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

단풍에대한시모음(이재삼의설악산단풍사진)

이모르 2020. 12. 12. 13:23

나는 나무다
그들은 내 아래에서 휴식한다
어제는 남녀 배우였다

 

 

 

 

 

 

 

 

"인생은 연극 같은 거야 演技 하듯 사는 거지 모든 인생을
다 경험하는 나는 행복 한 거야 몇 일전 나는 햄릿을 주연했는데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를 연기 할 때 너무 몰입한 나머지
대사를 잊어버렸어 당신의 어머니가 친부를 독살한 정부와
살고 있다고 생각해봐 아!!!!!!!! 복잡한 것이 인생이라

 

나는 나무다
그들은 내 아래에서 휴식한다
오늘은 택시기사였다

 

 

 

 

 

 

 

"인생은 도청 같은 거야 남의 인생을 엿보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 한 것인지 모를 꺼야

그제는 로또 복권 200억에 당첨된 사람이

택시를 탓 는 데 술이 취해서 떨고 있었지 당첨 된

후로 행복 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하는데


외동딸이 5번 납치되고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거야

이민을 가야 한다며
옛날이 그립 다는군!!!!!!!!!

 

 

나는 나무다
그들은 내 아래에서 휴식한다


그들에게 부탁한다

휴식을 하고는 나에게 오줌 발 퍼붓는

背恩忘德하는 인생은 되지 말라고 !!!!!!!!!  

 


 

 

 

 

 

 

 

 

단풍축제

 

나는 문득 단풍든 지금 세상이 

피빛 으로 물든 천국인가

생각했다

 

 땅에 떨어져

뒹굴 단풍들이

어쩌면 이리도

야단 스러 울까?

 

단풍은 추억을 부른다

 

 

빨간 단풍잎 에다

사랑을 새겨 넣었다

말라버린 단풍잎은

사라져 버렸지만

그리움은 남아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사랑을 써넣었던

노랑 은행잎은 바스러져

허공에 흩어졌지만

책갈피 에 남겨진

상처의 자국은 그대로 남아

아픈 슬픔만 떠돌고 있었다


야생 국화 앞에서

사랑을 노래했었지 꽃은 시들고

말라버려 허공으로 흩어졌지만

향기는 남고 고독은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단풍 詩 모음

 

 

산영루(山映樓)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나무마다 붉디붉게 단풍 든 숲 속에
돌아온 계류 다시 산허리를 감도네
아득한 종소리 비에 잠겨 쓸쓸하고
그윽한 염불소리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오래된 바위 전생을 기억하게 하고
깊은 산은 종일토록 둘러보게 하네
어스름 비안개 거리낌 없이 머무르고
띠 닮은 오솔길 나를 보며 멀어지네

 

 

一一紅林裏(일일홍림리)

廻溪復截巒(회계부절만)
遙鍾沈雨寂(요종침우적)
幽唄入雲寒(유패입운한)
石老前生憶(석로전생억)
山深盡日看(산심진일간)
煙嵐無障住(연람무장주)
線路向人寬(선로향인관)

 

 

 

 

 

 

단풍/이외수

                                  

저 년이 아무리 예쁘게 단장하고

치맛자락 살랑거리며

화냥기를 드러내 보여도

절대로 거들떠 보지 말아라.


저 년은 지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명심해라.
저 년이 떠난 뒤에는 이내 겨울이

닥칠 것이고 날이면 날마다

 엄동설한, 북풍한설,

너만 외로움에 절어서

 술독에 빠진 몰골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가을/김현승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추일미음/서정주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촉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주먹처럼 놓였다만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가을사랑/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엽서/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꽃씨/문병란

가을날
빈 손에 받아 든 작은 꽃씨 한 알!
그 숱한 잎이며 꽃이며
찬란한 빛깔이 사라진 다음
오직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모여든 가을

빛나는 여름의 오후,
핏빛 꽃들의 몸부림이며
뜨거운 노을의 입김이 여물어
하나의 무게로 만져지는 것일까.

비애의 껍질을 모아 불태워 버리면
갑자기 뜰이 넓어 가는 가을날
내 마음 어느 깊이에서도
고이 여물어 가는 빛나는 외로움!

오늘은 한 알의 꽃씨를 골라
기인 기다림의 창변에
화려한 어젯날의 대화를 묻는다

 




가을/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녙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녁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가을단상/이제민

고추 말리는 아낙네의 손
가을걷이하는 농부의 얼굴
가을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다.

