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와이로(왜색침략)

이모르 2020. 12. 16. 13:32

 

 

"나는 와이로가 일본말 인줄알았다
보니 우리말이네"

 

하며 친구가 보내준
와이로 란 글에서 

 

이건 아닌데 하는
의구심으로 조회한 결과 올바른 답이
있었습니다

 

고의로 그러는 걸까 왜 나라 말을
그냥 퍼트리기 워해 별 걸 다

만들어 낸다 생각 했습니다

 

 

?와이로(蛙利鷺) ?

 

고려시대 의종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僥倖)히 민가(民家)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 선생)이 조금 더 가면
주막(酒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여,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런데 그 집(이규보)대문에 붙어있는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했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智識)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주모에게 외딴 집(이규보 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과거(科擧)에 낙방(落榜)하고
마을에도 잘 안 나오며,
집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發動)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안 오고해서 면담(面談)을 신청(申請)했다.
그리고는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겼던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이란
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옛날에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 후에 노래시합을 하자"는 거였다.
백로(白鷺)를 심판(審判)으로 하여 노래시합을 하자고 했다.

이 제안에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노래를 잘 하기는 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 하다니..

하지만 월등한 실력을 자신했기에
시합(試合)에 응(應)했다.
그리고 3일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白鷺)한테
뇌물로 가져다주고 뒤를 부탁한 것이었다.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白鷺)의 판정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白鷺)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동안 꾀꼬리는
노래시합에서 까마귀에 패배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주고,
까마귀가 뒤를 봐 달라고 힘을 쓰게 되어
본인이 패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꾀꼬리는 크게 낙담하고 실의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라는 글을 대문앞에 붙혀 놓았다고 한다.
이 글은 이규보(李奎報)선생이 임금한테 불의와
불법(不法)으로 뇌물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 급제의 기회를 주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比喩)해서 한 말이었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 란 말이 생겼다.

와(蛙):개구리 와.
이(利):이로울 이.
로(鷺):백로 로.

이규보(李奎報)선생 자신(自身)이 생각해도,
그의 실력(實力)이나 지식(智識)은 어디에 내놔도
안떨어지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돈도 없고, 정승(政丞)의 자식(子息)이 아니라는
이유(理由)로 과거를 보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白鷺)한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뒷거래를 하지 못하여 과거에 번번히 낙방하여
초야(草野)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은
李奎報선생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高尙)하기에
자신(自身)도 과거(科擧)에 여러 번 낙방(落榜)하고
전국(全國)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臨時) 과거(科擧)가 있다 하여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 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궁궐(宮闕)에 돌아와 즉시
임시 과거를 열 것을 명(命)하였다고 한다.

과거(科擧)를 보는 날,
이규보선생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準備)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 걸은 시제(詩題)가 바로
“唯我無蛙 人生之限” 이란 여덟 글자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선생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唯我無蛙人生之恨)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내용이 넘 좋아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아님 책을 사서 읽어봐도 좋고~

 

 

와이로’(わいろ)는 뇌물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국립국어원은 ‘와이로’를 버리고 다듬은 말인

‘뇌물’만 쓰도록 했다.(1997년 국어순화용어자료집)

사전 속 ‘회뢰’(賄賂, 뇌물을 주고받음.

또는 그 뇌물)는  우리 일상에서 거의 사라진 표현이다.

 

중년 이후에게 ‘와이로’는 ‘옛 기억’의

흔적으로 명멸하지만 젊은 세대에겐

어휘집에 없는 낯선 말이다.

 

새삼 ‘와이로’를 끄집어내는 까닭은 역사와 고전의

탈을 쓰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사회 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타고 마구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백운거사를 인용하고, 누구는

중국 고사에 기대어 ‘와이로의 역사와

전통’을 얘기한다. 과연 그럴까.

 

“까마귀가 꾀꼬리에게 백로를 심판 삼아

노래 대결을 제안했다.

꾀꼬리는 열심히 연습했지만 까마귀는 엉뚱한 짓을 했다.

 연습 대신 개구리를 잡아 백로에게 준 것이다.

대결 결과는 까마귀의 승리. 개구리를 받아먹은

심판이 까마귀의 손을 들어준것이다.

