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신흥사와정릉의가을정취(강미자의들국화)

이모르 2020. 12. 16. 16:02

 

2020년 10월 22일

오늘 신흥사로 해서 정릉까지 내자와 함께 산책합니다 허나 기후변화로 인지 단풍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신흥사는 대역사가 벌어저 몇년째 어수선 합니다 그러나 마무리 단계에 있어 내년쯤은 정숙한 모습으로 공개되리라 생각 됩니다 신흥사 원찰 과 정릉은 원래 정동에 자리 했으나 태종 이방원의 원한으로 현재 정릉동에 옮겨졌다 합니다 명종때 까지 방치되어 그위치조차 파악이 되지 않다가 계비 강씨의 후손들이 상소를 올려 명종때 현위치를 찾아내어 복원되었다 합니다

 

 

비운의 계비 신덕황후릉은 방풍석이 없습니다 정릉에 있던 방풍석을 서린동과 다동을 잇는 광통교 교각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조선 건국에 큰공을 세웠던 왕자 이방원 3차 왕자의 난을 일으킴니다  그는 배다른 계비 강씨의 손 배다른 동생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큰 원한을 가지고 마침내 자신을 소외시켰던 정도전과 세자 방석을 숙청하고 옹주까지 죽이고 맙니다 하지만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정동에 있던 묘를 정릉으로 옮기고  병풍석을 모조리 뜯어다 청계천 다리를 놓아서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릉과 달라 현재까지 정릉은 병풍석이 없습니다 

 

정릉방풍석은 고려의 문양 그대로 

 

이성계와 신덕황후의 인연의 설화가 있습니다

 

정릉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릉이다 그녀는 황해도 곡산에서 고려 충렬왕 때 세도를 떨친 권문세가의 규수로 태어났습니다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러브스토리는 극적이입니다 이성계가 어느날 호랑이 사냥을 나갔다가 목이말라 우물을 찾았는데 마침 그우물가에 한여인이 있었습니다 이성계가 그 여인에게 물좀 떠 달라 청하자 여인은 바가지에 물을 뜨고나서 버들잎 한 줌을 물위에 띄워주었습니다 이에 이성계가 무슨 고약한 짓이냐며 나무랐습니다 여인은 대답하기를 갈증으로 급히 달려오셨으니 냉수를 급하게 마시게 되면 사래 걸리거나 탈이 날것 같아 버들잎을 불며 천천히 마시라고 일부러 그리하였다 하며 수줍어 하였습니다 내심 여인의 미모와 지혜로움에 감탄한 이성계는 후일 그를 맞아드리는데 무려 나이 차이는 20년이었습니다  그녀는 조선개국 초기 많은 조력으로 기반을 닦았지만 방원의 왕자의 난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공주를 잃었습니다

 

 

흥천사와 정릉 주변 가을 풍경

조선의 타지마할이라불리는 흥천사 원찰 

방풍석이 없는 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