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어사박문수설화(엽전열닷냥)

이모르 2020. 12. 16. 13:28

 

 

 

 

어사 박문수

 

박문수(朴文秀, 1691년 10월28일 17565월22일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정치가이다.

자(字)는 성보(成甫)이고 아호(雅號)는

기은(耆隱)이며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아버지는 박항한(朴恒漢)이고 큰아버지는 박태한(朴泰漢)이다. 

 

소론 영수인 이광좌에게서 수학한 그는 1723년 경종3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이듬해

설서(設書)·병조정랑에 올랐다가 1724영조 즉위년)

 노른이 집권할 때 삭직(削職)되었다.

1727년에는경미환국으로 소론이  기용되자 사서에

등용되어 영남안집어사로 나가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했고,

이듬해 이인좌의난이해 일어나자 사로 도순문사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여 전공을 세워

경상도관찰사 에 발탁되고,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으로

 영성군(靈成君)에 봉해졌다.

1730년 참찬관에 이어 호서 어사로 나가 굶주린 백성의 구

제에 힘썼으며, 1734년에1에 진주사 부사(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앞서 안동서원을 철폐 시킨 일로

탄핵을 받아 풍덕(豊德) 부사로 좌천 되었다.

1741 영조17년 어영대장을 거처 함경도 진흥사로 

나가 경상도의 곡식 1만 섬을 실어 와서 기민(飢民)을

구제하여 송덕비가 세워졌다.

다음 해 병조 판서,1743년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이듬해 황해도 수군절도사로 좌천 되었다.

1749년 호조판서가 되어 양역의 폐해를 논하다

충주 목사로 다시 좌천 되었다.

그 후 영남 균세사(均稅使)를 거쳐 판의금부사·

세손사부를 지내고 1752년 왕세손인 의소세손이 죽자

 약방제조로 책임을 추궁 받아 제주도에 안치되었다.

이듬해 풀려 나와 우참찬에 올랐다.

 

암행어사의 전형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와는 달리 실제로 임금으로부터 암행어사

임명된 적은 없으며, 별견어사로만

4번 파견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위키백과

 

 

 

 

 

조선시대 어사는 "암행어사" 와

"별견어사" 가 있는데

박문수는 별견어사에 해당합니다.

 

‘암행어사(暗行御史)’ 관리의

득실과 민정을 비밀리에 조사하는데

왕 측근의 당하(堂下 : 정3품 하계 통훈대부 이하)

관원을 지방군현에 비밀리에 파견해

위장된 복장으로 암행하게 한 왕의 특명사신입니다.

 

‘별견어사(別遣御史)’  감진(監賑)·순무(巡撫) 등

특별한 임무를 띠고 별도로 파견된 어사 말합니다.

 

 

 

어사는 임금이 직접 보내는 사자(使者)로,

비단옷(繡衣)을 입어 존귀함과 위엄을 나타냈다.

그래서 어사를 '수(繡衣)' 라고도 불렀다.

 

 

수의를 차려입은 어사가 내려간다는 소문이

돌면 수령들은 온갖 부정을 감추고

여론을 조작하느라 동분서주했다.

 

때때로 난리를 겪을 때나 토지 부정을 조사하거나

기근을 구제하거나 시장을 감독하는

특별어사를 파견하기도 했다.

 

이들을 통상적인 어사와 구분해

별견어사(別遣御史)라 했는데 수의를 입고

공식적인 임무를 수행하였다.

 

임금이 수령의 부정을 캐는 임무를 주어

아무도 모르게 보내는 어사를 가리켜 암

행어사라 한다.

이들은 비단옷이 아니라 누더기옷을 입고

철저하게 신분을 감추었다.

 

박문수,

암행어사 한번도 한 적 없다

심재우 교수

 

 

 

 

 

따라서 아래의 박문수에 관한 이야기는

야사로서 설화에 불과 하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 옛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있어 소개해 본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서 주막에 들었는데,
봉놋방에 턱 들어가보니 웬 거지가

큰 대자로 퍼지르고 누워 있었다.

사람이 들어와도 본체 만체,

밥상이 들어와도 그대로 누워 있었다.
 
“거, 댁은 저녁 밥은 드셨수?”
 
“아, 돈이 있어야 밥을 사 먹지.”

그래서 밥을 한상 더 시켰다.
그 이튿날 아침에도 밥을 한상

더 시켜다주니까 거지가

먹고나서 말을 꺼냈다.
 
 “보아하니 댁도 거지고 나도거진인데,

이럴게 아니라 같이 다니면서

빌어먹는 게 어떻소?”

박문수도 영락없는 거지꼴이니

그런말 할만도 하다. 그래서

그날부터 둘이 같이 다녔다.

 

 

 

 ?첫번째 일화~.


세사람 살려주고 사례로 받은 백냥

제법 큰 동네로 들어서니

마침 소나기가 막 쏟아졌다.

