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
오늘은 SNS에 올라온 사랑이여(1987)유심초 에 대한슬픈 사연을 소개해 공유해 볼께요 위 노래가 그 노래랍니다.
사연 읽은 후 들어보세요. 부잣집 외동아들이었지요.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몸 일부가 자유롭지 못했대요.그렇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K대 국문학과에 재학 중이었대요. 그런데 매일 학교 가는 버스에서 여차장과 낯이 익어 눈인사를 나누게 됐어요. 80년대는 그랬잖아요.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여차장은 자리도 잡아주고 간혹 부축도 해주고 그랬나 봐요. 은 어느덧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고. 청년은 행복했어요. 몸이 불편한 자신을 보듬어주는 여인이 생겼으니. 차장도 행복했어요. 배움이 부족한 자신에게 대학생 애인이 생겼으니까. 둘은 휴일이면 데이트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사랑을 키워갔대요. 아 그런데 !!!! 청년 집에서 이를 알아버린 거예요. 난리가 났지요.
아무리 장애가 있더라도 큰 부잣집 외동아들이었거든요. 부모가 버스회로 찾아가서 난리를 치고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모욕을 줬어요. 어디 가난하고 무식한 촌년이 감히 남의 귀한 아들을 넘보느냐고.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대요. 시골에서 올라와 고된 차장 일을 하며 가난하나마 보랏빛 장래를 꿈꿔왔는데, 그런 수모를 겪다니...그 이후로 차장 일을 관두고 종적을 감췄고요. 청년은 근 한 달간 집에 갇혔대요. 부모에게 다시는 그녀를 안 만나겠다고 맹세를 하고 겨우 집 밖으로 나온 첫날, 한달음에 그녀가 일하던 버스회사로 갔대요. 거기서 사정사정해 그녀의 시골집 주소를 알아내곤한달음에 달려갔어요.
그녀는 부모님은 돌아가셔서 오빠 집에 얹혀살았나 봐요. 오빠가 말없이 가리키는 뒷산 중턱에는 그녀의 무덤이... 집에 와 일주일을 몸져누웠던 그녀는 농약을 마셨던 거예요. 가난하고 부모 없이 고생하며 배움도 짧았건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사랑이 수모로 끝나자 더 이상 세상을 버틸 기이 없었겠지요.
청년은 절규했어요. 자기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울부짖었지. 그리고 어느 날 그도 그녀의 무덤가에서 약을 먹고 뒤를 따랐어. 그의 점퍼 주머니에는 그녀를 그리는, 다시 한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애닲고 구구절절한 유시(遺詩)가 있었고. 그 시에 곡을 붙여서 80년대에 대 히트를 했습니다.
별 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 처럼 행복했던 사랑이
머물고간 ---바--람 처럼
기약 없이 멀어져간 내 사랑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
지지 않는 사--랑의 꽃--으로
다시 한번 ---내 --가슴에
돌아 오라 사랑이여 내 사랑아--
아------사랑은 타 버린 불--꽃
아------아
사랑은 한 줄기 바람인 것을 아아
까맣게 잊 으려 해-도---
왜 나는 너를 잊지 못 하나오--
내 사랑----내 사랑---
오 내 사랑--영원 토록--
못잊어 못잊어
엘라
애절한 사랑 안타깝네요~~ 지금도 그런 사랑 있을까요?
평보
감동 이라기 보다 충격 입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은 옛날엔 빈부 뿐만이 아니라 신분 이념 여러가지 였는데 집사람 절친 이 있었어요 미모인 그녀는 고속 버스.관광 안내원 중 자주 보게되는 육사출신 장교 소위 를 만나 연애중 돈주고 몸주고 갖은 희생 다했는데요 결국 배반 당했지요
집사람과 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남자의 집을 찾아가 사정하러 내려 갔는데 남자의 어머니로 부터 갖은 모욕 을 당하며 내쫒기고 남자는 국비로 서울대에서 공부할때 사귄 여자와 결혼 하였지요 충격으로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 려 몹시 불행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수년후 그녀를 만났을땐 그전 아름답던 모습이 없었습니다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비극 입니다
라라
아래 사연은 팩트 같은데 위 사랑이여 에 얽힌 사랑 이야기는 잘못된것 같아요 이곡 작곡한 사람을 잘 알거든요~제가 찬물 분거죠? 작곡.작사 같은사람인데 아무튼 누가 멋있게 각색한 글이라도 좋아요~ 찐한 감동이라 울컥했어요
참고로 작곡가는 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하신 분이에요
평보
인터넷에 조회해 보았습니다 최용식 작곡가는 누군가요?