긴긴 기다림으로
간절함으로
한 해의 풍요를 기도하던 일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가을은 무르익어 가고
이른 새벽부터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가을은 깊어만 가고
하늘 높이 나는 고추잠자리
가을은 높아만 가네.

가을 그림자
길게 늘어지면
한 해의 내 그림자도
편히 쉬겠지.

 




저 가을 속으로/박정만

사랑한다, 사랑한다,
눈부신 꽃잎만 던져놓고 돌아서는
들끓는 마음 속 벙어리같이.

나는 오늘도
담 너머 먼 발치로 꽃을 던지며
가랑잎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

내사 짓밟히고 묻히기로
어차피 작정하고 떠나온 사람.

외기러기 눈썹줄에 길을 놓아
평생 실낱같은 울음을 이어 갈 것을

사랑의 높은 뜻은 비록 몰라도
어둠 속 눈썰미로 길을 짚어서
지나가는 길섶마다
한 방울 청옥같은 눈물을 놓고 갈 것을.

머나먼 서역만리
저 눈부신 실크로드의
가을이 기우뚱 기우는 저 어둠속으로.

 

 



가을/ 류원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파아란 가을하늘
싱그럽게 웃어주지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두둥실 가을구름
느릿느릿 지나가지요

고개를 돌려 옆 논을 보면
황금빛 벼이삭
출렁출렁 춤추며 웃지요

고개를 돌려 과수원 보면
풍성한 가을 과일
고개 들고 웃어주지요

고개를 저만치 돌리면
가을이 지나가며
가을을 이야기 해 주지요

 

 
가을바람/김혜영

 

가을하늘 파란도화지에
구름 색연필로
그림을 그립니다.

구름으로 그리는 엄마 얼굴
구름으로 그리는 아빠얼굴
가을바람 살랑 와서
구름엄마 구름아빠 데려가도
괜찮아요
또 그리면 되잖아요.

 


가을 /이상희

 

바다보다 더 깊고
푸른 가을하늘
누가 도화지에 색칠해 놨나?

파란색으로 물든 가을하늘
하얀색 물감이 번졌다.

가을이 되면
한껏 멋 부리는 가을나무
어떤 손님이 찾아 오길래
알록달록
색동옷으로 갈아입는 걸까?

잠자리 손님 맞으려고
예쁘게 치장하는 걸까?

가을이 되면
예뻐지는 나무와 하늘

 


가을산  /송영오

 

가을산은 아기가 물감을 가지고
장난을 한 것 같아요.
물감 가지고 노닐다
마음대로 뿌려 놓은 것 같아요.

알록달록 단풍잎!
울긋불긋 단풍잎!
예쁜 아가 손 같아요.

가을바람 아가씨가
알려주고 갔데요.
곧 겨울 왕자님이 올 테니
어서어서 곱게곱게
단장 하라 고요.

가을산은 아가가

물감으로 장난을 쳐도
알록달록
울긋불긋
단장하기 바쁘데요.

 


가을 아이 /강윤제

코스모스는
아이들 손 되어
바람을 흔들다가

코스모스는
아이들 얼굴로
바람을 웃다가 

코스모스는
아이들 되어
바람을 보여 준다.

가을 아이로
서 있는
코스모스.

 


도토리  /송영오

떽떼굴 도토리 하나
엄마 몰래
세상 구경 왔대요. 

바람 불고 추운 겨울이 올까봐
머리엔 깍지모자 눌러 쓰고
세상구경 나왔대요.

비가 오면 젖을까봐
단단한 깍지 외투
입고 나왔 대요

지금도 바람 불어 추운 겨울 날엔
도토리 나무는 토리찾아
토리야!  토리야!
외치고 있대요.

 

 
가을하늘/신세미

 

혹시 혹시
단풍잎이 가을하늘을 데워서
가을하늘에 빨개지면 어쩌지?
그럼 가을하늘이
단풍이랑 싸울거야.

아냐 아냐
노란 은행잎이
가을하늘에 부채질 해서
가을하늘에 파도가 치면 어쩌지?
그럼 가을 하늘이
은행잎이랑 싸울거야

 


도깨비바/남진원

풀밭에서
나와 보니
바지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도깨비 바늘

엄마에게 달라붙다가
안 통하니
내게 달라붙던 동생

똑 같다
똑 같다

 


가을/김기은 -

가을이 왔어요.
소리도 없이
산마다 빨간 손
들마다 노란 손
울긋불긋 아름다운
가을이 왔어요.

