려있었다.
우선 언년에게 남장을 입혔다.머리두건까지
질끈감기고나니 영락없는 아이 동자다.
요기할 것을 찾아우선 바랭에 넣고는 마당으로
내려설 때 많은 군중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급하게 뒷담을 넘어 언덕으로 치닫다가
마을앞 개여울쪽을 건너는 왜구의
대부대를 보고는 너무도 놀랬다. 말탄 장수들
뒤로 끝없이 이어지는
번개치는연장을 든병정들 칼을뽑아들고 호령하는 수장들
그수는 이제껏 세상에 태어나 보지못했던
대부대의 이동이었다.
그들은 정신없이 언덕을 넘어 산속으로 피신하여
그들의 이동을 보고있었다
아!!!!!!!!!우리의 관군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라가 위태로울땐 의인이
난세를 구한다 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그들을 보고 바우는 가슴이 마구
뛰고있었다.
저쪽 낙동강 물은 힘있게 흐르고 있었다.
왜구의 짖밟힘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도히흐르는
강물을 무심코 처다보던 바우는
언년을 어찌할 것인가를 생각중이었다.
아 아 이별
늦봄 세찬 바람으로 추위와 허기에 지친
서로에게 의지한채
불안한 적병들이 언제 나타날까 공포는 한없이
그들을 괴롭혔다.
사랑한다는 것 목숨보다 더 중한 언년을
숨기고 동래성으로 향하려고
했는데 이미 왜군 대부대가 이동하는 것을
보고는 그는 흐르는 눈물을
어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동래성이 함락된 것이었다..
산길을 넘어 암벽을 타고 대부대를 앞서 있었다.
둘은 서로가 끌어주며 험한 바위산을 사력 다해
넘어 상주 근방에 와있었다.
도처에서 불쌍한 백성들의 도탄에 빠져 울부짖는
소리로 그는 귀를 막고 있었다.
이렇듯 빠르게 왜군이 진격 할 줄을 몰랐다.
왜군이 울산 성을 공격 할 때가 불과 7일전인데
이곳까지 와 있는 것이다.
강이 나타났다.
강가 마을엔 피난을 하였는지 인적이 없었다.
나루터에 쪽배가 매어 있었다. 언년을 태우고
삼 줄을 풀려 는 순간 강 뚝 으로
왜병 척후대 7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총을 겨누고 있었다. 바우는 삼 줄을
배위로 던져놓고 배를
밀어 강으로 떠밀고는 사력을 다해 정자나무
쪽으로 뛰었다.
왜병들은 그를 쫒아 내닫는데 쪽배는 언년을
태우고 강 복판으로 가고 있었다.
그의 울부짖는 소리가
산을 돌아 메아리 처 강물을 울렸다.
큰 정자나무를 끼고 돌던 바우는 선두에 선
왜병의 턱을 일갈하여 칼을 뺏고는
에워 싸는 무리들에게 포위되었다.
처절하게 싸우다 일곱 개의 칼에 찔리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멀리 가거라.....
눈물 속에서 언년이 보였다.
“당신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엇이던
잘하고 내게 언제나 사랑으로
대해주던 님 ............ “
강 복판에서 바우의 장렬한 죽음을 본 언년은
강물로 몸을 던졌다
물속에서 야생화를 든 바우가 보였다,
“이꽃을 당신께 드립니다. 언제나 청초한
산동백꽃 처럼
아름답던 내님......................
임진왜란 개전초
1592년 4월13일 일본의 조선침공 선봉군인 제1번대 1만 8,700 명
전함 700여대 분승 쓰시마 이즈라항 줄발
1592년 4월 14일 새벽 일본군 제1군 부산진 상륙시도
1592년 4월 18일 제2군 기요 마사 상륙
1592년 4월 19일 구로다 나가마사 제3군 상륙 시작으로 4.5.6.7군
선봉 5만2.500명 이6일만에 부산에 상륙하였다
송상현(宋象賢, 1551년 ~ 1592년 4월 13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작가이며 임진왜란
때의 장수이다. 임진왜란 초기 동래성 전투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과 교전하다가
패전 살해되었다. 왜적은 그를 포로로 사로잡아 항복을 강요하였으나
항복하지 않자
처참하에 살해하였다. 자는 덕구(德求), 호는 천곡(泉谷)·한천(寒泉)이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1570년(선조 3) 진사시에 입격하여 진사다 되고, 1576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후 경성판관(鏡城判官) 등을 지낸 뒤 1584년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호조·예조·공조의 정랑(正郞), 공조좌랑과 군자감(軍資監)의
정(正) 등을 지냈다.
1584년에는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91년(선조 24년) 동래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부산이 함락되고, 이어 동래에
쳐들어온 왜병과 싸웠을 때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관복을 갑옷 위에 입고 북쪽의 임금께 절을
올린 후 성문의 누각에 앉아 태연히 잡혀 죽었다.
적장이 그의 충절에 탄복하여 송상현을 살해한 자기
부하를 잡아 죽이고, 그를 동문 밖에 장사 지내 주었다 한다.
그의 첩인 김섬(金蟾) 등도 그를 따라 순절하였다.
그의 시신을 찾지 못했으므로 일각에서는 그가 정발과 함께
일본군에 투항하여 일본군 장수가 되었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그 후 조정에서 그 아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예관을 보내 제사를 지내 주었다
부산에 수안역 공사를 발굴하면서 동래성 성곽과 해자에
가라앉아 있던 유물이 발굴된적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동래성 복원도 입니다. 남문 근처의 일부
성곽터와 해자가 발굴 되었습니다.
주로 인골이 많이 발견되었는데요 여자와 어린아이 인골도
상당수 있는걸로 보아 동래성 안에 대피했던 주민 전체가 살육
당했다는 기록이 맞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인골과 함께 도자기,수저등 생활용품과 동래성 전투에
사용되었던 각종 무기가 발굴 되었습니다.
또한 예상을 깨고 다양한 종류의 칼이 상당수 발견되었는데요,
창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칼이 발견되었습니다.
창은 3점만 발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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