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허스님(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닮을까)

이모르 2020. 12. 16. 13:18

 

 

 

 

2019 83

쵝고의 무더위 속에 세미원을 갑니다

자연 연꽃은 불법을 예지 하므로

현재 일본의 야만적 행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

봉선사 운허스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춘곡은 이 설명으로 동행한 일행 들로부터

?? 교수님이 안되셨나 안타깝다

말이  나올정도로 재미를 더한 이야기는

무더위를 식혀주었습니다

 

그의 국가관의 올바른 인식으로

동행한 에술인들의 존경을 받게 됩니다

 

여기 봉선사 홈에서

운허 스님에 대한 기사를 옮겨봅니다

 

 

 

속명은 학수(學洙), 법호는 운허(耘虛)이며

법명은 용하(龍夏)이다. 청년기에는 일제의 침략에

당당히 맞선 항일투사, 종교인으로서는 불경의 번역가,

교육자로서는 후학의 양성에 전념한 분이셨다.

 

 

평안북도 정주군 출생으로 어린 시절 고향의

회헌재(會軒齎)에서 사서(四書)를 비롯한

한문고전을 배우고, 1909 10월부터 1911

3월까지 평양대성학교에서 2학년까지 수학하였다.

1912 1월 만주로 건너가 봉천(奉天)에 있는

한인교포학교 동창학교 교원으로 재직했고,

이해 6월부터 배일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하여 배일정신을 고취하였다.

 

1914 3월부터는 봉천성 홍유자 흥동학교를

설립해서 교포아동교육에 전념하였고, 1917

4월부터는 배달(倍達)학교를 설립하여

1919년까지 교포아동의 교육을 실시했다.

 

3·1운동 직후 4월부터 12월까지는 독립군정기관지인

한족신보(韓族新報) 사장에 취임하여 신문을 간행하고,

1920 2월에는 독립운동기관인 광한단(光韓團)

조직해서 활동했다.

그 뒤 국낸단체와의 연계를 위해 비밀리에 잠입했다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강원도

봉일사(鳳逸寺)로 은신했다.

1921 5월 경송(慶松)스님을 은사로 강원도

고성군 유점사에서 득도(得度)했으며, 6월부터

12월까지 유점사에서 불교초등과를 이수하고

서기를 맡아보았다.

 

3·1운동 직후 4월부터 12월까지는

독립군정기관지인 한족신보(韓族新報) 사장에

취임하여 신문을 간행하고, 1920 2월에는

독립운동기관인 광한단(光韓團)을 조직해서 활동했다.

그 뒤 국낸단체와의 연계를 위해 비밀리에 잠입했다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강원도 봉일사(鳳逸寺)로 은신했다.

1921 5월 경송(慶松)스님을 은사로 강원도 고성군

유점사에서 득도(得度)했으며, 6월부터 12월까지

유점사에서 불교초등과를 이수하고 서기를 맡아보았다.

1924년 동래 범어사에서 사교를 이수했고,

1926년 청담스님과 함꼐 전국불교학인대회를

서울 안암동 개운사에 개최하여 학인연맹을 조직했다.

1929년 다시 만주로 건너가 봉천 보성학교의

교장에 취임하였고, 1930 9월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동했다. 1936년 경기도

 봉선사에 홍법강원(弘法講院)을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노력했다.

 

해방 후 경기도 교무원장이 되었고, 46 4

광동중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했다.

1953년 애국동지원호회에서 한국동립운동사

 편찬하는 일에도 참가했다.

 운허스님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춘원 이광수와의 인연이다. 운허스님과 춘원은 6촌간으로

어린시절 같이 공부하면서 자라났다. 이광수가

친일변절자의 오명과 아들 봉근의 죽음 등으로

괴로워할 때, 법화경을 소개해주어 불교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으며, 감명을 받은

 춘원이 '법화행자'의 길을 걷도록 조력해주었다.

 불경을 번역하는 것을 평생의 원력으로 삼고

1964년 동국역경원을 설립하여 초대원장이 되었다.

 1961년 국내 최초로 불교사전을 편찬했고,

1962년 종교인으로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훈장을 받았고, 1978년 동국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내용을 춘곡은 윤허스님이 일경을 피해

봉선사로 숨어들어 주지스님의 겨울나기

식량을 축내는 에피소드에서

일경들이 추적을 계속하였으니 스님으로

변신한 윤허를 찾지못하고 행불 미결로 처리

하였다는 과정을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윤허스님은 팔만대장경도 한역하셨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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