 


다람 다람 다람쥐 /박목월

 

다람 다람 다람쥐
알밤 줍는 다람쥐
보름 보름 달밤에
알밤 줍는 다람쥐

알밤인가 하고
조약돌도 줍고
알밤인가 하고
솔방울도 줍고 

 


  

단풍잎 행진 /정혜진

 

가을 햇살 접어 보낸
초대장 받고
설레인 마음 담아
옷 갈아입은 단풍잎.

찬 서리 내려보낸
차표 받아 들고
앞다투어 우수수
뛰어내린 단풍잎.

가을 바람 열차 타고
나무숲
공원 길
모두 덮고
놀이터까지 늘어선
단풍잎 행진

 


귀뚜라미 소리 /방정환

 

귀뚜라미 귀뚜르르 가느단 소리,
달님도 추워서 파랗습니다.

울 밑에 과꽃이 네 밤만 자면,
눈 오는 겨울이 찾아온다고,

귀뚜라미 귀뚜르르 가느단 소리,
달밤에 오동잎이 떨어집니다.

 


가을은 바람둥이에요/김희정

가을은 흔들흔들
가을벌판에 가서
흔들흔들 벼들과
같이 춤추고,

살랑살랑
단풍잎 은행잎과
함께 뛰어 놀지요.

그리고 한들한들
코스모스 아가씨와
몰래몰래
사랑나누는
가을은 바람둥이에요.

 

 
손님/최혜린

가을이 찾아 온대요!
가을을 맞이하려고
나뭇잎을 알록달록

노란색 빨간색
이 물감도 찍고
저 물감도 찍고

가을이 찾아왔대요
알록달록 예쁜나무
너무나 좋대요

 


가을 /남동희

 

가을은 참 바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오니까

농부아저씨들도
주렁주렁 달린
과일과 벼를 바쁘게
수확하니까

강남가는 제비도
퍼덕퍼덕 고운
날개를 휘저으며
바쁘게 지나가니까

동물들도 겨울잠
자려고 굴파느라 바쁘니까
울긋불긋 온 산에
핀 예쁜 단풍잎도
보름쯤 지나면
벌써 땅에 자리 잡는다.

가을아 가을아
기다려라 같이 가자
우리 모두 다 함께
천천히 가자

 

 

 

<단풍에 관한 시 모음>

이상국의 ´단풍´ 외


 단풍 /이상국

나무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잎잎이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봄에 겨우 만났는데
가을에 헤어져야 하다니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단풍1 /박가월

너의 죽음이
국민장이 되는구나
기껏 여름 몇 푼의 그늘
업적은 미비한데
화려한 장례식에
명산은 문상하느라
온 나라가 북새통이다



 단풍놀이 /김현주


빛 고운
다비식에
조문객이
너무 많구나



 너라는 단풍/김영재

이제 너의 불붙은 눈 피할 수 없다
감춰야 할 가슴 묻어둘 시간이 지나갔다
그 누가 막는다해도 저문 산이 길을 트고 있다



 단풍 /안도현

보고싶은 사람 때문에
먼 산에 단풍
물드는

사랑

 



 단풍 /류근삼

개마고원에 단풍 물들면
노고단에서도 함께 물든다
분계선 철조망
녹슬거나 말거나
삼천리 강산에 가을 물든다



 단풍 /유치환

신이 주신
마지막 황금의 가사를 입고
마을 뒤 언덕 위에 호올로 남아 서서
드디어 다한 영광을 노래하는
한 그루 미루나무



 단풍/피천득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핏빛 저 산을 보고 살으렸더니
석양에 불붙는 나뭇잎같이 살으렸더니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바람에 불려서 떨어지오
흐르는 물 위에 떨어지오 



 단풍 /신현정

저리 밝은 것인가
저리 환한 것인가
나무들이 지친 몸을 가리고 있는 저것이
저리 고운 것인가
또 어디서는 짐승이 울고 있는가
어느 짐승이 덫에 치인 생채기를 핥고 있는가
저리 뜨거운 것인가



 내장산 단풍 /나태주

내일이면 헤어질 사람과
와서 보시오,

내일이면 잊혀질 사람과
함께 보시오,

왼 산이 통째로 살아서
가쁜 숨 몰아 쉬는 모습을.

