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낙산 홍덕이밭(심양일기)

이모르 2020. 12. 15. 13:18

 

 

 

2016 8 28

 

산책하고자 낙산공원에 왔다

성벽 따라 걷고 있는데 청춘 남녀의 데이트 모습과

벤취에 앉아 독서하는 여인은 초 가을의 낭만을

불러오고 있었다

 

대학로로 내려 가는 성 아래 에서 홍덕이 밭이라

이름 한 텃밭에 가지 꽃 과 도마도 등이 있는데

안내판에는 병자호란 때 몰모로 끌려간 봉림대군(효종)

에게 심양에서 한 궁녀가 채소를 가꾸어 김치를 담가

주었는데 봉림은 귀국 후 왕위에 올라 그 맛을

잊을 수 가 없어 이곳 낙산에 밭을 주어 김치를 담가

오도록 하였다는 사연 이었다.

 

 

 

 

집에 이석호역 대양서적에서 펴낸 심양일기가 있다

이책은 병자호란뒤 소현세자가 청나라 당시 수도인

심양에 인질로 잡혀가 연금된 상태로 8년간 긴세월을

보낸 체류일기 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1592) 정유재란(1597)을 겪은뒤

대북파의 지지를 얻어 1608년 왕위에 올라 혼란기의

명나라와 후금의 싸움에 적절한 등걸이 외교를 취하여

조선의 안정을 꾀하고 있었다  

이때 북인들에 의해 괄시 받던 서인들 이귀 김좌점 이괄

김류등의  반정 반란으로 왕으로 자질부족한

능양군을 인조로 1623년 보위에 오르게 하였다

여진족이 세운 나라 후금을 오랑캐라 칭하며 얕잡아

보고 망해가는 명을 도운 인조는 오랑캐의 침범으로

남한산성으로 쫒겨 갔다가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과 함께

왕자들은 모두 볼모로 심양까지 끌려가게 된다

억류기간동안 자국인들이 노예로 매매되며 부모형제가

헤여지며 울부짖는 광경도 지켜보아야 했고

조선에서 자국민을 모병해와 과 전투에 출전을 해야

했으며 공녀들을 조공 하기도 하였다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에가서 한많은 삶을 살아야 했던

세자비 강씨는 임오년(1642)초에 홍타이지 황제가

20만평 가량의 땅을 주면서 직접 농사를 지어먹고

살라는 명과 함께 농사지을 사람들은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하였다

이에 세자빈 강씨는 소현세자에게 간하여 노예시장에서

조선인들을 사들여 농사를 짖게 하였다 또한 그녀는

무역을 통해 돈을 마련하여 청조에 실력자들을 매수하여

포로로 잡혀온 백성들의 편의와 석방에 힘을 쏟아

장차 조선의 임금이 될 소현세자에게  내조의

공이 컸다

 

소현세자는 심양에서 독일인 신부 아담샬로부터 천주학

수학 등 신 학문을 접하게 되고 서양 문호를 알게 되었다

한편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인조와 조정 대신(주전파)들은

세자의 태도가 親淸행위 라고 크게 비난하고 1645년 음력2월에

귀국한 소현세자를 521(음력426) 인조와 인조의

총애를 받던 소용 조씨(조귀인)가 의원 이형익을 시켜

독살하였다 한다

 

그러므로 비운의 소현 세자비 강씨는 인조가 자기를

독살하려 했다는등 온갖 모함으로 고문하고 사약을

내려 죽였다  참으로 조선의 제일 무능한 왕이 었다 

 

 

세자의 죽음으로 차자인 봉림대군(효종)이 조선제 17대 왕

으로 즉위한다

여기 홍덕이 밭은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으로 볼모로 있던

봉림대군이 텃밭을 가꾸어 김치를 담가주던 궁녀 홍덕이를

귀국후 텃밭을 주어 김치를 담가오게 한 터이라 하지만

봉림대군이 당시 심양에 있을 때는 굶주리던 때라

김치가 무척 맛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낙산성은 남산 인왕산 북악산을 연결하는 산성으로

높은 산성 밑에 텃밭을 만들었다는게 조금은 이상

하게 느껴졌으나 창경궁 앞에 있던 홍덕이 밭을 테마로

삼아 여기에 그 모양만 옮겨 놓았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슬픔이야 바람에 날라가고 가지곷 사이로

나비가 날라다니고 있었다

 

 

 

 

심양일기(이석호역 대중서관 에서 발췌)

일부분을 소개하자면

 

1637517일 세자 심양관소에 머무시다.

포로(조선군민)의 매매를

허락하니 청인들이 남녀의 포로들을 성문밖에 집합시키다

그짝이 수만이라

혹 모자가 상봉하고 혹 형제가 서로만나 얼싸안고 울부짖으니

그곡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다.정명수(통역관)와 김여익이

황제의명이라고 와서 하는말이 황제가 내일 세자를

만나고자 하니 세자는 마땅히 冠帶를 하고 가서 만나라

고 하다 재신들이 말하기를 세자가 남한산성으로부터

곧장 여기로 왔으므로 관대를 어느 겨를에 가져올수 있겠소?

이는 그대들도 아는바요 황제가

살필 바 아니겠소 하니 정명수등이 돌아가다

용골대가 재신들을 보고자하여 재신들이 가니

용골대가 말하기를 八高山의 여러사람들로 하여금

울타리밖을 지키게 한것은 세자가 여기온지가

얼마않되므로 하인배들이 난잡한

폐를 끼칠가 두려워 한것인데 이제 이미 숙소도

정해졌으니 하인을 엄금하라는 명령을

거두고 여러재신들이 모두자기의 책임을

잘완수하므로 청국황제가 살구를 한그릇보낸다

고 하다

 

 

어느날 산행에서 우암송시열을 논할 때에

그분이 학문의 위대함은 알고 있지만 주자학을 신봉하여

명분만 앞세워 청과의 전쟁을 고집하다

결국 임금이 오랑캐에게

항복하게 되자 항복한 임금을 섬기지 못하겠다.

낙향해버리고 이어서 소현세자와 두왕자가 볼모로

끌려간후유증으로 소현 세자가 죽자

차남인 봉림대군이 효종이 되는데 여기서 제를

지내는 문제(예송론란)

를 가지고 원칙론에만 집착하여 붕당의 시초를

만들었다는 주장에

춘곡이 이르기를 중국에는 공자 맹자 노자 등

자자를 붙이는 성인들이 많으나 우리는 그래도

그분하나 송자라 칭하지 않는가?

누가 뭐래도 학문을 체게화 시킨이가 송자아니던가..“

 

이석호역 심양일기 59-60쪽

 

홍덕이 밭

홍덕이 밭의 가지꽃

 

 

 

 

 

 

 

 

 

 

 

가을을 맞으며 독서 하는 여인의 향기 뒤로 행복한 데이트

이분들은 40대 여인들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이벤트용품 대여점에서

교복과 책가방을 빌려 입고 왔다 하였다

 

인수봉이 보인다

 

 

 

 

 

 

 

 

 

산성에서 보는 낙조

이화 마을 벽화

 

대학로 음식점 화분

 

대학로의 음식점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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