 

이를 빗대어 이규보가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恨)이라 집에 붙여 놓았다.

 ‘나는 여기 있지만 개구리가 없어

인생 한이 맺히누나’라는 한탄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개구리 와’(蛙)+‘이로울 리’(利)+

‘백로 로’(鷺)인 ‘와이로’다. ‘

 

와이로’는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이 고사에서 온 것이다.”

 

온라인의 ‘퍼나르기’로 ‘확대재생산’되는

얘기의 하나다.

 

‘와’에 ‘이로’(利鷺) 또는 ‘이’(餌, 미끼)와 ‘료’(料)를

붙인 변형도 눈에 띈다.

그러나 ‘蛙利鷺’는 ‘와리로’라고 읽는 게 맞고,

 ‘와이료’가 ‘-로’로 변하는 음운현상의 근거는 없다.

“늙은 호랑이가 개구리를 받아먹고 꾀꼬리를

일등으로 꼽은 우화”를 1952년 한 일간지에

소개한 수필가 조경희는 “산중의 늙은 호랑이가 되어서

어찌 흑백을 가릴 수 있으며 양심과

정의의 길을 찾을 수 있는가”라고 했을 뿐

‘와이로’를 갖다 붙이지 않았다.

 

강재형 미디어 언어연구소장  아나운서

 

일본말 남용이 더 심각


 불식되지 않은 채 ‘면면히’이어져 내려오는

일본유산도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우리의 교육제도다.

연세대 金仁會교수는 최근 어느 기고문에서

“학교교육만을 중시하는 제도교육 절대주의,

정권에 예속된 제도교육, 과밀교육과 집단적

획일주의, 중앙집권적인 교육행정체제,
사범교육, 교육법 및 교과서제도 등은 모두 일제식민지

교육체제의 잔재”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언론·출판계에 뿌리박고 있는 일본 잔재도
만만치 않다.

‘교정스리’등 전문용어의 태반이 일본말인 것은 물론,

제목뽑기·편집방식·차례구성 등 제작의

거의 전과정에서 일본의 것을 답습하고 있다.

 

요즘 한창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스포츠신문의 각

종 폭력·외설만화도 일본 저질만화를 모태로

한 새로운 유행이다. 방송에서는 뉴스·드라마·

쇼·퀴즈게임 등 각 방면에서 일본 방송을 모방하고 있으며

몇몇 상품광고의 경우는 배경과

모델만 바꿔 일본 것을 복사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또 우리 예술 일부에 반영된 일본문화 특유의

말초적 감각주의와 광적인 열정주의, 일본에서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졌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체제와 맞물려 유지되고 있는

권위주의, 군대식 사고 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일본말이 남용되고 있는

우리의 언어생활이다.

 

마호병·소데나시 등 일상용어, 에어콘·리모콘 등 일제
외래어, 택시 할증료·아파트 단지 등 일본식

조어법에 의한 한자어 등 그야말로 오염 정도가 극심하다.

金烈圭교수(서강대·국문학)는 “언어는 무의식 속에 근원적인

사고방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언어체계의 일본화는

그 어떤 것보다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일본의 흔적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 수는 총 3천여명에 불과하다.

이들 대부분은 회사원 등 화이트칼라이며

업무외의 일로 한국인과 공식적인

교류를 갖는 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우리 사회에 발휘하는

영향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다음 일본문화의 직접적인 유입통로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일본인 관광객 및 방문단이다.

일본인 입국자는 해마다 증가, 89년의

경우 약 1백38만명(교통부·한국관광공사 자료)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외화획득의 소득은 있었으나

일본인들은 섹스관광 등으로 서비스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

 

러나 安鍾允교수(한양대·관광학)는

“ 그 책임은 일본인이 질 게 아니라

국가간 상거래의 원동력인 관광산업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가 져야 한다”고 꼬집는다.

시사저널

"소대나시 만들어 입으려고 기지를 사러 갔는데

기쓰가 있었다 "

 

해군 입대 해서 어민들과 접촉 하면

그분 들이 쓰는 기술용어 전부가 일본어 아니면

일본어식 영어 였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에야 많이 개선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