다 못 타는 이 여자의
슬픔을 ….
 



 단풍의 시 /손석철

세월이란 이름의 능글맞은 시인
피처럼 붉은 사연
노란 슬픔의 사연
쓰다쓰다 구겨진 갈색 사연을
야위어 가는 햇살 아래서
바람과 함께 단풍의 가엾은 몸에다
아픈 문신처럼 엮어 갑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진실로
낙엽은 결코 슬픔이 아니라
정녕 끝이 아니라 



 단풍/박태강

그 당당하던
푸르름은 어디에 가고

무안을 당했느냐
꾸중을 들었느냐
얼굴이 빨개져서 보기 좋구나

빨개져도 놓지 마라
손까지 놓으면
땅에 떨어지고

땅에 떨어져 뒹굴면
낙엽 되느니



 단풍 /반기룡

해마다
색동옷 입고
파도타기를 하는 듯
점점이 다가오는 너에게
어떤 색깔을
선물해야 고맙다고 할까

 



 단풍의 고해/임영준

죄를 사하여 주소서
이 한 몸 불살라
상제 하겠나이다
감히 은총을 거슬러
만고청춘을
구가하려 하였으니
천벌을 받아 마땅하리니
기꺼이 활활 타올라
경건한 제물이 되겠나이다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단풍의 이유/이원규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단풍나무 /김승동

옷을 벗는 것이다
푸르고 단정하던 껍데기를
벗어 던지는 것이다

여름 날
숨막히게 내리 쪼이던
햇살 앞에서도 당당했고

온 몸에 퍼부어 대던
굵은 물줄기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던 푸르름

바위틈에 바람이 일고
흰 눈발 펄펄 하늘로 가는 날에도
담담하게 서있으려니 했는데

훌훌 옷을 벗는 것이다 저렇게
벗어 던지면 더 아름다운 것을
기어이 보여주는 것이다

 




 단풍, 혹은 가슴앓이 /이민우

가슴앓이를 하는 게야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대낮부터
낮술에 취할 리가 없지

삭이지 못한
가슴속 붉은 반점
석양으로 타오르다 마침내
마침내 노을이 되었구나

활활 타올라라
마지막 한 잎까지
아쉬워 아쉬워 고개 떨구기엔
가을의 눈빛이 너무 뜨겁다





 단풍 /이시라

그 여자 단풍드는 여자 어머니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그 시간 단풍드는 시간 죽음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그 입술 단풍드는 입술 침묵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그 몸 단풍드는 몸 詩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죽을 줄 모르는 죽음으로
살 속의 물과 꿈, 긴 속삭임 다 쏟아내고
내 속에 뼛가루 꽃나무를 꼿꼿하게 세운다



 단풍을 보면서 /조태일

내장산이 아니어도 좋아라
설악산이 아니어도 좋아라

야트막한 산이거나 높은 산이거나
무명산이거나 유명산이거나
거기 박힌 대로 버티고 서
제 생긴 대로 붉었다
제 성미대로 익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니더라도
낮고 충충한 바위하늘도 떠받치며
서러운 것들
저렇게 한번쯤만 꼭 한번쯤만
제 생긴 대로 타오르면 될 거야
제 성미대로 피어보면 될 거야

어린 잎새도 청년 잎새도
장년 잎새도 노년 잎새도
말년 잎새도
한꺼번에 무르익으면 될 거야
한꺼번에 터지면 될 거야

메아리도 이제 살지 않는 곳이지만
이 산은 내 산이고 니 산인지라
저 산도 내 산이고 니 산인지라





 나무들은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이기철 

사랑하는 시간만 생이 아니다
고뇌하고 분노하는 시간도 끓는 생이다
기다림만이 제 몫인 집들은 서 있고
뜨락에는 주인의 마음만한 꽃들이
뾰루지처럼 붉게 핀다

날아간 새들아, 어서 돌아오너라
이 세상 먼저 살고 간 사람들의 안부는 이따 묻기로 하고
오늘 아침 쌀 씻는 사람의 안부부터 물어야지
햇빛이 우리의 마음을 배춧잎처럼 비출 때
사람들은 푸른 벌레처럼 지붕 아래서 잠깬다

아무리 작게 산 사람의 일생이라도
한 줄로 요약되는 삶은 없다
그걸 아는 물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흘러간다