유시형 : 아마추어 작곡가였습니다. 그 친구가 군대에 있을 때 ‘너와의 석별’을 듣고는 그게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꼭 유심초에게 곡을 주고 싶었다고 그러면서 왔는데, 알고보니 중학교 동문이었습니다. 그 노래들을 받아놓고 처음에는 한 2~3년 정도를 묵어놨었다. 그러다가 1980년도에 다시 앨범을 내고 싶어 곡 정리를 하는데 ‘사랑이여’가 굉장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래의 곡과 가사를 약간 수정해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유심초의 한멤버 유시형씨의 증언이네요
라라
올려주신글에 맥을 끊은건아닌지 톡 올리고 후회해요 죄송해요 그러나 사연의 진위를 떠나 그사연에 덕분으로 찐한 감동 받았는걸요 팩트보다 더 감동적이라 좋아요 이래야 톡방이 활기가 넘쳐 나는 겁니다 ㅎㅎ 또 덕분에 대화가 길어져 좋습니다
올뫼
유심초 유시형 이는 인천 친구(유문형)동생이고 같은동네 동창 후배 인천 동산고 출신이야 오래간만에 유심초가 떠서 그 사람들 인천에 잘들있는지 궁금하네!!!
평보
김작가님 인천에 살았던 분들은 유심초와 연고가 있는 분들이 꽤 있네요 올뫼가 위글을 보내주었어요 라라님이 의견을 주셔서 바른 상식을 갖게 되어 감사합니다
평보
늦가을 정취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주신 곡선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나타나지요 晩秋의 정서를 느껴 보세요 사진몇장 올려 보겠습니다
유심초의 뜻(일체유심조)
화엄-경, 華嚴經
석가가 도를 이룬 뒤 깨달은 대로 설법했다는 경문.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법계(法界) 평등의 진리를 깨우친 불(佛)의 만행(萬行)·만덕(萬德)을 칭찬한 것임. 정식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준]화엄(華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이루는 말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뜻입니다. 유식(唯識)에서는 일수사견이라는 비유를 듭니다. 우리는 행복과 불행은 상황에 따라 또는 환경에 따라 온다고 생각하는데 매우 큰 착각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 그 누구도 날 행복하게 할 수 없고 불행하게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널리 알려진 元曉大師의 깨달음은 의상대사와 唐으로 유학차 가다가 지금의 인천근방에서 캄캄한밤 목이말라 허름한집있어 들어보니
옆에 바가지에 물이 담겨져 있어 그것을 맛있게 먹고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집은 폐허로 파헤처진 무덤이었고 바가지는 해골이 였던것이다.그때 득도한 원효는 아래와 같은 법구를 남겼습니다
심생즉 종종법생(心生卽種種法生)
심멸즉 촉루불이(心滅卽촉루不二)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萬法唯識)
심외무법 호용별구(心外無法胡用別求)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진 즉 해골도 없어지니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인식인 것을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법을 구하겠는가.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진 즉 해골도 없어지니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인식인 것을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법을 구하겠는가.
라는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의상만 당으로 보내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지요 "모든것이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구나" 이것이 바로 일체유심조 입니다 그가 깨달은 것은 불교 화엄경의 핵심 사상이기도 합니다
(위키백과 인용편집글 )
사랑이여/최용식 작사 작곡 유심초노래
별 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 처럼 행복했던 사랑이
머물고간 ---바--람 처럼
기약 없이 멀어져간 내 사랑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
지지 않는 사--랑의 꽃--으로
다시 한번 ---내 --가슴에
돌아 오라 사랑이여 내 사랑아--
아------사랑은 타 버린 불--꽃
아------아
사랑은 한 줄기 바람인 것을 아아
까맣게 잊 으려 해-도---
왜 나는 너를 잊지 못 하나오--
내 사랑----내 사랑---
오 내 사랑--영원 토록--
못잊어 못잊어
사랑이여 /유심초
사랑하는 그대에게/유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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