그러자 거지는 박문수를 데리고

그 동네에서 제일 큰 기왓집으로 

썩 들어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한다는 말이

 “지금 이댁 식구 세사람 목숨이

위태롭게 됐으니 잔말 말고

나 시키는 대로만 하시오~~

지금 당장 마당에 멍석 깔고 머리 풀고 곡을 하시오.”

안 그러면 세사람이 죽는다고 하니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때 이집 남편은 머슴 둘을 데리고

뒷산에 나무 베러 가 있었다. 어머니 나이가 아흔이라

미리 관목이나 장만해 놓으려고 간 것이다.


나무를 베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자

비를 피한다고 큰 바위 밑에 들어갔다.

그 때 저 아래서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들려왔다.

“이크,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나 보다.

얘들아, 어서 내려가자.”

 

머슴 둘을 데리고 부리나케 내려오는데

뒤에서 바위가 쿵 하고 무너져 내렸다.

간발의 차이로 위험을 모면하고 내려온

남편은 전후 사정을 듣고  거지한데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우리 세사람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겠소? 내 재산을

다 달란대도 내놓으리다.”

“아, 정 그러면 돈 백 냥만 주구려.”

그래서 돈 백 냥을 받았다. 받아서는

대뜸 박문수에게 주는 게 아닌가.

“이거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데가 있을 테니.”

박문수가 가만히 보니

이 거지가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시키는 대로 돈 백 냥을 받아서

속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다.

 

 

 

 

?두번째  일화~


7 대독자 구해주고 사례로 받은 백 냥

며칠 지나서 어떤 마을에 가게 됐다.

그 동네  큰기와집에서 온 식구가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거지가 박문수를 데리고 그 집으로 쑥 들어갔다.

“이 댁에 무슨 일이 있기에 이리 슬피 우시오?”

“우리 집에 7대 독자 귀한 아들이 있는데,

이 아이가 병이 들어 다 죽어가니

어찌 안 울겠소?”

“어디 내가 한 번 봅시다.”

 

그러더니 병 든 아이가 누워 있는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 곧장 사랑채로

들어가선 주인에게 말했다.

“아이 손목에 실을 매어 가

지고 그 끄트머리를 가져오시오.”

미덥지 않았으나 주인은

아이 손목에다 실을 매어 가지고 왔다.
 
거지가 실 끄트머리를 한 번 만져 보더니

“뭐 별것도 아니구나. 거 바람벽에서

흙을 한줌 떼어 오시오.”
 
바람벽에 붙은 흙을 한줌 떼어다주니,

동글동글하게 환약 세개를 지었다.
주인이 약을 받아 아이한테 먹이니,

다 죽어가던 아이가 말짱해졌다.
주인이 그만 감복을 해서

절을 열두번도 더 했다.
 
“ 7 대독자 귀한 아들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내 재산을  다 달란대도 드리리다.”

“아, 그런 건 필요 없고 돈 백 냥만 주구려.”

이렇게 해서 또 백냥을 받아

가지고는 다시 박문수에게 주었다.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데가 있을 거요.”

 

 


 
?세번째 일화~


묘자리 봐주고 사례로 받은 백 냥
 
며칠 가다가 보니 큰산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웬 행세 깨나 하는 집에서

장사 지내는 것 같았다.
기웃기웃 구경하고 다니더니

마침 하관을 끝내고 봉분을 짓는데 가서

“에이, 거 송장도 없는 무덤에다 무슨 짓을 해 ?”
 
하고 마구 소리를 쳤다.
일하던 사람들이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네 이놈, 그게 무슨 방정 맞은 소리냐?
 
이 무덤 속에 송장이 있으면 어떡할 테냐?”

“아, 그럼 내 목을 베시오~~ 그렇지만

내 말이 맞으면 돈 백냥을 내놓으시오.”

일꾼들이 달려들어 무덤을 파헤쳐 보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과연  

방금 묻은 관이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그걸 찾아 주려고 온 사람이오~~

염려 하지말고 북쪽으로 아홉자

아홉치 떨어진 곳을 파보시오.”

그 곳을 파보니, 아닌게 아니라

거기에 관이 턱 묻혀 있었다.
 
“여기가 명당은 천하 명당인데

도둑혈이라서 그렇소~~

지금 묻혀 있는 곳에 무덤을 쓰면

복 받을 거요.”

이렇게 해서 무사히 장사를 지내고 나니,

상주들이 고맙다고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 명당 자리를 보아 주셨으니

우리 재산을 다 달란대도  내놓겠습니다.”
 
“아, 그런 건 필요 없으니  돈 백냥만 주구려.”

그래서 또 돈 백냥을 받았다.
받아 가지고는 또 박문수에게 주었다.

“이것도 잘 간수해 두오. 반드시 쓸데가 있을 거요.”

 

 


 
?네번째 일화~.


