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2일
김희숙여사의 별세
소년시절 선친께서 구독하시던
사상계를 읽으며 장준하선생님을
존경하게 됩니다
그분은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가
바로 탈출 독립군에 입대 미군첩보대(OSS)에
자원입대 미군과 연합해서 국내 진공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던중 일본이 원자탄으로
급하게 항복하는 바람에 그기회를 놓치고
결과적으로 미소양국이 주둔해서
분단의 비극 祖國온 슬픈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이렇듯 온몸을 받처 일제와 싸운 독립군이
셨으며 해방이후 김구선생의 비서로
계셨던 민족의 등불입니다
그후 박정희시대 유신선포이후
장준하선생님
온몸을 희생하며 대항한 義士입니다
자신이 투옥될것을 알고 사상계에 기고한
글입니다
도대체, 민주주의 뿌리를 뽑아버린
그 무리들에게 원정(園丁)을 다시 시켜야 하는 것이
이 나라 국민의 판단이라면,
그래서 이 현실이 60년대 우리의 명운이라 한다면,
민족의 전도엔 서광마저 없는 것이다.
총을 대고 돈을 빼앗으면 강도요,
총을 대고 정권을 빼앗으면 ‘전진세력’이라면,
아아, 민족의 장래엔 광명이 있을 리 없다.
또 다시 4년 후, 새로 이 터전을 갈 때엔
눈물일랑 흘리지 말라.
그 대신 피를 삼키고 싸워 이겨낼 각오로
이제부터 응보의 길을 살아야 할 것이다.
1967년 6월 서울 동대문(을)구 국회의원 선거에
옥중출마하여 병보석되어 출옥하는 장준하.
©장준하기념사업단
아!!! 그분의 부인 김희숙여사
1975년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한 후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삯바느질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갖은 외압으로 부터 아이들을 지킨 그분
남편의 옥중 출마 를 박순천 함석헌 과
적극적으로 유세를 펼쳐 당선시킨 여걸이
었습니다
장준하기념사업회 관계자는 "평생을 어렵게
산 고인은 2001년 서울시와 국가보훈처의
배려로 국가유공자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해
독립유공자 연금을 받아 생활했다"고 전했습니다.
고인은 2016년 1월 구순잔치에서
"올바른 역사정립과 민주확립, 평화통일의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싶다"며 자필
편지를 낭독한 바 있습니다.
2일 별세한 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의
장례식이 고인의 뜻에 따라 4일 가족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고인은 장준하 선생의 유해가 안장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공원 묘지에 합장 되었습니다.
유족인 장남 호권 씨는 "주변에서 시민장
얘기가 있었지만,
어머니께서 평소 '조용히 장례를 치르겠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3일 김희숙여사의 부음을 접한
해군병137기 강병길 강도식 최형진 김인원
은 문경에 사는 김기학이 참석못하는대신
애도의 뜻을 전하고자 서울대 영안실을
찾았습니다
예상대로 정계 유명인사들의 문상을
하는관계로 엄숙하고 조용하게 진행되는데
우리의 동기 장호권박사는 바쁜중에도
우리 자리에 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前 행자부장관 김두관의원
께서 소탈하고 겸손하게 인사를 나누고
하였는데 “꼭 이번 정권이 성공하기를
빈다“는 말에 정중하게 목례하여주는
그분의 자세에서 정치인의 기본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장준하선생님 장남 장호권박사
장호권박사는 선친의 사인규명을 위해 애쓰다
모처로 끌려가 폭행당해 턱뼈가 바스러져 현재 백금으로
교정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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