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

김동환시모음(아무도모르라고)

이모르 2021. 2. 12. 14:40

 

 

 

북청(北靑) 물장수    김동환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쏴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강이 풀리면  김동환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배가 오면은
 임도 탔겠지
임은 안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지
동지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南風) 불 제 나는 좋대나.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불 제 나는 좋데나.
 
산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를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아무도 모르라고/김동환

 

떡갈나무 숲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나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이여

 

 

봄이오면 김동환 작사 김동진 작곡

봄이오면
산에들에 진달래피네
진달래 피는곳에 내마음도 피어
건너마을 젊은처자 꽃따러오거든
꽃만말고 이마음도 함께따가주
 봄이오면 하늘위에 종달새우네
종달새 우는곳에
 내마음도 울어
나물캐는 아가씨야
저소리듣거든 새만말고
이소리도 함께들어주
나는야 봄이되면 그대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 붙인다오
나는야 봄이되면 그대 그리워
진달래 꽃되어서 웃어본다오

 

웃은 죄/김동환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그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뜬대두
난 모르오,웃은 죄밖에.

 

 

눈이 내리느니/김동환

북국(北國)에는
 날마다 밤마다
눈이 내리느니,
회색 하늘 속으로 흰 눈이
퍼부을 때마다
눈 속에 파묻히는
 하아얀 북조선이 보이느니.

가끔가다가
당나귀 울리는 눈보라가
막북강(漠北江)* 건너로
굵은 모래를 쥐어다가
추위에 얼어 떠는
백의인(白衣人)의 귓불을 때리느니,
춥길래 멀리서 오신 손님을
부득이 만류도 못하느니,
봄이라고 개나리꽃 보러 온 손님을
눈 발귀*에 실어
곱게 남국에 돌려보내느니.

백웅(白熊)이 울고 북랑성(北狼星)*
이 눈 깜박일 때마다
제비 가는 곳 그리워하는
 우리네는서로 부등켜 안고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
얼음 벌에서 춤추느니.

모닥불에 비치는
이방인의
새파란 눈알을 보면서
,북국은 추워라,

이 추운 밤에도 강녘에는
 밀수입 마차의 지나는 소리 들리느니,

얼음장 트는 소리에
쇠방울 소리 잠겨지면서
.오호, 흰 눈이 내리느니,
보오얀 흰 눈이북새(北塞)*로 가는
 이사꾼 짐짝 위에말없이


함박눈이 잘도 내리느니.({금성} 3, 1924.5)

 

국경의 밤/김동환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어 놓고
밤새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서
! 하고 붙는 어유(魚油)등잔만 바라본다.
북국의 겨울 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라고
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 산재(山材)실이 벌부(筏夫) 떼 소리언만.


마지막 가는 병자의 부르짖음 같은
애처로운 바람 소리에 싸이어
어디서 ''하는 소리 밤하늘을 짼다.
뒤대어 요란한 발자취 소리에
백성들은 또 무슨 변이 났다고 실색(失色)하여 숨죽일 때
이 처녀만은 강도 채 못건넌 채 얻어맞는 사내 일이라고
문빗탈을 쓰러 안고 흑흑 느껴 가며 운다- 
겨울에도 한 삼동(三冬), 별빛에 따라
고기잡이 어름짱 끄는 소리언만.

 

 

유성/김동환

 

계곡의 물소리에 실린 바람이

잠든 이슬을 깨우는 밤

어둠 속에 벌거벗은 나무들

서로의 손을 꼬옥 잡고 쳐다보면

유성이 사랑에 밑줄을 그으며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