백일 정성 끝에 마련된 삼백 냥
 
그리고 나서 또 가는데, 거기는

산중이라서 한참을 가도 사람 사는 마을이 없었다.
그런 산중에서 갑자기 거지가 말을 꺼냈다.

“자, 이제 우리는 여기서 그만 헤어져야 되겠소.”
 
“아, 이 산중에서 헤어지면 나는 어떡하란 말이오?”

“염려 말고 이 길로 쭉 올라가시오~~

가다가 보면 사람을 만나게 될 거요.”

그러고는 연기같이 사라졌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한참 동안 올라가니,

고갯마루에 장승 하나가  떡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웬 처녀가 물을

한 그릇 떠다놓고 빌고 있었다.

“장승님 장승님, 영험하신 장승님.
우리 아버지 백일 정성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한시 바삐 제 아버지를

살려 주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

박문수가 무슨 일로 이렇게 비느냐고 물어보니...
처녀가 울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관청에서 일하는 아전이온데,

나랏돈 삼백 냥을 잃어버렸습니다.
내일까지 돈 삼백 냥을 관청에

갖다 바치지 않으면 아버지 목을 벤다는데,

돈을 구할 길이 없어 여기서

백일 정성을 드리는 중입니다.”
 
박문수는 거지가 마련해

준 돈 삼백냥이 떠올랐다.
 
반드시 쓸데가 있으리라 하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 생각했다.

돈 삼백 냥을 꺼내어 처녀한테 건네 주었다.
 
“자, 아무 염려 말고

이것으로 아버지 목숨을 구하시오.”
 
이렇게 해서 억울한 목숨을 구하게 됐다.
 
그런데 그 처녀가 빌던 장승이 비록

나무로 만든 것이지마는 가만히

살펴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아까까지 같이 다니던

그 거지 얼굴을 쏙 빼다 박은 게 아닌가!

장승이 顯身현신하여
인간구제를하였구나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 습니다.

 

 

 

옛날에 홍판서가 홀로 된 며느리와 살았다.

어느 날 며느리 혼자 집에 있는데, 젋은 중이 와서

시주하라고 했다.

며느리가 시주하려고 문밖으로 나가니,

그녀의 미모에 마음이 끌린 중이

그녀를 방안으로 끌고 들어가 정을 통하려 했다.

 

 그녀가 중의 요구를 뿌리치며 반항하자 중은 집의

기둥에 꽂혀 있던 낫으로 그녀를 찌르고 달아났다.

 

  홍판서가 집에 돌아와 며느리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 몸에 박힌 낫을 빼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술집 마누라가 와서

그 광경을 목격하였다.

노파는 “홍판서가 며느리를 겁탈하려다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칼로 찔러 죽였다”

고 관가에 신고했다.

그래서 홍판서는 며느리를 죽인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때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고을 가까이 오다가

한 중을 만났는데, 명지 바지에 기름 때가

졸졸 흐르는 모습이 수상쩍은 데가 있었다.

박 어사는 그 중을 수상히 여겨서 함께

길을 걸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중은 자기가 시주를 얻으러 갔다가 주인 여자의

미모에 반해 겁탈하려다가 말을 듣지 않자

죽인 일이 있다고 했다.

 

  박 어사가 중과 헤어져 홍판서 집에 방문하여

홍판서가 며느리를 죽인 죄로 곧 사형에 처해질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중이 거처하는 절로 사령들을 파견하여

살인한 중을 체포하도록 하였다.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던

홍판서는 석방되었다.(≪한국구비문학대계≫

강화군 내가면 설화)

 

 

 

  위 이야기에서 보듯이 박문수는 며느리를

살해한 죄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가난한

양반을 구출하고 살인을 저지른 중을 잡아가두는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암행어사라는 신분을 바탕으로 억울한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고, 불법한 관리나

악인을 처벌하기도 한다.

 

  또한 전국을 순행하면서 나이 많은 처녀와 총각을

중매해 혼인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이처럼 상당수 설화 속에서 박문수는 절대적인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관리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물론 박문수가 민중들이 바라는

영웅으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박문수 설화 중에는 간혹 박문수가 평범한

인물로 등장하거나 심한 경우 지혜가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요즘의 자유분방한 젊은 친구들처럼

박문수는 여인을 유혹하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으며, 심한 경우 암행 중에

원두막에서 만난 처녀와 관계를 맺어

아기를 낳게 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문수 설화 속에는 박문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지만 이들 설화를 있는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현존하는 암행어사 박문수에 관한 설화는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면서

만들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 박문수가 어사로 파견된

지역은 일부 지역 뿐이지만,

설화에서는 조선 팔도에 다 암행어사로 다닌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암행어사 이야기에 등장하는 박문수는

실존인물 박문수 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암행어사들을 통칭한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박문수 이름을 빌려

모든 암행어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간에 다양한 지역에서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가 구전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박문수는 점차 암행어사의

대명사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한국역사연구회)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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