반딧불 만한 꿈들이 문패 아래서 잠드는
내일이면 이 세상에 주소가 없을 사람들
너무 큰 희망은 슬픔이 된다
못 만난 내일이 등 뒤에서 또 어깨를 툭 친다

생은 결코 수사가 아니다
고통도 번뇌도 힘껏 껴안는 것이 생이다
나무들을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생은 피우는 만큼 불게 핀다고





 단풍 숲속을 가며 /오세영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옆을 보면
화들짝 붉히는 낯익은 얼굴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뒤를 보면
또 노오랗게 흘기는 그 고운 눈빛
가을 산 어스름 숲속을 간다
붉게 물든 단풍 속을 호올로 간다
산은 산으로 말을 하고
나무는 나무로 말하는데
소리가 아니면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하루해는
설키만 하다
찬 서리 내려
산은 불현듯 침묵을 걷고
화려하게 천자만홍 터뜨리는데
무어라 말씀하셨나
어느덧 하얗게 센 반백의
귀머거리
아직도 봄 꿈꾸는 반백의
철딱서니



 열매 도둑 단풍 도둑/하종오

며칠만에 돌아와 집안 둘러보니
풀들이 밟혀 작은 길 생겨나 있다
그 새로 난 작은 길 가보니
은행나무 아래서부터
감나무 아래로 가서 멎었다가
대추나무 아래로 가서 멎었다가
뒤란 둔덕까지 가서 멎어 있고
나무마다 가지에 열매 하나 없다
우리 집에는 대문이 없는데도
올해도 누가 집 뒤에 트럭 대놓고 들어와
대추와 감과 은행 싹 털어 싣고 갔다
단풍 들 무렵이면
내가 집 나가는 짓거리 알고 있는
이웃이 와서 한 짓거리 아니라면
해마다 때 잘 맞출 순 없는 법이지만
혐의를 품지 않기로 한다
나도 산천에는 대문에 없다는 걸 알고
함부로 이곳저곳 드나들며
나무들이 잎에 맺은 색깔들 눈독들여 와서
마음에 한 자리 깔았으니 피장파장 아닌가
그 새로 난 작은 길 발자국 맞춰 걸어보니
내 걸음나비와 똑같다





 청단풍으로 지다 /목필균

하늘은 파랗게 올라섰는데
구름 한 점 없는데

여린 바람결에
잔 나뭇가지 하나 뚝 꺾인다
가지에 달렸던 나뭇잎도
의미 없이 따라 지고만다

추분이 지나
밤이 길어졌으니
부러진 나뭇가지에
새순 돋기는 틀린 일이다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감 몇 알 붉게 익어가는데
부러진 손 허우적거리며
올리는 기도

어머니의 어머니가
착하게 살라 했는데
어머니가 말없이 살라했는데
그렇게 살다가 이렇게
병든 가슴 무너진 채
병실에서 올리는 기도

딸아,
넌 결코 착하게 살지 마라
너만을 생각하고 당차게 살아라
어미처럼 어미처럼
여린 바람에도 부러지는 나무가
되지 마라


(목필균·교사 시인)


 *암 말기 수술을 받고 누워 있는

 동료교사를 보고 와서

* 엮은이: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단풍/안도현

 

둘러봐도, 팔짱 끼고 세상은 끄덕없는데
나 혼자 왜 이렇게 이마가 뜨거워지는가
나는 왜 안절부절 못하고 서서
마치 몸살 끝에 돋는 寒氣처럼 서서
어쩌자고 빨갛게 달아오르는가
너 앞에서, 나는 타오르고 싶은가
너를 닮고 싶다고
고백하다가 확, 불이 붙어 불기둥이 되고 싶은가
가을날 후미진 골짜기마다 살타는 냄새 맑게 풀어놓고
서러운 뼈만 남고 싶은가
너 앞에서는 왜 순정파가 되지 못하여 안달복달인가
나는 왜 세상에 갇혀 자책의 눈물 뒤집어쓰고 있는가
너는 대체 무엇인가
나는 왜 네가 되고 싶은가
                

 

 

단풍나무한그루/안도현

 

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죽여야겠다고

가을 산 중턱에서 찬비를 맞네

오도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하고

너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

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단풍나무 아래서/이해인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세상과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저절로 기도가 되는
단풍나무 아래서
하늘을 보면 행복합니다
별을 닮은 단풍잎들의
황홀한 웃음에 취해
나의 남은 세월 모두가
사랑으로 물드는
기쁨이여