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기

도미티아누스동전발견(터키여행49부)

이모르 2021. 4. 2. 10:13

터키 에페소스에 있는 도미티아누스 신전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

 

 

 

제작연도 BC 27-476년경

조각 대리석

크기:높이 87cm

소장처:파리 루브르 박물관

 

 

 

서기 270년경 로마제국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이 최근 발견돼 영국 런던 브리티시 박물관이 공개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대해서는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며 이같은 동전이 발견된 것은 두 번째다 /로이터뉴스

 

 

로마 제국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할 희귀 동전이영국에서 발견돼 화제다. 동전이 발견된 곳은 잉글랜드 중부 옥스퍼드셔.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브라이언 멀린이 금속탐지기를 들고 들판을 돌아다니다로마 시대 동전 5천개가 들어 있는 질그룻을 발견했다. 이 속에서 `잃어버린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얼굴이 새겨진 희귀 동전 한 개가 나왔다. 이 동전을 본 영국박물관 역사학자들은 "10년래 영국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고고학적 성과"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박물관은 이 동전이 271년께 로마 황제로 등극했던 도미티아누스의 얼굴을새긴 진품임을 확인하고 25일부터 전시에 들어갔다. 대영박물관 큐레이터였던 로저 블랜드는 "도미티아누스는 일주일 정도 로마 황제로 있었지만 곧 반역자로 몰려 처형된 인물"이라면서 "학계에 논란이 있었으나 동전이 발견됨으로써 모든 것이 분명해 졌다"고 말했다. 도미티아누스의 얼굴을 새긴 동전은 100년전 프랑스에도 한 개가 발견됐으나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 황제가 새겨졌다는 이유로 위조 동전이란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똑같은 동전이 영국에서 발견됨에 따라 도미티아누스가 실존했던황제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로마 역사서에는 도미티아누스라는 군인이 반역을 일으켰다고 처형됐다고만 기술돼 있다. 역사학자들은 옥스퍼드셔 동전의 발견으로 도미티아누스가 스스로 황제임을 선포하고 동전을 주조했지만 반역죄로 몰려 축출된 것이라는 견해가 정설로 자리잡게됐다고 평가했다. 도미티아누스가 활약했던 200년대 후반은 군인 출신의 황제가 수시로 갈리는 등로마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든 시기였다 동전에는 도미티아누스의 얼굴과 함께  "카에사르 도미티누스 피우스 펠릭스아우구스투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런던/연합뉴스)

 

 

터키 에페소의 도미티아누스 신전에 부조된 황제상

 

도미티아누스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 형 티투스

황제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처음부터 전제적 경향이 짙어 86년부터 주인이자 신이라고 부르게 하고

그리스도교도를박해 하였다 또한 원로원을 제압하여 비판자를 탄압하였으나

속주통치(屬州統治)변경방위(邊境防備)에서는 치적을 올렸다 특히

브리튼섬에서는 장군 아그리콜라가 로마화에히썼고

군대를 칼레도니아(현재 스코틀랜드)까지 진군시키는 한편 라인 도나우강

지방에서는 국방방위를 위한 방벽을 쌓았다 다키아인의 침입 때에는 화평을

맺어위기를 모면하였으나 근위장관과 결탁한 황비에 의해 암살되었다

 

96년 9월18일 이런 상황 속에서 도미티아누스 씨족에게도 냉혹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성격과 조카와의 불륜에 빠진 도미티아누스를 질투한 황후 도미티아의 공포가

결합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도미티아누스가 죽자 원로원은 그에게

“기록말살형”을 선고했고 네르바를 황제로 추대하여 플리비우스

왕조는 27년만에 붕괴된다

 

기독교인 박해

 

네로황제의 기독교 박해에 시달리던 기독교인들은 네명의 황제가

교체되고 기독교에 우호적이었던 베스파시안황제 때 평안을 누렷으나

도미티아누스황제의 등극으로 상황은 일시에 반전되었다 처음에는

기독교에 무관심하던 도미티아누스는 로마의 전통적 종교를 자신의 정치적

수단으로 삼고자 한것은 자신을 신격화 하고 싶은 욕심때문이었다

 

우선적으로 로마시민들에게 전통적신을 섬기게 하고 황제가 신들의

신이라 선포하여 황제숭배를 강요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 유지를 위하여 매년 또는 수시로 헌금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었는데 기원 70년에 이르러 성전이

파괴되자 그헌금을 자신에게 바치라고 강요했다 일부의 유대인들은

강압에 못이겨 헌금했지만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보내지 않았다 황제는 유대인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자신을

신으로 선포하고 헌금을 바치지 않는 유대인들을 가차없이 처단하였다

 

이때 로마에도 기독교인들의 탄압이 시작되어 황제의 친척

교인이던 플라비우스 클라멘스 와 그의 아내 플라디아도미틸라

를 처형했다 이때부터 기독교 무자비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되어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하고 지하로 숨어들었으며 로마를 탈출

하였다

 

 

아래사진(에페소스에 있는 도미티아누스 신전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